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고집하면 미래 없다’ 국감서 논의할 문제인가?

▲ 국정감사에서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시연됐다 (사진출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생중계 갈무리)

10월 1일 진행된 문체부 국정감사 현장에서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시연됐다. 전하고자 한 이야기는 ‘왜 우린 이런 게임 못 만드나’로 축약된다. 업계 입장에서 고민해봐야 할 부분임은 확실하다. 다만 정부가 일을 잘하는지 감사하는 ‘국정감사’에는 어울리지 않은 주제다. 실제로 현장에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할 관계자도 없어서 의미 있는 답변도 도출되지 않았다.

이 질의를 준비한 측은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국감 현장에 설치된 오큘러스 퀘스트2로 VR 게임 중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다고 평가된 밸브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시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이후에는 지난 쇼케이스를 통해 공개됐던 엔씨소프트 리니지W 플레이 장면을 영상자료로 비교 사례로 제시했다.

이어 이상헌 의원은 국내 게임업계에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현장에 자리한 황희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우리나라 게임산업 개발 수준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생각하나? 탄탄한 기술력이 있는 회사도 있지만 최근 이용자에게 큰 비판을 받은 회사들의 대표작을 보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 리니지W 플레이 영상도 나왔다 (사진출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생중계 갈무리)

▲ 이상헌 의원은 엔씨소프트에 대해 '비즈니스 모델 수준만 높여놨다'고 비판했다 (사진출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생중계 갈무라)

이어서 “앞서 보여드린 VR 게임(하프라이프 알릭스)를 개발한 게임사(밸브)와 방금 본 게임(리니지W)를 만든 국내 게임사(엔씨소프트)는 모두 90년대 중반에 설립됐다. 어떤 회사는 가상현실 게임 수준을 이 정도로 끌어올렸고, 어떤 회사는 이용자들의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 수준만 높여놨다”라며 “특정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는 동안 국내 매출은 더 좋아지고, 나아졌을지 몰라도 세계 시장에서의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저는 지금이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최대위기이자,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 혁신하지 못하면 미래의 희망은 절망으로 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정리하면 이상헌 의원은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리니지W를 붙여 확률형 아이템에 과하게 쏠린 국내 게임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확률형 아이템에 매몰된 BM으로는 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혁신을 요구했다. 이 의원 스스로도 “해외 게임과 국산 게임을 비교해서 국내 게임사들의 확률형 아이템을 비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의 말은 맞는 이야기고, 정론이다. 다만 이 이야기가 국정감사에서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나올 얘기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국정감사란 게임업계가 ‘위기의 게임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 문체부가 일을 잘했는가 아닌가를 감사하는 자리다. 아울러 장관은 ‘비즈니스 모델 문제 해소’라는 시장 문제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며, 문체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규제 정도이기에 실질적인 대안을 고안해내기 어렵다.

실제로 황희 장관은 이상현 의원 질의에 대해 문체부에서 추진 중인 VR 콘텐츠 진흥 정책만 소개하고, 국내 게임업계 비즈니스 모델 문제점이나 경쟁력 하락 등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이후 이 의원이 답변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하자 “자율규제는 신뢰가 떨어진 상태다. 업계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여기에 대한 대안이 나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업계와 같이 더 이야기해보겠다”라고 전했다.

▲ 답변 중인 문체부 황희 장관 (사진출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생중계 갈무리)

현장에는 한국게임산업협회 강신철 협회장, 한국게임학회 위정현 학회장이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했지만, 두 사람 역시 비즈니스 모델에 결정권을 가진 업계 관계자는 아니다. 강 협회장은 자율규제로 문제해소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자율규제를 하며 꾸준히 사회적 소통을 중시하며 발전시키려 하지만 부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부분을 보완하여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겠다”라는 답변에 그쳤다. 위정현 학회장 역시 업계가 아닌 학계 관계자이기에 원론적인 문제 지적에 그쳤다.

정리하자면, '확률형 아이템만 고집하면 게임산업 미래가 없다'는 이상헌 의원 의견은 지극히 옳은 말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해결해야 할 중대 현안이고, 시장 요구에 업계가 답변할 때가 왔다. 그러나, 정부기관의 정책을 감사하는 국정감사는 이 문제가 진지하고 무게 있게 거론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