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유저, 게임에 몰입되기보다 비평할 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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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겸임교수이자 미학자, 진보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가 4일 엔씨소프트오라토리움을 찾았다. 촛불시위를 현장에서 직접 중계하고, 각종 토론 및 시사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바쁜 그가 게임업계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대 겸임교수이자 미학자, 진보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가 4일, 엔씨소프트 오라토리움을 찾았다. 촛불시위를 현장에서 직접 중계하고, 각종 토론 및 시사 프로그램 출연 등으로 바쁜 그가 게임업계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주최하는 제 1회 게임문화포럼의 초대 연사로 초청된 진중권 교수는 ‘예술, 놀이,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현직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의미 있는 강연을 진행했다. 저명한 미학이론가인 그는 이번 자리를 통해 미학에서 말하는 놀이와 철학적 관점에서의 놀이를 재조명하면서, 미래사회에서 상상력의 가치를 역설했다.

▲ 협회 사무국을 통해 신청을 받은 이번 강연에는 약 200여명의 게임업계 종사들이 참가했다.

놀이의 힘은 지금의 촛불시위를 보면 알 수 있어

진중권 교수는 놀이란 진지함과 할일 없음의 ‘사이’이며, 현대의 놀이는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세계라고 말했다. “미래는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시대다. 상상력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금 아이들을 놀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진보 논객답게 현재의 촛불시위를 들어 놀이의 힘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놀이의 힘은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의 시위는 투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시위나 집회는 축제처럼, 유희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현장에 나가면 구호나 문구도 전투적이지 않고 재미있고 웃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한 이 같은 자발적인 저항은 공권력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그가 생각하는 정보화 시대의 미래란 이처럼 노동과 유희가 계속 일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대기업의 경우 수 만 명이 일하는 연구소를 통해 이 같은 미래를 이미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인문학자, 아티스트, 엔지니어의 삼각 컨소시엄 필요해

진중권 교수는 미래사회에서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상상력의 가치에 주목했다. 오늘날 더 이상 기술은 예술과의 조합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디자인에서 한발 나아가 바로 예술과 기술이 조합된 ‘아트 테크놀로지(Art-Technology)’의 등장이다.

진 교수가 생각하는 미래의 문맹이란 단순히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미래에는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것 이외에 디자인과 설계에 심어진 의미나 기술, 예술을 읽는 눈을 가진 능력이 필요해진다. 그는 이것을 새로운 언어능력, 곧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 과거 예술작품에서 사용된 놀이 혹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중코드) 사례를 설명 중인 진중권 교수

진 교수가 제안한 생산력의 발전은 텍스트(내러티브: 이야기), 이미지, 프로그래밍(기술)의 삼각 컨소시엄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인문학자와 예술적 감각을 가진 아티스트, 엔지니어(공학자, 과학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치 온라인 게임 개발을 위해 기획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프로그래머가 손을 잡아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한 기능 위주의 기술과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창의성이 없는 기능은 중국 등 후발국가에 의해 쉽게 추월 당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예술가의 독특한 시도가 대중문화와 기술발전의 밑거름

진중권 교수는 상상력이 생산력 향상에 기여하는 방법에 대해 미학적 측면에서의 놀이, 곧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도에 주목했다. 예술가의 시도와 그 작품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발전이 가능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진중권 교수는 쓸모 없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가들이 왜 생산력을 발달시키기 위해 필요한지에 대해 일본의 미학자 ‘가와노 히로시’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최초의 컴퓨터 예술가에 해당하는 가와노 히로시는 컴퓨터가 계산기 수준의 연산만 가능했던 1960년대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지금의 컴퓨터 그래픽의 효시로, 당시로서는 ‘주판으로 그림을 그린 격’에 해당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원고지 뒷면을 이면지로 활용해서 코드를 짜고, 다시 펀칭을 하고, 입력하고 출력하는 몇 십 번의 과정을 거치는, 지금으로서는 생각조차 어려운 방식으로 작업이었다. 가와노 히로시의 시도를 시작으로 컴퓨터 그래픽은 단순한 클릭 몇 번만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지금의 상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 진중권 교수는 테크놀로지의 상상력을 먼저 실현시키는 것이 예술가이며, 이것은 몇 년 뒤의 대중문화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예술가는 시대의 아방가르드(전위부대)이며, ‘얼리어댑터’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 가와노 히로시가 제작한 최초의 컴퓨터 예술, 지금의 컴퓨터의 그래픽의 시작이다.

▲ 밤하늘의 별자리가 아니다, `리좀`이라는 웹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 인터페이스다.

이외에도 진중권 교수는 다양한 과거와 현재의 미술작품을 통해 이루어진 예술과 기술의 독특한 만남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강연을 통해 진중권 교수는 놀이와 상상력이란 무엇이며, 미래사회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강연 내용 자체는 게임과 직접적 연관성도 없고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양수업 수준의 미학 개론이었지만, 참가자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강연 이후에 이루어진 약 한 시간 동안의 질의응답 시간에도 촛불시위 및 현 시국에 대한 정치적 질문들이 이어져 그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총 3회에 걸친 릴레이식 구성으로 진중권 교수(인문)에 이어, 이동연(문화), 정재승(과학) 분야의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

유저, ‘얼리어댑터’가 되어 게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

게임메카: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도 놀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온라인 게임이 상상력을 키우거나 자극시킬 수 있는 놀이문화라고 생각하는가?

진중권 교수: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 나는 게임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체스나 바둑도 직접 하는 것보다 이세돌 같은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통하는 게임과 해외에서 통하는 게임은 다르다. 이건 우리나라와 서양의 근본적으로 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다. 서구와 달리 ‘싸이월드’처럼 대인관계와 구술관계를 중요시하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축적하는 ‘위키피디아’와 달리, 문답으로만 이루어진 ‘네이버지식’인 같은 것도 서구와 우리문화가 근본적으로 가진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심시티’같은 게임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할 수 없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컨드라이프’나 ‘심시티’와 같은 시뮬레이션적인 측면이 강한, 구성주의적 게임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하는 ‘집단패싸움’ 게임은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대학생들이 PC방에서 몰려서 그런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만 해도 우리와 다를 것 같은데, 중국과는 비슷한 경향인 것 같다. 우리는 구술문화가 강하고 서구문화는 문자문화 기반의 구성주의 성향이 강하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언어를 입으로 구술하는 것과 문자로 쓰거나 인쇄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체계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음성언어에 바탕을 둔 구술문화와 쓰기 및 인쇄에 토대를 둔 문자문화가 인류의 표현 매체 변천과 더불어 어떻게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지 소개하고 있다.

게임에 대한 입장은, 도움이 되는 게임도 있고, 해로운 게임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커피가 몸에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시지 않나. 쾌락이란 것은 원래 몸을 파괴하면서 얻어진다(웃음). 지나치게 몰입되거나 중독되는 것은 좋지 않다. 나는 게임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도, 또 유해성이 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게임 유저들이 게임을 평가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유저들이 이 게임은 그래픽 상태가 어떻고, 내러티브가 어떻고, 게임 내 장치들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평가해보는 것이다. 얼리어댑터처럼, 비평하듯이 게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게임메카: 해외에서는 과연 MMORPG와 같은 온라인 게임을 소설, 영화와 같은 ‘서사(이야기)’ 장르에 넣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하는 경우가 있다. 진 교수의 생각은 어떤가?

진중권 교수: 충분히 서사 장르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술문학에 넣을 수 있지 않겠나. 과거의 ‘호메로스’와 비슷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호메로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자라고 알려져있다.) 온라인 게임은 언어도 작자가 하나가 아니다. ‘호메로스’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거쳐서 이야기를 완성한 일종의 ‘집단창작’이었고, 게임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게임메카: 혹시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중권 교수: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인 생각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게임을 별로 즐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무조건 몰입해서 게임을 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게임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게임메카: 오늘 강연은, 게임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10대, 20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진중권 교수: 게임에 무조건 몰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처럼 몰입하다가도, 브레히트의 연극처럼 게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몰입만 해서는 안 된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성능 등 다양한 부분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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