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두 번째 만남이네요. 배꼽 인사 올립니다. ‘(10년 전 그때를)아시나요’가 돌아왔습니다. 지난 1호 기사가 나간 후 많은 분들이 벌써 렐름의 유물(?)이 되어버린 ‘넷파워’를 추억해 주셔서 참으로 보람찼습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삼천 원쯤은 있듯이, 게이머의 가슴 속에 잡지 한두 권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첫 회였다고 생각되네요.
가열차게 10년 전을 외쳤던 1화와 달리 오늘은 좀 더 멀리 가볼까 합니다. 원래 한입으로 두말하는 게 최근 추세니까 그 정도는 눈감고 넘어 가보도록 하죠. 원래 제가 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자거든요. 호호호.

▲ 오늘의 주인공은 PC 챔프 1998년 2월 호!!
10년 전 2월에도 재미있는 일은 많았지만, 그보다 좀 더 타임머신을 굴려 1998년(두둥) 2월로 가보려고 합니다. 오늘 볼 잡지는 이름도 멋진 ‘The World’s Finest PC & CD ROM Entertainment MAGAZINE’ PC 챔프입니다. 해석하면 ‘세계 제일의 PC와 CD ROM을 통한 유흥 잡지’라는 뜻인가요? ‘PC 챔프’ 1998년 2월 호를 펼쳐 옛날 우리 언니, 오빠, 삼촌, 동생들이 즐기던 오락거리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보시죠.
인기 만화가 게임으로 되던 바로 그 시절
얼마 전 넥슨이 개발하는 FPS 신작 ‘공각기동대’ 기자간담회를 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열렬하게 사모했던 만화 중의 하나라 제가 가슴이 벅차더군요. 게임메카 독자분들의 반응에서도 비슷한 기대감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공각기동대’나 ‘마크로스’ 등 1990년대를 장식했던 만화의 신작 게임 발표가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출판돼 일본과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좋은 작품입니다. 특히 ‘공각기동대’처럼 좋은 IP는 마치 캐도 캐도 끝없이 자원이 나오는 광맥처럼 개발자에게 영감을 주지요.
만화 왕국이기도 한 일본은 게임산업이 만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많은 만화 IP가 게임으로 출시됩니다. 우리도 비슷한 때가 있었습니다. 1998년입니다. 때마침 1998년 2월호 ‘PC 챔프’에 이와 관련 깊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 PC 챔프 2월 국내 뉴스 소식 '만화영화, 게임으로 거듭나기 계속된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1998년은 온라인게임 문화가 싹트기 바로 직전, PC게임의 인기가 정점에 도달한 때입니다. 위의 기사에 나오는 말마따나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소스는 게임으로 나오려고 하고 어쩌면 이미 다 나왔을 지도 모를 시기였죠. 정말 많은 게임이 나왔으니까요.
특히 국산 게임이 많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추세는 만화 산업과 연결지어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한발 조금 앞선 1990년대 초반은 바로 한국 만화 잡지의 부흥기였습니다. 소년 만화계의 양대산맥이었던 아이큐점프와 소년챔프, 그리고 어른들의 성역 영챔프도 있었죠. 여학생들은 윙크, 르네상스, 이슈 등이 출판되며, 만화계의 ‘르네상스’를 이루었습니다.
당시 귀여운 ‘초등학생’이던 저는 르네상스와 나나를 구독했고, 오빠는 아이큐점프와 소년 챔프를 받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 오빠 만화를 훔쳐보았죠. 우리 남매 같은 열혈한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만화계는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순정-무협-액션-전쟁 등 전 장르를 아우르는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하게 된 거죠.
갑자기 만화 잡지를 짚어 보는 코너같네요. 그래도 좀 더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특히 아이큐점프와 소년챔프는 황금기를 이끈 쌍두마차였습니다. 다들 익히 알 정도로, 역사적인 라이벌이었어요. 마치 지금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들의 선의의 경쟁 속에 국내 만화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 문정후의 ‘용비불패’, 전극진/양재현의 ‘열혈강호’, 소주완/지상월의 ‘협객 붉은 매’, 박성우의 ‘8용신전설’, 조재호의 ‘다이어트 고고’,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이충호의 ‘마이러브’, 양경일 ‘소마신화전기’ 그리고 여성작가로 소년지에서 이름을 날렸던 황미나의 ‘파라다이스’까지. 딱 하나만 꼽기는 어렵지만 제 기억 속에 남은 명작이라면, 대충 이정도?
이러한 명작들은 곧 PC게임도 만들어졌습니다. PC 챔프 2월호에는 잡지 광고로도 이미 출시를 알리는 게임들을 만나 볼 수 있군요. ‘8용신전설’ 광고가 나오네요. ‘8용신전설’로 박성우 작가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작가죠. 짧은 권수에도 불구하고 만화의 인기는 식지 않고 당연히 PC게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광고가 무려 양쪽으로 2페이지나 들어간 '8용신전설'
밉스 소프트웨어가 나우누리 개발팀인 ‘가람과 바람’과 함께 만든 ‘8용신전설’은 3D RPG로, 원작자 박성우 화백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등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타이틀입니다. 그만큼 오리지널 만화에 버금가는 완성도와 뛰어난 게임성으로 지금도 ‘8용신전설’을 하고 싶다는 글을 종종 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주인공이 3D 애니메이션과 실감나는 성우 연기가 시너지를 일으켜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던 타이틀입니다.
이후 박성우 작가의 작품이 또 게임(천랑열전)으로 나오기도 합니다만, 뭐 말 안해도 다 아실정도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 승아의 몸매가 제대로 살지 못했던 '어쩐지 저녁'의 광고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이하 어쩐지 저녁) 광고가 나오네요.
혜성처럼 등장해서 혜성처럼 군대에 가버려서, 독자와 최고의 ‘밀당’(밀고 당기기)를 벌였다는 평가를 받는 이명진 작가의 데뷔작입니다. 그리고 희대의 성공작이기도 하고요. 이명진이라는 고등학생을 스타 만화가로 만들었지요. 마치 ‘스타크래프트’ 열풍 때 중,고등학생 나이의 e스포츠 프로게이머가 나왔던 것처럼, 당시 이명진 작가를 따라서 많은 고등학생들이 만화가로 데뷔하는 유행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명진 작가는 군 제대 후에 ‘라그나로크’를 그리면서 재기를 노리지만 크게 히트는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제작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그라비티에서 나온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는 크게 성공하게 되죠. 어찌 보면 만화에서 게임으로 연계된 작품을 그린 가장 대표적인 작가일 수 있겠네요.
▲ '어쩐지 저녁' 플레이 영상 (영상 출처:유투브 dreamsyc님)
원래 만화 ‘어쩐지 저녁’은 문제아 하숙생 남궁 건과 하숙집 손녀딸 민승아의 연애를 그린 학원 로맨스물입니다. 사귀다가 헤어지고, 또 사귀다가 헤어지면서 사람 염장을 질렀는데 게임에서 연애를 하기엔 낯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TG엔터테인먼트는 PC게임으로 개발하면서 연애물 보다는 ‘문제아’에 초점을 맞춘 액션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군 입대로 작가가 부재인 상태에서 제작됐지만, 원작 만화의 스토리라인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도 횡스크롤 액션 장르로 개발되어 게이머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화려한 콤보 기술이나 피격 사운드, 체력이 다 닳아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근성' 시스템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당시로써는 타격감에 대한 평점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인기에 ‘어쩐지 저녁’이 2탄이 제작되기도 했지만, 2D 게임이었던 전작과 달리 2탄은 3D로 만들어져 조금은 ‘파이널 판타지’스럽게 등장인물의 외모가 변화하게 됩니다. 또, 스토리도 원작과는 동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게 되어 팬층을 끌어모으는 데는 실패하게 됩니다.
‘8용신전설’, ‘어쩐지 저녁’같은 대표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 프리뷰 특집에는 게임으로 분한 만화 시리즈로 ‘녹색전차 해모수’가 등장합니다.

▲ 이달의 게임 프리뷰 첫 타자는 바로 '녹색전차 해모수'
‘녹색전차 해모수’(이하 해모수)는 동명의 원작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당시 게임으로, 그리고 TV로 까지 재생산된 타이틀입니다. 아쉽게도 게임은 원작 만화만큼 큰 흥행은 거두지 못합니다만 전차라는 특이한 소재로 마니아층을 생성하기도 했습니다. 액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출시돼, RPG 배틀과 통쾌한 슈팅이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대만이나 중국같이 해외에도 수출됐습니다.
당시 ‘나 만화 좀 보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혼기병 라젠카’와 ‘녹색전차 해모수’로 취향이 홍해바다처럼 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차라는 특이한 소재를 이용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찾았었는데요, 슬프게도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매를 맞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게임은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대신 1998년 중순에 나온 만화영화와 문구점에서 팔던 조립식 장난감이 큰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는군요.
참 아쉽죠. ‘해모수’만 성공했어도, 원조 탱크게임은 우리나라가 먼저라고 조금은 주장해볼 수 있었을 텐데요
1998년 그리고 15년 후 지금.. 한국 만화로 된 게임 있나?
1998년 이후 PC게임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국내 만화는 꾸준히 온라인게임으로 이식됐습니다.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신일숙 작가의 작품에서, 넥슨이 서비스하는 ‘바람의 나라’는 김진 작가의 만화였죠. 지금은 과거의 명작들이 재해석되는 시도가 많지 않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죠.
웹툰으로 재부활한 만화 산업은 제2의 황금기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비록 종잇장을 넘기면서 느꼈던 추억은 없지만,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흰 여백이 주는 끝없이 긴 원고지는 프레임에 대한 제한이 없어 보다 특색있고 개성 넘치는 콘티로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죠. 덕분에 여전히 건재한 허영만 작가를 시작으로 강도영, 강풀, 주호민, 조석까지 다채로운 매력의 만화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게임 시나리오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면 감지덕지지만 과거의 명작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죠. IP에 대한 투정보다 주변을 먼저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의외의 보석은 발밑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자, 그럼 남은 2월도 재미있게 보내시고요. 3월에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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