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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런치 일상화, 언어 폭력 4배… 게임 노동 실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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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서 주로 사용되던 ‘크런치’가 장시간 노동을 대표하는 단어로 알려졌을 만큼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정의당이 게임개발자연대 등 노동 관련 단체와 함께 게임업체 종사자들의 근무실태가 어떠한가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중 84.2%가 크런치 모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 IT노동상담센터는 지난 5월 25일,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 게임개발자연대, 노동시간센터, 노동자의미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2017 게임산업종사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는 게임업계 종사자 621명이 참여했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응답자 중 ‘크런치 모드’를 경험한 비율이다. 여기서 ‘크런치’란 게임 출시나 이벤트를 앞두고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며 근무하는 것을 말했다. 응답자 중 ‘크런치 모드’를 경험했다고 밝힌 사람은 전체의 84.2%로 나타났다.

‘크런치 모드’로 일한 기간은 1년에 평균 70일이다. 평일(250일) 기준 28%를 ‘크런치 모드’로 일한 것이다. 1년으로 보면 약 4개월을 야근과 밤샘을 반복하며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크런치 모드가 일부 예외적인 상황에서의 근무가 아니라 상당히 일반화된 형태임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크런치 모드' 경험 비율(좌)와 '크런치 모드'가 진행된 기간 비중(우)
(자료출처: 정의당 공식 홈페이지)

그렇다면 ‘크런치 모드’로 일할 때 평균 근무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조사 결과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4.4시간이다. 법정근로시간은 하루에 8시간인데 이를 55.5% 초과한 수치다. 여기에 하루에 17시간 이상 일한다고 답변한 비율도 19.7%다. 지난 1년 중 24시간 이상 근무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39%에 달한다.

여기에 ‘크런치 모드’가 아닌 평상시에도 근무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50.8시간이다. 평일(주 5일) 기준 법정근로시간은 40일이며 노사가 합의해 최대로 쓸 수 있는 초과근무시간은 1주일에 12시간이다. 이를 합치면 52시간인데 게임업계의 평균 근무시간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 근무시간 마지노선에 있는 셈이다. 또한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46.4%) 사람이 한 달 평균 1회 이상 주말에 근무한다고 밝혔다.

장시간 노동, 게임업계 종사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이번 조사에서는 근무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울증이 발생할 우려와 자살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선 전체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55.5%) 사람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거의 매일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3.5%이며,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밝힌 비율도 2.1%다. 특히 자살 시도의 경우 2012년에 진행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발표된 자살 시도율 0.4%보다 5배 이상 높다. 즉, 한국 평균보다 게임업계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 의심 비율도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20대 평균 우울증 비율은 10.1%다. 그런데 게임업계 실태조사에 참여한 20대 종사자 중 41.9%가 우울증이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대도 마찬가지다. 30대 평균 우울증은 8.1%인데, 이번 조사에 참여한 30대 게임업계 종사자 중 우울증이 의심되는 비율은 전체의 39.5%다.

여기에 실제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답한 비율도 16.8%다. 이는 2014년 직장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우울증 조사’ 당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답한 것(7%)보다 2배 이상 높다.


▲ 게임업계 종사자와 일반 인구 우울증 비교 (사진출처: 정의당 공식 홈페이지)

더 주목할 부분은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우울증과 자살 위험도가 모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선 1주일에 52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주 40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2배 이상 우울증상이 발생할 위험도가 높아졌다. 여기에 하루에 13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 역시 이보다 적게 근무하는 사람보다 우울증상 위험도가 2배 이상 높아졌다.

자살 위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평균 60시간 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약 3배 높아졌다. 하루에 13시간 일하는 사람, 24시간 이상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 역시 2배 이상 자살을 생각할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의당은 ‘일상적인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집중적인 초(超)장시간 노동이 뚜렷한 영향을 주는 것’이라 설명했다.

직장 내 폭력, 게임업계 종사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악의 축

마지막으로 게임업계 직장 내 폭력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우선 전체 응답자 중 지난 한 달 사이에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은 4명 중 1명(25.5%), 여성은 5명 중 2명(39.2%)로 집계됐다. 이는 평균보다 4배에서 6배 높은 수치다. 이어서 남성의 24%, 여성의 31%가 한 달 사이에 위협 및 굴욕적 행동을 겪었다고 답했다.

여기에 지난 1년 동안 신체적인 폭력을 당했다고 밝힌 사람도 있다. 남성은 2.8%, 여성은 1.4%다. 왕따 및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남성은 9.5%, 여성은 19.1%에 달했다. 여기에 여성의 경우 전체 중 26.8%가 지난 1년 사이에 성희롱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된 수치는 2014년에 진행된 4차 근로환경조사 결과보다 모두 높다. 즉, 게임업계가 일반적인 직종보다 직장 내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게임업계 종사자 직장 내 폭력과 4차 근로환경조사 결과 비교 (사진출처: 정의당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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