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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불분명한 게임 과몰입, 정확한 진단근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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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과몰입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이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됐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국내 게임산업에서 ‘중독’, 혹은 ‘과몰입’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해 실생활을 등한시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진단하고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독물’로 규정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게임의 부작용은 보다 넓은 차원의 사회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지 게임 자체가 중독을 유발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11월 2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게임 과몰입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국제 심포지엄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준비된 자리였다. 이 날 심포지엄에는 여러 유명 석학들이 모여 ‘게임 과몰입이란 무엇인가’를 논했다.

연사들의 공통된 의견은 정신병리학적으로 게임 과몰입 증세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멤피스 대학 임상심리학 박사 메레디스 긴리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의학 사전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과 ‘국제질병분류 제11판‘에 이미 게임 과몰입이 정신질환으로 등록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문제는 게임 과몰입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있었다. 긴리 박사는 게임 과몰입으로 분류되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수면이나 식습관 등 신체기능 저하를 겪고, 우울증을 비롯한 동반질환도 일관적으로 확인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이 정말 게임 과몰입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증명할 임상적 근거는 확인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실제로 학계에서도 같은 증상을 놓고 게임 과몰입인지 아닌지 진단이 엇갈리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 게임 과몰입에 대한 임상적 진단기준이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는 메레디스 긴리 박사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룩셈부르크대 임상심리학 부교수인 요엘 빌리외 박사도 게임 과몰입 문제의 원인이 꼭 게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진료한 한 환자를 예로 들었다. 한 여성이 요엘 박사가 운영하는 게임 과몰입 클리닉을 찾았다. 그런데 사실 그 환자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고, 무의식 중에 그 기억을 잊기 위해 게임에 집착했던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게임 과몰입처럼 보였지만, 사실 진정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던 셈이다.

국제게임연구회 이사인 마크 그리피스 박사도 진단기준의 불분명함이 문제라는 데 뜻을 같이 했다. 그리피스 박사는 30년 동안 인터넷, 도박 등 다양한 비물질 중독을 연구해왔으며, 게임 또한 분명히 중독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 학자다. 그러나 그는 정부와 언론이 게임 과몰입으로 분류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사실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환자의 임상적 상태를 판단하는 의학적 기준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리피스 박사는 의학적 검증에 기반 하지 않은 과몰입 진단은, 자칫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에게 중독자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게임 플레이 시간을 게임 과몰입의 척도로 생각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똑같이 하루 20시간 게임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중 한 사람은 21살에 직업도 없고, 키울 자식도 없고, 시간만 많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을 게임에 할애하여 만족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그가 게임을 해서 일상에 생기는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43세에 직업이 있고, 해야 할 일도 있고, 키울 자식도 있는 사람이 있다. 그가 상사 업무 지시, 배우자 이혼 요구, 자식의 일탈을 모두 무시하고 계속 게임을 한다면, 그것은 중독이다. 요컨대 게임 과몰입의 요건은, 게임이 삶의 건강성을 얼마나 해치냐에 있다.”



▲ 게임 과몰입을 플레이 시간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 마크 그리피스 박사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다만, 그리피스 박사도 게임으로 인한 문제가 어디까지는 정상이고 어디부터 비정상인지 진단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따라서 증상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리학적인 진단기준과 정의가 확보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연사들은 게임 과몰입이 이처럼 전문적 학술연구가 필요한 복잡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게임 과몰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너무도 피상적이라고도 이야기했다. 언론은 자극적 기사를 쓰기 위해 게임 때문에 살인과 일탈이 벌어진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부모들은 게임이 자식을 망친다고 책임을 돌리면서도 자신들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즉, 게임 과몰입의 원인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낙인만 찍는다는 이야기다.

특히 시드니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부교수 블라단 스타서빅은, “대중에게 게임 과몰입 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서구권에는 게임에 대한 객관적 기사를 쓰는 언론이 거의 없다”며, 언론과 가정의 게임 과몰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했다.

한국의 셧다운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스타서빅 박사는 셧다운제도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적절한 문제인식 없이 만들어진 제도인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앞에서 언급했듯 플레이 시간은 게임 과몰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임을 오래 해도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많다. 학생들의 게임 과몰입은 개인 성격, 가정불화, 성적, 지능 등 다른 문제와 함께 발생한다. 게임 과몰입을 막고 싶다면 단순히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사회가 학생의 정신건강에 더 많은 신경 쓰는 게 좋다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연사들은 패널 토론에서 게임 과몰입 문제는 게임 자체에 있지 않다는 공통 결론을 내놓았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게임을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게임 과몰입 정의 및 진단기준을 제시하기에는 연구 실적이 부족하므로, 더 많은 국제학술활동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 국제 심포지엄에 참가한 학자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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