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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셔틀] 기능성에만 치중, 재미 놓친 '한국사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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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RPG' 공식 홍보 영상 (영상출처:'한국사 RPG' 공식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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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앱셔틀]은 새로 출시된 따끈따끈한 모바일게임을 바로 플레이하고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 주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굳이 하나 꼽자면 이것 아닐까 싶다. 역사를 딱딱한 지식이 아닌, 내가 직접 체험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요소로 다룬다는 점 말이다.

실제로 '대항해시대', '문명', '토탈 워', '크루세이더 킹즈' 등 역사를 소재로 한 많은 게임이 '역사와 상호작용하는 재미'를 추구했다. 이 게임들은 단순히 역사적 인물이 나오거나 옛 시대를 무대로 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역사 속 인물이 되어 직접 시대상을 체험하거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쉽게 말하면 역사를 장난감 삼아 노는 셈이다.

하지만 12월 29일 발매된 인디 모바일게임 '한국사 RPG'는 안타깝게도 '역사와 상호작용하는 재미'에서 크게 빗나간 모습이다. '한국사 RPG'는 '게임으로 배우는 한국사'를 주제로 구석기시대부터 광복에 이르는 역사를 게임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일견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낮은 완성도, 작위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지식, 부실한 내러티브 등으로, 사실상 역사물의 재미를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다.


▲ 기본적으로 '쯔꾸르 게임'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한국사 RPG'는 기본적으로 RPG Maker MV라는 제작용 툴을 사용해 만든 소위 '쯔꾸르 게임'이다. 게임 구성은 '파이널 판타지'와 유사한 고전 JRPG 틀을 따르고 있다. 주인공 일행이 필드를 돌아다니며, 이동 중에는 일정확률로 무작위 적들과 전투가 발생한다. 진행 방식은 정해진 스토리에 따라 전개되는 선형구조다. 성장이나 아이템 합성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게임 자체의 자유도는 그리 높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사 RPG'가 내세운 가장 큰 특징은 스토리다.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는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재미와 학습을 동시에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쫓던 '한국사 RPG'는 재미와 학습 어느 쪽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세 이공계대학생은 통역과 좌표계산 기능이 탑재된 손목시계를 발명하던 중 정체불명의 상인에게서 구매한 신비한 엔진을 사서 시계에 장착한다. 그러던 중 의도치 않게 엔진이 작동하며 사고로 학생들을 구석기시대로 시간이동을 시키고, 이후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시간대를 떠돌게 된다. 게임은 이처럼 세 학생이 구석기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한국사 전반을 여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주인공 학생들이 시간여행을 하는 과정 자체도 재미 없거니와, 그 사이에 끼어드는 역사지식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인공들 앞에서 한 구석기인이 "긁개, 밀개, 몸돌이 어디 갔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면 주인공 한 명이 한국사검정시험 문제집에 나올법한 긁개, 밀개, 몸돌에 대한 설명을 나머지 두 주인공들에게 해준다. 그 다음에는 필드를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찾고 이를 구석기인에게 갖다 주는 식이다.




▲ 박물관에서 만든 학습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작위적 역사지식은 게임 곳곳에서 제시된다. 심지어 대사까지 교과서를 읽는 듯한 "거기다 '바닥은 원형'이고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의 움집' 생활을 하고 있네!" 식으로 쓰여 있어서 몰입이 심하게 저하된다. 아예 시나리오 하나가 끝나면 수험생 노트를 연상시키는 '정리시간'까지 나오니 이게 대체 게임인지 학습 프로그램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렇다고 시대상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처럼 대단히 충실히 묘사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사검정시험 내용을 어떻게든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전개가 계속된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 일개 무관이 숲에서 아들을 찾아줬다는 이유만으로 정체도 모르는 주인공을 왕궁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시켜주는데, 이는 게임임을 감안해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개연성이다.


▲ 아무리 게임이라도 이런 대사는 좀 심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렇듯 '한국사 RPG'는 자연스럽게 시대상을 보여주지도, 역사를 소재로 재미있는 스토리를 풀어내지도 못한다. 게다가 선택지 자체가 없는 선형구조 게임이라서 플레이어가 역사를 재구성하는 재미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유저 인터페이스도 허술하고 버그도 많아서, 플레이 자체도 재미 없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스킬 사용만 봐도 그렇다. 초반에 주인공이 사용하는 전투용 스킬 중에는 '후면공격'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스킬에 대한 설명은 '후면을 공격하여 타격을 입히는 기술'이라는 것뿐이다. 후면을 칠 시 이득은 무엇인지, 얼마나 되는 피해를 입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전무하다. 커맨드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손익을 계산한 전술적 전투를 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이는 턴 기반 RPG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 '빠르고 거세게'가 대체 어떤 효과란 말인가?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버그도 잦다. 비록 개발자가 바쁘게 수정하며 패치 중이긴 하지만, 아직도 게임 중 화면이 정지해버리는 버그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세이브 포인트에서 세이브하지 않은 데이터는 앱 종료 시 날아가버리는 시스템이므로, 한참 진행 중일 때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게임이 정지해버리면 그간 플레이 한 부분을 다시 해야 했다.

'한국사 RPG'가 추구한 '한국사를 게임으로 즐긴다'는 취지는 훌륭하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는 누구나 머릿속에 있다. 문제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게임으로 만들어내는가 하는 데 있다. '한국사 RPG'는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서 너무 큰 결함을 안고 있다. 어떻게든 역사지식을 보여주기 위해 게임을 작위적으로 만든 탓에 스토리를 감상하는 재미도, 플레이를 하는 재미도 잡지 못했다.

이 게임에 남은 것은 한국사검정시험에 나올법한 지식뿐이다. 하지만 단순 지식만을 위해서라면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문제집을 보는 게 낫다. 역사를 게임으로 다룬 이상 재미를 빼놓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RPG'는 기능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역사를 소재로 한 재미'를 고민하는 데는 소홀했으며, 그 결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교육용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뜬금 없는 요약이 나오기까지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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