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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전문성, 정부 지원사업 선정 심사에 문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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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제작지원 심사평가 제도개선 토론회 현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게임을 비롯한 국내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제작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모된 작품 중 심사를 통과한 게임에 정부 예산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게임에도 올해 예산 190억 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정부가 진행하는 제작지원사업에 대한 업계의 불만은 있다. 가장 큰 불만은 도대체 우리 게임이 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과제에 어떤 부분이 부족해서 탈락했는지도 알 방법이 없다.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김강덕 협회장은 “왜 떨어졌는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온갖 루머와 민원이 발생한다. 평가위원들이 이 분야 전문가가 맞는지, 평가 과정에 부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지원자 입장에서 왜 떨어졌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평가 과정이 공정하지 않고,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작지원사업’을 수술대에 올린다. 제도를 뜯어고치기 위한 전문팀을 구성하고,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불만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3월 7일 kt 스퀘어에서 열린 ‘심사평가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는 그 첫 단계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승룡 본부장은 “쟁점은 4가지다. 지원할 만한 작품을 선정했는가를 따지는 타당성, 평가위원이 과제를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갖췄는가를 고려하는 전문성, 평가 과정이 공정했는가를 따지는 공정성,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가를 보는 효율성이다”라고 말했다.

공정성과 전문성, 둘 중 무엇이 우선인가

이 중 토론회 화제로 떠오른 것은 ‘공정성’과 ‘전문성’이다. 중앙대학교 위정현 교수는 이 둘을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설명했다. 공정성을 중요시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전문성을 우선으로 하면 공정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위정현 교수는 “가장 공정한 방법은 돈 3,000억 원을 실어다 공중에 뿌리는 것이다. 심사위원도 국민 5,000만 명 중 뽑으면 가장 공정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전문성이 거의 0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전문성만 추구해서 어떤 전문가 집단에만 맡겨버린다면 그 집단이 사익을 추구하는 순간 공정성은 끝장이 난다”라고 말했다.


▲ 중앙대학교 위정현 교수 (사진: 게임메카 촬영)

공정성과 전문성, 그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 첫 단추는 ‘심사평’에서 나왔다. 탈락한 지원자가 심사평을 읽어보고 왜 떨어졌는지, 어디가 부족한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고, 전문적인 심사평을 작성하는 것이다. 지원자가 다음 과제를 준비할 때 참고할 수 있을 정도의 ‘심사평’을 쓰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심사평’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공개된 심사평을 읽어보면 관련 업계에서 이 사업이 각 과제를 얼마나 공정하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평가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즉, 자세한 심사평 공개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고즈넉 윤승일 대표는 “조선시대 왕이 욕을 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왕의 말을 그대로 기록으로 남기는 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록은 중요하다”라며 “공정하고 전문적인 심사위원이 제대로 된 심사평을 남겨 놓으면 지원을 받지 못한 업체에도 다음 사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 고즈넉 윤승일 대표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렇다면 전문성과 공정성, 둘 중 어떤 것부터 챙겨야 할까? 토론회에서 더 큰 무게가 실린 쪽은 ‘전문성’이다. 과제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이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정한 평가는 따라온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인정할 정도의 전문성이 있는 위원들이 작품을 평가하면 지원자도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고, 질 높은 콘텐츠를 선정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게임을 가지고 갔는데 법 전문가가 평가위원장으로 앉아 있는 황당한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김강덕 협회장은 “현실적으로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들이 본인을 평가위원으로 등록할 때 ‘지원사업별 태그’를 넣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면 지금은 중분류가 ‘기획’, ‘제작’, ‘방송PD’, ‘홍보’ 등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방식으로는 ‘단편애니메이션제작지원’에 필요한 전문가를 빠르게 뽑아낼 수 없다. 반면, 등록할 때 ‘단편’, ‘장편’ 식으로 지원사업별로 태그를 달면, ‘단편 제작지원’에 필요한 전문적인 심사위원을 한 번에 뽑아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김강덕 협회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심사위원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 있는지, 그 사람이 어떠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야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업계 사람들이,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보고, 이 사람이 정말로 전문가인가를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방송영상제작자협회 김옥영 협회장은 “심사위원을 먼저 공개하면 로비할까봐 안 한다고 하는데 신춘문예도 심사위원을 미리 발표한다. 심사위원을 공개해야 평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공정성은 내부가 아닌 외부 평가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의견이다. 한콘진 밖에서 심사가 공정하게 진행되었는가를 감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 최승훈 위원은 “제 3자가 심사과정과 결과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옴부즈맨제도’를 제안한다. 심사 과정을 녹화, 녹취 혹은 문서로 남긴 후 그 과정을 외부에서 리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현재는 부족하다. 행정은 효율적으로 하되, 외부에서 공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서 균형을 맞추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 최승훈 위원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오후 6시 이후에는 예산을 못 쓴다고?

이 외에도 콘텐츠 업계가 제작지원사업에 지원할 때 느끼는 불편한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가장 큰 부분은 복잡한 절차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게임업계에서도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서류를 쓰며 실무자가 기가 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게임 만들 시간도 부족한데 서류 작업할 시간이 어디 있냐며 지원을 안 받는게 낫다는 사람도 있다.

김옥영 협회장은 지원받은 예산을 쓰는 과정도 너무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정부에서 모든 국고지원사업을 통합해서 관리하는 전자 시스템 ‘e나라도움’을 도입했는데, 실제로 써보면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김 협회장은 “인터넷 뱅킹은 늦은 밤에도 이용할 수 있는데 e나라도움은 오후 6시 이후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예전에는 정부 지원금을 직접 받아서 집행하기만 하면 됐는데, e나라도움은 회사 계좌가 아닌 가상계좌로 액수만 찍혀 있고, 돈이 필요하면 집행정보를 등록해서 이체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이체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OTT 비밀번호 누르고,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누르고 해야 된다”라며 인력과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김옥영 협회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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