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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헐크 호건보다 뜨거운, 게임 속 프로레슬러 TO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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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며칠 전, 북미 스포츠 단체 월드레슬링엔터테인먼트(WWE)가 헐크 호건의 자격 및 기록을 복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호건은 오늘날 프로레슬링이 쇼 엔터테인먼트로서 자리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3년 전 자신의 딸이 흑인 남성과 사귄 것을 문제 삼으며 인종 차별적인 폭언을 쏟아내 WWE에서 퇴출된 바 있다. 이번 복권은 그럼에도 호건이 쌓아온 공로가 지대하며 그간 수차례 행한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 자원 봉사를 참작한 결과라고.

헐크 호건은 오랫동안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영웅이었고 WWE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단체에서 퇴출되고 명예의 전당에서까지 끌어내려진 이유는 프로레슬러가 특정 인종만을 대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야 누구나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되지만 프로레슬러는 특히나 그렇다. 링 위를 장악하고 현란한 기술을 펼치는 그 순간 프로레슬러는 모든 관중의 영웅이어야 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뜨겁고 강렬한 ‘게임 속 프로레슬러’를 얘기하고자 한다.

5위. 휴고 (파이널 파이트)

필살기라니 뭔 소리야, 이거 약발차긴데 (출처: ‘스트리트 파이터’ 웹사이트)
▲ 필살기라니 뭔 소리야, 이거 약발차긴데 (출처: ‘스트리트 파이터’ 웹사이트)

‘파이널 파이트’ 속 악의 조직 ‘매드 기어’ 간부인 휴고는 이런 류의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덩치 큰 악역이다. 다만 ‘파이널 파이트’ 당시만해도 제대로 된 이름이나 설정도 없는 그냥 초반 중간보스로, 나중에는 옷 색깔만 바뀐 녀석이 여럿 등장하며 가족 관계라고 대충 얼버무릴 정도였다. 어쨌든 초심자에게는 상당한 난적이었던 터라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에 정식 캐릭터로 수출되는 행운을 누렸다.

‘스트리트 파이터’ 프로필에 따르면 휴고는 자그마치 신장 240cm에 체중은 200kg가 넘는 괴물이다. 덕분에 ‘매드 기어’ 눈에 띄어 조직 생활을 하다가 현재는 죗값을 치르고 프로레슬러가 됐다는 모양. 이러한 설정은 북미는 물론 일본에서도 전설로 추앙받는 거인 레슬러 안드레 더 자이언트에게서 따왔는데, 전체적인 외형과 기술에서 그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말단 비대증과 거인병을 앓던 안드레는 휴고에 버금가는 괴력을 자랑하는 당대의 프로레슬러였다.

4위. 후안 (과카밀레!)

충분히 발달한 근육은 백마법과 구분할 수 없지 (출처: ‘과카밀레! 웹사이트)
▲ 충분히 발달한 근육은 백마법과 구분할 수 없지 (출처: ‘과카밀레! 웹사이트)

‘과카밀레!’는 멕시코 문화가 흠뻑 묻어나오는 플랫포머 액션 게임으로 망자의 날 명계에서 돌아온 악당 칼라카와 영웅 후안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당초 몸 좋은 동네 청년에 불과하던 후안은 신비한 복면의 힘을 빌려 초인 루차도르로 변신, 문답무용의 호쾌한 격투기로 명계의 악령들을 박살낸다. 여기서 루차도르란 중남미 지역의 전통 프로레슬링이라 할 수 있는 루차 리브레(Lucha Libre) 선수를 의미한다. 즉 이 캐릭터도 당당한 프로레슬러라는 얘기.

화려하면서도 민첩하고 기교를 중시하는 루차 리브레는 프로레슬링이 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일본에서 호응이 좋았으며 자연스레 옆나라인 한국에까지 전파됐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복면 레슬러 기믹이 바로 루차도르에서 온 것이다. 복면 레슬러 중에는 데뷔할 때부터 은퇴 시까지 항시 정체를 숨길 뿐 아니라 아예 믿을 만한 후배에게 아이덴티티를 물려주어 대를 넘어 미스터리한 카리스마를 유지하기도 한다.

3위. 킹 오브 다이노소어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쿄를 쓰러트렸다! 뭐, 사이버가수 아담이라고? (출처: ‘KOF 14’ 웹사이트)
▲ 쿄를 쓰러트렸다! 뭐, 사이버가수 아담이라고? (출처: ‘KOF 14’ 웹사이트)

전작으로부터 무려 6년 만에 부활한 ‘더 킹 오브 파이터즈 14’는 쿄, 이오리, 테리와 같은 전통의 인기 캐릭터들과 몇몇 개성 강한 신규 출전자로 채워졌다. 부담스러울 만큼 거대한 공룡 탈을 쓴 킹 오브 다이노소어도 그 중 하나로, 흉악한 모습답게 악역 기믹을 지닌 프로레슬러다. 이 캐릭터 자체는 썩 괜찮은 디자인이지만 기존 시리즈에 이미 그리폰 마스크라는 레슬러가 있음에도 굳이 신규 출전자로 대체한 점은 아무래도 수상해 보인다.

일단 개발팀은 킹 오브 다이노소어와 그리폰 마스크가 동일 캐릭터임을 극구 부인하는 중이지만 기술이 이름만 다르고 똑같은데다 성우까지 재기용하며 확인사살. 심지어 프로필 상 소중한 것이 ‘전설적인 야수의 가면’인데 당연히 그리폰 마스크를 가리킨다. 이처럼 선한 프로레슬러가 악역으로 돌아서며 아이덴티티를 바꾸는 일은 턴 힐(Turn heel)이라 해서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보통은 인기가 떨어져 신선한 자극제가 필요할 때 턴 힐로 극적인 반전을 주는 편.

2위. 킹 (철권)

잘 모르는 사람은 철권에 수인족이 나오는 줄… (출처: ‘철권’ 웹사이트)
▲ 잘 모르는 사람은 철권에 수인족이 나오는 줄… (출처: ‘철권’ 웹사이트)

킹은 미시마 가문을 둘러싼 ‘철권’ 핵심 줄거리에서는 살짝 동떨어져 있지만 거침없고 강력한 싸움 방식으로 수많은 플레이어를 거느린 인기 캐릭터다. 깡패질이나 일삼던 부랑자가 어느 신부의 온정으로 갱생해 프로레슬러가 되었다는 다소 장발장스러운 설정의 주인공으로, 굳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것은 어두운 과거 탓일지도. 레슬러로 링에 오를 때면 언제나 재규어 마스크를 쓰는데 게임에서 보면 이건 뭐 복면이 아니라 거의 수인 취급이다.

이처럼 인상적인 복면에서 보듯 킹의 실존 모델은 저 이름 높은 타이거 마스크. 1950년대 혜성처럼 등장하여 일본 프로레슬링계에 복면 레슬러 붐을 일으킨 타이거 마스크는 타고난 실력과 그보다 더 출중한 쇼맨십으로 관중들의 혼을 쏙 빼놓았으며, 롤링 소배트나 타이거 스핀과 같은 멋들어진 기술을 창안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체불명의 라이벌 아머 킹이라거나 대를 이어 싸워나간다는 등 킹의 주요 설정도 대부분 타이거 마스크가 원조라 할 수 있다.

1위. 장기에프 (스트리트 파이터)

이게 바로 인민의 주먹이라는 거다! (출처: ‘스트리트 파이터’ 웹사이트)
▲ 이게 바로 인민의 주먹이라는 거다! (출처: ‘스트리트 파이터’ 웹사이트)

게임 역사를 통틀어 ‘스트리트 파이터’ 장기에프만큼 유명한 프로레슬러는 없을 것이다. 이른바 ‘붉은 싸이클론’이라 불리우는 러시아 인민의 영웅, 상처투성이 우람한 근육과 짧게 깎은 모히칸 머리는 그의 영원한 트레이드마크다. 1991년작 ‘스트리트 파이터 2’에 첫 출전한 이래 벌써 30년 가까이 활약 중으로 ‘대전격투게임 최초의 잡기 캐릭터’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쥐고 있기도 하다. 장기에프로 스크류 파일 드라이버를 먹여보지 않은 자 잡기 캐릭터를 논하지 말라.

재미있게도 장기에프는 이름과 외형, 그리고 성격의 기원이 모두 다르다. 일단 이름은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했던 빅토르 장기에프와 같으며 특유의 생김새는 북미 영화배우 겸 레슬러인 미스터 T를 빼다 박았다. 조국을 부름을 받고 인민들을 위해 싸우는 영웅이자 체제의 우월성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측면에서는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드르 카렐린이 떠오르기도. 결과적으로 장기에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장기에프만의 매력을 지니게 된 셈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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