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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기획] 2017년 e스포츠, 과실 풍성하나 뿌리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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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e스포츠를 나무에 비유하면 ‘결실의 해’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하나가 독보적이던 나무에 새로운 열매 ‘오버워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가 꽃을 피우려 한다. ‘스타크래프트’가 시들고 ‘리그 오브 레전드’ 하나로 버티던 앙상한 가지가 눈에 뜨이게 풍성해진 시기였다.

국내 시장 선두 종목은 단연 ‘리그 오브 레전드’다. ‘롤드컵’, ‘MSI’ 등 굵직한 해외 리그에서 한국 팀들의 선전이 이어지며 팬들의 관심을 한데 집중시켰으며, 새로운 볼거리 제공을 위한 지역대항전 ‘리프트 라이벌스’도 출범시켰다. 여기에 국내 팀 간 대결구도 역시 특정 팀 독식이 아니라 SKT T1, kt 롤스터, 삼성 갤럭시(현 KSV), 롱주 게이밍 등 강팀 여럿이 각축전을 벌이는 흥미진진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 2017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현장 (사진제공: 라이엇 게임즈)

하지만 올해 떠오른 신흥 종목 기세도 만만치 않다. 우선 ‘오버워치’는 업게에서 불가능하다고 평가된 ‘지역연고제’를 완성시켰다. 미국 여러 도시와 런던, 서울, 상하이까지 총 12개 팀을 꾸렸다. 서울 다이너스티 역시 미국 실리콘밸리 자본을 기반으로 한 e스포츠 벤처 기업 KSV가 보유하고 있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안정적인 자금력을 갖추고 시작하는 만큼 팀 구조는 견고할 수밖에 없다.


▲ '오버워치 리그'의 지역연고제가 드디어 완성됐다 (사진제공: 블리자드)

여기에 국내외 게임업계를 휘저은 ‘배틀그라운드’도 e스포츠에 출격했다. 스팀 앞서 해보기 단계부터 e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배틀그라운드’는 게임스컴, 지스타 등 게임쇼 현장에서 리그를 열며 실전 테스트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100명이 싸우는 게임을 어떻게 e스포츠화할 것이냐’가 풀기 어려운 과제로 떠올랐는데,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개인 화면 중 주요 장면을 실시간으로 편집해 보여준다는 색다른 중계 방식이 발굴되며 생각보다 빨리 기본틀이 잡혔다.


▲ 게임스컴 현장에서 열린 '배틀그라운드' 인비테이셔널 (사진: 게임메카 촬영) 

e스포츠에 돈이 몰린다, 투자 확대 물결

유력 종목 증가는 시장 성장과 직결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뉴주(Newzoo)는 2017년 e스포츠 시장 규모를 6억 9,600만 달러(한화로 약 8,000억 원)으로 집계했다. 이는 작년보다 41.3%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선점효과를 보기 위한 투자가 집중됐다. 우선 ‘오버워치 리그’ 팀은 자금력을 갖춘 게임단주가 보유하고 있다. 등록비는 지역 당 2,000만 달러(한화로 약 214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중국 공룡기업 텐센트도 17조 원 규모의 e스포츠 시장 확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e스포츠 투자 확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치킨 프렌차이즈 BBQ의 ‘리그 오브 레전드’ 팀 후원과 3년 간 e스포츠에 5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 밝힌 액토즈소프트다. 특히 액토즈소프트는 지난 지스타에서 총 12개 종목을 중심으로 다양한 리그를 보여주며 종목을 가지지 않는 게임사가 어떻게 e스포츠에 진출할 수 있는가를 실전을 통해 보여줬다. 이처럼 산업화와 다소 거리가 있었던 e스포츠에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 12개 종목 리그가 열린 액토즈소프트 지스타 부스 현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대한체육회 제명부터 대기업 이탈까지, 한국e스포츠협회 총체적 난국

올해 e스포츠에는 풍성한 결실이 열렸다. 하지만 그 뿌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국내 e스포츠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에 구멍이 숭숭 난 것이다. 첫 비보는 대한체육회에서 제명된 것이다. 작년만해도 손에 잡힐 듯 했던 ‘e스포츠 정식체육화’가 아득히 멀어진 것이다. 정식체육화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 재가입부터 이뤄내야 한다.

바짝 정신을 차려도 부족한 시점에 한국e스포츠협회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부분은 로비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주 내용은 전병헌 전 수석이 2015년에 재승인을 앞두고 있던 롯데홈쇼핑을 압박해 한국e스포츠협회에 3억 3,000만 원을 후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 전 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 구속되고,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과 국장도 금품 제공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e스포츠협회 이사사들이 발을 빼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12월 초에는 삼성이 자사가 보유했던 ‘리그 오브 레전드’ 팀 삼성 갤럭시를 매각하며 사실상 작별을 고했다. 여기에 지난 27일에는 오랜 기간 협회와 발을 맞춰온 CJ E&M이 탈퇴서를 제출하며 이사사 규모가 눈에 뜨이게 줄었다. 현재 한국e스포츠협회 이사사는 사실상 SK텔레콤과 KT, 한국콘텐츠진흥원 뿐이다. e스포츠 시장은 크고 있으나 협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이 없다.


▲ 한국e스포츠협회 로고 (사진제공: 한국e스포츠협회)

구심점 없는 e스포츠, 각자도생의 길로?

내년 e스포츠 시장 전망은 밝다. 앞서 이야기한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 모두가 주요 e스포츠 리그의 막을 올리며 시장 전체가 더욱 더 풍성해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그 뒤를 바짝 추격 중인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까지 삼자대결이 어떠한 구도로 진행되는가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지금처럼 ‘리그 오브 레전드’ 독주 체제가 유지될지 아니면 세 종목이 나란히 시장에 안착하며 치열한 경쟁 구도를 이룰지 지켜볼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e스포츠에는 구심점이 없다. 올해 대내외적으로 규모 축소가 뚜렷하게 드러났던 한국e스포츠협회는 내년에는 정상화에만 집중해도 모자라다. 일단 협회를 안정화시킨 후에야 다음 이슈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로비 의혹에 휘말리며 새로운 이사사 모집이나 협회가 주최하는 리그에 대한 후원사 유치 역시 난항을 겪을 우려가 크다.

이와 함께 주목해볼 점은 종목사 영향력 확대다. ‘오버워치’는 블리자드가 출범시킨 국내 공식 리그 ‘오버워치 컨텐더스 코리아’를 OGN이 아닌 MBC스포츠플러스를 통해 중계된다. 여기에 라이엇 게임즈 역시 LCK 전용 경기장을 설립하고 2019년부터 ‘LCK’ 방송을 직접 제작할 예정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 게임즈, ‘오버워치’의 블리자드 등, e스포츠 중심이 게임사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이에 OGN은 신흥 종목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새 먹거리 찾기에 나섰다. 즉, 내년에는 여러 종목을 아우르는 구심점 없이 각 종목이 각자도생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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