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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 나를 밟고 가라! 아낌없이 주는 '최약체' 몬스터 TO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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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청년 실업과 사회초년생의 복지 문제가 연일 화제입니다. 길고도 힘겨운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며 노동 환경은 더욱 각박해지고, 기성 세대에 비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은 고단하고 보상 없는 삶을 강요 받고 있죠. 최근 수습사원의 애환을 그린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개봉하고, 노동자 권익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 드라마 ‘송곳’이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초년생은 게임으로 치면 ‘늅늅’, 즉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입니다. 아무리 무한 경쟁 사회라곤 하지만, 적어도 게임에선 ‘늅늅’을 위한 튜토리얼, 초보자 장비세트, 약체 몬스터 등 가이드라인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게임 캐릭터보다 훨씬 더 관심과 도움을 기울여야 할 젊은이들에게 시작부터 드래곤, 마왕과 싸우라고 내몹니다. 애써 처치한다고 유니크템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뭇 게이머라면 시작 마을 주변에서 너구리나 코볼트를 잡으며 용사의 꿈을 키웠던 추억이 있을 겁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초년생을 위한 지원이 절실한 지금, 어릴 적 만났던 귀여운 약체 몬스터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겁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연말연시, 초보들의 영원한 친구인 게임 속 ‘최약체’ 적 TOP5와 함께 마음만이라도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5위 슬라임, 죽음의 늪이냐 살아있는 푸딩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D&D(좌)와 드래곤퀘스트(우) 속 '슬라임', 일단은 같은 종족입니다

5위는 끈적거리는 점액으로 이루어진 부정형 생물 ‘슬라임’입니다. 이러한 액체 형태의 몬스터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흔해서, 기원이 무엇이라고 딱 집어내기 어렵죠. 애초에 이름부터가 그냥 점액(Slime)이라는 뜻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오늘날 ‘슬라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동서양 게임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슬라임’이 대중적인 몬스터로 발돋움한 것은 서양이 먼저입니다. 서양에선 점액질 몬스터를 통틀어 보통 ‘우즈(Ooze, 걸쭉하게 흘러내림)’ 형태라 하는데, 던전의 어둠 속에 숨어있다가 다가오는 이를 덮쳐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웬만한 무기는 순식간에 부식시켜버리고, 타격을 입으면 여러 개체로 분할돼 심히 곤란하죠. 강력한 마법이라도 있지 않는 한 ‘우즈’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서양 3대 RPG 중 ‘위저드리’만은 이례적으로 ‘우즈’가 아주 약하게 나옵니다. 때문에 이 게임으로 서양 RPG를 처음 접한 일본에선 ‘슬라임’이 졸지에 초보용 몬스터로 인식됐죠. 여기에 ‘드래곤 퀘스트’에서 토리야마 아키라가 귀엽고 깜찍한 디자인을 선보이자, 어느새 불쾌한 점액은 잊혀지고 살아있는 푸딩만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무언가를 녹인다는 속성도 희미해지고 그냥 꾸물꾸물(…)거리죠. 국내에선 ‘라그나로크’의 ‘포링’이 정확히 동일한 사례입니다.


▲ 일본에선 식용으로도 쓴다고... 실제 스퀘어에닉스가 내놓은 '슬라임 만두'

4위 스켈레톤, 죽어서도 강자 대접을 못 받는 서글픈 팔자


▲ 엘더스크롤: 스카이림 속 '스켈레톤', 척 봐도 빈약해 보입니다

4위는 영혼을 잃고 이승을 배회하는 뼈다귀 ‘스켈레톤’입니다. 망자들로 구성된 언데드 군단에서 ‘좀비’와 함께 조무래기 역할 1, 2위를 다투죠. 그나마 ‘좀비’는 전염성 덕분에 간간히 활약하지만 ‘스켈레톤’은 내세울게 전혀 없습니다. ‘스켈레톤 나이트’나 ‘스켈레톤 메이지’로 업그레이드(?)를 한다 해도 ‘다크나이트’, ‘리치’처럼 월등한 상위호환이 있고... 아닌 말로 ‘스켈레톤 킹’ 정돈 되어야 중간보스라도 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스켈레톤’은 전문가에게 관리 받은 듯한 백옥 같은 뼈다귀를 자랑합니다. 덕분에 살점이 썩어 문드러진 ‘좀비’와 달리 초보자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죠. 이들이 끊임없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적막하고 지루한 던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무엇보다 처치 후 걸치고 있던 장비를 깔끔하게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죠. 말하자면 걸어 다니는 옷걸이라고나 할까요?

이처럼 아낌없는 퍼주는 ‘스켈레톤’이지만 안타깝게도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에선 통 환영 받질 못합니다. 대중매체의 해골 표현을 엄격히 규제하다 보니, 중국에 진출하는 게임 속 ‘스켈레톤’은 없던 살점도 만들어 붙일 지경이죠. 새하얀 뼈보다 살점 붙은 시체가 더 흉측할 텐데 참 아리송합니다. 이름부터가 빼도 박도 못하는 ‘도타 2’의 ‘해골왕’은 이 참에 아예 ‘망령 제왕’으로 거듭나기도 했습니다.


▲ '해골 왕, 레오릭'조차도 액트 보스를 못 할 정도로 처우가 열악합니다

3위 도적, 주인공에게 최초의 장비를 지급하는 전담반


▲ 달리 몬스터가 없는 게임에서 초보들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도적'

3위는 돈은 벌고 싶은데 정직하게 살긴 싫은 자들의 종착지 ‘도적’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도적’은 몬스터가 아니죠. 하지만 몬스터랄 것이 없는 ‘삼국지’나 ‘문명’, ‘마운트 앤 블레이드’ 등 숱한 게임에선 ‘도적’이 그 빈자리를 대신합니다. 초보들이 본격적으로 적대 국가나 주요 악역을 상대하기 전 전투의 기본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동네북이랍니다.

크게 보면 길에서 마주치는 노상강도나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무뢰배, 온갖 양아치들도 ‘도적’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대부분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졌거나 마르고 야비한 인상에, 주인공을 얕잡아보고 시비를 걸었다가 돈과 경험치를 헌납하곤 하죠. 간혹 아주 농염한 여도적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도적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때는 아군으로 합류하거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게임에서 도적이 최종 보스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스케일이 너무 쪼그라드니까요. 특히 서양에선 귀엽고 작은 몬스터라는 개념이 없어서, 변변한 장비도 없는 ‘도적’이 되려 약자로 표현됩니다. 물론 쥐나 거미 같은 동물이 먹이사슬의 최하위지만, 그 바로 위에 ‘도적’이 위치합니다. 덕분에 흔히 ‘도적’이 가진 가죽갑옷과 단검은 주인공의 기념비적인 첫 장비가 되곤 하죠.


▲ 눈에 띄게 예쁘거나 멋진 '도적'은 100% 동료가 되거나 도움을 줍니다

2위 여우, 국내 게임계에서 유독 사랑(?)받는 초보용 샌드백


▲ "나..난 괜찮으니까, 어서 경험치를 받아가, 크흑!" (※ 실제로 있는 대사가 아닙니다)

2위는 어떤 소리로 우는지 의견이 분분한 ‘여우’입니다. 드디어 몬스터, 언데드, 인간을 지나 동물까지 왔군요. 동물이라 하면 몬스터축에도 못 끼는 최약체일 것 같지만, 호랑이나 곰, 늑대처럼 맹수들은 상당히 위협적입니다. 만약 게임에서 사악한 드루이드 집단이라도 만난다면 쏟아지는 맹수 떼에 경악을 금치 못할 테죠.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맹수 한정으로, 소형 동물들은 얄짤없이 초보자의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됩니다.

어떤 동물이 초보자를 위한 샌드백이 될지는 게임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필자가 꼽은 ‘여우’ 외에도 너구리와 다람쥐, 거미, 거대 개미, 심지어 고슴도치처럼 보기 드문(?) 경우도 있죠. 가끔 토끼와 강아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죽이면서도 영 죄짓는 기분이 듭니다. 이 방면에서 유일하게 초보자의 칼침을 안 맞아본 동물은 바로 고양이입니다. 아무래도 유료 펫으로 팔아야 하는지라…

각종 소형 동물 가운데 굳이 ‘여우’를 선정한 이유는 국내 게임계에서 유독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늑대를 많이 채용하는 서양와 달리 국내는 ‘여우’를 참 좋아해요. 가령 양을 습격하는 것은 늑대의 트레이드마크인데 이걸 ‘여우’가 대신할 정도입니다. 아마도 ‘여우’를 숲에 사는 개(…) 쯤으로 여기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선 요물이란 편견이 있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 워낙 약하다 보니 '마비노기'에선 '여우'에게 지면 칭호까지 하나 달아줍니다

1위 고블린, 조무래기의 대명사에서 지성파 몬스터로 대반전


▲ 영화 '호빗' 속 '고블린', 사실 톨킨은 '오크'와 같은 종족으로 설정했었죠

대망의 1위는 몬스터계의 영원한 ‘콩’라인 ‘고블린’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몬스터가 ‘오크’라면, ‘고블린’은 그 옆에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작은 친구죠. 주로 힘쓸 줄밖에 모르는 ‘오크’를 대신해 모략을 꾸미거나 도둑질을 하는데, 게임에 따라선 기계공학에 정통한 종족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확실히 인지도나 활약 면에서 임프·코볼트·고블린으로 구성된 몬스터계 3대 조무래기의 ‘본좌’라 할 수 있죠.

서양에서 ‘고블린’이란 오랫동안 요괴를 칭하는 단어였는데, J.R.R.톨킨의 ‘호빗’에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때 당시에는 ‘반지의 제왕’ 속 오크와 호칭만 다를 뿐 똑같은 종족이었는데, 부르는 말이 다르니 자연히 독자들은 별개의 몬스터를 상상했죠. 여기서부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작고 시끄러운 ‘고블린’이 탄생했고, 이 영향으로 2012년 개봉한 영화 ‘호빗’에선 오크와 다른 모습으로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블린’이란 초보가 ‘퍽- 치면 억- 하고 죽는’ 최약체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오크가 점차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인류의 호적수로 부상하면서, 곁에 있던 ‘고블린’도 덩달아 위상이 상승했죠. 기존의 약골 이미지는 유지하되, 이를 뛰어난 기술로 덮어버리는 영민한 존재가 된 겁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당당히 주요 종족으로 승격되고, ‘스틱스: 그림자의 주인’이라는 ‘고블린’을 주인공을 삼은 게임까지 나왔습니다. ‘하스스톤’ 덱 채용 1순위를 자랑하는 전설카드 ‘박사 붐’도 빼놓을 수 없죠. 독자 여러분도 ‘고블린’처럼 대성하길 기원합니다!


▲ 이제는 아주 주인공까지 하는 '고블린', 어쌔신 크리드인 줄...
김영훈
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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