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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내 뇌가 오염됐나? 게이머들의 왜곡된 기억 TO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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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데드풀 2 말미에는, 시간 이동을 할 수 있게 된 데드풀이 다양한 과거를 오가며 역사를 바꾸는 쿠키 영상이 있다. 흑역사로 남은 울버린 속 데드풀이나 그린 랜턴 각본을 보며 환호하는 라이언 레이놀즈 등을 쏴서 비극을 근본부터 없애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를 만나는 장면이다. 앞서 두 명의 라이언 레이놀즈를 쏴죽였기에 이번에도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 살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하필이면 시점이 막 태어나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아기 히틀러 시절이라는 게 에러다. 결국 차마 아기를 죽이진 못하고 우는 애를 안아서 달래주는 마무리로 끝나는데, 아무리 히틀러라고 해도 아기를 죽인다는 상황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 극장판에선 삭제되고 감독판 블루레이&DVD에만 수록됐다.

모두의 기억이 왜곡된 바로 그 장면 (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Marvel Forever 갈무리)
▲ 모두의 기억이 왜곡된 바로 그 장면 (사진출처: 유튜브 채널 Marvel Forever 갈무리)

그러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어? 나 그 장면 극장에서 봤는데?"라며 증언하기 시작했다. 데드풀 2 감독판은 본 적도 없고 극장판만 영화관에서 관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 히틀러 장면이 눈에 선하기 때문에 당연히 극장에서 본 것이라 기억하는 것이다. 본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쿠키 영상은 극장에선 나온 적이 없고, 데드풀 2가 한창 히트친 후 유튜브 등을 통해 짧막하게 공개된 적이 있을 뿐이다. 즉, 해당 영상을 극장에서 봤다는 증언은 뇌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기억은 은근히 잘 왜곡되고 조작된다. 없었던 장면이나 대사를 직접 보고 들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원래와 다른 모습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임계에도 이러한 사례가 많다. 당연히 그랬다고 알고 있었던 기억이, 사실과 다른 경우 말이다. 오늘은 게이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왜곡된 기억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TOP 5. KOF 94, 보스 루갈을 고를 수 있었다

지금은 SNK를 대표하는 대전격투게임 IP로 자리잡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KOF)지만, 처음 선보여졌을 때만 해도 실험작에 가까운 크로스오버 게임이었다. 첫 작품 KOF 94의 경우 세계관도 불명확하고 그저 용호의 권과 아랑전설 캐릭터에 오리지널 팀 정도가 섞여 3 대 3 드림 매치를 벌인다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 작품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시리즈 전개에 나서며 틀을 잡아갔지만, 초반만 해도 모든 것이 불명확했다. 미리 정해진 3인 팀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했고, 보스 캐릭터 루갈에 대한 캐릭터 설정도 불명확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KOF 94에서는 루갈을 선택해 플레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3인 팀 멤버를 한 명 빼고 루갈을 넣는 것은 물론이고, 보스전에서처럼 루갈 1인팀을 고르는 것도 안 됐다. 히든 커맨드 입력으로 루갈을 고를 수 있게 된 건 KOF 95부터였고, KOF 94는 훗날 마메 치트 롬에서나 가능했다. 그러나 은근히 많은 게이머들이 오락실에서 KOF 94 루갈을 고를 수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마도 보스전 직전에 표시되는 루갈 1인팀의 모습과 더불어 위에서 언급한 KOF 95 플레이어블 루갈 이미지가 덧씌워지며 기억이 왜곡된 듯 하다. 기자 역시 은연중에 루갈 선택이 가능했던 것 같은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해킹 롬이 아니라면 루갈을 고르는 방법은 없었던 KOF 94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해킹 롬이 아니라면 루갈을 고르는 방법은 없었던 KOF 94 (사진: 게임메카 촬영)

TOP 4. 와 샌즈! 언더테일 아시는구나!

언더테일 관련 밈으로 '와 샌즈! 언더테일 아시는구나!'가 있다. 어떤 유저가 네이버 웹툰 댓글에 남긴 댓글에서 유래했는데, 댓글 자체는 논란도 많았고 당사자에게도 흑역사 느낌으로 남은 사건이지만 밈 자체는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와 ㅇㅇ! ㅁㅁㅁㅁ 아시는구나!" 같은 형태로 두고두고 쓰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원본 댓글엔 '와 샌즈!'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해당 댓글은 '언더테일 아시는구나'로 바로 시작하며, 앞부분은 별도의 밈(개꿀잼 몰카)에서 유래한 것이다. 둘 모두 샌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샌즈에 대한 정보를 읊기 전 한 번 감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두 개의 밈이 합쳐진 것. 그래서인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 댓글의 원형이 '와 샌즈! 언더테일 아시는구나!'라고 기억하고 있다.

성지순례 대상이 된 전설의 그 댓글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성지순례 대상이 된 전설의 그 댓글 (사진: 게임메카 촬영)

TOP 3. 데프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떠오른 신조어 겸 문구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일명 '중꺾마'가 있다. 멘트만 봐도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직관성과 긍정적인 뜻 등으로 유행처럼 번져,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적 같은 16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선수들이 들고 있던 태극기에까지 이 문구가 삽입돼 있었다. 이 말은 2022년 롤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 '데프트' 김혁규가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에서 패배한 후였지만, 이 말과 함께 모든 강팀을 꺾고 우승까지 거머쥔 만화 같은 서사가 더해지며 이 말은 더욱 파급력을 얻었다.

다만, '데프트' 김혁규가 직접적으로 저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패배에 대해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다음 경기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는 다소 평범한 말을 했다. 이 말이 '중꺾마'가 된 것은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제목을 잡으면서 의역한 것이다. 다만 제목이 직접인용 형식으로 쓰여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 명언인 것처럼 착각했고, 이후 이 말이 유행을 타고 김혁규 본인도 이 문장을 가끔 언급하면서 실제 인터뷰에서 이 말을 한 것처럼 기억하는 사람이 은근 많다.

당시 정확한 워딩은 이랬다 (자료출처: 쿠키뉴스 공식 유튜브 채널 '쿡깸')
▲ 당시 정확한 워딩은 이랬다 (자료출처: 쿠키뉴스 공식 유튜브 채널 '쿡깸')

TOP 2. 블소 무성 사형 "하하하 막내야, 또 속았구나!"

국산 MMORPG 중 가장 잘 만들었고 기억에 남는 튜토리얼 1순위로 꼽히는 블레이드앤소울. 홍문파 막내제자가 되어 곳곳을 탐색하고 사형들에게 무공을 배우는 과정은 따스함과 재미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여기서 둘째 사형 무성은 통과의례 마지막 부분에서 복면 괴한으로 분해 습격을 가장해 막내를 시험한다. 일종의 몰래카메라인 셈인데, 플레이어들은 대충 짐작했겠지만 주인공 막내 입장에선 정말로 괴한이 나온 줄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당시 이 튜토리얼을 경험한 많은 게이머들은, 저 상황에서 무성이 정체를 드러내며 "하하하 막내야, 또 속았구나!" 라고 외쳤다고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성우 목소리까지 들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 대사는 블레이드앤소울이나 엔씨소프트, 혹은 다른 게임들에서도 낚시 성공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실제 대사는 "하하하, 아무래도 아직 잠이 덜 깼나보구나" 였고, 또 속았냐는 말은 게임 내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일 성우가 클로저스에서 성우개그로 이 말을 하면 했지, 블소에선 안 나왔다. 사실 본 기자도 이 글을 쓰며 동료 기자에게 해당 내용을 전해듣고 믿지 못했다.


아무리 다시 봐도
▲ 아무리 다시 봐도 "또 속았구나"는 없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TOP 1. 홍진호는 선수 시절 늘 2등만 했다

지금은 세계구급 프로 포커 플레이어이자 예능인으로도 활동 중인 홍진호. 그의 별명은 수없이 많지만, 그 대부분은 '2인자' 속성을 띈 것들이다. 실제로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시절 '폭풍저그'로 불리며 최정상급 플레이어로 우뚝 섰으나, '황제' 임요환의 존재로 언제나 2등에 머물렀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홍진호 본인도 "야, 2등도 잘 한 거야!" 라며 외칠 정도로 그의 2등 이미지는 굳건했고, 어느새 수많은 '2'와의 인연이 엮이며 게임메카 22주년에도 얼굴을 비추는 등 '2의 신'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홍진호는 이미지처럼 2등만 한 것이 아니다. 은근히 1등, 즉 우승 경험도 많은 선수다. 그가 우승컵을 들어올린 주요 경기만 해도 2002 KT배 온게임넷 왕중왕전, 2003 KTEC 위너스 챔피언십, 2005 스니커즈 올스타리그, 2005 블리즈컨 인비테이셔널 등 다수다. 심지어 위너스 챔피언십에선 임요환을 꺾고 우승을 하기도 했다. 물론 양대 리그(온게임넷, MSL) 우승 기록은 없지만, 생각만큼 준우승만 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진호=2등'이라는 공식이 널리 알려진 데는 '2등' 캐릭터를 밀어붙인 e스포츠 팬덤, 그리고 이러한 별명을 마음 넓게 받아들인 홍진호 본인의 넓은 아량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2등이라는 별명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홍진호 (사진출처: JTBC '학교다녀오겠습니다' 갈무리)
▲ 이제는 2등이라는 별명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홍진호 (사진출처: JTBC '학교다녀오겠습니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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