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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똑같이 아들이 죽었다, 연극 '킬롤로지'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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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킬롤로지'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연극열전 공식 유튜브)

가상의 게임 '킬롤로지'는 사람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게 목표다. 심장을 노려 총알 한 방만으로 사람을 죽이면 1점. 팔이나 배를 쏴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죽게 만들면 100점. 거기에 고문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다만, 플레이어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감점되니까.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키며 동시에 많은 유저들에게서 사랑받는 게임이 된다. 

한편, 무대에는 세 남자가 있다. 폴은 '킬롤로지' 제작자다. 생일파티에서조차 자기를 힐난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괴롭힐 수 있을까를 상상하며 게임을 만들었다. 18살 데이비는 강도에 의해 '킬롤로지'의 한 장면처럼 처참하게 살해당한 소년이다. '알란'은 그의 아버지다. 아들이 죽은 일차적 원인을 게임에서 발견하고는 폴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영국의 극작가 게리 오웬의 최신작 '킬롤로지'는 게임의 잔혹함에 기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원인과 그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줄곧 게임은 사회나 국가에 의해 통제될 대상이 아니라고 넌지시 제시한다.

연극 '킬롤로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원인과 책임에 질문을 던진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 연극 '킬롤로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원인과 책임에 질문을 던진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세 남자의 독백을 통해 묘사되는 비극

극은 철저하게 세 사람의 독백으로 진행된다. 별도의 주·조연 없이 펼쳐지는 군상극이며, 각자 자리에서 자기 사연을 읊어대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전막이 진행된다. 인물의 상황과 감정은 의상과 버려진 의자, 비뚤어진 거울을 통해서 묘사된다. 회상과 현실을 오가는 서술트릭을 적절히 활용해 세 명이 한 공간 한 시간대로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어딘가 삐뚤어지고 어긋난 무대를 통해 극중 상황과 인물의 감정이 전달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어딘가 삐뚤어지고 어긋난 무대를 통해 극중 상황과 인물의 감정이 전달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각 인물에겐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결핍이 존재한다. 게임 제작자 폴에게는 아버지의 인정, 데이비는 사회 안전망과 부모의 보살핌, 알란에겐 가족을 위한 여유로움이 결여돼 있었다. 폴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무시와 비난 속에서 자라왔으며, 데이비는 폭력이 난무하는 동네에서 강아지와 단둘이 집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알란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항상 멀리 떠나있기 일쑤였다.

어찌 보면 뻔한 배경의 중심에 폴이 만든 게임이 놓이며 극은 시의성과 사회성을 띄게 된다. 극 중 묘사되는 '킬롤로지'는 실제로 존재하기 어려울 만큼 잔혹한 게임이다. 게임의 목적도 순전히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만 몰두해 있으며, 기본적인 윤리적 가치관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극 중 데이비를 살해한 강도들은 게임에서 실현 가능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데이비를 살해한다. 

폴은 자신이 만든 게임이 매우 솔직하고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 폴은 자신이 만든 게임이 매우 솔직하고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게임으로 인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방법

극 중 게임은 미디어의 폭력성을 대표한다. 왜 하필 게임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모방범죄에 활용되기 가장 좋은 미디어가 게임이기도 하며, 그만큼 접하기 쉬운 콘텐츠이기도 하다. 연극은 관객이 '게임이 나쁜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폭력성이 두각되는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명백히 구분한다. 게임이 가진 산업적·예술적 가치를 철저히 배제한 채 오롯이 폭력의 유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작은 이와 같은 사건이 줄곧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설명한다. 게임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다거나 하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물론 데이비가 아버지를 따라갔다거나, 선생님을 의자로 내리치지 않았다면 하는 심정적인 가정도 제시한다. 혹은 데이비의 어머니가, 학교가, 경찰이 그를 일찌감치 지켜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도 세울 수 있다. 데이비가 죽은 시점에서 얘기가 시작되는 만큼 독백 속에서 제시되는 상황이 관객 스스로 이런 가정법을 사용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극중 데이비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은 몇 번이고 제시된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 극중 데이비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은 몇 번이고 제시된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일련의 흐름 속에서 연극은 게임으로 대변되는 미디어의 폭력성은 인정하되, 그것은 어떤 경우에서건 통제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올바른 교육, 부성애, 사회 안전망을 갖춤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란 것이다. 

극 중 이와 같은 주제의식은 역설적으로 통제가 필요 없는 상황을 줄곧 제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폴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법정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반대하던 알란은 정신병동에 들어가 현실과는 다른 상냥하고 착실한 데이비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손을 잡아줬다면"이란 후회 넘치는 대사로 자신의 삶과 실수를 자책한다.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으로 막을 수 있는 사태였다고 시인하는 꼴이다.

알란의 상상 속의 데이비 또한 게임을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로 대변되는 사회의 보살핌 속에 인간애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고 그를 실천하려 최선을 다한다. 폴 역시 사건 이후 임종 직전의 아버지를 최선을 다해 부양하는 진실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양아들에게 행하는 자신의 행동에서 아버지를 보며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

데이비의 아버지 알란의 후회섞인 독백은 안타까움의 이면에 변명을 담고 있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 데이비의 아버지 알란의 후회섞인 독백은 안타까움의 이면에 변명을 담고 있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통제의 대상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서의 폭력

아쉽다면 아쉽게도 극 중에서 게임이란 소재는 어느 순간 뒷전이 돼 있다. 폴은 여전히 게임 제작자로 활동하지만 '킬롤로지'의 존폐 여부는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그건 본작에서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극 중에서 일어난 비극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며, 그 이유를 대변하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폭력성으로만 점철된 게임이 부정에 밀려 극 중에서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도 있다.

모방범죄를 조장하는 게임의 잔혹함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기대하고 연극을 본다면 필히 찝찝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 게임은 그 폭력성과 악영향을 겸허히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연극 '킬롤로지'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과감히 한발 더 나아가 게임으로 인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게임의 폭력성은 개인의 차원에서 얼마든지 관리될 수 있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 게임의 폭력성은 통제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다 (사진출처: 연극열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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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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