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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시장 규모 축소, 일본이 찾은 활로는 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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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3, Xbox360, Wii 등 7세대 기기가 현역이던 2000년대 중반, 콘솔 독점작은 PC가 넘볼 수 없는 성역에 가까웠다. ‘페르소나’부터 ‘젤다의 전설’까지 당대 명작을 즐기려면 반드시 콘솔을 소유해야만 했다. 에뮬레이터라는 편법이 있긴 했지만 불법인데다 쾌적한 플레이따윈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콘솔이 없는 게이머들은 그저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그런 면에서 작금은 PC 게이머에게 참 풍요로운 시기다. PC와 콘솔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멀티 플랫폼을 택하는 사례가 훌쩍 늘었다. 특히 닌텐도와 소니가 포진한 콘솔왕국 일본이 자세를 바꾸어 PC 진출을 가속화하는 추세다. 대부분 일본 게임사는 여태껏 PC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근래에는 스팀을 등용문 삼아 앞다투어 PC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2월 스파이크춘이 ‘단간론파: 희망의 학원과 절망의 고교생’으로 스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국내 게이머에게도 친숙한 니폰이치도 같은 달 ‘디스가이아 PC’로 대열에 합류했고, 이어서 6월에는 마벨러스가 ‘섬란 카구라: 소녀들의 증명’를 더했다. 이러한 흐름은 얼마 전 출시된 카도카와게임즈 ‘루트 레터’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나같이 이제껏 콘솔로만 접할 수 있던 작품이다.


▲ 콘솔에서만 접할 수 있던 일본 게임들이 속속 스팀에 올라오고 있다 (사진출처: 스팀)

나날이 축소되는 내수, 더 큰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고민

이러한 조짐이 보인 것은 2014년 전후부터다. RPG명가 팔콤과 ‘길티기어’ 및 ‘블레이블루’를 앞세운 아크시스템웍스, ‘넵튠’ 시리즈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거느린 컴파일하트가 이즈음 스팀에 입점했다. 물론 이전까지 일본 게임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스퀘어에닉스와 캡콤과 같이 전세계를 상대하는 대형 업체는 비교적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일본 게임이 PC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는 당연하게도 매출 극대화. 스팀에 내놓는 게임을 보면 보면 하나같이 적게는 1~2년에서 많게는 10년 전 콘솔작이다. 최신작을 콘솔과 동시 발매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드물다. 그만큼 아직은 PC시장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기존 콘텐츠를 재활용해 새로운 시장에서 수익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 8년 전 게임임에도 PC 출시 일주일만에 10만 장 판매된 '베요네타' (사진출처: 스팀)

둘째는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이다. 콘솔게임이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각종 심의와 추가 비용 등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플랫폼 홀더가 전폭 지원하는 AAA급 대작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는 중소 게임사는 해외 전개를 포기하고 내수에 머물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에 게임을 선보일 수 있는 스팀은 단순한 판매처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실 이 모든 이유는 하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스퀘어에닉스나 캡콤뿐만 아니라 이제는 중소 게임사조차 내수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는 것.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5년 일본 게임시장 규모는 162억 3,998만 달러로 전년 대비 5.2% 감소했다. 이 와중에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한 것은 모바일뿐이며 나머지 플랫폼은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특히 콘솔시장은 2013년 45억 8,100만 달러에서 2년 사이 29억 7,500만 달러까지 크게 후퇴했다. 자료에는 없지만 2016~17년이라고 특별히 상황이 호전됐을 리도 없다. 결국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위기 속에서 일본 게임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세인 모바일로 전향하거나 PC까지 발을 넓히는 것뿐이다.


▲ 내수만으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팀이 대두됐다 (사진출처: 스팀)

스팀 바라보는 게임사들, ‘배틀그라운드’ 성공이 촉매제 될까

각박한 실정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장 과포화와 외산 콘텐츠의 침식으로 갈 곳을 잃은 모습은 우리네 게임 업계도 꼭 닮아있다. 오히려 수십 년간 축적된 IP와 노하우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일본에 비해 국내 중소 게임사는 훨씬 취약한 상태다. 근 몇 년간 모바일에서 활로를 찾는다곤 했지만 이전투구의 장이 바뀌었을 뿐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스팀이라고 성공이 보장된 호락호락한 시장은 아니다. 매 달 수십 종이 넘는 게임이 올라오고 눈길을 끌지 못하면 금새 잊혀진다. 하지만 차별화된 색깔만 보여줄 수만 한다면 전세계에서 모여든 마니아에게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스팀 출시 세 달 만에 매출 1억 달러 신화를 이룩한 블루홀 ‘배틀그라운드’야 말로 최고의 롤모델 아닌가.

배틀그라운드
▲ '배틀그라운드' 성공 신화가 스팀 진출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사진출처: 블루홀)

일본 게임사는 이미 콘솔에서 검증 받은 훌륭한 콘텐츠가 있지만, PC 개발 환경에 익숙하지 않아 저질 이식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PC와 친숙한 국내 게임사에게 분명한 경쟁력이 있다. 다만 이왕 스팀에 진출할 거라면 최적의 장르와 아트, 수익구조까지 적극적인 시장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일본과 국산게임이 함께 스팀에서 경쟁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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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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