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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2000년, 오락실 휩쓴 추억의 게임 'Best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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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지순례의 Ryunan입니다. 이번 기사는 지난 14년간 한국 게임 시장을 이끌어온 게임메카의 14주년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특집으로 준비되었습니다. 바로 '14년 전 그 때 그 시절 게임센터엔 어떤 리듬게임이 있었는가'를 되짚어보는 내용입니다.

게임메카가 탄생했던 2000년대 초반, 아케이드 게임센터 산업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나 ‘1942’ 등의 스틱형 게임을 넘어, ‘DDR’과 ‘펌프 잇 업’을 필두로 한 리듬게임이 기지개를 켜며 아케이드 게임센터의 풍경이 바뀌던 시기죠. 그렇다면 당시엔 어떤 게임이 유행을 타고 있었고, 그 때의 게임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요?

이번 성지순례는 14년 전 태고적(?)의 게임센터 사진 자료들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며 추억을 되새겨 보는 자리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단, 아무리 저라고 해도 14년 전으로 돌아가 취재할 수 없었기에 사진의 연도는 정확히 2000년도가 아니라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당시 디지털카메라의 한계로 인해 사진의 품질이 다소 낮을 수 있음을 미리 양해드립니다. 그럼,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였던 2000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파라 파라다이스(한국판 파라파라 댄싱-시리즈 단종)


▲ 왼쪽은 국내 정발기종인 '파라파라 댄싱', 오른쪽은 일본 직수입 기기로 국내에 단 두 대만 유통되었던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 mix'. 국내 정발기종은 센서가 일본 기기와 달리 추가로 뒷부분이 더 달려있어 Mirror 옵션을 통한 백(Back)플레이도 가능했다
(사진 속 게임센터 : 수유 음악게임장-폐업)

2000년을 전후로,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파라파라 댄스’ 광풍이 불었습니다. '파라파라 댄스'란 빠른 스피드의 신나는 유로비트 음악에 맞추어 손을 움직이는 춤으로, 마치 ‘파라파라(의성어)’대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파라파라 댄스’는 누구나 쉽고 신나게 출 수 있어, 당시 유행을 타던 유로비트 장르의 음악과 함께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마침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 ‘댄스 매니악스’ 등의 댄스 게임이 아케이드에서 큰 흥행을 기록하자, 코나미는 ‘파라파라 댄스’를 테마로 한 ‘파라파라 파라다이스’라는 신형 댄스 게임을 출시합니다. ‘파라파라 파라다이스’의 첫 번째 버전은 유니코전자(현 유니아나)를 통해 국내에도 ‘파라파라 댄싱’이란 이름으로 정식 발매되었고, 이후 일본에는 '2nd mix'까지 후속작이 나온 뒤 개발이 종료되었습니다. 유행 따라 출시된 게임이라 그런지 빠르게 열기가 식은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2nd' 버전의 경우 국내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mix' 버전 기체 두 대가 직수입을 통해 들어와 현재는 사라진 성지급 게임센터 ‘수유 음악 게임장’, 그리고 압구정 ‘조이플라자’에서 가동되었습니다. 현재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2nd mix’ 기체의 행방은 불명이며, 정발 기체 역시 가장 마지막으로 가동되었던 서울 혜화역의 ‘대학로 우리 게임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기계가 다 철수된 상태라 국내에서는 더 이상 만나볼 수 없습니다.


▲ 국내에서는 만날 수 없는 '파라파라 파라다이스' 포스터

키보드매니아(한국판 키보드헤븐-시리즈 단종)

아래에서 다룰 ‘비트매니아’를 필두로 한 리듬게임 장르가 성공을 거두면서, 아케이드 게임업계의 큰 손 코나미는 음악을 주제로 한 다양한 바리에이션의 ‘비마니(BEMANI)'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인 '키보드매니아'는 실제 키보드 연주를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며 회자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키보드매니아’는 출시 초기 깔끔하고 세련된 그래픽과 퀄리티 높은 곡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실제 피아노와 동일한 건반을 도입해 피아노 연주자가 아닌 이상 플레이가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블 플레이 모드를 선택할 경우 프로 피아니스트도 클리어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난이도를 자랑했습니다. 결국 역대 최고급으로 불리우는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세 번째 작품인 3rd mix 이후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죠.


▲ 첫 번째 버전 이후로는 전부 직수입 기기로만 국내에 극소수 수입된 '키보드매니아'
(사진 속 게임센터: 보라매 게임장-폐업)

본 기기 역시 ‘파라파라 댄싱’과 마찬가지로 국내엔 첫 번째 버전만이 정식 수입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키보드헤븐’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이후 버전의 경우 직수입을 통해 서울 보라매의 모 게임센터(폐업)에 '2nd mix', 그리고 압구정 ‘조이플라자’와 부산 해운대 ‘유파라 게임센터’에 '3rd mix'가 각각 한 대씩 입고되었습니다.

2014년 현재 국내의 ‘키보드매니아’ 기기는 전부 폐기되어 아케이드로는 더 이상 즐길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콘솔로 '3rd mix'까지의 버전 모두가 깔끔하게 이식되어, 전용 컨트롤러만 있다면 가정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지요.

비트매니아(한국판 비트스테이지-시리즈 단종)


▲ BEMANI 장르 히트의 선두주자이자 모든 건반형 리듬게임의 아버지 '비트매니아'
(사진 속 게임센터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 지하 1층 상가에 위치한 게임센터-폐업)

현재의 음악게임 붐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게임은 BEMANI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트매니아’입니다. 1997년 출시되어 올해로 17살이 된 이 게임은 2000년도에도 현역으로 인기리에 가동되었습니다. 물론 ‘비트매니아’의 게임 방식을 표방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EZ2DJ’에 밀려 시장에서 조금씩 물러나던 시기이긴 했지만, 여전히 아케이드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감 있는 작품이었지요.

‘비트매니아’는 국내에 '5th mix'까지만 정식 발매되었고, 이후에는 ‘EZ2DJ’에 밀려 더 이상의 신작 시리즈가 들어오지 않아 국내에서의 그 명맥이 끊겼습니다. 그 와중 2002년 ‘비트매니아 THE FINAL’ 이라는 작품이 압구정 ‘조이플라자’를 통해 직수입으로 한 대 입하되면서, 오랜 시간 끊겼던 국내에서의 명맥을 부활시켰습니다.


▲ 5년 역사의 종지부를 스스로 찍고 아름답게 물러난 '비트매니아 더 파이널'
(사진 속 게임센터 : 압구정 조이플라자-폐업)

다만, 국내에서의 부활을 이끈 작품이 시리즈의 최종작인 'THE FINAL'이었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입니다. 이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현재의 BEMANI를 이끌어낸 선구자 ‘비트매니아’ 시리즈는 개발이 종료되었지만, 후속작 '비트매니아2DX'에 그 자리를 넘겨주고 아름답게 퇴장하였습니다. 국내 마지막 ‘비트매니아’ 기기는 청주의 모 게임센터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가동되다가, 현재는 기체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트매니아2DX(Beatmania2DX)


▲ '비트매니아 2nd 스타일' 기기는 초창기 '서현 게임파크'에서 가동했었으나 철수. 국내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압구정 '조이플라자'에서 인계받아 운영했다. 사진은 당시 '2nd style' 정발판
(사진 속 게임센터 : 압구정 조이플라자-폐업)

‘비트매니아2DX’는 2014년 현재 한국과 일본 등에서 현역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임으로, 유저들의 충성도 및 인기가 최고조를 달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현재 아케이드 게임센터에는 22번째 버전인 ‘SPADA’가 가동 중인데, 과연 과거의 ‘비트매니아2DX’는 어땠을까요?

1999년 3월 처음 발매된 ‘비트매니아2DX’는 1999년 어뮤즈월드 게임쇼를 통해 국내에 총 5대의 기체가 들어와 첫 선을 보였으며, 이후 세 번째 아케이드 버전인 2nd style(1st와 2nd 사이 Substream이라는 숫자 없는 버전이 있었습니다)이 정식 발매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비싼 기체 가격과 마니악한 게임성, 그리고 한국에서 시장을 장악한 ‘EZ2DJ’의 인기 때문에 큰 빛을 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니터가 어두워지는 기기의 결함까지 겹쳐 국내에서는 결국 자리잡지 못하고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 국내 직수입 2DX, 이 당시의 2DX기기는 오래 방치하면 화면이 점차 어두워졌기에, 유저들은 노트 식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두운 화면에서 플레이 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 게임센터 : 수유 음악 게임장-폐업) (사진제공: ami님)

하지만 ‘비트매니아2DX’는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게임이었고, 국내에도 소수 마니아층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4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수유 음악게임장’ 에서 일본에서 막 가동을 시작한 최신작인 ‘5th style’을 직수입합니다. 정식 발매가 끊겨 콘솔로만 아쉬움을 달래던 소수 마니아 유저들은 이 소식을 듣고 해당 게임센터로 구름처럼 몰렸고, 고수 플레이어 'LISU'의 'B4U 원핸드풀콤 플레이'가 리듬게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비트매니아2DX’는 단숨에 엄청난 인지도를 얻었습니다.


▲ 어두운 기존 모니터를 떼고 일반 브라운관 TV로 교체한 '6th style' 가동 당시의 모습
(사진 속 게임센터 : 수유 음악 게임장-폐업)

이로 인해 ‘수유 음악게임장’은 국내 아케이드 게이머 사이에서 성지로 추앙받았으며, 주말에는 국내에 단 한 대밖에 없는 ‘비트매니아2DX’를 위해 전국에서 유저들이 몰려들어 대기에만 몇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후 ‘수유 음악게임장’의 ‘비트매니아2DX’는 ‘6th style’까지 입하되었고, 마들역 ‘청소년 DDR게임장’과 압구정 ‘조이플라자’ 등에서 후속 버전을 들여놓았습니다.

이처럼 직수입을 통해 들어온 극소수의 기기만으로 유지되던 ‘비트매니아 2DX’는 조금씩 유저 수를 늘려갔고, 이후 정식 발매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 2013년 중반, ‘20.TRICORO’ 버전에 들어와서야 14년 만에 국내 정식 발매가 재개되었습니다.




▲ 사진 속 기기들은 국내에 극소수로 직수입된 터라 그 희소가치가 굉장히 높았다. 모니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운관 TV나 타 게임의 모니터로 교체한 모습이 보인다
(사진 속 게임센터 : 마들역 청소년 DDR게임장, 압구정 조이플라자, 부평 조이맥스-전부 폐업)

사실 ‘비트매니아2DX’를 초창기부터 즐긴 하드코어 유저들은 현재의 정식 발매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한 시간 이상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 수 시간을 기다려 가며 간신히 한두 판 즐길 수 있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가까운 게임센터만 가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댄스 댄스 레볼루션(DDR)


▲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던 '오락실'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센터'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자, 하나의 사회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댄스 댄스 레볼루션' 초기 버전
(사진 속 게임센터 :정발산 롯데백화점 게임센터)

90년대 말, 어두침침하고 불량한 분위기라는 인식이 있었던 ‘오락실’을 남녀노소 누구나 찾는 ‘게임센터’의 이미지으로 탈바꿈시킨 작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댄스 댄스 레볼루션(이하 DDR)’입니다. 춤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도 음악에 맞춰 신나게 발판을 밟아가며 즐길 수 있었던 ‘DDR’은 공중파 뉴스에도 보도되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큰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이후 출시된 국내 기업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이 대중적인 국산 가요와 함께 더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 '3rd mix'까지 정발된 후 14년동안의 긴 암흑기에 빠진 'DDR'.사진은 3rd 당시 높은 난이도로 ‘사람 살려 레볼루션’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스탭스탭 레볼루션의 타이틀
(사진 출처 게임센터 :정발산 롯데백화점 게임센터)

‘DDR’은 ‘3rd mix’의 정식 발매 이후 ‘펌프 잇 업’에 밀려 급격히 인기가 식어버렸고, 이내 정식 발매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국내의 ‘DDR’ 유저들은 앞서 소개한 ‘수유 음악게임장’의 ‘비트매니아2DX’와 동시에 직수입된 ‘DDR 5th mix’를 통해 아쉬움을 해소하곤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DDR 5th mix’ 입하 소식을 듣고 편도 한 시간 반이나 되는 거리를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수유로 향했던 학생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은 지금 Ryunan이라는 이름으로 게임메카에서 성지순례를 쓰고 있답니다.




▲ 정식 발매 중단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DDR 유저들에게 한 줄기 빛이었던 'DDR 5th mix'
(사진 속 게임센터 : 수유 음악 게임장, 압구정 조이플라자-둘 다 폐업) (사진제공: ami님)

이후 ‘DDR’은 역시 ‘수유 음악게임장’과 압구정 ‘조이플라자’ 등에서 후속작이 직수입되어 가동되었지만, 2007년 국내 마지막 작품인 ‘DDR Supernova2’를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그 명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최근 유니아나를 통한 비마니 장르 게임의 지속적인 국내 발매에 탄력을 받아 마침내 2014년 초, 지난 ‘3rd mix’이후 14년만에 정식 발매가 재개되어, 지금은 일본과 같은 환경에서 즐길 수 있는 신형 ‘DDR’을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럼매니아&기타프릭스 (드럼매니아 한국판 제목 퍼쿠션프릭스)


▲ 초창기에는 MB(파워)유저의 만행(?)과 허술한 기기관리로 온전한 패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진 속 게임센터 :코엑스 게임챔프-폐업)

‘드럼매니아’와 ‘기타프릭스’ 시리즈는 초창기 BEMANI장르 게임 중, 가장 국내에 활발하게 정식 발매가 진행되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일치감치 정식 발매가 끊기고 극소수의 기기만 직수입되었던 ‘DDR’과 ‘비트매니아2DX’와는 달리, ‘드럼매니아’는 2001년 ‘5th mix’까지 정식 발매되었으니까요(기타프릭스는 3rd mix까지). 이는 게임 유저층이 탄탄하게 분포한 것도 있지만, ‘비트매니아’의 경우 ‘EZ2DJ’, ‘DDR’의 경우 ‘펌프 잇 업’처럼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던 반면, ‘드럼매니아’는 딱히 경쟁작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드럼 시뮬레이션 게임 역시 몇 종류의 아류 게임이 나오긴 했지만, 게임 완성도 및 볼륨이 ‘드럼매니아’에 비해 떨어졌기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 국내 마지막 정발 버전이었던 '기타프릭스 3rd mix'와 '드럼매니아 5th mix'
국내에서 두 기체의 세션 플레이가 가능했던 정발 기체는 '기타 3rd'와 '드럼 2nd'가 유일했다
(사진 속 게임센터:고덕 게임월드-폐업)

다만 ‘드럼매니아’가 꾸준히 정발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문화가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게임 속에 수록된 일본어 보컬곡은 보컬이 잘린 채 미디음으로 대체되거나, 완전히 삭제된 채 출시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진 않았기에 당시 유저들은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드럼매니아’의 쇠퇴는 아케이드 게임업계의 전체적인 하향세와 함께 찾아옵니다. 결국 ‘5th mix’를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정식 발매가 중단되었고, 압구정 ‘조이플라자’의 ‘6th mix’와 ‘기타프릭스 세션’ 등을 통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해왔습니다. 이후 ‘드럼매니아’는 열네 번째 버전인 ‘V4’에 이르러서야 ‘드럼매니아’에 한해 정식 발매가 재개되었지만, ‘V8’에 이르러 개발 자체가 중지되었습니다.


▲ 정발 공백을 깨고 직수입 시대를 연 신작 '드럼매니아 6th mix'
(사진 속 게임센터 : 압구정 조이플라자-폐업)


▲ '드럼매니아'의 의지를 이어받은 신작 '기타도라'는 언제 한국에?

현재 ‘드럼매니아&기타프릭스’ 시리즈는 개발 및 E-amusement 서비스가 종료되어 몇 개의 기기만이 쓸쓸히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 ‘드럼매니아&기타프릭스’의  바통은 후속 기종인 ‘기타도라(구 XG)’가 이어받았습니다만, 아직 국내에 입하된다는 소식이 없어 마니아 유저들을 애타게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봅니다.

팝픈뮤직




▲ 초창기 '팝픈뮤직'은 일본어 보컬곡 대량삭제와 애매모호한 게임성으로 인해 존재감이 흐릿했다
(사진 출처 게임센터 : 불명)

라이트한 분위기, 동글동글한 캐릭터로 수많은 유저들을 끌어모은 코나미의 ‘팝픈뮤직’. 사실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에 첫 번째 버전이 국내에 정식 발매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게임들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고, 그 이후 광속으로 자취를 감췄기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직수입 기기가 한 대 있었으나 여전히 존재감을 어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진 속 게임센터: 수유 음악게임장-폐업)

초기작 이후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타 게임 대비 유저층도 거의 없어 이대로 묻혀버릴 것 같았던 ‘팝픈뮤직’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압구정 ’조이플라자’의 ‘팝픈뮤직 8’ 입하부터입니다. 7개의 버전을 건너뛰어 다시 국내에 선보여진 ‘팝픈뮤직’은 방대한 수록곡과 아기자기한 그래픽으로 무장해 초창기와는 전혀 다른 게임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타 게임에 비해 기체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국내 게임센터에 기계가 조금씩 배급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유니아나의 21번째 버전 ‘서니파크’의 정식 발매 이전까지는 거의 정식 발매작 만큼이나 광범위한 분포를 자랑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워낙 직수입 기기가 많이 풀렸던 터라, 정식발매 이후에도 이 직수입 구작들은 2014 현재 여전히 현역으로 가동 중입니다. 직수입 기기가 인기를 얻으며 결국 정식 발매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지요.




▲ '팝픈뮤직 8'의 직수입은 직수입에서 정식 발매로 이어지는 좋은 사례로 남아 있다
(사진 속 게임센터 : 압구정 조이플라자-폐업)

펌프 잇 업(PUMP IT UP)

국산 아케이드 댄스게임인 안다미로의 ‘펌프 잇 업’은 2000년대 초반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 가장 큰 인기를 모은 작품입니다. 댄스광풍의 선두주자였던 ‘DDR’의 인기를 이어받아, 나중에는 ‘펌프방’이라는 ‘펌프 잇 업’ 전문 게임센터가 생길 정도로 사회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번화가의 큰 게임센터를 가면 ‘펌프 잇 업’만 10대 이상 설치해놓은 게임센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죠.


▲ 초창기 게임센터엔 '펌프' 여러 대는 당연한 풍경이었다
(사진 속 게임센터 : 수유 음악 게임장-폐업)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펌프 잇 업’의 인기도 2001년 이후 급락해, 아케이드 게임센터의 본격적인 하향세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침체기에 돌입했습니다. 급기야 2002년의 마지막 내수용 버전인 ‘Rebirth’이후에는 한참 동안 해외에만 신작을 출시하고 국내 시장에는 신작이 출시되지 않았죠. 오랜 공백기로 인해 마니아 유저층이 탄탄했던 ‘펌프 잇 업’ 유저들도 많이 빠져나갔고, 해외 시장에만 신경쓰는 회사의 태도를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 오랜 공백을 깨고 국내에 출시된 펌프잇업 'PREX3'
(사진 속 게임센터 : 종로3가 국일관 게임센터-폐업)

이후 개발사인 안다미로는 2003년 초, 해외 수출판이었던 ‘PREX3’버전을 국내에도 출시하며 국내 유저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고, 이후 전 세계 통합버전인 ‘익시드(EXCEED)’ 버전을 내놓으며 복귀를 선언합니다. 꾸준한 신작 출시를 통해 ‘펌프 잇 업’은 재기에 성공, 지금은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기를 꾸준히 얻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현재 리듬게임을 다루는 웬만한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2003년 새로운 기체로 발매된 '펌프잇업 익시드'
(사진 속 게임센터 : 고덕동 제우스 게임센터-폐업)

EZ2DJ(이지투디제이) & EZ2DANCER(이지투댄서)

‘비트매니아’를 롤모델로 하여 1999년 출시된 어뮤즈월드의 ‘EZ2DJ’. 2000년 당시 이 게임은 수려한 그래픽과 뛰어난 게임성, 그리고 퀄리티 높은 음악으로 원조격인 ‘비트매니아’를 제치고 ‘펌프 잇 업’과 함께 아케이드 게임센터를 장악했습니다. 사실 ‘DDR’이나 ‘펌프 잇 업’처럼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당시 이 작품의 14년 전 인기와 마니아층의 충성도는 위의 두 게임에 못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EZ2DJ’는 첫 번째 작품과 그 확장판인 ‘1st SE’, 후속작 ‘2nd TRAX’를 통해 대중성 있는 음악을 다수 선보이며 인지도를 높인 후, 파생 작품인 ‘이지투댄서’라는 댄스 게임을 발매하기에 이릅니다. ‘이지투댄서’는 3개의 발판과 양손 센서를 사용하는 전신 댄스 게임으로, 음반 유통사를 통한 OST 발매 및 TV 광고, 방송 출연 등으로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지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2000년 당시 국내 최대 게임쇼였던 KAMEX에서는 초대형 부스에서 ‘EZ2DJ’ 기기가 20대나 등장할 정도였죠.


▲ 'EZ2DJ' 초창기 음악이 들어가있는 OST. 지금은 레어 물품으로 취급받고 있다


▲ '넌 발로만 춤을 추니?' 라며 은근히 '펌프 잇 업'과 'DDR'을 디스했던 '이지투댄서'


▲ 최대 전성기였던 '3rd TRAX' 시절에는 '플래티넘 OST'라는 한정판 OST도 출시되었다. 이 역시 당시 가격의 2배가 넘는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허나, 아케이드 게임시장의 축소와 함께 ‘EZ2DJ’ 개발진의 주요 인력이 빠져나감에 따라 이 게임도 2004년 ‘6th TRAX’ 발매 이후 한참 동안 후속작 소식이 끊겼습니다. 이후 2007년 3년 만에 ‘7th TRAX’를 발매하며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쳤으나, 예전만 못한 완성도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사인 어뮤즈월드는 ‘비트매니아’의 코나미가 제기한 특허권 소송에서 수십 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고 잔여 완/반제품 전량 폐기 및 기존 작품 및 후속작 추가 생산, 양도, 대여 등의 중지 판결을 받고 맙니다. 결국 ‘EZ2DJ’는 신작 발매 불가라는 판결을 빠져나가기 위해 지속적인 패치(를 가장한 신작 발매)로 ‘아케이드 게임이면서 온라인처럼 패치만 한다’는 많은 비아냥과 비난을 들으며 꽤 긴 암흑기를 맞이합니다.

이후 어뮤즈월드가 아닌 스퀘어 픽셀즈라는 새로운 팀이 ‘EZ2DJ’ 제작을 이어받으면서 리부트와 같은 형식의 ‘EZ2AC’라는 작품을 출시했죠. 이로 인해 ‘EZ2DJ’ 시리즈는 예전의 명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현재도 아케이드에서 다른 BEMANI 계열 게임과 함께 가동되고 있습니다. 허나 현재 가동 중인 기기들은 기체노후가 심하기 때문에, 얼마나 오래 현역으로 가동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니셜 D(Initial D)

잠시 리듬게임을 벗어나 레이싱게임으로 무대를 옮겨 보겠습니다. 동명의 유명 만화를 아케이드 게임으로 재현해 2002년에 출시된 세가의 ‘이니셜 D’는, 2000년대 초반 다소 쇠퇴하기 시작한 리듬게임의 뒤를 이어 새로운 열풍으로 거듭난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2002년 첫 번째 작품인 ‘이니셜 D 아케이드 스테이지’가 먼저 선보여졌으나, 본격적인 인기는 그 후속작인 ‘Ver.2’, ‘Ver.3’에서 시작됩니다. 국내에 본격 공도 레이싱 붐이 분 시기이기도 하죠.

‘Ver.2’와 ‘Ver.3’이 가동되던 시기에는 ‘이니셜 D’ 게임을 중심으로 각 지역마다 만화 원작의 레이싱 팀과 같은 동호회 및 클럽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개발사인 세가의 공식 대회 및 각종 게임센터의 자체 대회 등도 활발하게 열렸습니다. 여기에 자신이 플레이 했던 기록을 카드로 저장하고, 나만의 차량을 튜닝하는 카드 시스템을 도입해 충성심 높은 마니아 유저층을 양성했습니다.




▲ 수많은 게이머들을 공도 레이싱이라는 환상의 마력에 빠져들게 만든 전설의 작품

하지만, 후속 버전이자 신형 기체로 발매된 ‘Ver.4’부터 ‘이니셜 D’의 침체기가 시작됩니다. ’Ver.4’는 기존 ‘Ver.3’와의 카드 호환이 되지 않았고, 수많은 콘텐츠 삭제 및 이질적인 게임성, 국내 네트워크 대전 미지원 등의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저들이 ‘Ver.4’때 떨어져나갔고, 이후 정식 수입된 ‘Ver.5’도 예전같은 인기를 되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2014년 현재 ‘이니셜 D’는 ‘Ver.8’의 발매를 앞두고 있지만, 높은 기체가격 및 좁아진 유저층으로 인해 대도시의 극소수 게임센터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태고의 달인(太鼓の達人)

반다이남코에서 제작한 '태고의 달인'은 일본의 축제 ‘마츠리’에서 치는 '북'을 소재로 만들어진 리듬 게임입니다. 타 리듬게임처럼 복잡한 컨트롤이 필요 없고, 오로지 두 개의 북채로 북을 두들긴다는 간단한 게임성을 바탕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인기를 끈 작품이죠. 아케이드는 물론 콘솔과 모바일 등으로도 많은 시리즈가 출시되었고, 캐릭터 상품으로도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말이죠.


▲ 압구정 '조이플라자'에서 국내 최초로 가동되었던 '태고의 달인' 3대목, 추후 이 기기는 천안 야우리 게임센터에서 가동되다가 사라졌다
(사진 속 게임센터 : 압구정 조이플라자-폐업)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널리 퍼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태고의 달인’은 국내에 에 정식으로 발매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입니다. ‘태고의 달인’이 발매된 2001년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는 ‘태고의 달인’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국내에 단 한 곳,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BEMANI계열의 게임을 적극적으로 직수입하던 압구정 ‘조이플라자’에서 ‘태고의 달인 3’를 들여오면서 처음으로 소개되었죠. 이 게임이 입소문을 모으면서 다른 게임센터 들에서도 점차 ‘태고의 달인’을 자체적으로 수입하기 시작.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식 발매 기체가 한 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태고의 달인’은 본고장인 일본에서 ‘신 태고의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기기가 바뀌어 새롭게 출시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한 대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전의 구기체가 다양한 버전으로 가동 중이며, 현재는 연신내 ‘게임빌리지’에서 가동 중인 ‘태고의 달인 14’가 국내의 가장 최신형 버전입니다. 다만, 국내의 경우 예전만 못한 인기로 인해 기기 상태가 불량한 곳이 많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철권(TEKKEN)

마지막으로 체감형 게임이 아닌 대전격투게임을 다뤄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아케이드 게임센터를 지배했던 게임은 남코의 ‘철권 태그 토너먼트’였습니다. 1999년 발매된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전작인 ‘철권 3’를 리뉴얼한 작품으로, 두 명의 캐릭터를 선택해 교체해 가며 즐긴다는 게임성이 크게 어필하며 일약 인기를 누렸습니다.

기체 가격도 저렴했기에 웬만한 동네 소규모 오락실에도 '철권 태그 토너먼트' 1~3조는 항상 배치되어 있었고, 시내 유명 게임센터에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만 수십 대씩 가동하는 곳도 있었죠. 심지어 동네 문방구 앞에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얻은 인기를 그대로 계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철권 태그 토너먼트’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국내 유저 석동민씨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기록하는 등 국내 유저들의 자부심도 하늘을 찔렀죠.

▲'철권' 시리즈의 최고 전성기를 불러온 '철권 태그 토너먼트'


그러던 ‘철권’ 시리즈의 몰락이 찾아온 것은 2001년 아케이드로 출시된 ‘철권 4’부터였습니다. 사실 ‘철권 4’는 2002년 PS2로 출시되어 큰 히트를 기록하며 국내 PS2 보급에 많은 기여를 한 작품이지만, 아케이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바뀐 게임 시스템 및 공중 콤보의 약화 등으로 인해 기존 ‘철권’ 유저들은 ‘철권 4’를 외면했습니다. 이후 2004년 말 발매된 ‘철권 5’는 게임성을 ‘철권 태그 토너먼트’ 시절로 상당 부분 되돌렸으나, ‘철권 태그 토너먼트’만큼 인기를 끌진 못했죠. 실제로 구버전 ‘철권 태그 토너먼트’는 발매 15년이 지난 지금도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 활발히 가동되고 있습니다.

현재 ‘철권’은 ‘철권 6’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철권 태그 토너먼트 2’가 아케이드에서 가동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케이드 게임시장이 쇠퇴한 데다 시리즈를 거듭하며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져 예전만큼의 인기는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콘솔 기기를 통한 네트워크 멀티플레이 환경이 발전해, 아케이드보다는 콘솔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가 더욱 많은 상황이죠. 그래도 역시 국내 아케이드 게임센터의 대전격투게임 중에서는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최근엔 '철권'은 아케이드보다 콘솔에서 플레이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현재 아케이드 게임센터의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4년 전 그 때 그 게임을 찾아 떠나 본 성지순례 특집. 어떠셨나요?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 올드 게이머에서부터, ‘내가 즐기는 게임이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었구나’라며 신기해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저 때는 저런 환경에서 어떻게 게임을 즐겼지?’라며 생소해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국내 아케이드게임 시장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도, 최근처럼 다양한 게임으로 탄탄하게 무장하게 된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난 2000년, 게임메카가 탄생했던 그 때에 비해 규모적인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축소된 시장이지만, 그 안에는 마니아 유저들과 게임센터 관계자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현재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게임메카 14주년 기념 성지순례 특집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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