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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 위해 재미를 희생한 게임 ‘헬블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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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닌자시어리 공식 유튜브)

게임의 예술성에 관한 문제는 업계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어떤 사람은 게임의 핵심은 재미에 있으므로, 플레이 자체에서 오는 즉발적인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반면 게임은 서사성, 음향성 등 여러 면을 볼 때 예술로 분류되어야 옳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최근 ‘게임의 예술성’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친 게임이 하나 발매됐다. 바로 ‘DMC: 데빌메이크라이’ 제작사 닌자시어리의 신작 어드벤처게임,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이하 헬블레이드)’이다.

‘헬블레이드’의 어둡고 감수성 풍부한 스토리,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인 연출, 우수에 찬 음악 등은 절로 ‘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뛰어나다. ‘헬블레이드’가 보여주는 감각적 연출은 게임도 충분히 예술일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러나 ‘재미’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예술적인 연출을 위해 여러 게임적 요소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전투와 퍼즐은 밋밋하고, 성장요소는 없으며, 플레이 자체의 쾌감 또한 크지 않다.

‘헬블레이드’는 분명 깊은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이지만, 예술을 위해 재미를 희생했다. 그 희생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을까? 한 번 확인해보자.

게임보다 영화에 가깝다, 슬픔과 집착의 모노드라마


▲ '헬블레이드' 스토리는 주인공 '세누아'의 슬픔과 집착을 주제로 삼았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헬블레이드’ 스토리는 픽트족 전사 ‘세누아’의 슬픔과 집착, 그리고 광기를 주제로 삼았다. 특이한 점은 스토리를 중시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세누아’를 제외하면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헬블레이드’는 여러 인물간의 갈등 대신, ‘세누아’ 개인의 감정을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 깊은 몰입을 유도했다.

초반 줄거리는 이러하다. 태어날 때부터 신들의 저주를 받은 ‘세누아’는 부족에서 불길한 여자로 여겨진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자 부족민들은 ‘세누아’ 때문에 신들이 노여워하는 것이라며, 황야로 나가 고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고행에 나섰던 ‘세누아’가 돌아왔을 때 마을에 남아있던 것은 불탄 집과 시체들뿐이었다. 그가 황야에 있던 사이, 바다 건너로부터 바이킹이 침략해와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을 살해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게 살해된 이는 바로 ‘세누아’의 연인 ‘딜리온’이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주던 연인이 바이킹의 인신공양 제물이 되어 잔인하게 죽은 모습을 본 ‘세누아’는, 연인의 영혼을 바이킹의 지옥 ‘헬헤임’에서 구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게임은 결국 슬픔과 번민에 시달리던 ‘세누아’가 ‘헬헤임’을 향한 모험을 떠나는 데서 시작한다. 모험의 목적은 바로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을 연인의 영혼을 구하는 것.


▲ 연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 처절한 여정에 오른 '세누아'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스토리도 자체도 흥미롭지만, ‘헬블레이드’의 진정한 강점은 바로 뛰어난 서사에 있다. 이 게임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고립된 삶을 살아온 소외감과 위축감,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준 연인을 잃은 슬픔 등,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해냈다.

연인의 죽음은 창작물에서 흔히 사용되는 소재다.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이제 별 감흥도 못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누아’는 배우의 실제 얼굴을 본 딴 사실적인 캐릭터 표정,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진실성 있는 성격과 대사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인 인물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실적이다 보니 플레이어는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세누아’의 슬픔에 이입하고 연민을 느끼게 되며, 그만큼 후반의 카타르시스도 크다.

다만 한 가지 서사를 깊이 있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만큼, 여러 스토리 선택지가 제공되지는 않는다. 플레이어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결과가 도출되는 ‘상호작용’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되면 그만큼 서사의 밀도는 낮아지므로, 이는 아쉬운 점이라기 보다는 ‘헬블레이드’의 특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후반으로 갈수록 '세누아' 내면의 어둠과 광기도 더욱 깊어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뛰어난 그래픽과 음향으로 ‘감상하는 재미’ 확실히 잡았다


▲ 수준 높은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해안 풍경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스토리도 훌륭하지만, 이 게임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따로 있다. 바로 그래픽과 음향이다. ‘헬블레이드’는 극도로 사실적인 그래픽에 더불어, 매 순간 적절하게 긴장과 감성을 고조시켜주는 음악으로 한층 깊은 몰입을 제공해준다.

개발 전부터 익히 소문이 돌았던 대로, ‘헬블레이드’의 그래픽은 실제와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수하다. 덕분에 캐릭터의 움직임, 흘러가는 구름,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돌 바닥 등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플레이어 자신이 정말로 그 장소에 있는 듯한 임장감 마저 든다.


▲ 보는 것만으로도 '무스펠헤임'의 불지옥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그래픽이 뛰어난 덕분에 발휘되는 장점이 또 하나 있다. 게임 그래픽이 시네마틱 영상과 차이가 없으므로, 중간에 플레이가 끊기는 느낌이 안 든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네마틱 영상이 나오면 게임이 중단됐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헬블레이드’의 시네마틱 영상은 게임과 완전히 이어지는 방식으로 연출되면서도 어떤 이질감도 주지 않는다. 덕분에 게임 중간에 자주 시네마틱 영상을 삽입해 스토리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흐름은 늘 부드럽게 이어진다.

여기에 세심하게 구성된 음향은 ‘세누아’가 느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플레이어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음산한 소리는 기본이다. 보이지 않는 환청들이 수시로 뒤에서 속삭이며 ‘세누아’를 비웃고, 참견하며, 책망한다. 이처럼 다양하고 섬뜩한 음향 덕에 ‘헬블레이드’는 아름다운 그래픽 속에서도 확실히 공포물이라는 느낌을 준다.

음악도 ‘헬블레이드’ 장점 중 하나다. 깊은 슬픔과 엄숙한 결의가 느껴지는 음악은 중요한 순간 감성을 크게 고조시켜준다. ‘헬블레이드’는 헐리우드 스타일의 장엄한 오케스트라 대신 잔잔하면서 음울한 풍미의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는 게임 전반에 흐르는 ‘세누아’의 슬프고 결연한 모험과 잘 어우러지면서 몰입을 높여준다.


▲ 최종 보스전에 삽입된 BGM, 게임 분위기를 어느 정도 느껴지게 해준다
(영상출처: 원곡자 Passarella Death Squad 유튜브)

특징 없는 전투와 퍼즐,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다


▲ '콤보'가 없어서인지 전투는 조금 밋밋한 느낌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헬블레이드’ 스토리는 취향을 탈지언정 완성도 높고, 연출은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그 외 부분은 조금 아쉽다. 전투와 퍼즐은 밋밋하고, 성장요소는 없으며, 상호작용 요소도 많지 않다. 그 탓에 게임 플레이 자체의 재미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전투는 약 공격, 강 공격, 방어 해제기, 회피, 막기의 다섯 기술로 진행된다. 또한 ‘포커스(Focus)’ 기술을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시간을 느리게 해, 제한된 시간 동안 거센 공격을 연타할 수 있다. 일부 보스와의 전투에서는 ‘포커스’로 상대의 기술을 해제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을 조합해 큰 피해를 주는 ‘콤보’ 요소는 없고, 기본 공격과 방어만으로 전투가 진행되는 탓에 조금 밋밋한 느낌이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점도 없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전투 중 어떤 인터페이스도 보이지 않는 점이다. 적의 체력, 도움말, 메뉴 등 시각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화면에서 모두 배제한 것이다. 덕분에 전투는 영화처럼 멋지게 연출되지만, 동시에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보스 전투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할지 예측도 안 되고, 보스의 스킬을 어떻게 피하거나 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도 나오지 않아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연출을 위해 편의를 희생한 셈이다.


▲ 보스전은 아무 정보 없이 시작되는 탓에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전투와 함께 실제 플레이를 담당하는 부분은 퍼즐이다. ‘헬블레이드’는 적과 싸우는 것보다 퍼즐을 풀고 숨겨진 길을 찾는 어드벤처 요소가 더욱 짙은 게임이다. 독특한 점이라면 대부분의 퍼즐이 북유럽 신화 및 ‘세누아’의 광기와 깊이 관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 퍼즐은 의미를 알고 보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질 만한 구성이며, 게임 속 드라마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해준다. 다만 퍼즐 자체의 재미는 다소 떨어진다. 많은 퍼즐이 숨은 그림 찾기나, 오브젝트 조작의 반복이어서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이도 측면에서는 의외로 ‘하드코어’ 게임은 아니다. 복잡한 조작 요소가 없는 만큼 전투는 다소 단순한 구성이고, 퍼즐은 많이 돌아다니느라 번거로울 뿐 비슷한 패턴이 자주 반복되므로 막힐 만한 구간이 거의 없다. 또한 초반부에 여러 번 죽으면 세이브 파일이 삭제된다는 무서운 경고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여러 번 죽어도 세이브 파일이 삭제되지 않았다. 보스 전투에서 10여 번 이상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이브 파일은 그대로였다.


▲ 환시에 보이는 기호를 실제 세계에서 찾아야 문이 열린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플레이가 아닌, 감상하는 게임


▲ 일반적인 게임이라기 보다는 영화나 오디오 북에 가까운 구성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상 살핀 것처럼 ‘헬블레이드’는 예술적인 수준의 스토리와 연출을 통해, 보고 듣는 ‘감각적 재미’ 하나는 확실히 잡아냈다. 영화나 오디오 북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즐긴다면 ‘헬블레이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훌륭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게임 플레이 자체를 놓고 보자면, ‘헬블레이드’는 그리 큰 쾌감과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는 부분인 전투와 퍼즐은 밋밋하고, 스토리는 선택지 없이 정해진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일방 진행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헬블레이드’를 계속한 주된 동기 역시 플레이 자체가 아닌, 스토리와 연출을 감상하는 재미였다.

이처럼 극단적 구성 탓에 ‘헬블레이드’는 호오가 크게 갈릴 만한 게임이다. 만약 ‘라이즈: 로마의 아들’이나 ‘소울리버’ 같은 스토리 중심의 퍼즐 어드벤처 게임을 재미있게 했다면 ‘헬블레이드’도 큰 만족을 줄 것이다. 그러나 ‘갓 오브 워’나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처럼 플레이 자체가 재미있는 게임을 기대한다면, 이 게임은 조금 아쉽게 느껴질 듯하다.


▲ 감상하기는 좋지만 플레이 자체는 조금 쉽게 질린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새벽
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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