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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게임: 에로틱(?) 대전액션의 창시자. 메탈&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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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없이도 세상이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골방에 가둬놔도 인터넷만 있으면 100일동안 마늘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폐인들을 그 시절로 돌려보낸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 일이겠지만 어쨌든 컴퓨터만 있어도 쭈쭈바를 쥔 유치원생처럼 즐거워하던 시절이 존재하긴 했다.

▶ 이러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단지 불만은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상에 있었다. 혈기왕성한 사춘기 시절 가슴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솟아오르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 여러분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_-;

지금이야 검색창에 XXX만 입력해도 넘치는 자료에 깔려죽을 상황이지만 당시엔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야한 테잎을 빌리려 기웃거리다 주인아저씨에게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였고 학교에서 핫윈드를 한 장씩 찢어 천원에 파는 악마 같은 친구를 신주 떠받듯 쫓아다니는게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청소년 여러분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XXX를 입력하진 맙시다).

▶ 심장 떨리던 비디오가게에서의 추억

▶ 가슴졸이던 '가방검사'의 압박

나름대로 첨단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자부하는 있던 필자는 그런 고충을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으니… 핫윈드의 대형 브로마이드를 파격가 1,500원에 제공한다는 친구의 제의에도 코웃음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18금 게임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모뎀을 이용해 PC통신에서 아흥흥한 자료를 입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분당 20원이라는 전화세의 압박을 학생신분에서 물리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1994년 8월 무렵 화창한 햇빛이 내려쬐던 그 때에도 필자는 호환마마는 물론 온통 ‘가’로 점철된 성적표 더 무섭다는 ‘30만원권 상당의 전화세 고지서’를 우편함에서 발견하고선 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집을 나와 컴퓨터 상가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던 무렵 내 눈을 멈추게 한 게임이 있었다. 아니 게임이 나의 눈을 멈추게 했다기보다는 패키지 아래쪽에 선명히 찍혀 있었던 ‘연소자관람불가’ 딱지가 그 주체라고 할 수 있었다. -_- 알고 있는 18금 게임이라봐야 코브라미션과 래리 밖에 없었던 나로선 마른하늘에서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 PC통신에서 18금 게임의 새로운 혁명주체로 떠오르던 문제작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쓰다 보니 호색한이 된 듯한 기분).

그 이름하여…

메탈 & 레이스

여기서 잠깐, 그 당시 게임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모모잡지의 말을 인용해 보자.

“색다른 게임을 찾고 있나요? 이제까지 선보인 어떤 게임보다 재미있고 긴장감이 흐르며 또 섹시한 게임이 소개됩니다. 우리의 멋진 로보베이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메카 아일랜드에서 열대의 태양 속에 잠겨 있는 그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어떤 액션 게임에서도 제공하지 못했던 것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확인하십시오. 여러분의 로보전사에게 특수한 무기를 장착하십시오. 우리의 로보 베이브 들은 이제 여러분으로 하여금 밤새도록 조이스틱을 움직여 격전을 벌이도록 만들 것입니다.

메탈 & 레이스의 그래픽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화된 그녀들의 강렬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 그리고 아름다운 머리색상은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또 음향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경우 마치 게임 속에 있는듯 느껴지는 실감 넘치는 하이파이 스테레오음향과 로보베이브들의 목소리, 그리고 다양한 음향효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열대의 태양 속에 잠겨 있는 그녀들… 애니메이션화된 그녀들의 강렬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 실감 넘치는 하이파이 스테레오 음향과 로보 베이브들의 목소리…

나의 운명이자 나를 위해 태어난 게임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18금 자료에 목마른 상황 아래 권장소비자가 4만 5,000원이라는 가격은 한낱 숫자에 불과한 단어. ‘30만원권 상당의 전화세 고지서’의 압박으로 용돈을 얻을 순 없었기 때문에 난 눈물을 머금고 소장해온 정품패키지를 친구들에게 급매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 아마 이 작품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한다

메탈&레이스는 일본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인 ‘인형조종사’를 모티브로 제작된 대전액션게임이다. 18금을 주제로 한 성인물과 대전액션의 환상적인 조합을 보여준 메탈&레이스. 당시 나에겐 마냥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 찬 실낙원의 콩깍지가 씌워져 있었다.

꿈을 향해서…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난 장롱 위에 숨겨둔 메탈&레이스의 비닐껍질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뜯었다. 이 땅의 청소년들과 또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이 알다시피 자고로 18금 자료를 개봉할 땐 기도비닉이 생명이다. ‘교육용’을 목적으로 사준 컴퓨터에서 이런 게임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눈치 채는 날엔 앞으로의 인생에서 컴퓨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기도비닉과 은폐엄폐, 그리고 사주경계는 성인용 자료를 다룰 때 지켜야할 생명수칙 3조다.

▶ 스타워즈 인트로의 어설픈 오마주 -_-

게임을 실행하자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듯한 타이틀로고와 스토리 설명이 나타났다. 그 시절 스타워즈가 구축하고 있던 이미지는 실로 최강이었던 만큼, 게임에서도 스타워즈의 도입부에서 볼 수 있었던 스크롤이 올라가는 방식의 프롤로그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메탈&레이스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서기 2053년 돈 많고 할 일 없는 백수들은 어떤 종류의 스포츠나 놀이문화에도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 바로 로보베이브를 만들어 자웅을 겨루는 대회. 이 대회는 점차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치열한 경합을 펼치기 시작한다.

단순히 레저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보베이브들의 전투’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위상과 힘을 알리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주인공은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로보파이팅 최후의 챔피언인 건더 일당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 메탈&레이스의 인트로화면. 뭔가 있어보인다

스토리는 이렇다는 것이지만 게임의 주목적은 로보베이브와 전투를 벌이고 그것을 제어하는 아리따운 여성들의 옷을 벗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_-;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어여쁜 걸들이 옷을 한점 한점 벗어주었던 오락실 최고의 성인게임 나인볼마냥 메탈&레이스는 게임 그 자체보다 부수적인 보너스로 제공되는 아흥흥 일러스트에 더욱 큰 힘이 실려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포커나 땅따먹기가 아닌, 대전액션이라는 점에서 메탈&레이스는 관심을 끌만한 소지가 충분했다. 당시 오락실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게임도 스트리트 파이터 2와 같은 대전액션이었던 만큼 메탈&레이스와 같은 작품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일지도 몰랐다.

▶ 로비화면. 그런데 왠 "드래곤나이트 III 커밍쑨?"

메탈&레이스의 기본화면은 상당히 이채롭다. 선술집 이곳저곳에 서 있는 건더일당이나 바텐더, 손님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로보베이브를 구입하며 팁으로 돈을 지불하는, 로비시스템이 바로 이 작품의 메뉴화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오… 당시로선 상당히 획기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 로비에 존재하는 NPC들은 각각 자신이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다. 모두 껄렁껄렁한 녀석들로만 보이지만 로보베이브의 에너지원인 ‘배터리’를 공수하는 바텐더, 2인용 대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청년,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울프 맥컬트 등 이들은 NPC의 모습을 띈 메뉴화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고 있다(엔딩이 나올 때까지 이 로비가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리라는 사실은 처음엔 몰랐다).

▶ 메카닉 구입장면

게임은 바텐더 아래쪽에 있는 일지에 선수등록을 마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주어지는 운영비 5,000달러. 엄청난 제작비의 로봇은 둘째 치고서라도 서기 2054년의 물가가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좀 당황스러우나 게임이 제작된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이해해 줄만했다.

선수등록을 마친 후엔 2층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로봇을 구입해야 한다. 덜컥 4,800달러짜리 초고가 메카닉을 손에 넣고 배터리까지 구입한 나. 그런데 이게 왠 낭패인가. 경기를 벌이기 위해 필요한 150달러의 선수금이 모자란 것이었다.

▶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인가!?!?

본인은 바로 여기서 메탈&레이스가 풍기고 있는 괴스러움을 일부 맛보게 된다. 선수금을 위해 필요할 때 부족한 돈을 빌려준다는 울프 맥컬트에게 말을 걸었다. 약간의 돈을 얻은 난 5,000달러짜리 메카닉을 팔고 저렴한 메카닉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상점에 올라갔다가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 빌린 돈을 모두 탕진하고야 만다.

“게임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인가”

땡전 한 푼 없던 상황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울프 맥컬트를 다시 찾았다. “갚을 돈은 가지고 왔수?”라는 질문에 덜컥 “예”를 선택하자 ‘빌린 돈을 모두 다 갚았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는게 아닌가. 돈은 또다시 빌릴 수 있었다. -_- 빌린 돈으로 메카닉을 구입하고 또 구입하고 또 구입하고 또 구입한 난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약 천만달러를 소지한 빌게이츠가 되어있었다. 모자라는 돈은 빌리면 그만이고 급전이 필요하면 메카닉을 팔면 그만이다. 이 무슨 뒷통수 짜릿한 괴스러운 버그란 말인가.

▶ 게임 시작도 전에 모든 장비를 갖춰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밖에도 메탈&레이스가 보여주는 ‘돈’ 관련버그는 상당했다. 바 옆에서 맥주병을 들고 서 있는 제이미에게 계속 말을 걸면 “귀찮게 하는 녀석들 때문에 죽겠다니까~”라는 불평과 함께 100~500 달러의 돈을 끊임없이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비기. 게다가 이곳 로비에서는 바닥을 이곳저곳 클릭할 때마다 소량의 돈을 주을 수 있는데, 세이브/로드를 무한 반복하면서 바닥을 클릭하다보면 어느새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 오 이거야 이거 +_+

뭐 어쨌든, 로봇들의 전투는 첨부된 그림처럼 예비선수등록실에 있는 아리따운 여성파일럿 중의 한명을 선택하면 시작할 수 있다. 파일럿을 선택하면 게이머가 얹어주는 팁에 따라 상대 메카닉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다. 팁을 안주면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돈을 주면 메카닉의 레벨이나 특수장비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시작도 하기 전에 돈벼락을 맞은 입장에서 돈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메카닉의 파워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그 레벨이 정해지는 만큼 돈을 주지 않아도 대충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 팁을 주면...

▶ 상대를 디벼볼 수 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투!

▶ 오 마이 갓... 이보다 더 단조로울 순 없다

…라지만 역시 ‘보기 위한 게임’에서 게임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까. 메탈&레이스의 대전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중학교 전산부 시절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잡지를 보며 베이직으로 만들던 ‘동인천 핏빛바다의 대혈투’와 그다지 다른 점을 느낄 수 없었다. 주먹과 발차기, 점프 주먹과 날아차기로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하는 단순조작은 뒤로 갈수록 그 난해함이 절정을 이룬다.

위의 그림처럼 지원하는 커맨드는 상당수이나 키보드로 이것을 입력하기란 성공률 1%를 보여준다는 “스트리트 파이터 1에서 풍신각 쓰기”보다도 어려웠다. 게다가 벽 끝으로 몰려 적에게 난타를 당하기 시작하면 그냥 해당 스테이지는 접어뒀다고 생각하는게 마음 편할 정도로 AI의 밸런스는 황당하기에 이를 데 없다.

결국 전투의 승부수는 초감각적인 컨트롤의 주먹/발길질과 돈으로 밀어붙이는 아이템빨에 있었다. 메탈&레이스의 로보베이브들은 경기 후 체력을 채워주는 베터리 외에도 방어력을 높여주는 실드, 이동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부스터, 자동조작을 가능케 하는 AI 칩(이거야 말로 메탈&레이스가 보기 위한 게임이라는 사실을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장치) 등 여러 가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

메카닉을 다른 종류로 바꿔도 실상 그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뒤로 갈수록 입력되지 않는 기술커맨드는 물론이고 차이점이라고 해봐야 점프 높이와 체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내가 기다리던 것은 따로 있지 않았던가~!

아무렴 어떠랴. 오로지 시각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구입한 게임이 메탈&레이스인 것을… 하지만 그 땐 알 수 없었다. 당시 심의를 맡았던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위질이 ‘가위손’에 필적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저 그 당시엔 메탈&레이스에서 보여준 그림이 전부인줄로만 알았지. 최고 수위의 노출이 잠옷에 불과하다는 점에 그저 만족했지만(정말?)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들이 ‘드래곤나이트’ 시리즈를 창조한 엘프의 그 자들이라는 사실을 수년이 흐른 뒤 알고선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매를 맞아도 첫 ‘빳따’가 제일 아프고 보리밥 먹고 방귀를 뀌어대도 첫 방귀가 제일 지독하듯 메탈&레이스가 남긴 충격은 당시 피어오르던 18금 게임시장의 상승세를 다소 위축시키는 결과까지 가져오면서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제작사인 포레스트가 파산에 이르는데도 혁혁한 공을 세움).

물론 게임에 대한 평가기준이 다양한 만큼 메탈&레이스를 ‘참 재미있게 즐겼다’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지만 포레스트가 게임의 완성도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불세출의 시리즈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을 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일러스트의 수위도 -_-;).

▶ 메탈&레이스의 출현은 후세 불세출의 괴작이 등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높은 가격과 가위질 그리고 조악한 게임성이라는 삼박자가 조화를 이뤄 탄생한 18금 게임의 이단아 ‘메탈&레이스’. 비록 어린 필자의 가슴을 후벼판 작품으로 가슴 한켠에 남아있지만 비키니가라데베이브스와 같은 이색 괴게임을 낳은 기념비적인 타이틀로선 나름대로 점수를 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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