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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여기가 ‘쯔위’의 나라입니까? ‘대만’ 오락실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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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의 마음 속에 ‘대만’은 어떤 나라인가요? 한때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사이였지만, 92년 수교단절 이후 여러모로 관계가 소원해지고 말았죠. 그나마 최근에는 인기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인 멤버 ‘쯔위’ 덕분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리듬게이머에게는 ‘사이터스’와 ‘디모’를 만든 레이아크의 고장으로도 나름 알려져 있고요.


▲ 국내에서 대만은 쯔위를 보내준 고마운 나라라는 정도? (사진출처: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해 레이아크가 고품질 액션게임 ‘임플로전’을 선보인 후 누리꾼 사이에선 “이게 정말 대만 게임이야!?”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대만은 게임 산업이 원숙한 나라로, 한국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연혁과 인프라를 지니고 있어요. 90년대 명작으로 손꼽히는 ‘윈드 판타지 택틱스’와 ‘삼국지 무장쟁패’, ‘던 레이더’ 등이 실은 다 대만 게임이랍니다.

대만은 경기도보다 조금 더 큰 수준으로 인구는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고 구매력이 뛰어나 해외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특히 ‘BEMANI’와 ‘태고의 달인’ 등 리듬게임을 좋아하고, 이외에도 각종 체감형 게임을 즐겨 오락실 문화가 크게 흥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흥했길래 그러냐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랜만에 꺼내는 코너 [성지순례] 대만편입니다.


▲ 지금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90년대 명작 대만게임들 (사진출처: 위키페이지) 

사실 처음부터 [성지순례]를 쓰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업무로 대만에 출장을 왔는데, 딱 3~4시간 정도 시간이 비더군요. 트와이스의 열렬한 팬인 저로서는 도저히 대만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숙소에서 낭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대만 게이머들이 평소 향유하는 게임 문화를 함께 접해보고 싶었죠. 평범하게 관광을 와서는 현지 오락실이나 PC방에 가지 않잖아요. 그러니 이 참에 한번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9~11월은 대만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랍니다. 이왕 오락실 탐방하는 것 혹시라도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동 과정부터 간단히 적겠습니다. 기자는 이번 출장이 중화권 초행이며 중국어도 일절 할 줄 모릅니다.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는 워낙 여기저기 한국어 표기가 많아 약간의 영어를 곁들이면 다니는데 큰 불편이 없어요. 심지어 지하철 발권기에도 한국어가 지원되니 언어의 공포는 잠시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 대만의 명동이라 불리는 젊음의 거리 타이베이 '시먼딩'

기자가 향한 곳은 대만의 명동이라 불리는 젊음의 거리 ‘시먼딩’입니다. 숙소로부터 지하철로 5호선(블루 라인) 일곱 정거장을 지나야 하죠. 대만은 전국적으로 지하철이 잘 발달한 나라이며 특히나 타이베이는 서울을 방불케 합니다. 일본처럼 노선이 혼란스럽거나 LA처럼 분위기가 살벌하지도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고 저렴하게 이용하죠. 승장강과 전철 벽면에 게임 광고가 가득한 것도 서울과 비슷하네요. 대만인의 게임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일회용 표를 뽑는 방식이 조금 특이해요. 발권기에 보면 노선도가 있고 20부터 25, 30 등 역마다 숫자가 적혀있는데, 이는 해당 역까지 가는 비용을 뜻합니다. 제가 가는 ‘시먼(Ximen)’ 역까지는 25대만 달러(한화 873원)니까 화면에서 25를 누르고 돈을 넣으면 됩니다. 그러면 동그란 플라스틱 주화가 나오는데 이걸로 25대만 달러 안의 지역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거죠. 그보다 멀리가면 아마도 ‘GTA: 타이베이’를 찍게 되겠죠.


▲ 서울 못지않게 잘 정비된 대만 타이베이 지하철의 풍경


▲ 목적지 검색 없이 이동 거리만으로 정산하여 발권해주는 시스템


▲ 동전 모양의 플라스틱 주화, 목적지에서 역을 벗어날 때 반환구가 있습니다

표 생김새가 동전 같아도 교통카드처럼 전자 인식되니 구멍을 찾지 말고 자연스럽게 찍고 들어가시길. 승강장에서는 한국의 ‘마천행’, ‘방화행’처럼 종점으로 방향을 표시하므로 목적지만 외울게 아니라 해당 노선의 종점을 알아둬야 합니다. 일단 잘 탔다면 매 역마다 영어로 위치를 알려주니 내리기는 쉬어요. 다만 자리 곳곳에 노약자 배려석이 있으므로 잘 보고 앉아야 저처럼 ‘저 X끼 뭐지?’라는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려석은 일반석과 좌석 색상이 약간 다릅니다.

앞서 ‘시먼딩’을 대만의 명동이라 소개했는데, 정확히는 명동에 옛 용산을 합친 느낌이에요. 겉모습은 분명 명동인데 몇몇 거대한 상가 건물 안에는 놀라운 보물로 가득한 던전이 펼쳐집니다. 사전 답사를 많이 하진 못했지만 게이머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만년상업대루(萬年商業大樓)라는 내공이 고강해 보이는 상가에 입장했죠. 1, 2층은 화장품 및 잡화임 3층은 신발인데, 4층부터 프라모델, 피규어, 콘솔 천국이 펼쳐지니 ‘지름신 강림’에 각별히 주의하세요.


▲ 명동 한 가운데 옛 용산이 콜라보한 느낌, 만년상업대루(萬年商業大樓)


▲ 4층에 각종 완구 및 게임샵이 몰려 있습니다, 지름신 강림 주의!


▲ 혹시 레어도 높은 피규어가 있나 매의 눈으로 찾아보시길

그리고 한 층 더 올라가면 드디어 그 유명한 대만의 오락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톰의 세계(Tom’s World)'라는 꽤나 독특한 상호인데, 규모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층 하나를 통째로 튼 매장에 기기가 어림잡아 100대는 넘어 보였습니다. 울긋불긋한 조명 아래 각종 게임 관련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고, 장내는 깔끔하고 서비스도 좋아 보였습니다.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스태프 여럿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이용이 끝난 기기를 정돈하더군요.

기기들은 종류별로 구획을 나누어 자리했습니다. 한쪽 끝에는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8’부터 ‘철권 7’까지 각종 격투게임이, 다른 쪽에는 농구대가, 또 한 켠에는 리듬게임이 서있죠. 듣던 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체감형 기기였어요. 특히 ‘미드나잇 맥시멈 튠’과 같은 핸들이 부착된 레이싱게임이 십수 대씩 일렬로 배치된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제 몸집의 몇배나 되는 대형 건슈팅 기기도 여러 대 보이고, 거기에 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단 말이죠.


▲ 여기가 바로 발할라로 가는 문입니까...!


▲ 입구가 조금 허름하긴 하지만 내부는 매우 넓고 쾌적합니다


▲ 체감형 기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 정도는 빙산의 일각

리듬게임도 인기가 좋았는데 커플들은 죄다 ‘태고의 달인’을 두드리고 ‘유비트’ 앞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고수의 플레이를 구경하더군요. 대만은 코나미가 일본 바로 다음으로 자체 네트워크 시스템 ‘e-어뮤즈먼트’를 개통해줬을 만큼 리듬게임 커뮤니티가 거대합니다. 반면에 한국에서 선호도가 높은 격투게임이 찬밥 신세인 것이 재미있더군요.

일본 서브컬쳐를 사랑하는 대만답게 ‘기동전사 건담’ 관련 게임도 굉장히 많았어요. 무엇보다 캡슐형 ‘건담’ 게임이 있어 직접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더군요... 오락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가챠’도 여럿 갖춰져 있고 실제 동전을 뽑는 일종의 빠칭코(?)도 눈에 띄었습니다. 평범한 오락실에서 서비스해도 되는 종류인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설명문을 못 읽어 확실치 않습니다.


▲ 대만인들은 특히 리듬게임을 사랑합니다, '유비트' 주변에 모여든 인파


▲ 반면 한국에서 인기가 좋은 격투게임은 찬밥 신세더군요


▲ 오락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가챠'도 아주 많습니다


▲ 진성 '건덕후' 마음을 자극한 캡슐형 기기, 그냥 돌아선 것이 못내 아쉽네요

오락실이라고 어둑하고 쾌쾌한 것이 아니라 마치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처럼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꾸며진 점이 인상 깊었어요. 대만에서 가장 ‘핫’하다는 시먼딩에서도 중심가에 위치한 오락실이니, 어쩌면 처음 본 곳이 끝판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대만의 수준 높은 오락실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네요. 만약 다른 오락실을 찾아볼 요량이라면 구글맵 검색 키워드는 ‘Amusement Center’가 좋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만에는 오락실뿐만 아니라 PC방도 있으니까요. 오락실만큼 유명하진 않다지만 이왕 시먼딩까지 나왔으니 근처 PC방에도 들려보도록 하죠. 구글맵 검색 키워드는 ‘PC Room’이나 ‘PC Café’가 아니라 ‘Internet Cafe’입니다. 다행히 마침 ‘시멘’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하이 클럽(Hi Club)’이라는 괜찮은 PC방이 있었습니다. 가게 앞 입간판을 보니 1시간에 15대만 달러(한화 523원)이랍니다. 대만은 뭘 해도 한국보다 몇 백원씩 저렴합니다. 미묘하게 물가가 낮아요.


▲ 보이나요? 한국처럼 간판에 크게 'PC'라고 적어놓지 않아 찾기 힘듭니다


▲ 한국보다 이용료가 저렴합니다, 1시간에 15대만 달러(한화 523원)

PC방에 대해서는 그리 할 말이 없습니다. 입장 순간 한국에 돌아온 듯한 친숙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된 카운터, 컵라면을 호로록~ 빨아먹으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똑같습니다. 잠시 지분(?) 조사를 하자면 ‘오버워치’와 ‘리그 오브 레전드’가 거의 반반씩 차지하고 있어요. 대만도 AOS를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롤드컵 우승에 빛나는 타이베이 어새신스의 연고지이기도 하죠.

이외에 지분을 보유한 게임으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한 자리, ‘스페셜 포스 2’가 두 자리 있고, 어째선지 고전명작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도 한 자리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대만을 덮친 게임 한류!’라고 기사를 쓰면 좋겠지만 그다지 그런 게임은 보이지 않았네요.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대만 PC방에서 한국 게임이 더 많이 보이길 기대합니다.


▲ 이상하다, 이 모습을 출국 전에도 본 것 같은데... 데자부?


▲ 카운터의 모습도 한국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다만 비회원 카드가 없습니다


▲ 국산 FPS '스페셜 포스 2'가 당당히 벽면을 장식했는데 '오버워치'에 가렸네요

이것으로 대만의 오락실과 PC방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만년상업대루에 있던 게임샵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지난해 중국이 콘솔 문호를 개방한 덕분에 중문화 타이틀이 크게 늘어 대만이 덩달아 쾌재를 불렀답니다. 가게에 한 가득 비치된 ‘중문화’ 타이틀이 퍽 부럽더군요. 중국과 대만은 서로를 앙숙간이지만 쓰는 말과 글이 같으니 게이머들은 덕을 보고 삽니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처음 든 감상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에 온 거 같다는 겁니다. 일본과 중국만 가봐도 분명 여기는 외국이란 느낌이 드는데, 대만은 도시의 풍경과 사람들의 의식주, 하다못해 에티켓 하나하나까지 한국과 정말 유사해요. 흔히 일본이 한국보다 10년을 앞선다는데 대만은 정확히 같은 시간대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그만큼 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관계라 생각합니다.

지난 2월,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 타이베이 게임쇼에 전세계에서 약 45만 명이 방문했답니다. 참고로 역대 최대 성과라는 지스타 2015에 21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물론 중국으로의 관문이라는 특성이 작용했겠지만 대만 시장 자체의 잠재력도 어마어마합니다. 앞으로는 업계 차원에서도, 게이머 대 게이머로도 대만과 더 많은 교류가 있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 대만 남자도 군대에 갑니다, 갑자기 동질감이 막 샘솟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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