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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게임규제, 마오쩌둥 문화대혁명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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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왕별희'에 보면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주인공 일행이 인민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재판을 받는 이유가 꽤나 황당하다.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반정부시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경극단원'이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의 정수라고 불리는 '경극'이 구시대적이고 봉건적인 내용만 추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의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의 중국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각종 문화 통제가 이뤄졌었다.

'패왕별희'는 홍위병으로 활동했던 감독이 당시를
▲ '패왕별희'는 개봉 당시 중국 정부 검열로 자국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았던 작품이다 (사진출처: 영화 공식 홈페이지)

헌데 최근 게임을 대하는 중국의 모습이 이와 비슷하다. 게임 허가권인 '판호' 발급을 금지하는 것도 모자라서 청소년의 근시를 예방하자는 명목으로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규제의 목적이 '감시'와 '기강확립'이라는 점에서 문화대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젊은 계층을 위주로 펼치는 통제 정책이란 측면에서 더더욱 이와 닮아 있다.

중국의 문화를 100년 넘게 후퇴시킨 '문화대혁명'

1950년대 중국은 마오쩌둥 지휘하에 '대약진 운동'을 실시한다. 대약진 운동은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 하고자 농민들을 주체로 농공업 생산량을 늘리고자 한 운동이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로 유명한 제사해 운동도 여기에 속한다. 제사해 운동과 마찬가지로 대약진 운동은 약진이 아닌 후퇴에 가까웠고 많은 사람이 기근으로 사망했으며, 이로 인해 마오쩌둥은 사퇴하게 된다.

▲ 대약진 운동의 실패이후 '마오쩌둥'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사진출처: 신화통신)
▲ 대약진 운동의 실패이후 '마오쩌둥'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사진출처: 신화통신)

문화대혁명은 그 직후 일어났다. 사퇴한 마오쩌둥이 후임으로 정권을 쥔 덩샤오핑을 견제하고자 일으킨 운동이라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낡은 문화나 교육, 정치를 숙청하자'는 내용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젊은이들을 꾀어서 벌인 문화 파괴에 불과했다. 마오쩌둥이 자신의 사상에 찬동하는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홍위병'을 결성해 중국의 고서, 유물, 책, 연극, 음악 모든 것들을 폭력으로 규제한 일종의 반란으로 볼 수 있다. 

홍위병들의 활동으로 인해 각종 문화재가 파괴됐고, 문화 예술 관련 서적은 모두 소실됐다. 위에서 말했던 영화 '패왕별희'처럼 각종 전통 음악, 연극, 영화, 심지어는 무술계열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교육이란 이름의 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그렇게 불구가 되거나 직업을 잃고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경우가 태반이었으며 수치심에 자살을 하는 예술인도 많았다. 당시 중국공산당 최고 권위자였던 덩샤오핑도 이 시기에 몇 번의 교육을 받고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모택동 어록을 들고 있는 홍위병들 (사진출처:
▲ '문화대혁명' 당시 모택동 어록을 들고 있는 홍위병들 (사진출처: imgur)

마오쩌둥이 이와 같은 운동을 일으킨 이유는 다름 아닌 재집권과 집권 장기화를 위함이었다. 물론 문화대혁명이 성행하던 몇 년간은 예전의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서민이 이 운동으로 피해를 보면서 마오쩌둥은 장기집권은커녕 그나마 쌓아온 공적조차 저평가받게 된다. 중국 공산당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문화대혁명은 그냥 대학살극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어쩐지 닮아있는 마오쩌둥과 시진핑 

재밌게도 문화대혁명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현 중국 수석 시진핑 상황과 잘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현재 2기에 걸쳐 국가 주석 자리를 연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내에선 10년까지만 집권이 가능하다는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이번 집권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그간 시진핑이 보여준 사상통제와 퇴행적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이 대중 사이에서 급격히 생겨나며 시진핑 퇴진설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시진핑의 정책에 대한 중국 국민의 반발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출처: 신화통신)
▲ 시진핑의 정책에 대한 중국 국민의 반발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출처: 신화통신)

종신집권을 원하는 시진핑 입장에서 이는 당연히 있어선 안 될 말이다. 시진핑은 발 빠르게 우상화 작업을 진행했고 법을 개정해 자신의 후계자를 만드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문화 통제와 검열이었다. 마오주의에 취해 있는 기득권 세력보다는 신문명에 익숙하고 소식이 빠른 10대에서 30대를 통제하기 위해선 인터넷과 영화, 음악 등을 우선 검열해야 했다. 그리고 게임을 최우선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게임을 주요 검열 대상으로 결정한 이유는 현재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콘텐츠가 게임이기 때문이다. 각종 외국 문물이 게임과 게임 속 채팅을 통해 유입되고 있는 만큼 게임은 사실상 규제 1순위나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문화대혁명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사상에 거부감이 없는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선 적절한 교육과 문화 통제가 필수다. 결국 게임이 제일 먼저 규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중국 게임 규제 방향에 대해 보도한 중국 남방도시보 9월 1일자 기사 (사진출처: 남방도시보 공식 홈페이지)

시진핑은 게임 규제를 위해 일단 '판호' 발급을 중국 내외로 전면 중단하고 게임산업을 관장하던 광전총국의 업무를 공산당 중앙선전부로 이관했다. 당에서 직접 게임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실제로 중국은 얼마 전 중국 내 최대 IT 기업인 텐센트에게 직접 제재를 가한 바 있다. 텐센트 게임플랫폼 '위게임'에서 유통한 '몬스터헌터 월드'를 서비스 중단시킨 것이다. 


▲ 지난 8월 30일 중국 정부는 '청소년 근시 예방 계획'을 발표 (자료출처: 중국 문화부 공식 홈페이지)

'청소년 근시 예방 종합방안' 또한 마찬가지다. 청소년 근시 원인을 게임으로 규정하고 이를 대놓고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에서 직접 발표한 이번 정책에 따라 중국 청소년들은 교육목적 이외의 모든 게임은 하루 1시간, 한 번에 15분밖에 이용할 수 없으며, 밤 9시 이후 게임에 접속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이 밖에도 채팅을 통한 부정적 여론의 확산을 막고 폭력적인 콘텐츠도 제한하는 등 다방면에서 통제를 강화하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게임 규제, 과연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임 규제로 대두되는 시진핑의 장기집권 정책은 실질적인 폭력만 없다뿐이지 청년을 위시한 극심한 문화 통제라는 측면에서 '문화대혁명'의 태동기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다. 시진핑 스스로 "나는 호랑이든, 파리 새끼든 다 때려잡을 겁니다"라고 직접 발언한 바 있는 만큼 실제로 온라인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지금의 규제에 길들여진 10대, 20대가 후에 제2의 홍위병이 돼 이 같은 규제를 주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시진핑의 이와 같은 게임 규제가 그의 장기집권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당장에 시진핑 자신도 문화대혁명 시기 탄압으로 인해 판자촌에서 힘든 생활을 견뎌내야 했단 걸 생각하면 지금의 행보가 묘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 차이나조이 2018 텐센트 부스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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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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