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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요] 14년 전 씨앗 뿌린 e스포츠, 지금의 '롤챔스'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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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새롭게 태동하는 3월입니다. 요사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지만, 새 학기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찬 표정을 띤 채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내심 흐뭇해지네요. 거기다 조금씩 누그러지는 바람을 보고 있자니 묵혀뒀던 운동화라도 꺼내 신고 뛰어 나가고 싶기까지 합니다. 또 ‘봄’ 하면 여러 가지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 아니겠어요?

봄을 맞아 벚꽃놀이 외에도 전시회, 음악회 등 겨우내 메말라버린 감정을 충전해 줄 다양한 행사들이 최근 사전 예매를 시작했는데요, 역시 게이머에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축제라면 다름 아닌 e스포츠 리그입니다. 국제 게임쇼 ‘지스타’나 특정 게임의 유저 이벤트 등도 간헐적으로 열리긴 합니다만, e스포츠는 어디서나 접하기 쉽고 리그도 거의 상시 진행되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죠.

이제 e스포츠는 웬만한 운동 경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규모를 갖추게 되었는데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럼 지금부터 게임메카의 꽃 허새롬 기자와 함께 14년 전 PC파워진을 살펴보시죠!

PC파워진 2000년 3월호


▲ '녹스'가 메인을 장식한 PC파워진 2000년 3월호

상당히 그윽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가 PC파워진 2000년 3월호의 표지를 장식했네요. 당시는 MMORPG보다는 PC게임을 기반으로 해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제공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던지라 표지에 소개된 게임들도 PC 타이틀이 빼곡합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라면, 양면 별책부록으로 동봉된 ‘6대 게임, 최단기 프로게이머 되는 법’입니다. 안타깝게도 해당 별책부록을 책꽂이에서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 책을 보고 프로게이머가 된 사람도 어딘가에 있긴…하겠죠?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성장한 10년 전 e스포츠 업계

2000년 3월 PC파워진을 펼쳐보면 간간이 e스포츠와 관련된 뉴스가 발견됩니다. 아주 짧은 단신에서부터 지면을 배당받은 특집기사까지, 잡지의 메인은 아니었을지라도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주제라는 이야기겠죠. 



PC GAMER, CGW, Adrenaline Vault 등 해외 유명 게임전문지들은 지난 2월 4일자 블리자드의 공식발표를 인용, 배틀넷의 성공과 한국 게임시장의 급속 성장을 “온라인 게임의 왕 배틀넷의 블리자드, 한국을 가지다”, “한국, 세계 제일의 게임시장”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들 게임전문지들은 특히 올해 ‘브루드워’의 출시와 함께 배틀넷 접속자가 50% 증가한 하루 2백 1십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중 한국 게이머들은 지난 6개월동안 2,000%가 넘는 성장을 해 현재는 하루 4십만명 이상이 배틀넷이 접속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후략)

- <해외 게임전문지들, 배틀넷 성공과 한국 게임시장 높이 평가>, PC파워진, 1999년 3월호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1999년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면서 배틀넷을 이용한 온라인 멀티플레이 대결이 주목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관련 e스포츠 리그도 활성화됐는데요, 당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프로게이머를 꼽자면 다름 아닌 ‘쌈장’ 이기석이죠.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과 골드뱅크는 지난 1월 30일 롯데호텔 샤롯데룸에서 업무조인식과 함께 KGL(코리아프로게임리그) 리그 개막식 행사를 가졌다. 이번에 만들어진 KGL리그는 지난 1월 13일 출범한 KIGL(한국인터넷게임리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대규모의 리그이다. 21세기 문화세기 게임산업을 하나의 문화 상품으로 규정, 세계에 수출할 프로게임리그의 표준을 만든다는 비전으로 출범한 이번 리그는 골드뱅크의 골뱅스, 하나로 통신의 에이스 등 6개 팀과 리그를 운영할 예정이다.

- <프로게임리그 KGL리그 개막>, PC파워진, 2000년 3월호


PC파워진 ‘뉴스 인사이트’ 코너에 짤막하게 등장한 뉴스입니다. 어떤 게임이 주 종목이 되는지도 전혀 알려주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되네요. 최근 e스포츠의 동향을 생각한다면 리그를 출범할 때 종목도 함께 고지하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지난 2월 15일 전 세계 동시 발매된 ‘녹스’의 세계 대회가 4월부터 시작된다. 이번 ‘녹스’ 세계 대회는 미국, 캐나다(이상 북미),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핀란드(이상 유럽),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홍콩, 호주, 뉴질랜드(이상 아시아/태평양)의 16개국 게이머들이 참여하는 초대형 이벤트. 4월부터 지역 예선을 거쳐 각 국가별 대표를 선발, 6월에 결선이 치러진다…(후략)

- <녹스 세계 대회, 한국에 결선 티켓 3장 배정>, PC파워진, 2000년 3월호


그 이유는 당시 기사들을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할 것 같네요. 우선 ‘스타크래프트’ 종목 단독으로 진행됐던 대형 리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였고, 신생 게임단이 서서히 결성되어 e스포츠의 산업화 가능성을 조금씩 점치는 시기였던 거죠.



▲ 010으로 번호가 통일된 지금, @016이라니 신선하네요



▲ 당시 활동하던 선수들의 프로필인데…

어쩐지 맨 위에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아마추어 리그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었죠. PC파워진 2000년 3월호에 특집으로 등장한 ‘스페셜 넷플종군기자 수첩’에는 무려 PC파워진에서 주최한 ‘PBL배 게임 경진대회’라는 e스포츠 행사가 소개됐네요. ‘경진대회’라는 다소 교육청스러운 작명센스 덕분에 그저 작은 유저행사처럼 보이지만, 3회째 개최되는 대회인데다 800여명의 참가자가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고 합니다.



▲ 무려 PC파워진 주최라니! 거기다가 3회차라니!


대중문화가 된 2014년 e스포츠, 하지만…


그럼 14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의 e스포츠 리그 분위기를 한번 볼까요? 게임 좀 했다는 사람이라면 최근 한국 e스포츠 시장의 메인스트림은 다름 아닌 ‘리그 오브 레전드’라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지난 시즌 개최된 몇몇 리그의 결승전 사진만 봐도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로 관객도 많아지고 현장도 화려해졌죠. 



▲ 7,000명 관객이 운집한 지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윈터 2013-2014' 결승전 현장



▲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2013' 결승전 입장을 기다리던 인파들

이 무대에서 SKT T1 K가 승리했죠!


진행되는 리그의 종류도 다양해서 거의 1년 내내 선수들의 경기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지난 12일(수) 개막한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스프링 2014’은 물론 전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과 같은 주요 리그 외에도 마스터즈와 NLB,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대학리그 등 과거의 오밀조밀함을 떠올릴 수 있는 대회도 많죠.


최근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가 너무 높아져서 다른 게임 리그들을 잠식한다는 지적도 종종 나오지만, ‘던전앤파이터’나 ‘사이퍼즈’, ‘서든어택’등을 주요 종목으로 채택한 대회에도 고정 관객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e스포츠계의 생태계는 생각보다 잘 흘러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 e스포츠 업계를 발칵 뒤집었던 사건

기사화가 많이 됐었죠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인지, e스포츠가 과거보다 많이 대중화되고 젊은 층의 새로운 문화로 떠오른 가운데에서도 어두운 면이 종종 발견되곤 합니다. 스폰서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임단의 안타까운 사연이나 열악한 연습환경, 혹은 프로게이머 자리에서 은퇴한 후 마땅한 직업이 없어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죠.



▲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좌로부터)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들은 은퇴 후 프로팀 감독 또는 포커 선수로, 혹은 방송인으로 꽤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심지어 공교롭게도 오늘(13일),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였던 ‘피미르’ 천민기 선수의 자살기도 및 승부조작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사후 대처 방안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발생했던 전대미문의 조작 사건이 떠오르는 순간이네요.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KeSPA와 라이엇게임즈는 해당 사안에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고, 천민기 선수의 완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4년동안 규모 면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였던 만큼, 이번 사태에도 현명하게 대처해 한층 성숙해진 e스포츠 생태계를 구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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