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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부정한·일상적인... 게임에서 성(性)을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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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으로도 시선이 가는 강연 '게임에서의 섹스 장면 쓰고 기획하기' (사진: 게임메카 촬영)

성(性)은 인간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은밀히 감추어야 하는, 민감한 소재로 여겨 왔다. 성은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이자 감정인 덕에 훌륭한 드라마 소재가 되지만, 반대로 그 탓에 금기시되기도 한다. 이에 게임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은 예로부터 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이런 ‘성(性)’이 올해 'GDC 2018'에서 여러 강연의 화두로 올랐다. 그 중에서도 ‘극에서의 에로스: 게임에서의 섹스 장면 쓰고 기획하기’라는 강연은 가장 직설적인 주제를 택했다. 성은 좋은 면으로든 나쁜 면으로든 인간 핵심과 맞닿은 소재이므로, 작품에 이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강연에 따르면 문제는 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즉 방법론에 있다.


▲ 강연을 진행한 미셸 클루 (사진: 게임메카 촬영)

강연을 맡은 미셸 클루는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 Association, IGDA) ‘로맨스와 성’ 특수관심집단 의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GDC에서 게임이 성을 다루는 방법 및 철학에 대해 다양한 강연을 진행해왔다.

클루에 따르면 성 자체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을 매우 특별하게 인식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성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성이라는 소재 자체보다는 성을 다루는 내러티브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클루는 게임에서 성이 묘사되는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성스러운 성, 부정한 성, 그리고 일상적인 성이다.


▲ 게임에 성적 장면을 넣으면 다양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셋으로 나뉘는 성적 내러티브에 따라 연출도 달라진다. 게임이 성스러운 성을 보여줄 때는 주로 영적인 황홀함, 고양된 감각, 초월성 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예를 들어 ‘매스 이펙트 3’에서 주인공이 초능력을 지닌 외계종족 동료인 ‘리아라’와 관계를 맺을 때는, 육체를 매개로 정신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면이 주로 연출된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에서 ‘게롤트’와 ‘예니퍼’가 맺는 관계도 육욕보다는 정서적 합일에 초점을 맞춘다.


▲ 정신적 승화와 예술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을 활용할 때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반면 일부러 성을 위험하고 어둡게 묘사할 때도 있다. 이러한 연출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육욕과 본능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부도덕하게 인식되어온 성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 예로는 ‘갓 오브 워’ ‘파 크라이 3’ 등을 들 수 있다. 다만 클루는 이러한 성이 ‘사악함’ 내러티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긴장감과 위험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모독적인 성’ 연출이 꼭 성을 죄악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앞서 두 연출이 성을 특별한 비일상적 체험이라는 차원에서 보여주었다면, 세 번째 ‘일상적 성’은 육체관계를 일상의 차원에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에서는 부부 주인공인 ‘바예크’와 ‘아야’가 별다른 이유 없이 애정을 나누는 모습을 종종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성을 통해 인물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친밀감과 애정을 드러내준다.


▲ 캐릭터들 사이의 가까운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일상적 성관계'도 있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처럼 성적 내러티브와 분위기, 의미를 정하면, 그 다음 구체적인 사항들이 계획된다. 성관계 시퀀스는 여느 시퀀스와 마찬가지로 도입, 상승, 절정, 하강, 종결로 나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물들이 만나고, 왜 성적인 긴장감이 감돌게 되며, 어떻게 관계를 맺고,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여, 그 다음 스토리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가 여기서 정해진다.

도입, 상승, 절정, 하강, 종결의 구조는 어떤 성관계 시퀀스든 동일하지만, 세부적 묘사는 내러티브마다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두 캐릭터가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서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관계를 맺는 것과, 난봉꾼 주인공이 대놓고 추파를 던지며 유혹해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분위기 차이가 있다. 그 외에도 성적 내러티브에 따라 무대, 소품, 음악을 비롯 다양한 요소가 정해진다.


▲ 어떤 성적 내러티브를 지향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여기에 플레이어의 이입을 돕기 위해 게임적 장치를 넣기도 한다. 특정 상황에서 어떠한 행위를 할지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하게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R1 버튼을 누르면 상대 캐릭터의 속옷을 벗기지만, 누르지 않으면 머뭇거리다 그만 두게 되는 등이 있을 수 있다. 클루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성관계 시퀀스에서도 플레이어가 유의미한 선택과 결과를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관계 연출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익은 플레이어에게 강한 감정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은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이를 잘만 활용하면 그 어떠한 소재보다도 깊은 몰입을 줄 수 있다. 플레이어는 성관계 연출 이후 캐릭터와 스토리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따라 더 깊은 감동을 얻는다.


▲ 성관계 연출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전개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성적인 연출에 앞서, 사전에 플레이어에게 얼마나 인지시킬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정확하게 알려줄지, 대강은 알지만 구체적으로는 모르게 할지, 아니면 갑작스럽게 성적인 상황에 노출시킬지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에게 성적 연출에 대응할 정서적 준비를 얼마나 시키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효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울펜슈타인: 뉴 콜로서스’에는 주인공이 잠수정 문을 열었더니 뜬금 없이 그 안에서 성관계를 맺던 흑인 남성과 비만 백인 여성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나오는 적나라한 장면이라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 없다. 그보다도 먼저 드는 감정은 놀람과 황당함이다. 반면 ‘더 위쳐 2: 왕들의 암살자’에서 ‘게롤트’와 ‘트리스’가 나누는 성관계는 매우 친밀하고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아름다운 관계지만, 놀라움이나 긴장감은 적다.


▲ 여러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선사한 '울펜슈타인: 뉴 콜로서스'의 한 장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렇기에 클루는 성관계 연출을 말초적 흥미만을 위해 대충 넣을 것이 아니라, 본연의 의미에 맞게 매우 계획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은 사용하기에 따라 효과적인 연출 소재가 될 수도, 게임을 부도덕하게 만들고 불쾌감하게 만드는 유해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스토리에 맞는 성적 내러티브를 기획하고, 그에 맞는 연출 방법을 택해야 한다.

다만, 그는 성을 게임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라고 덧붙였다. 성은 민감할지언정 인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므로, 게임이 매체로서 진보하기 위해서는 성이라는 소재를 온전히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게임 몰입을 배가시켜주는 막강한 소재, 성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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