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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메카] 남자가 상상하는 '여학교의 로망' 그렸다, 플라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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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게임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대부분 남자 주인공이 다양한 히로인을 만나며 연애를 하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일부 게이머는 '미소녀게임은 당연히 그거지'라며 특정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다양한 인간관계처럼 미소녀게임도 하나의 틀로 설명이 되지 않는 많은 종류와 콘셉이 존재한다.

미소녀게임이라는 이 장르는 특성상 미소녀가 등장하고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면 어떤 소재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진정한 매력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게임도 일반적인 미소녀게임과는 약간 다르지만, 시장에서 확고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노센트 그레이의 첫 번째 백합게임 ‘플라워즈’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한 가지 집고 넘어가면 백합게임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마리아님의 보고계셔’와 같은 여성간의 플라토닉 러브, 즉 성적인 자극 없이 순수한 사랑을 다룬 작품을 말한다. 미리 말하자면 '플라워즈'는 전연령층 이용가 게임이다.


▲ 전작과 달리 '플라워즈'는 메인 이미지부터 밝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게임을 만드는 이노센트 그레이

게임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먼저 제작사에 대해 알아보자. ‘플라워즈’를 개발한 곳은 올해로 설립 10년차인 이노센트 그레이(Innocent Grey)다. 이노센트 그레이의 특징은 평범한 연애물 대신 미스터리 추리물을 테마로 한 미소녀게임을 주로 선보인다는 것이다. 타입문이나 키(Key), 리프(Leaf)처럼 국내에 잘 알려진 게임사는 아니지만, 특유의 게임성 덕분에 확고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곳이다.

이노센트 그레이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완성도 높은 원화와 음악이다. 이노센트 그레이의 대표이자 원화가인 스기나 미키는 회사 이름보다 더 많은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스기나 미키의 그림 때문에 게임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층이 두텁다. 여기에 처녀작인 ‘카르타그라’ 때부터 참여한 프리랜서 MANYO의 클래식한 음악과 시모츠키 하루카의 음색은 이노센트 그레이 게임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두 번째는 미소녀게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잔혹한 연출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노센트 그레이가 다루는 게임은 미스터리 추리물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살인이 일어나더라도 피가 튀는 연출이나 신체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다른 미소녀게임과 달리, 이노센트 그레이는 살해당하는 장면부터 캐릭터들의 시체 하나하나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뿐만아니라 주요 히로인이 갑작스럽게 살해당하거나는 등 후반부로 갈수록 어둡고 무거워지는 분위기는 이노센트 그레이만의 특징이다.


▲ 대표작 '껍질의 소녀' CG...분위기부터 '플라워즈'와 다르다


▲ 메인 히로인이라고 안심해선 안된다...
이노센트 그레이는 잔혹하게 히로인을 살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무거운 소재를 다루던 이노센트 그레이가 2013년에 돌연 백합게임의 제작을 선언했다. 이처럼 노선을 선회한 이유는 '허무의 소녀’로 혹사당한 스즈나 미키가 휴식을 이유로 가벼운 소재의 백합게임 제작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백합물을 좋아해 전작에도 약간씩 백합요소를 넣어왔던 스즈나 미키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스즈나 미키의 주장을 다른 제작진이 받아들이면서 '플라워즈' 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플라워즈'에는 가벼운 소재를 다룬 작품임에도 이노센트 그레이만의 색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노센트 그레이는 처음으로 만든 백합게임 ‘플라워즈’에 그들의 색을 어떤 식으로 담아냈을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참고로 '플라워즈'는 전연령이라, 부모님의 기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남성의 로망을 담은 게임

‘플라워즈’는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의 4부작으로 구성된다. 이중 출시된 것은 봄편과 여름으로, 각각 2014년 4월과 2015년 4월에 발매됐다. 다만, 여름편이 봄편 엔딩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여기에서는 봄편 위주로 설명하겠다. 이 게임은 주인공 ‘시라하네 스오우’가 기독교 미션스쿨인 안그레캄 학원에 입학해 총 1년 동안 재학하면서 친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백합게임인 만큼, 학생과 교사, 직원이 모두 여자에 기숙사 제도로 운영된다. 여기에 기숙사에는 학생간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한 ‘아미티에’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아미티에’는 3인 1조로 하나의 방에서 생활하며 평소 이동하거나 수업과 부활동을 할 때도 되도록 같이하며 상의하는 그룹을 뜻한다. 이는 ‘플라워즈’ 모티브가 된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의 ‘자매(쇠르) 제도’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학년으로 구성되는 자매와 달리, ‘아미티에’는 같은 반 동급생으로 구성되며 기숙사도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 생활은 백합게임에서 매우 중요하다. 좀 더 특별한 관계로 주인공과 히로인을 묶어서 서로를 계속 의식하게 하는 것이 관계를 증진 시키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에서 주인공이 질투와 호감을 나타내는 대상은 주로 자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아미티에'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플라워즈’는 ‘아미티에’로 묶인 소녀들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학원물이다. 여기에 금남의 구역인 기숙사제의 여학교의 일상을 그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처럼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로 게임의 일상을 보면 남성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여타 미소녀게임과 달리, 다과를 즐기며 홍차의 종류와 디저트에 대해 토론을 하거나, 연애소설,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 밖에 미용이나 발레수업, 신부수업 등과 같은 남자들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들이다.

즉, 남성들이 바라는 여학교의 로망을 게임에 풀어낸 셈이다. 물론, ‘플라워즈’ 시대 배경이 6~70년 대로 추정되는 과거이다 보니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도 보이지만, 어차피 미소녀게임이 게이머들의 이상과 망상을 구현한 장르인 만큼, 전혀 문제없다. 우리가 미소녀게임에서 바라는 것은 현실성이 아니라 로망이니까.


▲ 친구들과 다도를 즐기거나...


▲ 발레를 배우는 등 평범한(?) 여학교의 일상을 다룬다

등장인물

'플라워즈' 봄편은 주인공 시라하네 스오우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주인공과 ‘아미티에’ 관계인 위원장 ‘하나비시 릿카’와 ‘코우사카 마유리’가 히로인으로 등장한다.


▲ 시라하네 스오우

본작의 주인공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미션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다. 유명한 음악가인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두고 이후 독서와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 현재 목표는 친구를 많이 만드는 것.


▲ 하나비시 릿카

시라하네 스오우와 '아미티에' 관계이며, 클래스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예절을 중요시하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매우 고지식하고 규칙을 중시하지만, 스오우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자기주도적으로 다과회와 클래스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주위 학생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특기는 발레와 다도.


▲ 코우사카 마유리

시라하네 스오우와 '아미티에' 관계이며, 보이쉬한 외형과 성격으로 클래스 내에서 인기가 많다. 겉보기에는 사교적인 성격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타인과 그다지 어울리지 못한다. 특기는 마술이며,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위를 보지 못하는 타입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타인과 스스럼없이 융화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스오우에 비해 그나마 릿카와 마유리는 좀 나은 편이지만, 그들 역시 벽을 두고 그 안으로 타인이 접근하는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 사람을 ‘아미티에’라는 울타리에 묶어두고 그들이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해가는지가 ‘플라워즈’ 봄편의 주제다.






▲ 서툰 사람들끼리 함께 생활해가며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백합게임이지만 일단은 미스테리 전문회사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노센트 그레이는 미스테리 추리물을 제작하는 게임사다. 따라서 ‘플라워즈’에도 추리 요소가 녹아 있다. 다만, 전작과 달리 ‘플라워즈’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추리요소를 넣어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전 작품처럼 사람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학원의 불가사의를 해명하는 등 소박한 주제에 대해 추리하는 방식이다.

추리파트는 기본적으로 사건발생, 단서수집, 결과발표의 순서로 진행된다. 추리단계에서 알맞은 선택지를 골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만약, 추리에서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면 만족스러운 결과 도출에 실패하면서 배드엔딩으로 이어진다. 여담으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플라워즈’이지만 배드엔딩에서는 이노센트 그레이 특유의 어둡고 잔혹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팬은 ‘역시 이노센트 그레이’라며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


▲ 이노센트 그레이 특유의 추리 요소는 '플라워즈'에도 녹아있다

초보자에게 강추, 백합물의 입문서를 꿈꾼다

지금까지 소개로 게임에 대한 흥미가 생겼지만, 백합이라는 장르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시작으로 많이 대중화되긴 했지만, 동성간의 연애를 다룬 미소녀게임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백합물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플라워즈’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플라워즈’가 백합물에 입문자의 시각에 맞춰 제작된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노센트 그레이는 제작발표 인터뷰에서 ‘백합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하는 바람에 ‘플라워즈’를 제작하게 됐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제작 단계에서도 백합 마니아들의 자문을 받으며 입문자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전작과 달리 성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전연령으로 제작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백합물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우정과 사랑 사이를 넘나들며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면서 많은 팬들을 백합물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마리아님이 보고계셔’와 방향성이 비슷하다. 여담으로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는 여성 독자를 타겟층으로 발매한 소설이나, 예상외로 남성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이전까지 여성향에서 마이너한 장르에 속했던 ‘백합물’이 메이저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필자 역시 백합물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주로 이성간의 연애를 다룬 미소녀게임을 즐겨왔다. 하지만 ‘플라워즈’를 통해 이 장르에 입문하고 특유의 재미를 느끼면서 빠져들게 된 경우다. 더불어 일본어를 모르는 유저들을 위해 영문으로도 발매되고 있고 버전과 PC와 PS비타 두 가지라 플레이의 제약도 적다. 자극적이거나 천편일륜적인 미소녀게임에 지친 사람이라면, 가볍고 부드러운 백합게임으로 몸과마음을 치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 아름다운 여성들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필자의 마음도 치유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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