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산업

"게임사전 출간의 의미는 '지식의 가치' 인정 받은 것"

/ 1

▲ '게임사전' 제작발표회 현장
왼쪽부터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재성 전무, 이화여자대학교 이인화 교수, 한혜원 교수

게이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로밍(roaming)’이 있다. 게임을 즐겨 하지 않는 중년층 이상이라면 ‘로밍’이라는 단어를 놓고 해외에 가기 전 해놓는 ‘국제로밍’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장르를 주로 하는가에 따라 다른 뜻이 생각난다. MMORPG 유저라면 특정 지역을 배회하는 ‘로밍 몬스터’가 먼저 떠오를 것이고,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AOS를 한다면 다른 라인을 지원하러 가는 전술이 생각날 것이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도 게임을 하느냐, 안 하느냐 또는 무슨 게임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그러나 표준어사전에서는 게임에서 이 단어를 어떻게 쓰는가가 없다. 게이머 사이에서도 알쏭달쏭한 ‘게임 용어’와 그 뜻을 묶은 ‘사전’이 등장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이 편찬하고, 한국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가 집필한 ‘게임사전’이 그 주인공이다.


▲ 같은 '로밍'이라도 무슨 게임을 주로 했느냐에 따라 다른 뜻이 생각난다
(사진출처: 게임사전 일부 촬영)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은 28일, 이화여자대학교 SK텔레콤관 컨벤션홀에서 ‘게임사전’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재성 전무는 “게임 개발자들과 이용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를 묶은 ‘게임사전’은 국내 최초다. 여기에 미국의 경우에도 게임개발자 사전 정도만 확인되었으며, 미국 아마존, 일본 ‘라쿠텐북’ 등에 ‘게임사전’을 키워드 검색한 결과 현재 판매 중인 서적은 찾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사전’은 2,000여 종에 달하는 표제어(사전에 담은 단어)를 담은 1,3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사전이다. 실제로 보면 소위 말하는 ‘벽돌’처럼 크고 두껍다. 표제어는 3가지로 나뉜다. 게임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사내 위키 등에서 찾아낸 ▲ 제작 관련 용어가 있다. 그리고 게임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 게이머 용어가 있다. 마지막으로 e스포츠나 팬아트, 코스프레와 같이 ▲ 게임을 토대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여기에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을 뽑은 ▲ 대표 게임선이 포함되어 있다.


▲ 이렇게 보면 그렇게 두껍지 않은 거 같은데...


▲ 오...

이 중 흥미로운 부분은 ‘게이머 용어’다, 게이머들이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와 그 뜻을 풀어 사전에 담은 것이다. 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난 단어는 ‘아이템’이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재성 전무는 “1위가 ‘아이템’이고 게임사전에 8페이지에 걸쳐서 자세히 설명된 가장 긴 항목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이템’ 뒤로는 ‘게임’, ‘캐릭터’, ‘딜’이 그 뒤를 따랐다.


▲ '득템'은 언제나 옳다
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손꼽힌 '아이템' (사진제공: 엔씨소프트문화재단)

현장에서는 ‘게이머 용어’ 20종을 선별해 공개했다. 이 중 ‘버스’는 일상생활과 게임 속에서 뜻이 완전히 다르다. 일상에서는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지만 게임에서는 레벨이 높은 유저가 낮은 유저를 일방적으로 키워주는 것을 말한다. 키워주는 플레이는 ‘버스 태워준다’라고 말하며, 다른 이용자를 이끌어가는 유저를 ‘버스기사’라 부르기도 한다. ‘딜러’의 경우에도 기성세대의 경우 카지노의 딜러를 떠올릴 수 있지만, 게임을 즐겨 하는 세대는 높은 공격력을 가진 캐릭터를 생각한다.


▲ 이 중 당신이 아는 '게임 용어'는 몇 개나 되는지 확인해보자
(사진제공: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재성 전무는 “실제로 20개를 두고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아내가 뜻을 맞춰 봤는데 아들은 만점인 반면, 아내는 한 문제를 맞추는 것에 그쳤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도 뜻이 다른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며 이해하는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하리라 본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저기 퍼져 있던 지식을 ‘사전’으로 공식화하다

그렇다면 ‘게임사전’ 편찬의 의미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저기 퍼져 있던 지식을 한데 모아 ‘공식화’했다는 것이다. 사전을 대표 집필한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는 “전화기가 발명된 후 흔한 인사말로 ‘hello’가 등장해 옥스포드 영어대사전에 등재되기까지는 6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라는 뜻의 ‘득뎀’이 게임사전에 실리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라며 “그 이유는 아무도 게이머를 ‘공식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아서라 생각한다. ‘사전’을 만든다는 것은 그 분야가 공식적인 지식이 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 게임사전 기획 의도 (사진제공;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와 함께 집필진이 신경 쓴 부분은 ‘화석 같은 사전’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게이머들이 현재 사용하는 생생한 언어를 담는데 집중했다. ‘게임사전’을 만들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표제어(사전에 실리는 용어)’ 공모를 진행한 이유 역시 게이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을 담기 위함이다. 공모전에는 1,000여명이 참여해 8,000여 종의 표제어가 제시됐다. 내용을 짧게 간추린 ‘한 줄 요약’을 담은 것도 긴 글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를 배려한 것이다.


▲ '이것도 사전에?'라고 할 만한 용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출처: 게임사전 일부 촬영)


▲ 게임사전의 '로봇' 종류 정리는 뭔가 다르다 (사진출처: 게임사전 일부 촬영)

‘게임사전’의 주 독자층은 게이머와 게임 개발자다. 이재성 전무는 “엔씨소프트에서 사전 예약을 받았는데 게임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주문했다. 개발자들은 게임을 친구를 통해서나 독학으로 접한 사람들이 많은데 본인이 일하는 ‘게임’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욕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라며 “또 하나는 게임업계 지망생이다. 게임사 취업을 원하는 학생이 좀 더 게임에 대해 공부하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학제간 연구다. 게임과의 접목을 고민 중인 ‘인공지능’ 개발자가 게임에 대해 알고 싶다면 기본 개념을 정리한 ‘게임사전’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표 인물들도 있었으면, 게임사전 증포판 고려 중

이렇게 등장한 ‘게임사전’은 사실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인물’ 정보가 없다. 업계 대표 개발자나 유명 게이머, e스포츠 선수 등이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이인화 교수는 “용개(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명 유저)를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리차드 개리엇(울티마 온라인을 만든 대표적인 게임 개발자)을 넣을까, 말까 등을 계속 고민해왔다”라며 “한 명을 넣기 시작하면 누구를 넣고 누구를 빼냐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되는데 이 부분이 불분명해서 이번 판에는 인물을 전부 다 제외했다”라고 말했다.

이재성 전무 역시 ‘증보판(모자란 내용을 보태서 다시 출판하는 책)’ 발간을 언급하며 “이제 물꼬를 튼 상황이라 생각한다”라며 “게임은 대표적인 창조물이라 지금은 없어도 나중에 새로 나올 단어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일단 첫 사전의 추이를 지켜본 후 ‘증보판’에 대해 고민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5년 3월호
2005년 2월호
2004년 12월호
2004년 11월호
2004년 10월호
게임일정
202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