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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마계와 사이보그까지, '블소' 알고보면 종합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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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이드앤소울' 세계관은 무협 말고도 온갖 판타지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2012년에 발매된 엔씨소프트 MMORPG ‘블레이드앤소울’은 무협 콘셉트의 ‘동양 판타지’를 표방하여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 이 게임은 멸문 당한 문파의 마지막 제자가 복수의 길을 걷는다는 스토리에, 실제 플레이에도 경공이나 운기조식 등이 존재하는 등 많은 면에서 무협의 요소들을 차용했다. 그러나 왜일까? '무협'이라는 이미지는 자주 강조된 데 비해 '판타지'라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어왔다.

하지만 ‘블레이드앤소울’ 세계관은 조금만 알고 보면 실제로는 무협보다 판타지 요소가 깊게 베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가미된 정도가 아니다. 이계로부터의 마족 침공, 시간이동, 사이보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파격적인 판타지 요소가 게임 구석구석 자리했다. 덕분에 ‘블레이드앤소울’은 통속적인 무협도, 검과 마법의 판타지도, SF도 아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 주에는 이처럼 ‘블레이드앤소울’ 속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판타지 요소를 조명해보았다. 만약 ‘블레이드앤소울’ 세계관이 단순한 무협인줄 알았다면, 이번 기회에 그 놀라운 진면목을 알아보자.

마왕 강림 막기 위해 마족에 맞선다, 무협의 틀을 벗어난 ‘하이 판타지’

▲ 물론 무협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한다 (사진출처: 유튜브 공식 영상 갈무리)

‘블레이드앤소울’의 미시적인 드라마는 통속적인 무협소설의 왕도를 착실히 따라가는 듯 보인다. 게임 시작과 함께 주인공은 억울하게 스승과 문파를 잃고 복수에 나선다. 그러나 여행 중 겪은 여러 사건을 통해 주인공은 인격과 무공 양면으로 성장하며, 이내 복수심을 의협심으로 승화시켜 진정한 고수로 거듭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블레이드앤소울’은 나무랄 데 없는 정통무협이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블레이드앤소울’은 무협에서는 흔히 다루지 않는 소재를 중심으로 메인 스토리를 끌어가고 있다. 바로 마왕 강림이다. 사실 ‘블레이드앤소울’의 스토리는 주인공이 마왕이 세상에 강림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 여러 사악한 존재와 맞서 싸우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블레이드앤소울’은 어느 정도 실제 역사에 근간을 둔 무협과 달리 완전한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블레이드앤소울’은 여러 개의 세계들로 구성되어있다. 각 세계는 판타지에 흔히 등장하는 ‘차원’에 해당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곳이 바로 ‘현계’, ‘선계’, ‘마계’다.

▲ 돼지인간 '홍돈족'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 중 주된 게임 무대가 되는 곳은 바로 ‘현계’다. ‘현계’는 선한 기로만 이루어진 ‘선계’나, 사악한 탁기로만 이루어진 ‘마계’와는 달리 여러 종류의 기가 공존하는 세계다. ‘현계’에서는 고대로부터 유한한 수명을 지닌 여러 종족이 네 개의 대륙에 나뉘어 함께 살며 다양한 문명을 이룩해왔다. 주된 종족은 신의 힘을 이어받은 진족, 곤족, 린족, 건족이지만, 그 외에도 동물을 닮은 이종족이 ‘현계’에서 살아간다. 돼지머리를 한 홍돈족이나 물고기와 닮은 어인족이 이종족의 예다.

‘현계’에 사는 대부분의 종족은 ‘선계’의 신들을 흠모하며 본받고자 애쓴다. 이러한 ‘선계’에 대한 선망이 집대성된 의식이 게임에서 줄곧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천명제’다. ‘천명제’는 ‘현계’ 황제가 ‘선계’와 통하는 일종의 ‘차원문’을 열고 신들에게 인정을 받는 의식이다. 이러한 ‘천명제’를 치르고 나서야 황제는 정당한 통치자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천명제’의 정확한 의식 방법은 점점 소실됐다. 어느 순간부터 ‘천명제’를 치르지 않고 혈연에 따라서 황위를 세습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하나 생겼다. 후일 정통성이 불안한 통치자가 집권하면 ‘천명제’로 황위를 ‘선계’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했는데, 이 때 의식을 잘못 치르면서 ‘선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연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천명제’로 ‘현계’와 연결된 세계가 바로 ‘선계’와 대칭점에 놓인 ‘마계’였다.

▲ 마족은 탁기로 이루어진 사악한 존재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마계’는 탁기가 응집해 생겨난 마족이 거주하는 세계다. ‘마계’와의 연결은 ‘현계’에 끔찍한 재앙을 초래한다. 본래대로라면 연결될 일이 없는 ‘마계’로부터 대량의 마족이 건너와 학살을 자행하며, 대량의 탁기가 범람해 ‘현계’의 거주민들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명제’를 잘못 치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의식을 완전히 반대로 치르면 더욱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마계’의 신적 존재 ‘마황’이 강림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계’의 존재들은 ‘현계’로까지 영향력을 뻗치기 위해 인간을 속여 잘못된 ‘천명제’를 치르도록 유도하며, 궁극적으로는 ‘마황’을 소환하게 한다. ‘블레이드앤소울’ 세계의 역사는 이처럼 ‘마황’을 강림시키고자 하는 마족과, 이를 막는 영웅들 사이의 대립으로 진행되어왔다.

▲ 게임 스토리는 '마황'을 부르는 어긋난 '천명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게임의 스토리도 마족이 신생국가 ‘풍제국’의 황제를 꼬드겨 ‘천명제’를 거행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스승과 일문을 잃고 혼자 살아남아 복수를 다짐하지만, 이내 큰 깨달음을 얻어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마족에 맞서게 된다.

이후 ‘블레이드앤소울’의 스토리는 ‘마황’ 대리인들이 각 국가 위정자를 미혹해 잘못된 ‘천명제’를 거행하게 만드는 음모를 막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요악역이었던 ‘진서연’과 ‘주리아’는 둘 다 ‘마황’의 대리인 자격으로 잘못된 ‘천명제’ 거행을 목적으로 삼았다. 가장 최근에 주요악역으로 부각된 ‘악태후’ 또한 ‘마계’의 존재인데, 때문에 추후 이어질 스토리도 ‘마황’ 강림에 대한 내용일 것으로 추측된다.


▲ 죽은 자들의 세계인 '명계'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차원을 넘나들며 절대 악과 대립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룬 ‘블레이드앤소울’ 세계관은, 마법이나 괴물 등의 초자연적인 요소가 다분한 ‘하이 판타지(High Fantasy)’ 장르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여기에 최근의 ‘서락’ 업데이트로 추가된 죽은 자들의 세계 ‘명계’ 이야기는 세계관에 더욱 초자연적이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중원과 무림의 이야기보다는 신화에 가까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공중전함에 사이보그까지 등장, 기로 작동하는 첨단기계 ‘법기’ 

▲ 선박 제조 과정만 봐도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여기에 ‘블레이드앤소울’ 세계관을 지탱하는 독특한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이다. 조금 특이한 기계장치가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중전함, 사이보그, 인공지능 로봇 등 SF적인 미래기술까지 나온다. 전통적인 무협을 생각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소재다.

‘블레이드앤소울’에서는 첨단 기계장치를 ‘법기’, 이를 제작하는 기술을 ‘격물기술’로 부르고 있다. ‘법기’는 기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일종의 자동화 기계다. 즉 게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기계는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가 아닌 기로 작동하는 셈이다. 비록 증기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이 대체연료로 움직이는 기묘한 기계장치들은 스팀펑크(Steampunk) 장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 '법기' 장치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공중전함도 등장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하지만 ‘법기’는 사람의 기로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법기’는 지하 깊은 곳에서 땅의 기를 머금고 결정화된 광물 ‘영석’을 연료로 사용된다. 그래서 ‘격물’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국가는 백성들을 ‘영석’ 광산에 보내 강제로 노역시키며, 이는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 이유가 된다.

▲ '나류국' 유적을 수호하는 로봇 '아만'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격물기술’은 게임 시작 시점으로부터 약 1,000년 전인 ‘나류국’에서 정점에 달해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나류국’ 유적인 ‘나류성지’ 던전을 지키고 있는 보스 몬스터인 ‘낙뢰’나 ‘아만’ 등은 고대 나류인들이 성소를 지키기 배치한 자동화 로봇으로, 그 자체로 일종의 법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첨단 ‘격물기술’을 이룩한 ‘나류국’은 황실 후계자가 마족의 음모에 빠진 나머지 계승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다 멸망의 길을 걸었다. 잘못된 ‘천명제’를 거행하여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만 것이다. ‘나류국’ 몰락과 함께 ‘격물기술’도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다만 후대의 사람들은 ‘나류국’ 유적에서 발굴된 ‘법기’를 토대로 실전된 기술을 복원하고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법기’는 대개 고고학으로 복원된 장치다. 그렇기에 작 중에는 실전된 고대 기술을 찾는 내용도 자주 나온다.

▲ 메인 스토리라인에서 반드시 작동시켜야 하는 거대 로봇 새 '무신의 날개'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법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메인 스토리 진행 도중 만나게 되는 공중전함 ‘철귀’는 사실 ‘격물기술’로 개조되어 하늘을 날 수 있는 공중전함이다. 주인공은 이 배를 타고 한 번에 먼 거리를 날아 이동해 급박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거대 로봇 새인 ‘무신의 날개’도 있다. 메인 스토리상 반드시 가야 하는 장소인 ‘무신의 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동장치를 찾아 ‘무신의 날개’를 작동시켜야 한다.

▲ '낙원대성'을 사이보그로 만든 보스 몬스터, '강철대성'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뿐만 아니다. 후반으로 가면 아예 사이보그까지 나온다. 게임상 던전인 ‘법기 연구소’에 들어가면 ‘붉은 제국군’이라는 집단이 신적인 동물인 ‘영수’를 ‘격물기술’로 개조해 세뇌시킨 보스 몬스터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실험체 강화형 16식 강철대성’은 초반 스토리에 ‘낙원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영수’ NPC였지만, 이곳에서는 강철 와이어와 금속 합판을 덧대 개조된 사이보그로 돌아와 주인공의 앞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던전 마지막 보스인 ‘융철권’은 로켓주먹을 발사하기도 한다.

▲ 법기 연구소장인 '융철권'은 로켓 주먹을 무기로 사용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고대문명, 최첨단 기계기술, 사이보그 등의 요소는 분명 일반적인 무협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재다. 이렇듯 ‘블레이드앤소울’은 스팀펑크 판타지나 SF에나 등장할법한 기이한 기술과 기계장치를 적극 차용하여 세계관에 녹여냈으며, 그 결과 무척 독특한 분위기를 확보했다.

▲ '법기' 자동화기계 '동구리동'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친숙한 요소들을 색다르게 조합해 만든 세계관

여기까지 들으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무협, 하이 판타지, SF 요소까지 전부 등장하는 이 세계관, 너무 난잡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의외로 답은 “괜찮다”이다.

‘블레이드앤소울’의 세계관은 너무 작위적이거나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블레이드앤소울’의 세계관은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생전 처음 보는 복잡한 설정도 없고, 어설프게 고증을 따진 내용도 없다. 대신 ‘블레이드앤소울’은 대중적 스테레오타입을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렇기에 유저는 낯선 개념에 당황하기보다는, 이미 자신도 아는 익숙한 설정이 색다른 방식으로 조합되어있다는 데 흥미를 느끼게 된다.

물론 ‘블레이드앤소울’처럼 여러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을 적절히 조합한 복합적인 판타지가 이전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해외에서는 무협, 소드 앤 소서리(Sword and Sorcery) 판타지, SF를 섞은 복합 장르가 이미 오래 존재해왔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는 ‘블레이드앤소울’ 아트 디렉터이기도 했던 김형태가 일러스트를 맡은 일로 화제가 됐던 TRPG ‘익절티드(Exalted)’도 이러한 복합 장르다. ‘익절티드’는 고대 중국 제국을 모티프로 삼은 하이 판타지에, 여러 괴물과 마족들이 등장하며, 기로 움직이는 기계가 나오고, 주인공은 무협 풍의 모험을 한다. 그 외에도 국내에서 EBS와 니켈로디언 채널이 방영한 만화영화 ‘아바타’ 등, 찾아보면 ‘블레이드앤소울’과 비슷한 세계관의 작품은 꽤 많다.

▲ 고대 중국 제국 모티프에 악마와 로봇까지 나오는 '익절티드' (사진출처: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블레이드앤소울’ 이전에 국내에서는 이처럼 복합적인 장르에 도전한 게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이 독특한 세계관을 내세워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익숙한 소재로도 얼마든지 참신한 세계관을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는 게임계에서의 선례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새벽
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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