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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만이 아니었다, 봇물 터진 해외 게임사 '근로환경'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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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게임업계 근로환경 문제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게임업계의 강도 높은 노동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출시를 앞두고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크런치’라는 단어가 대중에도 퍼져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꿔보자는 각오를 바탕으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 노조가 생겼다. 올해는 업계에서 포괄임금제 폐지가 이어졌고, 두 노조가 회사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게임업계의 살인적인 노동 환경은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 주요 게임사 여러 곳에서 연이어 크런치에 대한 전, 현직 직원의 고발이 이어지며 노동 이슈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 너티독, CD프로젝트레드, 락스타게임즈의 강도 높은 노동 환경이 지적되었고, 올해에는 상반기가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주요 게임사 곳곳에서 크런치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작은 구멍이 났던 둑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하다.

바이오웨어, 에픽게임즈, 네더랠름까지, 번지는 크런치 이슈

언급되는 게임사의 이름값도 만만치 않다. 첫 타자는 바이오웨어다. 바이오웨어는 올해 1월에 출시한 ‘앤썸’이 참패를 면치 못하며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강도 높은 크런치가 ‘앤썸’이 참패한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다. 관련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해외 게임 전문지 Kotaku에 따르면 프로젝트가 갈피를 못 잡고, 주요 개발진이 연이어 퇴사하는 상황에서 게임을 완성해야만 했던 험난한 과정 속에 제작진 내에는 우울증과 불안이 전염병처럼 퍼졌다고 전해진다.

▲ '앤썸'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포트나이트’로 작년에 서양 시장을 강타한 에픽게임즈도 크런치 논란에 휘말렸다. 해외 게임 전문지 폴리곤이 에픽게임즈 전, 현직 직원을 취재해 1주일에 평균 70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100시간 넘게 근무한 사람도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아울러 주말 근무를 거부한 직원을 해고한 경우도 있다는 제보가 공개되며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조된 바 있다.

▲ '포트나이트'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에픽게임즈)

‘모탈 컴뱃 11’을 출시한 네더렐름도 업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QA 테스터로 일했던 아이작 토레즈는 PCgamer를 통해 ‘1주일에 90시간에서 100시간 동안 일했으며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라며 ‘차를 가져온 직원 중에는 운전하며 졸까 봐 회사 쇼파에서 자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밝혔다.

▲ '모탈 컴뱃 11'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스팀 공식 페이지)

인지도 있는 게임사 여러 곳에서 연달아 ‘크런치’ 이슈가 터지며 게임업계 노동 환경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주요 게임사에서 직원들에게 크런치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연이어 나올 정도다. ‘에이펙스 레전드’를 만든 리스폰엔터테인먼트, ‘패스 오브 엑자일’ 개발사 그라인딩기어게임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등 온라인 기반 게임 다수를 서비스 중인 블리자드 등이다.

리스폰엔터테인먼트는 ‘에이펙스 레전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가 게임 내 문제 해결과 신규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그간 열심히 구축해온 스튜디오 문화와 우리 팀의 건강도 매우 중요하다. 콘텐츠 로드맵, 제작 일정, 업데이트 빈도 등을 논의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직원들을 크런치에 몰아넣지 않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에이펙스 레전드'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게임 공식 홈페이지)

블리자드 존 하이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총괄 프로듀서는 Eurogamer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본적인 방침은 크런치가 없는 팀을 만들자는 것이다. 100%는 아니지만 10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며 팀 중 일부 정도가 초과 근무를 하고 있다”라며 “8시간에서 10시간을 일하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다. 그 시점에서 수익이 점진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크런치를 고수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까지 꽤 잘해왔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첫 파업에 돌입한 라이엇게임즈, 부당대우 참지 않겠다

한 가지 더 짚어볼 점은 북미와 유럽의 노동 이슈는 ‘크런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직원에 대한 부당대우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2017년에는 너티독이 사내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 너티독에서 7년 간 아트 직군에서 일한 데이비드 블라드가 트위터를 통해 상사에게 당한 성희롱에 시달렸고, 인사팀과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한 직후 해고됐다고 폭로하며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작년에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개발사 퀀틱 드림이 장시간 근무와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문제와 함께 사내에 성희롱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며, 인종차별적인 농담도 있었다는 고발이 이어진 것이다. 관련 사건이 보도된 지 1년이 지난 현재도 이에 대한 퀀틱 드림과 직원 간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스크린샷 (사진: 게임메카 촬영)

부당대우를 참지 못해 파업에 돌입한 곳도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로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라이엇게임즈다. 라이엇게임즈는 직원들과 사내 성차별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와중 라이엇게임즈가 근로계약서에 포함된 ‘회사에 소송을 걸 수 없다’는 조항을 근거로, 회사와 소송 중인 직원에게 소송이 아닌 개인중재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사건은 사내 성차별 이슈로 고조되었던 노사갈등에 불을 붙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라이엇게임즈는 신입사원부터 근로계약서에 포함된 ‘소송 불가’ 조항을 없애겠다고 밝혔으나, 직원 측이 요구했던 ‘현재 소송 중인 직원에게 개인중재를 강요하지 말 것’과 기존 직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결국 라이엇게임즈 직원은 6일(현지 기준) 파업에 돌입했고, 150여 명이 참여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라이엇게임즈)

게임업계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주요 토픽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임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완성도 높고, 재미 있는 게임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게임이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났다면 이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좋은 게임 개발과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워라밸을 같이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라도 찾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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