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체

통신윤리 함양? 레진코믹스 차단 방심위 모호한 기준 때문

/ 4


▲ '만화, 음란물 규제 앞에 서다' 토론회 현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레진코믹스 차단은 만화, 더 넓게는 성인 콘텐츠에 대한 적정한 심의기준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레진코믹스의 경우 방심위가 사업자의 자율규제에 맡기며 일단락되었으나 '성인 콘텐츠 심의'에 대한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이러한 와중 방심위의 성인 만화 심의가 정당한가를 따져보는 토론회가 열려 이목이 집중됐다.

 

오픈넷과 한국만화가협회는 30,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만화, 음란물 규제 앞에 서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의 핵심은 '불법 음란물'이다. 다시 말해 청소년은 물론 성인도 봐서는 안 된다고 차단되는 것을 말한다. 성인에게 허용되는 성인물은 '청소년 유해매체물' 혹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따로 명기된다. 게임에서는 '청소년 이용불가'가 여기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웹툰처럼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불법 음란물'을 심의하는 방심위의 심의방식과 기준이 적절한지를 논의해보자는 것이 이번 토론회의 핵심이다. 현장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방심위의 불법 음란물 차단은 강간이나 아동 포르노와 같은 불법정보를 걸러내는 것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발제를 맡은 법률사무소 이음 손지원 변호사는 "이미 헌법재판소는 방통위설치법에 있는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라는 문구가 지나치게 모호하며 불법정보에 대해서만 삭제, 차단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결정이 있음에도 방심위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단순 유해 정보도 차단하고 있다. 청소년의 접근만 통제되어도 족한 정보를 전면차단하며 표현의 자유 및 성인의 알 권리가 심대하게 침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법률사무소 이음 손지원 변호사 


방심위 심의위원을 지냈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특히 인터넷의 경우 책이나 다른 매체에 비해 차별이 심한 것 같다. 책을 비롯한 다른 매체의 경우 '이 행위가 불법이냐, 아니냐'에 따라 규제대상이 정해진다. 그러나 인터넷의 경우 불법여부가 아니라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이 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불법이 아닌 합법이라 인정되는 부분도 심의기준에 따라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


다시 말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불법 음란물에 대한 방심위의 기준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보다 명확한 규정을 잡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다. 가급적 부처 하나로, 만화를 그리는 작가와 읽는 독자, 청소년 단체와 같은 비영리기관 등 다양한 관계자가 모여서 종합적으로 만화를 심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만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라면 단순한 노출이나 성적연출만이 아니라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 내용을 감안한 신중한 심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성식 교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에는 특정 여성을 겁탈하고, 나중에 그 여성이 남성을 따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나도 나중에 저래야지'가 아니라 '전쟁과 같은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다른 나라에 주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특정 소재나 표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맥락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판단을 내려야 한다. 표현이나 소재만으로 음란성을 구분한다면 수백 만의 독자가 읽은 '태백산맥'과 같은 현대문학이 '불법 음란물'이 되어버린다"라고 전했다.



▲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박성식 교수 


이동욱 만화가는 정부의 모호한 심의에 대한 현업 작가의 피로도를 대변했다. 이 작가는 "정부의 가이드대로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거나, 다른 나라의 작품과 비교해보며 뭔가 손발이 묶인 상태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있다"라며 "데스크와 상의해서 낸 성인 만화인데 정부는 불법 음란물이라 차단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혼란하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작품'이다. 만화가 중 '내 작품을 보면 독자들이 이렇게 따라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 청소년을 걸러내는 성인인증제도를 믿고 작품을 냈는데 불법 음란물이 되어 아예 차단되면 작가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 이동욱 만화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5년 3월호
2005년 2월호
2004년 12월호
2004년 11월호
2004년 10월호
게임일정
202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