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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스토리는 장식이라더니, 리부트로 세계관 갖춘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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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묘사로 유명했던 FPS게임 '둠'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모든 게임에서 세계관과 스토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 없는 게임도 있다. 그러한 게임 중 하나가 바로 ‘둠’이다. ‘둠’은 빠르게 움직이며 크고 멋진 총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FPS게임으로, 특유의 잔인하고 격한 플레이로 오랜 세월 동안 전세계 게이머의 찬사를 받아왔다.

‘둠’의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격한 전투다. 그렇기에 실제로 ‘둠’은 초기에 의도적으로 스토리를 배제한 것으로 유명했다. ‘둠’으로 일약 스타 개발자가 된 존 코멕이 한 “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에서의 스토리와 같다”는 말은 게임 개발업계에서 명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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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 상세한 세계관이 생겼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단순히 괴물을 쏴 물리치는 게임인줄 알았던 ‘둠’도 실은 나름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있다. 사실 ‘둠’은 스토리 따위 필요 없다던 초반의 당찬 포부와 달리 점점 세계관을 키워왔고, 최신작 리부트 ‘둠’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설정들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과연 ‘둠’은 왜 처음에는 세계관과 스토리 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었으며, 무슨 이유로 뒤늦게 세계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일까?

첨단 무기로 악마 쏴 잡는 특이한 콘셉트, 영화에서 영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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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둠' 시리즈 제작진의 젊은 시절 (사진출처: texelstorm 텀블러)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둠(DOOM)’은 1993년 제작된 초기 FPS게임이었다. 당시에도 개발사인 이드 소프트웨어는 이미 FPS게임 ‘울펜슈타인(Wolfenstein)’ 시리즈로 FPS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1992년 말에는 핵심 프로그래머 존 카멕이 개발한 신규 3D 게임 엔진으로 새로운 게임을 제작할 계획이었다. 다만 초기 게임 개발 기획 안에 따르면 원래 만들어질 게임은 ‘둠’이 아니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이 엔진으로 ‘에일리언’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드 소프트웨어 개발진은 대부분 SF영화 팬들이었다. 또한 이들이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에일리언 2(Aliens)’가 게임으로 제작된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실제로 이드 소프트웨어 사업 매니저였던 제이 윌버는 영화 판권을 따올 준비까지 끝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드 소프트웨어는 거대 영화사가 제작에 깊게 개입하여 여러 요구를 해올 것을 걱정하여 ‘에일리언 2’ 판권 사용을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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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에일리언 2' 판권 계약은 포기했지만, 좁은 우주기지에서 기괴한 괴물들과
싸운다는 내용은 '둠'에 고스란히 남아 반영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에일리언 2’ 게임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후 한동안 새 작품 기획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아동용 아케이드게임 ‘커맨더 킨(Commander Keen)’ FPS 버전을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이 또한 금방 기각됐다. 카멕의 새 엔진은 빠르고 과격한 전투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므로, 아동용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드 소프트웨어 개발진 전원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끝에 나온 소재가 바로 ‘악마’였다.

사실 당시에 이드 소프트웨어 주요 개발진들은 TRPG ‘던전 앤 드래곤’ 캠페인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그 캠페인은 핵심 개발자 존 로메로가 게임 내에서 악마를 소환한 바람에 세계가 멸망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이 났고, 이 결말에 개발진 대부분이 영감을 받은 터였다. 이에 모두가 악마가 적으로 나오는 게임을 만들자는 데 동의했다. 여기에 카멕이 최첨단 화기로 악마를 물리치자는 아이디어를 더해 최종적으로 ‘둠’ 콘셉트가 완성됐다.

그 외에도 ‘둠’이 구체화되는 데는 여러 작품에서 차용한 아이디어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좁은 우주기지 안의 통로와 방을 무대로 싸운다는 설정은 ‘에일리언 2’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여기에 피 튀기는 처절한 전투 분위기는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이블데드 2’에서 따왔다. 괴물 디자인 중 일부는 ‘던전 앤 드래곤’에서 기인한 것이다. 심지어는 게임 이름 ‘둠’도 다른 작품에서 따온 것으로, 카멕이 좋아한 영화 ‘컬러 오브 머니’의 주인공이 한 명대사다.

이처럼 ‘둠’은 초기 개발단계부터 여러 작품의 영향을 받으며 ‘우주에서 첨단화기로 지옥에서 온 악마들을 물리친다’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완성됐다.


▲ 전기톱, 산탄총, 잔인한 묘사는 '이블데드 2'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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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앤 드래곤' 몬스터 '아스트랄 리바이어던'은 '둠'의 몬스터
'카코데몬'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게임 스토리는, 포르노에서의 그것과 같다"던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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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은 스토리는 배제한 채 자극성에 치중하도록 기획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기본적인 콘셉트가 정해진 후로도 ‘둠’ 개발과정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첫 문제는 ‘얼마나 세계관과 스토리를 상세히 보여줄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개발진 내 불화였다.

처음에 리드 디자이너를 맡았던 개발자 톰 홀은 ‘둠’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랬기 때문인지 그는 게임에 다양한 환경 상호작용, 길 찾기, 퍼즐 등의 요소는 물론이고,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까지 담고 싶어했다. 홀은 ‘둠’에 담고자 한 기획을 79쪽 분량의 ‘둠 바이블(DOOM Bible)’이라는 책자로 써내 다른 개발진과 공유했다. 그러나 이러한 홀의 기획은 몇몇 개발자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반발했던 것은 프로그래머였던 로메로와 카멕이었다.

‘둠 바이블’에 따르면 본래 ‘둠’은 네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스토리 중심의 FPS게임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레프트 4 데드’ 같은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홀의 기획은 다른 개발진이 보기에는 불필요할 정도로 상세하고 사실적이었다. 결국 홀의 기획은 기각됐고, 개발의욕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다른 창립동료들의 투표에 의해 은퇴를 권고 받아 사실상 해고됐다. 홀의 퇴사와 함께 ‘둠’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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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홀이 작성한 '둠 바이블' 중 일부 (사진출처: 둠바이블)

홀 퇴사 이후 ‘둠’ 개발은 로메로와 카멕에 의해 주도됐다. 프로그래머였던 둘이 전권을 잡으며 ‘둠’ 방향성은 크게 바뀌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멕의 게임철학은 매우 단호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하면 이야기 중심의 게임은 도태될 것이고, 입체적 가상공간에서의 활동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재미로 떠오를 것으로 믿었다. 카멕의 이러한 생각은 홀과 논쟁 중 나온 그의 발언에도 단적으로 반영되어있었다.

"게임 스토리는 포르노 스토리와 마찬가지야. 있기를 바라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지(Story in a game, is like a story in a porn movie; it’s expected to be there, but it’s not that important)."

실제로 1993년에 발매된 '둠'은 거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없다시피 했다. 게임 설명서에 포함된 설명에 따르면 '둠' 스토리는 화성의 두 위성에서 이루어지던 비밀스러운 텔레포트 장비 실험 중 사고로 지옥과 연결된 포탈이 열리고, 위성 기지에 나타난 악마를 막기 위해서 우주 해병대원인 주인공이 투입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내용도 단순하기 이를 데 없어서, 게임 중 한 마디 대사도 없이 악마들을 쓸어버리는 전개가 전부였다. 서사성을 거의 포기해버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둠'의 3차원 입체공간에서 벌어지는 속도감 넘치는 전투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물론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그 정도 그래픽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지원하는 FPS게임은 흔치 않았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윈도우 95’ 홍보에 ‘둠’만한 것이 없다며 이드 소프트웨어 매입을 제안했었을 정도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만하다. 유명 개발자 중 ‘둠’에 매료되어 이드 소프트웨어로 이직해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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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게이츠는 '둠'을 활용해 '윈도우 95'를 홍보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드 소프트웨어는 ‘둠’의 성공에 힘 입어서 이듬해인 1994년에 곧바로 ‘둠2’를 출시했다. ‘둠2’는 ‘적은 스토리, 첨단기술의 재미’라는 철학을 그대로 계승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이었기 때문일까? 이후 ‘둠’ 위세는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뒤늦은 세계관 및 스토리 개발, 그리고 리부트

하프라이프
▲ '하프라이프'는 FPS임에도 뛰어난 스토리와 연출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997년까지만 해도 이드 소프트웨어는 ‘둠’과 비슷한 게임성의 작품 ‘퀘이크(Quake)’를 내놓으며 FPS계의 1인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는 더 이상 1인자 권좌를 지키기 힘들어졌다. 점점 ‘둠’의 아성에 도전하는 FPS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둠’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이었다. 그 중에는 후대에 ‘둠’을 누르게 될 작품도 둘이나 있었으니 바로 밸브의 ‘하프라이프(Half-life)’와 에픽게임즈의 ‘언리얼(Unreal)’이었다.

‘하프라이프’와 ‘언리얼’은 태생부터 ‘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하프라이프’와 ‘언리얼’은 단순한 ‘둠’의 모방작에 머물지 않고,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둠’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 중 ‘하프라이프’는 ‘둠’이 포기했던 세계관 및 스토리를 뛰어난 연출로 소화해 서사성과 게임성을 동시에 잡은 명작으로 칭송 받았고, ‘언리얼’은 ‘둠’을 뛰어넘는 당대 최고의 그래픽을 선보이며 ‘퀘이크’에 정면으로 도전을 걸었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도전이 이어지며 이드 소프트웨어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사내에서는 '기술력만으로 승부를 보기는 힘드니 세계관이나 스토리도 다루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가장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던 카멕은 늘 자기 철학을 고집했다. 결국 1996년에는 ‘퀘이크’ 제작 중에 생긴 의견 차이로 공동 창립자인 로메로가 해고 당했고, 1998년에는 주요 개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메리칸 맥기도 해고 당했다.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
▲ 맥기는 카멕에게 해고된 이후 '아메리칸 맥기의 앨리스'라는 독특한 세계관의
게임을 만들어 큰 명성을 얻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FPS계의 지존이었던 이드 소프트웨어도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데이어스 엑스(Deus Ex)’, ‘헤일로: 컴뱃 이볼브드(Halo: Combat Evolved)’ 등 스토리텔링을 중시한 FPS가 나와 시장의 유행을 바꾸었다. 더 이상 프로그래밍 기술만으로는 시장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 2004년 출시된 ‘둠 3’에 이르러는 카멕도 어느 정도 스토리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소설가를 고용해 게임 스토리를 쓰기도 했고,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극적인 스토리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드 소프트웨어는 다른 FPS 개발사들보다 스토리텔링 노하우 측면에서 지나치게 뒤떨어진 상태였고, 결국 ‘둠 3’는 동시기에 출시된 ‘하프라이프 2’와 ‘파 크라이(Far Cry)’에 비해 약세를 보였다. ‘둠 3’는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과거 ‘둠’과 ‘둠 2’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런가 하면 2005년에는 '둠' 영화가 나와 프랜차이즈 시너지를 노리기도 했지만, 혹독한 비판 속에 묻히며 '둠' 이름 값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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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 3'는 공포물 같은 스토리로 쇄신을 꾀했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둠 3’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와 카멕은 한동안 모바일게임 제작에만 집중했지만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결국 한계에 봉착한 이드 소프트웨어는 2009년 제니맥스와의 인수합병 계약을 채결했다. 이후 카멕은 세계관과 스토리를 살린 FPS ‘레이지(Rage)’를 만들어보지만, 결과적으로는 열악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방식 탓에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얼마 후 카멕은 게임개발을 그만 두고 제니맥스를 퇴사했다. 이것으로 이드 소프트웨어에는 창립자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그리고 2014년, 제니맥스 자회사 베데스다는 돌연 ‘둠’ 신작을 발표했다. ‘둠 4’가 나오리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아예 시리즈를 리부트한 ‘둠’이었다.

카멕이 버린 ‘둠’ 세계관, 베데스다가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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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발매된 리부트 '둠'은 원작의 게임성에 더해 스토리텔링까지 갖춰 크게 호평 받았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리부트된 ‘둠’은 기본적으로 1993년 나온 ‘둠’의 게임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었다. 즉 3차원 입체공간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각종 흉악한 악마를 물리치는 FPS게임이었다. 여기에 공식 발표 이후부터 개발진이 힘주어 이야기한 특징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둠다운 스토리텔링’이었다. ‘E3 2014’에서 제니맥스 자회사 베데스다는 ‘둠’은 소설가를 고용해 게임 스토리 집필을 맡겼음을 알리며, ‘플레이어를 몰입시키는 스토리와 서사성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에 발매된 ‘둠’은 초기작처럼 스토리가 아예 없지도, ‘둠 3’처럼 진부하지도 않다. 리부트 ‘둠’은 호쾌한 전투의 흐름을 끊지 않는 단순한 스토리다. 그러나 게임 중간마다 짧지만 강렬하게 연출되는 비장한 스토리는 플레이에 더욱 깊게 몰입하게 만들어주며, 세계관을 자세히 알고 싶은 플레이어를 위해서는 각종 설정들을 확인할 수 있는 ‘코덱스’ 시스템까지 준비되어있다. 카멕은 게임성과 서사성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리부트 ‘둠’은 둘 다를 어느 정도 잡아낸 것이다.

리부트 ‘둠’의 스토리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항공우주 산업연합(Union Aerospce Corporation; 이하 UAC)라는 기업은 천재 과학자인 CEO 새뮤얼 헤이든의 인도 아래 화성을 식민지화하던 중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바로 화성에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틈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틈으로 이어진 차원은 지옥이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기존의 ‘둠’ 시리즈와 다를 바 없는 전개다. 하지만 그 다음 조금 독특한 내용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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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 에너지'를 탐내 지옥을 건드린 UAC CEO 새뮤얼 헤이든이 중심이 돼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헤이든은 지옥을 탐사한 끝에 이 차원이 ‘지옥 에너지(Hell energy)’라는 특별한 힘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며, 이를 적당히 가공해하면 고효율 전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헤이든은 지옥과 연결된 차원의 틈에 거대한 에너지 가공시설을 세우기로 한다. 지옥을 통째로 발전기로 삼기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화석연료가 고갈된 지구는 더 이상 에너지 부족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되고, 헤이든은 지옥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굳게 믿게 된다.

여기에 더해 헤이든은 지옥을 완전히 식민지로 삼기 위해 탐사대를 보낸다. 탐사대는 각종 고대 유물과 함께 포획한 악마를 갖고 오고, UAC는 이를 바탕으로 빠른 기술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헤이든은 지옥 깊숙한 곳의 어느 유적에서 신비한 석관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단단히 봉인된 석관 안에는 악마가 아닌 사람이 들어있었고, 헤이든은 이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서 화성기지로 돌아간다. 이 석관 속 인물이 바로 주인공인 ‘둠 마린(Doom Mari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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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 마린'이 봉인되어 있던 석관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사실 ‘둠 마린’은 고대에 악마를 말살시킨 ‘지옥의 재앙’과도 같은 신화적 인물이었다. 왜 고대에 지옥을 쑥대밭으로 만든 인물이 인간이고, 최신식 동력장갑을 입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대 악마들의 예언서에서도 ‘둠 마린’은 분명히 지옥의 천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실제로 악마들은 ‘둠 마린’의 횡포에 절박해진 나머지 서로 연합을 맺고, 고위 악마들이 스스로 희생해 그를 유인하여 봉인해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UAC가 우연히 고대 유적을 발견해 봉인을 깨고 ‘둠 마린’을 화성기지로 옮기자, 다급해진 악마들은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던 화성기지를 총공격하기 시작한다. 이에 헤이든은 가사상태에 있던 ‘둠 마린’을 강제로 깨워 악마를 막기 위해 풀어놓고, 오랜 잠에서 일어난 ‘둠 마린’은 다시 한 번 악마들을 처단하면서 지옥으로 나아간다. 게임은 바로 이러한 ‘둠 마린’의 무자비한 악마 학살극을 다루고 있다.

악마들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주인공을 봉인시켰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독특한 배경인데, 리부트 ‘둠’은 여기에 더해 흥미로운 인물들의 드라마까지 살리고 있다. 우선 CEO 헤이든만 해도 그렇다. 헤이든은 뇌 종양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의 중요 장기들을 적출해 기계 몸으로 옮긴 사이보그다. 그는 냉혹하고 계산적이며 이기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에너지 고갈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양면성을 지닌, 입체적 성격의 지도자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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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체적인 성격의 사이보그 CEO 새뮤얼 헤이든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리부트 ‘둠’에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해 피 튀기는 전투 사이마다 극적인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도덕성이 강하지만 주인 헤이든의 잔인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인공지능 VEGA, 장애 때문에 인간 육신을 불신하고 스스로 악마가 되고자 하는 올리비아 피어스 등, 과거 ‘둠’을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복잡한 드라마가 나온다. 그 외에도 여러 조직, 인물, 괴물, 장비 설정도 ‘코덱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상세히 준비되어있다.

이처럼 리부트 ‘둠’은 설정과 스토리로 플레이어가 악마와 싸워야 하는 상황과 이유를 흥미롭게 보여주었다. 덕분에 리부트 ‘둠’은 1993년 ‘둠’과 플레이 방식은 거의 비슷하지만, 원작보다 훨씬 독특하고 비장한 체험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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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코덱스'로 설정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게임 스토리, 정말 포르노에서의 스토리와 같을까?

한때 ‘둠’은 게임에서 스토리 따위는 장식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FPS 최강 자리를 차지하던 ‘둠’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연출을 앞세운 신세대 FPS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뒤늦게 세계관과 스토리를 개발 중이다. 이러한 ‘둠’의 일화는 게임에서 스토리가 어떤 중요성을 갖는지 잘 보여준다.

존 카멕은 ‘현실과 가까운 물리적 공간에서의 가상 체험’이 게임의 핵심적인 재미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게임에서의 스토리를 부차적 요소로 치부해 배제시켰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반대로 ‘가상체험’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구를 사실처럼 느끼기 위해서는 몰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납득할 만한 상황과 맥락이 제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맥락 없는 체험은 잠시 말초적 재미를 줄지는 몰라도 곧 지루해지는 법이다. 포르노처럼 말이다.

게임이 사람들을 열광시키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과 독창적인 게임성이 필수다. 하지만 게임이 주는 체험을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은 스토리다. ‘둠’이 뒤늦게 세계관과 스토리를 개발하는 이유도 아마 그렇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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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둠' 만화 (사진출처: Doomworld)
이새벽
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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