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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웨어가 '우주명작' 스토리를 만드는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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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웨어에서 보낸 14년에서 배운 스토리텔링 수업' 강연을 맡은 마이크 레이드로 (사진: 게임메카 촬영)

바이오웨어는 ‘발더스 게이트’,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기사단’, ‘제이드 엠파이어’를 비롯해 수많은 명작 RPG를 개발한 ‘게임 명가’다. 바이오웨어의 작품들은 특히 방대한 규모와 깊이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를 갖춘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도 ‘매스 이펙트’와 ‘드래곤 에이지’는 가히 게임사에 전설로 남았을 정도다.

그렇다면 바이오웨어의 독보적인 스토리텔링 비결은 무엇일까? 올해 GDC에 이 궁금증을 풀어줄 강연이 나왔다. 바이오웨어에서 리드 라이터, 리드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으로 일했던 마이크 레이드로가 준비한 ‘바이오웨어에서 보낸 14년에서 배운 스토리텔링 수업’이다. 그는 이 강연에서 독특하게도 바이오웨어의 스토리텔링 노하우는 다름 아닌 '팀 관리'에 있으며, 그 비결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번 강연은 이 세 가지 팁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첫 번째 노하우는 ‘스케쥴’이다. 게임은 여러 분야의 전문기술이 융복합된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게임 개발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되며, 개발자도 자기 담당 분야가 아닌 업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자기 일만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고, 결국 급히 완성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토리 라이팅은 사실상 게임 개발 모든 분야에 연관됐다. 레이드로가 꼽아본 간단한 예 몇 가지를 들어보자. 더빙은 라이터가 쓴 캐릭터 대사에 따라 진행되며, 시네마틱 영상도 각본에 맞게 제작된다. 번역을 비롯한 현지화 작업도 기본적으로 라이팅과 관계되어 있다. 라이팅 하나만 잘못돼도 개발 스케쥴 전체가 지연되는 셈이다. 물론 다른 작업에 차질이 생기면 라이팅도 그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거나 가감해야 한다.


▲ 다양한 업무와 맞닿아 있는 라이팅은 스케쥴 변경 시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무리 훌륭한 팀에서도 스케쥴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다. 레이드로는 바이오웨어 같은 ‘명가’도 스케쥴 문제는 피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놔도 늘 예기치 못한 문제로 각본을 다시 쓸 일이 생기거나, 직원이 아프거나, 기타 문제로 지연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레이드로 본인은 바이오웨어에 있을 때 아예 총 작업일 중 25% 정도를 낭비되는 시간으로 감안하고 스케쥴을 잡았다고 한다.

레이드로는 스케쥴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문제가 생길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라고 조언했다. 가장 중요한 시네마틱 영상은 미리 만들어두거나, 모든 메인 캐릭터에게 캐스팅 지향점으로 삼을 핵심 콘텐츠를 하나씩 확보해두는 것 등이 그 예시다.

필수적인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를 나누어 분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필수적 콘텐츠는 전체 콘텐츠 대비 25%를 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콘텐츠 중에서도 사실은 없어도 무방한 것이 많으므로, 처음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데서 약 25%를 더 줄이는 것이 좋다. 작업이 진행되며 제작할 콘텐츠 양은 점점 추가되지만, 가용시간이 늘어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콘텐츠는 따로 기록하되, 꼭 만들 필요는 없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


▲ 스케쥴 변경은 피할 수 없으니, 피해를 완화할 방법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두 번째 노하우는 개발팀 전원이 분명한 목표를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라이터는 매우 잘 정리된 훌륭한 각본을 갖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팀 전체와 공유하는 일은 드물다. 사실 다른 사람은 각자 자기 할 일도 바쁘기 때문에 긴 각본을 전부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이터는 모든 것을 상세히 설명하기보다는 핵심만 요약해 확실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레이드로는 스토리 핵심 사항을 30분 내로 요약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한다. 개발 중간에 새 인원이 들어오는 일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새 사람이 올 때마다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시간 낭비일뿐더러, 결국 제대로 이해시키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언제든 요약 설명할 수 있도록 스토리 핵심 구조를 간단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 그 뛰어난 스토리, 다른 사람들도 잘 이해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렇다면 스토리 핵심으로는 어떤 것들을 이야기해야 할까? 첫 번째는 주제다. 주제는 스토리 전반을 관통하는 의식이나 사상이다. 예를 들어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누군가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는 자주 희생 모티프가 등장한다. 시작부터 주인공은 누군가의 희생 덕에 목숨을 건지게 되고, 나중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작품의 핵심이 될 만한 순간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은 악당에 맞서 일어난 영웅이 각지의 혼란을 수습하고 민중을 보호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스카이홀드’로의 이주다. 악당들에 의해 마을이 파괴되자 주인공은 마을 생존자들을 이끌고 설산을 넘어 고대유적 ‘스카이홀드’로 이주한다. 레이드로는 이 장면이 주제를 잘 반영했으며, 팀 전체가 같은 심상을 공유한 덕분에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 중요한 장면을 그림 등 이미지로 만드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캐릭터에 대한 심상도 공유돼야 한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캐릭터의 단순한 특징뿐 아니라, 어떤 플레이어에게 공감과 호감을 얻을지에 대한 예상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동료인 ‘세라’는 책임감 강한 사람보다는 욜로족이 좋아할 법한 캐릭터로 기획됐는데, 이러한 인식 공유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팀 내에서 심상을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알 만한 비슷한 예시를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레이드로는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에 등장하는 ‘미쌀의 사원’을 팀원들에게 설명할 때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에 나온 사원처럼 생겼어”라고 이야기했다. 덕분에 ‘미쌀의 사원’에 대한 심상을 쉽게 구축할 수 있었고, 빠르게 공동의 작업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적절한 비유나 예시를 드는 것도 좋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마지막 노하우는 QA다. 이 노하우는 단 하나의 팁으로 설명된다. 바로 ‘피드백에 대해 스스로를 방어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창작물이 비판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사실 나는 이러한 의도로 만든 건데’라며 반론을 피게 된다. 그러나 작품은 기획자의 의도가 아닌 플레이어 반응으로 가치가 결정된다. 스토리에 아무리 훌륭한 의도를 담았어도 그 뜻이 전달되지 않으면 헛수고인 셈이다. 따라서 피드백 시에는 비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론을 하지 않으면 보다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비판은 모두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개발단계에서 팀 내부 비판을 막으면 출시 후 되돌릴 수 없는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레이드로는 팀원들이 스토리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표현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라이터가 자기변호 없이 피드백 청취 후 함께 개선책을 만드는 바이오웨어식 프로토콜 (사진: 게임메카 촬영)

레이드로가 바이오웨어에서 14년 동안 근무하며 배운 교훈은 ‘뛰어난 스토리는 천재적 작가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로 요약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팀 단위의 업무관리 능력과 결속이다.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통해 완성된 스토리가 한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스토리보다 완성도 높은 법이고, 그 스토리가 엔지니어에게 명확히 전달돼야 게임에 온전히 반영될 수 있으니 말이다. 레이드로의 강연은 이렇듯 ‘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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