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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숨겨진 호러명작 이터널 다크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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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새로운 공포감을 원한다

공포게임이 별도의 장르를 구축하며 게이머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한의 공포상황이 실제로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거기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이 공포게임을 즐기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포를 체험하면서도, 막상 플레이어 자신은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만큼 짜릿한 체험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공포게임의 대표적인 타이틀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는 나약한 주인공이 빈약한 장비로 좀비들과 맞서 싸운다는 설정만으로 게이머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바이오 해저드는 게임 자체는 재밌지만, 별로 무섭진 않다는 평을 듣게 된다.

바이오 해저드는 좀비나 나타나는 이유, 과학적인 배경설정, 주인공들이 그러한 상황에 익숙한 특수경찰이라는 점 때문에 공포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시리즈를 처음 접했을 때 공포의 요소로 작용했던 ‘좀비들로 가득 찬 폐쇄공간’이나 ‘그로데스크한 몬스터들’은 점차 플레이어에게 별다른 감응을 주지 못하게 된다. 결국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는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몬스터들로 인해서 순간적으로 깜짝 놀랄 순 있지만 지속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바이오 하자드 4는 이제까지의 시리즈와 여러가지 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교훈삼아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히스테릭하고 굴절된 심리상태를 공포의 요소로 내세운 게임이 바로 ‘사일런트 힐’ 시리즈다. 정신적 외상을 가지고 있는, ‘어딘가 한군데씩 망가진’ 구석을 가지고 있는 여러 인간 군상들과, 결정적으로 스스로의 정신적 원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세상을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은 바이오 해저드와는 다른 새로운 영역의 공포감을 맛보게 해주었으며, 게임이나 영화계의 거장들에게 ‘공포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게임’이라는 찬사도 듣게 되었다.

▶사일런트 힐 4는 트레이드마크였던 라디오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조건의 전제는 인간 인식의 선천적 본능에 근거를 둔 것임에 분명하다. 새롭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공포.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의 제한에서 비롯되는 공포. 집단과의 단절에서 발생하는 공포. 죽음에 대한 절대적 공포.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취하는 기피행동은 누군가가 가르쳐줘서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조건의 전제는 인간 인식의 선천적 본능에 근거를 둔 것임에 분명하다. 새롭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공포.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의 제한에서 비롯되는 공포. 집단과의 단절에서 발생하는 공포. 죽음에 대한 절대적 공포. 이러한 요소들에 대해 취하는 기피행동은 누군가가 가르쳐줘서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우려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 정교하게 새겨진 이러한 판단 기준은 인식의 효율성을 위해 미리 세워둔 규준을 바탕으로 그 사유의 대상을 특정한 감정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는데 함정이 있다. 게임 평론가들이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공포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게임이라고 평가한데에는 아마 이러한 의미도 내재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공포스러운 느낌을 받아야 정상이겠지만, 텔런드 권오중이 연상되어 웃음이 먼저 나온다

때문에 만약 특정한 공포 상황에 대해 면역을 가진 사람들에겐 사일런트 힐 시리즈에서 추구하는 ‘근원적 공포’는 전혀 자극이 될 수 없다. 몇몇 게이머들이 ‘사일런트 힐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마네킹 인형 같아서 전혀 무섭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은유적 공포에서 자극받지 못하는 부작용의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통해선 공포심보단 ‘짜증스러움’이나 ‘역겹고 기분이 나빠지는’ 느낌만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바이오 해저드 시리즈의 ‘상황을 지극히 냉정한 이성으로 판단하여 플레이어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열악함을 인식했을 때 얻는 한계 상황적 공포’와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선천적 거부감을 바탕으로 이성의 현실 판단 효율화에서 발생하는 착오, 다시 말해 근원적이고 무조건적인 공포’는 이러한 점에서 서로 상반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바이오 해저드와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한계를 간파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논리적 스토리 라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게임의 전체 세계관을 초현실적이고 암울하게 설정하고 주인공 자신도 ‘세니티 미터(Sanity Meter)’를 통해 굴절시켜 어느 한쪽만의 공포 요소에 의존하기보다는 두 가지 상반된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 게임을 효과적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이터널 다크니스가 다른 공포게임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인 세니티 미터(Sanity Meter)는 체력이나 마법과는 별개인 제 3의 요소, 즉 일종의 정신력 수치다. 이는 간단히 말해 캐릭터가 얼마나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느냐를 나타낸다. 캐릭터는 갑작스레 몬스터를 만난다거나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을 때마다 세니티 미터를 조금씩 잃게 된다. 세니티 미터가 일정량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캐릭터는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며, 정신상태가 건강했을 땐 겪을 수 없었던 환상이나 환청을 경험하게 된다.

▶죽은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공황상태에선 끝없이 계속되던 길이 세니티 미터가 회복된 후에 보면 벽을 향해 뛰고 있었다든가, 어디선가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든가, 심지어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있는 게이머를 직접 혼란에 빠뜨리는 기발한 연출도 등장한다. 심지어는 캐릭터가 TV화면을 향해 공격을 해대거나 게임큐브가 리셋된 듯한 효과, 윈도우즈의 블루 스크린까지 그 연출은 상상을 초월한다. 게임 진행상 캐릭터는 반드시 공황상태에 빠져야 한다던가, 혹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어야만 진행이 가능한 부분이 수없이 등장한다.

이처럼 이터널 다크니스는 세니티 미터가 충분한 ‘정상적’인 상태와 세니티 미터가 하락한 ‘공황상태’로 나뉘어지며, 이는 위에서 설명한 ‘바이오 해저드’식 공포와 ‘사일런트 힐’식 공포를 효과적으로 융합한 새로운 시도로 칭송받을만하다.

▶감소된 세니티 미터는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술을 마셔서 보충할 수 있다

원래 닌텐도 64용으로 개발되던 이터널 다크니스는 실리콘 나이츠(Silicon Knight)라는 미국의 게임 개발사에서 제작되었다. 실리콘 나이츠는 플레이스테이션용 공포게임 블러드 오멘(Blood Omen)을 개발한 바 있으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좀 더 본격적이고 성인 취향에 맞는 공포게임을 만들겠다는 실리콘 나이츠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결국 닌텐도 64가 아닌 게임큐브용으로 게임이 발매되긴 했지만, 강력해진 하드웨어 성능과 커진 용량, 그리고 길어진 제작기간으로 게임 자체의 완성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터널 다크니스를 만든 실리콘 나이츠(Silicon Knights)

게임내용에 대해 알아보자. 이터널 다크니스는 원래 로비아스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책의 제목으로,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의문에 쌓인 죽음과 영원한 어둠의 책(The Tome of Eternal Darkness)의 연관성을 두고 책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12명의 가문 조상들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물론 이 12명의 캐릭터들은 전부 플레이어가 직접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한다.

플레이어는 2000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기원전 페르시아, 1차 세계대전 당시, 중세시대의 수도원 등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로 당시 시대를 철저히 고증한 게임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아이디어만으로도 플레이어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다.

총 12명에 달하는 과거의 인물 에피소드는 각각 하나의 챕터를 이루며, 이를 클리어 할 때마다 전대 캐릭터의 행동은 후대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현대에서 책을 읽고 있는 마지막 후손에게까지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끼친다. 이런 방식의 교묘한 상호 연관성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몇 군데 분기를 발생시키며, 이는 게임의 결말도 여러 개라는 것을 의미한다. 게이머는 후대의 인물을 위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기원전 로마시대부터 근대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12개의 챕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생의 다양성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악마의 꼬임에 빠져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떠나는 무모한 모험에서부터 고결한 성직자의 생활까지 그 다양함은 각 챕터를 즐길 때마다 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각 챕터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기본 능력도 천차만별이라 챕터가 바뀔 때마다 플레이어는 각 캐릭터의 특성 및 조작 방법에 새로 적응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게임의 조작 체계가 불편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바이오 해저드 식의 복잡함을 탈피,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한 직관적 이동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전투도 RPG에 버금갈 정도로 심도 있게 디자인 되어, 적의 신체 부위 중 어느 곳을 공격하느냐에 따라 보다 전략적으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의 양 팔을 먼저 공격하면 공격 능력이 상실된다던가, 머리를 공격하여 주인공의 위치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이용하면 진행하기 힘든 부분을 적들끼리 싸움을 붙인다거나 함정이 있는 곳으로 유도하여 해결할 수 있다.

 ▶고증이 철저한 무기들을 사용할 수 있다

캐릭터의 시대에 따라 고증된 검이나 활, 총 등을 제외하고도, 이 게임엔 여러 가지 원소 마법과 룬을 이용한 별도의 마법 체계가 등장한다. 이터널 다크니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퍼즐은 이 마법간의 상호 속성을 이용하여 풀어나가게끔 되어있다. 물론 이러한 특징은 퍼즐뿐만이 아니라 적을 공격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어, 특정한 속성의 몬스터는 같은 속성의 마법으로 대미지를 입힐 수 없다든가 마법간의 가위바위보식 상성관계에 의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 보다는, 플레이어가 직접 마법을 조합하여 게임을 진행해야 하므로 게임의 전체적인 색깔은 PC용 어드벤처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색은 마법의 속성을 상징한다

이 게임의 그래픽은 처음 봤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숨겨진 매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할것도 없이, 게임을 진행할수록 실제로 그래픽의 품질이 좋아진다. 범프맵핑, 안개효과, 고해상도 텍스쳐 등 다양한 효과가 가미된 화면이 60프레임의 프로그레시브 모드로 구동된다는 점은 가정용 게임기가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성능을 감안할 때 10점 만점에서 9점은 줄 수 있을 수준이다. 특히 바이오 해저드처럼 미리 렌더링 된 것이 아닌, 모든 지형이 완벽한 3D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동서양의 취향 차이가 문제지, 그래픽은 좋은편이다

사운드는 이 게임의 백미로, 완벽한 돌비 프로로직 2를 지원하여 환상적인 채널 분리도를 보여준다. 혹자의 표현으론 ‘땅에서 칼날이 튀어나오는 함정을 통과할 때, 눈을 감고도 소리만으로 피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비단 음향의 공간감 뿐 아니라, 성우의 연기나 각종 괴기스러운 음악, 효과음도 이 게임의 분위기를 한층 살려주고 있다.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고전 헴릿의 대사 인용도 빼놓을 수 없다.

조상들의 과거 행적을 책으로 읽어가면서 후대 인물들에게 여러 가지 유산을 남기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그것(무엇인지는 게임의 재미를 위해 밝히지 않겠다)’을 찾아 마지막 보스와 맞서는 과정은 절묘한 게임 구성과 맞물려, 오직 치밀하게 계획된 스토리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추리소설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장소라도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과거엔 성이 있던 자리에 저택이 들어서있다거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터널 다크니스만의 매력적인 요소다.

▶큐브용으로 국내에 정식 발매되어 있다

이터널 다크니스는 바이오 해저드나 사일런트 힐이 각자 추구하고 있는 서로 다른 공포를 세니티 미터를 통해 효과적으로 융합해냈으며, 여기에 치밀하게 설계된 스토리라인과 다양한 개성을 갖춘 12명의 캐릭터들의 유기적인 연동을 바탕으로 이제까지의 다른 공포게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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