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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아케이드게임 철학자, ‘버블보블’ 미츠지 후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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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생각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인식하고 고찰하여,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블보블'을 만든 게임 개발자 미츠지 후키오(Mitsuji Fukio, MTJ)는 아케이드 게임의 진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철학자적인 존재다.

미츠지의 게임 개발 인생은 아케이드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찾기 위한 탐구의 나날이었다. 그는 언제나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고안해냈다. 비록 너무 실험적인 나머지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작품도 많았지만, 그가 도입한 각종 신개념은 후대 게임에 막대한 영감을 주며 게임업계 발전에 이바지했다.


▲ ‘버블보블’ 개발자 미츠지 후키오 (사진출처: CVG.com)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비눗방울 놀이에서 영감을 얻은 ‘버블보블’

미츠지에 대해 서술하려면, 그가 근무했던 게임개발사 타이토(TAITO)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타이토는 러시아계 유대인 미하일 코건이 1950년 세운 무역회사로, 일본 최초로 보드카를 수입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후 자판기와 핀볼 게임기 수입을 시작했으며, 1964년 동경 올림픽을 기점으로 파친코 및 크레인 게임기를 최초로 개발해내며 아케이드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2년에는 '퐁(PONG)' 카피 게임을 시작으로 전자게임 사업에 진출했고, 1978년 니시카도 토모히로가 개발한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대흥행을 바탕으로 일본 게임산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그러나 타이토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후 별다른 히트작을 내놓지 못했고,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판단력으로 회사를 이끌던 창업주 미하일 코건이 1984년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정체기에 빠졌다. 여기엔 게임산업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타이토 경영진의 실책도 한몫을 했다. 타이토 경영진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35도 이상 올라가는 무더운 여름에 경비를 절감하겠다며 건물의 냉방을 모두 꺼버린 사건이 있다. 이 때문에 회사 내 컴퓨터가 과열로 다운됐고, 게임 개발 업무가 통째로 마비되고 말았다.

대학을 막 졸업한 1960년생 미츠지가 타이토에 입사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는 게임 기획자로서 첫 작품인 비행슈팅게임 '헬리즈 코멧(halley's comet)'을 통해 게임업계에 데뷔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타이토 게임과 마찬가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 미하일 코건과 그가 세운 타이토 (사진출처: deculture.co.kr)

'헬리즈 코멧' 이후, 타이토 경영진은 고작 1년차 기획자인 미츠지에게 부진에 빠진 회사 상황을 반등시킬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히트 상품을 만들어라” 라는 막연한 지시를 받은 입사 1년 차 게임기획자 미츠지는 일단 ‘긴장감’과 ‘유쾌함’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항상 새로운 게임에 대해 고민해온 미츠지에게, 첫 번째 원칙인 긴장감을 구현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총이나 화살을 쏘는 행위, 자동차나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 맨몸으로 절벽을 뛰어넘는 액션 등 시도할 만한 분야는 얼마든지 존재했다.

정작 문제는 유쾌함이었다. 미츠지는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센터 풍경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대부분의 유저가 10대에서 20대 사이 남성이라는 것이다. 간혹 커플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오더라도, 게임기 앞에 앉는 사람은 언제나 한정돼 있었다. 미츠지는 그 원인을 게임 속 유쾌함의 부재로 분석했다. 우주선이나 탱크, 군인 등이 등장하는 액션 게임은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을 만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마땅한 아이디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미츠지는 생각이 막힐 때마다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타이토 본사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분수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것은 어느새 미츠지의 일상이 됐다.

그 날도 미츠지는 유쾌한 게임 디자인에 대해 고민을 하며 공원으로 향했다. 곰돌이부터 고양이, 인형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상상해봤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미츠지는 화창한 햇살을 즐기러 나들이를 온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노는 광경을 목격한다. 한참 동안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이내 비눗방울을 불며 놀기 시작했다.

멍하니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문득 비눗방울 하나가 들어왔다. 그의 옆으로 다가온 비눗방울은 우연히 공중을 날아다니던 작은 벌레에 닿아 터졌고, 몸에 비눗물이 묻은 벌레는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를 본 미츠지의 머릿속에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콘셉트를 잡아 기획한 게임이 바로, 귀여운 공룡이 비눗방울을 쏘아 괴물들을 가둬 터뜨리는 스테이지형 액션 게임 '버블보블(Bubble Bobble)'이다.


▲ 비눗방울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된 ‘버블보블' (사진출처: CVG.com)

'버블보블'은 깜찍한 캐릭터와 몽환적이고 상큼한 사운드, 비눗방울로 괴물을 가둬 과일이나 사탕으로 바꾼다는 비폭력적이고 유쾌한 콘셉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간단한 조작 방식과 2인 협력 플레이를 중시하는 게임성은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즐기는 게임’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미츠지의 의도대로 [버블보블]은 남자들만의 장소로 여겨지던 아케이드 게임센터에 여성과 어린이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버블보블'에서 높이 평가받는 부분은 난이도 조절이다. 미츠지는 진입장벽은 낮으면서 스테이지가 높아질수록 난이도가 상승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시작하기는 쉽지만 정복하기는 어려운, 아케이드 게임의 가장 이상적인 레벨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도 지형과 특수 방울을 이용한 전략적 요소, 수천 분의 1 확률로 숨겨진 아이템이나 비밀 스테이지, 특수 조건을 만족해야 볼 수 있는 엔딩 등은 마니아들의 도전 욕구를 한껏 자극했다.

이 밖에도, 미츠지는 게임 내에 다양한 숨겨진 모드를 삽입해 새로운 재미를 꾀했다. 일종의 이스터 에그였다. 미츠지는 항상 아케이드 게임센터에서 유저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의견을 듣는 친유저적 개발자였는데,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모드를 사용할 때 유저들이 특히 즐거워한다는 점에 주목해 이러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집어넣었다. 이전에도 치트키나 디버그 코드를 집어넣은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버블보블' 이후 게임업계에는 숨김 모드를 넣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회사에 비밀로 하고 독단적으로 집어넣은 숨김 요소들로 인해 한바탕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난이도를 더욱 어렵게 바꾸는 ‘슈퍼 모드’에 게임의 진짜 엔딩이 숨겨져 있다거나, 게임을 조금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파워 업 모드’와 ‘오리지널 모드’를 사용할 시 숙련자라면 1코인만으로 거의 온종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점은 아케이드 게임센터 관계자들의 빈축을 샀다.


▲ 아케이드 게임센터에 여성과 어린이 유저를 유입시킨 ‘버블보블' (사진출처: CVG.com)


▲ ‘버블보블’ 플레이 중인 미츠지 (사진출처: 유튜브 ThePixelrealms 채널)

게임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철학자

'버블보블'은 아케이드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타이토를 다시 게임업계의 선구자로 올려놓았다. 타이토는 '버블보블'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뒤를 잇는 새로운 간판 타이틀로 만들고 싶어 했고, 곧바로 '버블보블' 속편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미츠지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하나의 성공에 매달리기보다는 새로운 게임을 계속 개발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평생 속편 게임을 제작하지 않았다. 결국 타이토는 훗날 미츠지 없이 [버블보블] IP를 전개했지만, 원작을 능가하는 작품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듬해인 1987년, 미츠지는 ‘버블보블 2’ 대신 무지개를 테마로 한 '레인보우 아일랜드'를 출시했다. '버블보블'에 등장했던 공룡들이 어린이로 바뀐 세계관을 지니고 스테이지형 액션 구조를 채택했지만, 게임성은 완전히 다르다. '레인보우 아일랜드'는 비눗방울 대신 허공에 무지개를 생성해 그 위를 걷거나, 무지개로 적을 직접 타격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버블보블'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숨김 요소를 듬뿍 집어넣어 마니아층에게는 인기를 끌었지만, 2인 협동 요소가 크게 낮아졌고 초보자들이 느끼는 난이도가 높아진 이유로 '버블보블'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 무지개를 이용한 스테이지형 액션 게임 ‘레인보우 아일랜드' (사진출처 classicamiga.com)

이후에도 미츠지는 1988년 '사이버리온'에 이어 1989년 '볼피드'를 개발했다. 이 두 작품 역시 기존에 없던 시도를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비행 슈팅 게임 '사이버리온'은 기존 게임 구조를 정면으로 반박한 실험적 게임이다. 일반적인 슈팅 게임은 매번 같은 스테이지를 되풀이하는 구조로, 몇 번 플레이하다 보면 적 등장 타이밍이나 공격 방식을 파악해 눈 감고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미츠지는 플레이 시마다 맵 구성과 적의 출현, 행동패턴, 스토리와 엔딩까지 계속해서 바뀌는 랜덤 스테이지 구조를 채택했다. 조작 역시 단순한 스틱+버튼 체계에서 벗어나 트랙볼을 도입해 색다른 느낌을 줬다.

퍼즐 액션 게임 '볼피드' 역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게임은 맵 외곽선을 따라 돌아다니는 점을 조종해 맵 안쪽을 조금씩 침범, 최종적으로 맵 대부분을 내 땅으로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땅따먹기 게임의 시조격인 작품이다. '볼피드'의 단순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게임 방식은 아케이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비록 '볼피드'가 창조한 땅따먹기 시스템에 미소녀 탈의 시스템을 결합한 '걸스패닉'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업적이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해당 장르의 선구자임은 분명하다.


▲ 랜덤 스테이지/스토리 방식을 채택한 ‘사이버리온’ (사진출처: babsika.cocolog-nifty.com)


▲ 땅따먹기 게임의 시초 ‘볼피드’ (사진출처: ellosnuncaloharian.com)

위 세 작품을 개발하며, 미츠지는 스코어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저들이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단순히 게임 클리어에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에 집중했다. 쉽게 클리어 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위험한 길을 택하는 것. 이는 그가 추구하는 중요 요소인 ‘긴장감’과도 궤를 같이했다.

그렇게 스코어링에 초점을 둔 작품을 구상하던 미츠지는 '볼피드'가 출시된 1989년 타이토를 퇴사해 프리랜서 게임 디자이너로 독립했다. 이후 UPL의 '오메가 파이터' 개발에 참여해 자신이 꿈꾸는 궁극의 스코어링 시스템을 완성했다.

'오메가 파이터'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다양한 적을 맞아 싸우는 종스크롤 비행 슈팅 게임이다. 얼핏 봐서는 특별할 것이 없는 게임 같지만, 이 작품은 비행슈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스테이지 클리어를 넘어 보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각종 위험을 무릅쓰도록 유도하는 1세대 위험행위권장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의 비행슈팅게임은 적을 처치하면 일정량의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오메가 파이터’는 격파 시 적에게 얼마만큼이나 가까이 다가갔느냐에 따라 최대 10배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점수를 많이 얻으려면 적에게 닿기 직전까지 다가가는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성공 시 일반 플레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높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다. 아쉽게도 '오메가 파이터'는 높은 난이도 때문에 발매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훗날 탄막슈팅으로 대표되는 극악한 난이도의 슈팅게임이 출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 본격 위험권장슈팅게임 ‘오메가파이터’ (사진출처: gamesdbase.com)

이후에도 미츠지는 게임기어용 퍼즐게임 ‘매지컬 퍼즐 포피루스’의 기획을 맡았으며, 아케이드 게임 ‘스타 트레이더’, ‘B.C.키드’, ‘궁극! PC원인’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그리고 1993년에는 자신의 닉네임인 MTJ를 내건 통신 게임스쿨을 설립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미츠지는 게임스쿨 설립사를 통해 ‘인생을 다 바쳐도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은 한정돼 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보다는 나무 심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며 후학 교육 의지를 밝혔다.


▲ 자신의 닉네임을 따 설립한 MTJ 게임 디자인 스쿨 (사진출처: blog.naver.comlsm8646)

게임스쿨 설립 이후, 미츠지는 약 15년간 게임 개발자가 아닌 교육자로서 활동해 왔다. 수많은 게임 기획자 지망생들이 MTJ 게임스쿨에서 수업을 받고 게임업계에 진출했으며, 그의 게임을 보고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2008년 11월, 미츠지는 돌연 게임스쿨의 통신 교육을 중단했다. 원인은 신장질환에 의한 건강 악화로, 결국 12월 11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향년 48세였다.

미츠지는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간 사람은 아니다. '버블보블' 이후 전 세계적으로 큰 붐을 일으킨 작품은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그의 개발 인생과 철학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개발자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결코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고, 언제나 새로운 무대에서 기존에 없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한 수많은 게임은 90년대 이후 게임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미츠지 후키오를 단순히 '버블보블' 개발자라고만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비록 그는 짧은 삶을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개발 철학은 훗날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게임은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떠난 미츠지 후키오 (사진출처: 유튜브 ThePixelrealms 채널)
류종화
게임메카의 모바일게임, 온라인게임, VR게임 분야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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