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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0에서 1을 만드는 콘셉터, 록맨의 이나후네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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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맨’은 일본을 대표하는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힌다. ‘록맨’을 탄생시킨 이나후네 케이지는 무려 23년 동안 캡콤에서 일했다. ‘록맨’ 외에도 ‘귀무자’, ‘로스트 플래닛’, ‘데드라이징’ 등, 캡콤의 수많은 대표작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캡콤 퇴사 후에는 ‘무사 안일주의’에 빠진 일본 게임업계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개발자이기도 하다.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 케이지(사진출처: gengame.net)

같은 캡콤 출신 개발자, 미카미 신지가 장인 스타일이라면 이나후네 케이지는 경영자에 가깝다. 캡콤을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차리며 이나후네는 스스로를 ‘콘셉터’라고 불렀다. 콘셉트가 확실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조건, 어떠한 사람과도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아돈’을 탄생시키다 – 일러스트레이터로 업계에 입문

이나후네 케이지는 1965년 5월 8일, 일본 오사카 키시와다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취직 자리를 알아보던 이나후네는 2개의 선택지를 앞에 둔다. 하나는 캡콤, 또 하나는 코나미다. 그가 캡콤을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캡콤이 코나미보다 가까워서 출근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1987년 캡콤에 입사했다. 그의 나이 스물 두 살의 일이다.

이나후네가 캡콤에서 처음으로 맡은 일은 ‘스트리트 파이터’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 중 ‘아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가 디자인한 캐릭터다. 아케이드에서 가정용 게임으로 주력을 옮기고 있던 캡콤은 ‘스트리트 파이터’가 히트를 거두며 고무적인 상태가 됐다. 이 때, 캡콤이 주목한 기기는 닌텐도의 패미컴이었다. 1987년에 출시된 패미컴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에 캡콤 역시 ‘패미컴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나후네가 디자인한 ‘아돈’

이나후네 케이지는 바로 이 프로젝트에 리드 아티스트로 투입됐다. 전세계를 흔들어놓은 ‘블루 봄버’, ‘록맨’이 그 주인공이다. 사실 ‘록맨’의 뼈대는 이나후네가 캡콤에 입사하기 전부터 마련되어 있었다. 멘토인 키타무라 아키라가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을 모두 마친 후였기 때문이다. 이나후네는 여기에 살을 붙여 ‘록맨’을 완성해냈다. 

푸른색 로봇 영웅이 등장하다 – 록맨 시리즈

그가 ‘록맨’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맡은 일은 주인공과 적을 비롯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록맨’의 캐릭터를 만들며 이나후네는 기기 사양을 우선 살펴봤다. RGB 값이 아닌 NTSC에 기반한 패미컴이 디스플레이에 보여줄 수 있는 색은 56종에 그쳤다. 그 중 이나후네는 같은 계열 안에서 더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싶어, 파란색을 선택했다. 주인공을 ‘파란색’을 바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여기에 이나후네는 보편적인 장르인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러한 ‘영감’은 외형에 그치지 않는다. 손이 총으로 변하고, 그 총에서 실제로 탄환이 나가는 동작을 세밀하게 구현해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느낌을 더한 것이다. 8비트 도트로 구성된 게임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생생한 동작의 만남, 이것이 이나후네가 ‘록맨’의 캐릭터를 만들며 생각한 콘셉트다. 여기에 음악적인 요소를 붙여 ‘록맨’만의 마케팅 포인트를 만들었다. 시리즈 타이틀인 ‘록맨’이 ‘락앤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들 귀에 익숙한 음악 요소를 게임에 접목해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가겠다는 것이 ‘록맨’의 콘셉트였다.


▲ 록맨을 그리고 있는 이나후네 케이지

당시 ‘록맨’ 개발팀은 이나후네 케이지를 포함해 단 6명이었다. 여기에 아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나후네가 유일했다. 그는 팀 내에서 일당백으로 활약했다. 캐릭터 디자인과 도트 작업은 물론 게임 로고, 일본 버전 게임 패키지 디자인, 게임 매뉴얼 작업까지 손수 맡았다. 그를 ‘록맨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뼈대만 있던 ‘록맨’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힌 사람은 다름아닌 이나후네 케이지다.

1987년에 12월 일본에 출시된 ‘록맨 1’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당대에 보기 드물었던 ‘푸른색’ 영웅으로 눈길을 끈 ‘록맨 1’은 보스를 물리치고 수집한 무기로 다음 보스를 상대하는 방식과 가위바위보에서 영감을 얻은 상성 시스템으로 색다른 게임성을 보여줬다. ‘록맨 1’의 성공을 바탕으로 캡콤은 ‘패미컴 게임’ 주요 개발사 위치에 올랐다. 


▲ 높은 인기를 끈 ‘록맨 1’

그러나 이 때만해도 캡콤은 ‘록맨’을 단기 프로젝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시장 성적은 예상보다 높았으나, 놀랄 정도로 막대한 수익이 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나후네 케이지를 비롯한 개발팀은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긴 협의 끝에 캡콤은 본래 개발팀에 맡기려고 했던 패미컴용 야구게임 제작을 완료한다는 조건 하에 ‘록맨 2’ 개발을 허락했다. 하루에 20시간 이상 일하는 고된 작업 끝에 완성된 ‘록맨 2’는 1988년 12월에 세상의 빛을 봤다. 전작보다 더 뛰어난 그래픽과 음악, 다양한 적과 혁신적인 시스템을 갖춘 ‘록맨 2’는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도 더 큰 성공을 거두며 캡콤의 간판 타이틀로 자리했다. 캡콤이 ‘록맨’ 시리즈의 진가를 확인한 것 역시 이 시점이다.


▲ 전작보다 진보된 게임성을 보여준 ‘록맨 2’

‘록맨 3’부터는 개발팀을 이끄는 리더 역을 맡게 된다. 그 동안 ‘록맨’ 시리즈를 맡아온 총괄이 캡콤에서 퇴사했기 때문이다. 차기작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덜컥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입장에 놓인 이나후네는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 ‘록맨 3’에 대한 캡콤의 기대치가 높아진 탓이다. 출시를 앞둔 2개월 동안 이나후네는 작업물을 평가하고, 일을 배분하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다. ‘록맨 3’를 통해 이나후네는 팀을 관리하는 총괄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1990년에 출시된 ‘록맨 3’는 신규 캐릭터와 색다른 플레이 요소로 무장했다. 특히 ‘슬라이딩’은 이나후네가 전투를 돕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평가한 부분이다. 클래식 ‘록맨’ 시리즈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와중, 이나후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바로 신형 게임기 ‘슈퍼 패미컴’이 등장한 것이다. 전 기종보다 진보된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 패미컴’을 보며 그는 새 기종에 어울리는 영웅이 필요한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앞서 밝혔듯이, ‘록맨’이 파란색인 이유는 패미컴의 성능 탓이다. 즉, 패미컴보다 더 뛰어난 스팩을 보유한 ‘슈퍼 패미컴’에 맞는 새로운 캐릭터를 디자인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 것이 ‘록맨’의 또 다른 시리즈 ‘록맨 X’의 시작이다. 1993년에 출시된 ‘록맨 X’는 ‘록맨 클래식’보다 100년 뒤를 배경으로 하며, 인간과 공존하는 로봇 ‘레플리로이드’와 인간에 반하는 ‘이레귤러’, 그리고 이 ‘이레귤러’를 잡는 ‘이레귤러 헌터’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나후네는 ‘록멘 X’를 통해 붉은 몸에 포니테일로 묶은 금발을 가진 새로운 영웅 ‘제로’를 탄생시켰다. 디자이너로서 ‘완전히 색다른 록맨’을 선보이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캐릭터다. 


▲ ‘록맨’의 새로운 영웅 ‘제로’

이후 ‘록맨 시리즈’는 다양한 프랜차이즈로 분화하며 본격적인 성공가도에 오른다. ‘클래식 록맨’과 ‘록맨 X’ 이후에도 이나후네가 가장 좋아하는 ‘록맨 대쉬’를 비롯해 ‘록멘 에그제’, ‘록맨 ZX’, ‘록맨 제로’, ‘유성의 록맨’ 등, 수많은 시리즈가 ‘록맨’을 떠받혔다. 캡콤의 간판모델, ‘록맨’과 이를 만든 이나후네 케이지의 말로가 그렇게 쓸쓸해질지는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돈을 하수구에 버릴 셈이냐? 캡콤 개발팀 수장에 오르다

‘록맨’ 이후 이나후네 케이지는 캡콤 개발팀을 이끌어가는 주요 프로듀서로 자리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총괄하거나 감수한 타이틀만 10종이 훌쩍 넘는다. 그 중 가장 눈에 뜨이는 작품은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활극 '귀무자'와 화면을 뒤덮는 좀비 부대 출연으로 눈길을 끈 '데드라이징' 이병헌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 등장해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이끌어낸 SF TPS '로스트 플래닛' 등이다. 이 외에도 '스트리트 파이터'나 '바이오 하자드', '역전재판' 등 기존 시리즈 총괄은 물론, '아수라의 분노', '드래곤즈 도그마', '다크보이드' 등 신규 IP 창출에도 몰입했다.

프로듀서로서 이나후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귀무자'는 캡콤이 내놓은 첫 번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으로 계획되었으며, '데드라이징'은 캡콤이 출시한 첫 Xbox360 타이틀이다. '귀무자'는 본래 닌텐도 64 액션게임으로 기획됐으나, 플레이스테이션 1을 거쳐 플레이스테이션 2에 가서야 세상의 빛을 봤다. 닌텐도 64에서 플레이스테이션 1으로 넘어가자고 결정한 이유는 이나후네 스스로가 '귀무자'를 현 세대에서 가장 좋은 플랫폼으로 출시하고 싶다고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레이스테이션 1 버전은 시스템적으로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해 개발 도중 취소됐다.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2로 넘어오고 나서야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마침내 '귀무자'를 완성할 수 있었다.


▲ 오랜 제작 끝에 빛을 본 ‘귀무자’

서양을 향한 도전도 이어졌다. '일본 게임의 갈라파고스화'에서 벗어나 서양에도 먹히는 '일본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나후네의 목표였다. '데드라이징’ 2편과 3편을 캐나다 개발팀에 맡긴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서양에 먹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곳에 사는 개발자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나후네는 서양 개발자의 마인드나 시스템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 개발자가 시킨 일만 하는 '샐러리맨'과 같다면 서양 개발자들은 높은 목표를 항해 돌진하는 ‘창작자’ 기질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거대한 좀비 무리로 눈길을 끈 ‘데드라이징’

한 마디로 이나후네는 캡콤 안에서 회사의 영역을 넓히는데 일조했다. 그가 이러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정체된 창작자는 도태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새로움'만을 쫓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프로듀서로서 도전과 시장성,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어떻게 보면 개발자와 경영자를 연결하는 중간다리와 같았다.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게임업계에서 '잘 팔리는 콘셉트'이 무엇인지 정답을 내리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나후네 역시 무모한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나후네가 세운 기준은 '제로의 법칙’이다. 의자에 앉아 최종 결정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고, 전략을 세우고, 캐릭터의 방향성을 정하는 모든 부분에 깊숙이 관여해 최소한 ‘적자’를 내지 않도록 프로젝트를 조정하는 것을 본인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씩 완성하면 여러 작품이 모여 조금씩 이익이 쌓이는 구조가 완성된다는 것이 이나후네의 생각이었다. ‘최소 제로’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나후네에게는 ‘적당한 콘셉트’란 있을 수 없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이나후네 입장에서 하나라도 적자가 나면 본인의 이론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성도 있는 콘셉트를 세우고, 게임이 완성될 때까지 일관된 콘셉트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이나후네의 기질은 대기업화된 캡콤의 구조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당시, 캡콤은 개발팀에만 직원 700명이 일하고 있었으며, 모든 인원이 3개에서 4개 정도의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프로젝트 당 인건비만 한 달에 1억 5000만 엔에서 2억 엔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중 하나만 망해도 10억 엔 단위로 적자가 쌓인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샐러리맨'이 아닌 '창작자'로서 이나후네가 택한 선택은 '시장에 잘 팔리는 색다른 게임'이었다. 캡콤 개발승인회의에서 22억 엔 출자 승인을 받으러 온 '바이오 하자드' 카와다 마사치카 프로듀서에게 '무슨 판단이냐. 돈을 하수구에 버릴 셈이냐(どんな判断や. 金ドブに捨てる気か)'라고 말하는 이나후네 케이지의 직설은 전파를 타고 나가 그의 유행어가 됐다. 마침 회의 장면을 촬영하러 온 TV도쿄의 카메라에 이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이나후네가 언론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은 2008년부터다. '아바타'를 꾸미고, 이를 통해 다른 이용자와 소통하는 재미를 강조한 인터넷 커뮤니티 '다렛토 월드'를 운영하는 캡콤의 자회사, '다렛토(ダレット)'의 대표를 맡은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며 성과를 낸 이나후네 케이지는 2010년 4월 22일, 캡콤의 글로벌 제작을 총괄하는 상무 이사에 오른다. 일개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해 개발팀 톱까지 오른 것이다. 중책을 맡으며 그는 '유럽에서 만든 게임은 진정한 캡콤 타이틀이 아니라는 의견을 종식시키겠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만든 지역에 상관없이 나는 모든 게임을 지켜볼 것이며, 캡콤 팬들도 이러한 작품을 좋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꺾였다. 이나후네 케이지가 캡콤에서 퇴사한 것이다. 

아이디어와 비전은 전문성 있는 콘셉트에서 나온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2010년 10월 29일, 캡콤에서 나왔다 23년 동안 일해온 회사를 떠난 이유는 방향성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나후네는 경영진에 새로운 영역 발굴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에 만족한 캡콤에 이나후네는 큰 실망감을 느꼈다. 내부에 회사를 떠나겠다는 뜻을 전한 후, 이나후네를 찾아와 '이야기 좀 하게 시간 좀 내봐'라고 말하거나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반문하는 임원진은 없었다. 개발팀 톱이 퇴사하겠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 임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캡콤이 개발팀을 어느 정도 위치로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이나후네 케이지는 캡콤을 퇴사한 뒤 개인 개발자로 나섰다

2010년 12월 15일, 새로운 회사 '콘셉트(comcept)'를 차린 이나후네 케이지는 큰 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독립 개발자로서의 길을 걸어갔다. 콘셉트 창립 후 첫 작품인 '카이오(KAIO)', 선악관계에 집중된 액션 게임 '소울 새크리파이스', '록맨'의 정신적 후계자 '마이티 넘버 9', 액션 감수를 맡은 '푸른 뇌정 건볼트' 등 다양한 타이틀이 탄생했다. 다른 제작사와의 협업도 이어졌다 팀 닌자와 함께 한 '야이바: 닌자 가이덴 Z'나 레벨5와 협업한 '길드02 - 버그 VS 탱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나 모바일, SNG와 같은 분야에도 적극 뛰어들었으며, 본인이 직접 쓴 소설 'REM'을 출간하기도 했다. '게임업계 의인화'로 유명한 '초차원게임 넵튠'에는 실사로 게임 속 검과 기술로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위부터 ‘소울 새크리파이스’, ‘마이티 넘버 9’, ‘푸른 뇌정 건볼트’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나후네 스스로가 '콘셉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기술력은 있으나 이를 살릴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없는 개발자 혹은 개발사에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0부터 1은 본인이 만들어주고, 1부터 100은 우수한 제작자에게 맡겼다. 그가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후학양성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에 진정한 '게임 개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나후네는 실력 있는 후배가 '창작자'로서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을 만드는데 있어서 좋은 '콘셉트'을 구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사람을 구하면 되고, 돈이 필요하면 투자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값진 아이디어와 비전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살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이나후네는 전문성 있는 콘셉트야말로 성공하는 게임을 만드는 핵심 가치라 생각했다. 의자에 앉아 거들먹거리기만 해도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새로운 '콘셉트'을 시도하지 않는 게임업계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KGC 2013에서 강연 중인 이나후네 케이지

'일본 게임은 죽었다'는 과격한 발언은 무난함에 머문 개발자를 일깨우기 위한 이나후네의 일침이다. 지난 GDC 2012 현장에서 그는 '일본 게임업계는 승리에 너무 익숙해 패자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최대 비극이다. 세계로 시야를 넓히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버린 것이 일본 게임업계라 생각한다. 일본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영웅이며, 그 영웅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자세, 콘셉터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나후네 케이지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김미희
초심을 잃지 말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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