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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블리자드는 비호감이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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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축제 그 자체였던 2016년 블리즈컨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화기애애하고 들뜬 축제 분위기였던 2016년 블리즈컨 (사진: 게임메카 촬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블리자드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임사 중 하나였다. 특유의 유머 감각, 강력한 IP와 이어지는 히트작 행렬, 수많은 스타 개발자, 유저와 적극 소통하고 다양한 의견을 받는 회사 방침까지. 이는 소위 ‘블빠’라 불리는 팬층을 양산해냈다. 블리자드가 매년 자사 최신 소식을 전하는 ‘블리즈컨’은 벌어지는 게임사 자체 행사를 넘어 전세계 가장 큰 게임쇼 중 하나가 됐으며, 한국 유저들은 마이크 모하임 사장을 비롯한 각 게임 디렉터들에게 자체적인 별명을 붙일 정도로 친숙함을 느꼈다.

그러던 블리자드가 최근 급격히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한국 얘기가 아니라, 전세계(아마도 중국을 제외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작년, 혹은 그 전부터 조금씩 벌어진 유저와의 골은 나날이 깊어져, 최근에는 게임업계 비호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세계 최대 팬덤을 가진 게이머들의 우상에서 불과 1~2년 새 전세계에서 가장 비난 받는 회사가 된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점화장치였을 뿐

어떤 게임사건 긍정적 이슈와 부정적 이슈는 공존한다. 사실 예전에도 블리자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늘 있어 왔다. 이를 상쇄할 긍정적 이슈들에 가려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블리자드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이 조금씩 바닥에 쌓여 가고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2’, ‘디아블로 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하스스톤’ 등 서비스 중인 게임에서의 수많은 실수들, 몇몇 개발자들의 실언이나 잘못된 방향 설정 등 다방면에서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블리자드에 대한 이미지가 이토록 좋지 않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혹자는 액티비전이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한 때부터라고도 하고, 혹자는 마이크 모하임이 물러나고 제이 알렌 브랙 사장이 취임한 작년 말부터라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최근 1년 사이 블리자드 평가를 깎아내리는 이슈가 집중적으로 터졌다는 것이다. 기자는 그 시발점을 작년 블리즈컨 ‘디아블로 이모탈’ 공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디아블로 이모탈' 당시
▲ '디아블로 이모탈' 발표 당시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인가요?" 라고 말한 관객 (사진출처: 블리즈컨 2018 생중계 갈무리)

‘디아블로 이모탈’이 상징적인 이유는, 이전까지는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블리자드 팬덤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현장에 모인, 혹은 집에서 발표를 지켜보는 블리자드 팬들이 AAA급 PC/콘솔 타이틀을 원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그 상황에서 중대 발표까지 예견하고 행사 하이라이트 발표를 장식한 작품이 중국 게임사와 합작해 만든 외전격 모바일게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팬들의 기대와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었다. 화난 팬들과의 Q&A에서 “여러분 핸드폰 없나요?” 라는 발언은 화룡점정이었다. 평소라면 농담으로 해석했을 만한 말이었지만, 이미 팬들에게는 블리자드의 농담을 받아줄 심적 여유가 존재치 않았다.

이 사건을 필두로 블리자드에 대해 쌓여 있던 불만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예전이었으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만한 사안들조차 확대 해석되기 시작했으며, 때마침 블리자드 안팎에서도 다양한 사건이 터져나왔다. 하나의 사건이 미처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른 사안이 제기되는 식으로 1년 새 꾸준히 부정적 이슈가 터져나왔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국 자본 잠식설, 액티비전 경영 참견설 등 검증되지 않은 루머까지도 힘을 얻으며 정설처럼 전파되곤 했다.

회사 안팎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 부정적 이슈

‘디아블로 이모탈’ 사건 이후 가장 먼저 터져나온 불만은 블리자드 개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인기 없는(혹은 수익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게임은 방치하거나 투자를 줄이고, 인기 게임마저도 밸런스나 기획 등에서 갈피를 못 잡고 망치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개발 인력 대폭 삭감, ‘디아블로 3’ 버그 방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관련 불만, ‘오버워치’ 밸런스 문제, ‘하스스톤’ 인기 하락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예전 같았으면 하나의 게임 내에서만 잠깐 제기되고 말았을 지도 모르는 불만들이 블리자드 개발력 전반에 대한 의심으로 레벨 업 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블리자드 게임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게임메카 만평
▲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블리자드 게임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게임메카 만평

이에 호응하듯, 블리자드 신작들에 대한 불만도 덩달아 쏟아져 나왔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 이후 뚜렷한 신규 IP나 후속작을 내놓지 않았다. 그 대신 내놓은 것들이 리메이크 혹은 클래식 타이틀이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워크래프트 3: 리포지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등이다. 이 역시 최초 발표 당시에는 추억을 자극받은 유저들의 호평이 더 컸지만, 블리자드의 이미지가 반전된 지금은 신작 없이 과거의 유물만 이용해 먹는다며 개발력 논란에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

블리자드 내부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터졌다. 가장 큰 부분은 유명 개발자 및 시니어급 직원들의 연이은 이탈과 정리해고다. 이 역시 위에서 언급한 개발력 의심과 합쳐져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년여 간 오버워치 시니어 애니메이터 데이비드 깁슨, 오버워치 리그 커미셔너 네이트 낸져, CFO 스펜서 노이만, CFO 암리타 아후자 등이 퇴사했으며, 마이크 모하임 전 대표를 포함해 공동 창업자인 프랭크 피어스도 회사를 떠났다. 이러한 자발적 퇴사 외에도 올해 초에는 본사와 해외 지사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성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개발팀을 대폭 축소시키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마이크 모하임이 회사를 떠난 것은 오랜 팬들에게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마이크 모하임이 회사를 떠난 것은 오랜 팬들에게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또 하나의 내부적 사건은 정치적 올바름(PC) 관련 논쟁이다. 블리자드는 이전부터 ‘모든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를 신조로 정치/종교/인종/성 등 다양한 분야 소수자들을 존중하며 안고 간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런 블리자드 내에서 지난 1월, 한 멕시코계 직원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터지자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블리자드가 겉과 속이 다른 회사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최근에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LGBT를 자처하는 ‘게이 보이즈’ 길드명을 강제로 바꾸려 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에 이전까지 블리자드 편에 서던 소수자 커뮤니티들도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국내의 경우 블리자드 한국 지사의 이어진 실책이 이러한 이미지 하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블리자드 한국 지사가 현지화에 참여한 액티비전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2018년 ‘블랙 옵스 4’에 이어 2019년 10월 25일 출시 예정인 ‘모던 워페어’까지 2편 연속 번역 품질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모던 워페어’는 출시 전임에도 불구하고 트레일러 영상과 테스트에서부터 수많은 오역을 보여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지사장이 해당 질문을 중간에서 가로막는 듯한 모습을 보여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블리자드의 장점이었던 유저 소통이 급격히 줄었다는 점도 최근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는 부정적 이슈다.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작년 말 예고 없이 종료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프로리그 종료였다. 팬들은 물론, 여기에 생계를 걸고 있는 프로게이머 및 구단 관계자들이 예고도 없이 직업을 잃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디아블로 3’ 버그 논란에서도 블리자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으며, 특히 국내 지사의 경우 기술지원 답변과 공지가 해외보다도 훨씬 늦었다. ‘유저 말에 귀 기울이고 수시로 소통하는 블리자드’라는 이미지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지사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블리자드 코리아 전동진 지사장 (사진: 게임메카 촬영)

쌓이고 쌓인 불만, ‘하스스톤’ 사태로 결국 폭발

이렇게 쌓이고 쌓인 부정적 이미지는 최근 ‘하스스톤’에서 발생한 홍콩 지지발언 선수 ‘블리츠 청’ 제재에서 폭발했다. 사실 이번 사건에 대한 블리자드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임 대회 생중계에서 게임과 관계되지 않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고, 이를 어긴 선수에게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블리자드가 보여준 황급하고 필요 이상으로 강경한 일처리는 흡사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이 비춰졌다. 이에 대해 지난 주말에는 제이 알렌 브랙 대표가 직접 해명하고 선수/캐스터 제재를 완화했지만 논란을 종식시키진 못했다.

이 사건으로 블리자드는 자의건 타의건 자본에 무릎 꿇은 친중 기업으로 낙인찍혔으며, 이는 홍콩 시위 반대에 호응하는 몇몇 대형 기업들로 인해 불거진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게임업계를 넘어 미국 정치권에서도 블리자드 사태를 비난하고 나섰으며, 현재 인터넷 상에서는 블리자드에 대항하는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까지 홍콩에 관심이 덜했던 게이머들도 블리자드 사태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홍콩 사태를 널리 알리는 데 키 플레이어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홍콩 지지발언으로 징계를 받은 블리츠 청 선수 (사진출처: 레딧)
▲ 홍콩 지지발언으로 징계를 받은 블리츠 청 선수 (사진출처: 레딧)

이어진 사건으로 인해 현재 블리자드 이미지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추락했다. 더 이상 ‘블리자드 팬’이라는 단어는 자랑스럽게 지칭할 수 있는 어감이 아니며, 블리자드가 하는 말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이제는 근본이 불확실한 수많은 루머마저도 사실처럼 회자되며 블리자드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해외에서는 올해 11월 1일 열릴 ‘블리즈컨 2019’에서 홍콩 사태 및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에 대한 항의를 하겠다는 유저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누가 블리자드가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최근 블리자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다시 올라오는 것은 그보다 몇십 배는 힘들다’라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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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스톤 2015. 04. 02
플랫폼
온라인
장르
TCG
제작사
블리자드
게임소개
'하스스톤: 워크래프트의 영웅들'은 '워크래프트' 세계를 기반으로 개발된 온라인 전략 카드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펼쳐 주문을 시전하고 부하를 소환하여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영웅을 조작하여 다른 유저와 ...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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