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게임대학 1장 게임디자인론-CHAPTER 6. 장르고찰

/ 2


1. 흔들리는 게임 장르

판매하는 상품을 장르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한다 - 다른 업계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장르 구분이 항상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화된 장르를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만큼 시시한 것은 없습니다. 참신한 발상으로 만들어져, 기존의 장르로 구분하기 어려운 ‘장르 불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 그런 게임의 존재가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결국에는 ‘장르 불명의 괴작’ 이라는 표현이 불가피해진 것입니다.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게임', '리얼 타임 액션 어드벤처'등 장르의 '영역침범'을 의도하는 선전문구가 잇달아 생기고, 매체(게임저널리즘), 유통, 소비자 모두 당황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현시점에서 게임의 장르로서 공인된 것은 다음의 8가지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말하자면'이라든가 '굳이 말하면~과 같은 것'식으로 구속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두 가지나 세 가지 장르로 동시에 분류할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범주가 다른 게임도 드물지 않습니다.

1. 시뮬레이션(플레이어의 의지가 게임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게임)
2. 롤플레잉(경험치의 개념이 있고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는 게임)
3. 어드벤처(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스토리를 엮어가는 게임)
4. 액션(반사신경이 필요하고 캐릭터를 조작해서 즐기는 게임. 격투, 슈팅 등의 하위 범주가 있다)
5. 스포츠 레이스(스포츠나 레이스를 소재로 한 액션 게임)
6. 퍼즐(주어진 명제를 풀어가는 게임)
7. 보드 테이블(장기나 마작 등 기존의 게임을 재현한 게임)
8. 버라이어티(점, 퀴즈 등 어떤 분류에도 해당되지 않는 게임)

이러한 분류에 감히 반대의견을 내세울 의도는 없습니다. 영화나 소설의 세계에서도 기껏 분류를 해도 금방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서스펜스라든가 휴먼 드라마라처럼 결국에는 대충한 분류가 최고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류를 좀 더 이론적으로 체계화할 수는 없을까요?


2. 비디오 게임의 본질은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의 근원적인 장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액션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반사신경을 호되게 자극해 캐릭터를 조작하는 생리적 쾌감을 맛볼 수 있는 점이 게임의 묘미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비디오 게임의 본질은 시뮬레이션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에는 리얼리티(현실감), 인텔리전스(지능), 월드(세계)라는 세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원래 컴퓨터라는 도구 자체가 물리적 현실을 '가상화'하기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이라는 행위는 현실 세계를 인수분해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상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게임이나 그 뿌리에는 뭔가의 시뮬레이션이라는 부분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액션이라는 것도 인간 몸의 움직임, 레이스 카의 움직임 등을 시뮬레이션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는 인간 근육의 움직임을 어떻게 충실하게 재현하는가에 부심했던 게임입니다.

기존의 2차원적 표현기법으로는 시뮬레이트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법칙을 초월한 추상화, 희화화의 방향으로 나간 것입니다. 3차원적 표현기법이 일반화됨에 따라 시뮬레이터로의 지향이 현저해진 것이죠.

다만, 물리적인 법칙에 충실한 것과 현실적이라는 것만으로는 게임의 재미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거짓말과 과장이라는 '연출'이 추가되어, 또 하나의 현실(아티피셜 리얼리티)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놀이'가 되지 않습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컴퓨터에게 요구되는 것은 컴퓨터가 인간 대신에 게임의 상대역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고 회로 시뮬레이트가 커다란 과제가 됩니다. 즉, 인공지능(아티피셜 인텔리전스)의 세계입니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이 체스나 장기 등의 분야에서 어떻게 강한 '컴퓨터 플레이어'를 만들어내는가 고심하며 맹렬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롤플레잉 게임 역시 보드게임에서 컴퓨터가 게임 게임마스터라는 인간을 대신하고 있다는 측면도 강합니다.

시뮬레이트하는 대상을 더욱 확대한 것이 소위 '육성형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세계 또는 '인생'을 지배하는 법칙성 그 자체를 시뮬레이트해 거기에 관여해가는 것을 게임으로 다시 조립한 것입니다. 즉, 인공적 세계, 아티피셜 월드로의 방향성입니다.


3. '종이'에서 '신'으로

'컴퓨터는 과거 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이다'

이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고용지, 도화지, 엽서, 집계표, 양식, 정보 카드. 컴퓨터는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종이라는 매체의 대체물로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화가 진행된 결과 컴퓨터는 전화, TV를 비롯해 모든 미디어를 통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현상을 '컴퓨터가 미디어화 된다'고 표현합니다. 미디어라는 말에는 '신'과의 교신매개자라는 어원도 있습니다.

놀이의 세계에서는 어떻습니까? 컴퓨터는 지금까지 트럼프나 게임용 보드라고 하는 종이, 소설책이라는 종이의 대체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종이의 대체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게임을 보았을 경우 소설화, 게임북이라고 하는 종이로 전달하는 경우에 비해 얼마나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요? 하긴 롤플레잉 게임에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이야기의 진행역이 될 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이 한정된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 결국에는 힘들여 이야기를 덧쓰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림 연극에서 그림을 넘기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분기형', '멀티 시나리오형'의 경우에도 'A라는 결과라면 이쪽으로, B라는 결과는 저쪽으로'라는 구조로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영화와 같은 게임'이란 거기에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제작자로부터 주어진 이야기를 좇아 체험해 간다는 구조를 취하는 한, 게임은 소설책이라는 종이, 영화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일 뿐입니다(그것은 그것대로 즐거움도 크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면 '신'도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플레이어가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또 하나의 세계를 재구축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열차로 가자 IV>, <심시티>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경우, 거기에는 복잡한 세계가 수치와 인과관계로 환원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신의 관점에서 선로를 깔기도 하면서 세계에 개입해 갑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자신만이 맛볼 수 있는 '이야기'를 경험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더비 스탈리온>은 자기가 동종 번식시킨 말의 혈통 이야기 쯤이 되겠군요.

말하자면, 시뮬레이션 게임은 문학에서 '메타 픽션'이라고 불리는 이야기의 '원자'가 포함되어 '이야기 무한 발생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야기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계를 재창조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컴퓨터라는 그릇에는 말, 도시, 지구, 우주, 인간과 모든 '세계'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즉, 컴퓨터 그리고 플레이어가 '신'이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롤플레잉 게임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시뮬레이션 게임이 활황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최근의 상황은 이런 '이야기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이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이 ‘사운드 노블’이라고 불리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의 등장이다. <오토기리소우>(츈 소프트)는 종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카마이타치의 밤>에서는 종이의 대용물로 되돌아 온 기분이 든다.
※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아트딩크의 <루나틱돈> 시리즈가 '이야기의 변질'을 게임 디자인 속에 정교하게 반영시키고 있다.


4. 소풍과 자유행동

종이와 신의 차이라는 것은 '자유도가 있다'와 '자유도가 없다'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작자가 준비한 캐릭터나 스토리에 얽매이는 것'과 '스스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창조해 가는 것'이라는 차이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즐기는 사람의 '질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놀이동산의 탑승물에서 놀 것인가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서 나무 조각을 주워 가지고 놀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중화 요리 정식을 먹을 것인가 있는 재료를 가지고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며, 게임으로서의 우열의 문제도 아닙니다. 놀이나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는 이 양면에서 끌어당기는 자력이 항상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작자의 솜씨에 취하고 싶지만, 유치하더라도 자신의 사물을 조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 모순된 생각이 플레이어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게임이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한, 정말로 아무 것도 없이 재료만을 준비하는 게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재료의 사전 준비를 통해 조미료를 몇 종류 준비하고 조리 방법도 예시한 상태에서 '나머지는 뜻대로'라는 주문 생산이 한계입니다.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장르도 이 양자의 자력속에서 항상 동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처럼 준비된 스토리에 힘차게 끌려가는 것도 쾌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은 이렇게 죽어 가는 캐릭터가 아니다'처럼 안타깝게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95년에 리바이벌 발매된 <제나두>(팔콤)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1985년에 발매되어 40만 개가 판매되었던 일본식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원조격인 존재입니다. <제나두>를 다시 플레이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롤플레잉 게임이 이렇게 자유로운 게임이었군'이라는 점입니다.

<제나두>에는 보스를 쓰러뜨린다는 목적 이외에는 정해진 스토리도, 준비된 시나리오도 없습니다. 캐릭터를 만들어 오로지 적과 싸우고 수수께끼를 풀고 무기와 마법을 단련해 가는 게임입니다. 자기가 만들어낸 분신이 가공 세계에서 성장해 가는 것을 즐기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자신의 머리 속에 이야기가 자기 마음대로 완성되는 묘한 맛이 있습니다. 다만 긴장감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 좌절하기도 하고, 다음에 가야할 길을 놓치기도 하고, 미아가 될 위험성도 많습니다만….

<제나두>가 발매된 후에 등장한 <드래콘 퀘스트>(86년)는 '소풍형 롤플레잉 게임'으로 불려 왔습니다. 스토리라는 '인솔자'가 붙음으로써 미아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일까요? 그리고 어느덧 '인솔자'의 역할이 점점 막대해져 플레이어도 이야기를 만드는 권한을 인솔자에게 자꾸 위임하게 되었다는 느낌도 듭니다.

반복됩니다만, '소풍'이건 '자유행동'이건 어느 쪽이든 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으며, 우열을 가리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롤플레잉 게임에도 '폭'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5. 어드벤처 게임 복권의 의미

어드벤처 게임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와 패미컴의 여명기였던 80년대 후반에는 액션과 더불어 게임의 주류였습니다. <죠크>, <미스터리 하우스>, <신오니가시마> 등의 명작이 배출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동사와 명사를 조합한 명령을 키보드로 입력했습니다. 그 후에는 '○○(명사)'를 '본다' 등의 명령을 선택해 가면 스토리가 진행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어드벤처 게임의 인기가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수수께끼 풀기의 요소가 너무 쉬워져, 명령을 있는 대로 죄다 선택하면 스토리가 그냥 진행되는 게임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어드벤처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으로 진화되기까지의 과도적인 장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게임기나 PC CD-ROM에서는 어드벤처 게임이 부활되어 왔습니다. 실사영상, CG 무비 등을 엄청나게 사용한 '인터액티브 시네마'라고 불리는 게임은 대개가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그 중에는 고색창연한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질려버리는 작품도 있지만, <D의 식탁>, <데드러스>(헐리우드 여배우인 티어 카렐이 주연) 등 감탄할만한 작품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나 <크로노 트리거>를 플레이하고 있으면, 시스템은 확실히 롤플레잉 게임이지만 개입이 불가능한 강제 이벤트가 연속되기 때문에 스토리 진행에 어드벤처 게임과 비슷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느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게임은 스토리를 맛보기 위한 '그릇'이기도 합니다. 어드벤처 게임의 부활은 그런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토리와의 관계에 주목하면 게임은 다음의 세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스토리 타율형
② 스토리 자율형
③ 스토리 부재형

'스토리 타율형'이란 어드벤처 게임처럼 제작자가 준비한 스토리에 속박되는 게임입니다. 영화나 비디오와 관계있다는 의미에서 '시네마틱 게임'이라고도 부릅니다.

'스토리 자율형'이란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일부 롤플레잉 게임처럼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창조해 가는 게임입니다. 컴퓨터 속에 미니어처 세트적인 세계를 재구축하고, 그 세계와의 관계에서 놀이라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컨스트럭션 게임'이라고도 부릅니다. <데자에몽>, <RPG 만들기>처럼 게임 그 자체를 창작해서 즐기는 '이지오더형 게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부재형'은 대부분의 액션 게임과 퍼즐 등 반사 신경을 구사하는 게임이 해당됩니다. 간단한 백 스토리(배경 이야기)가 있어도(예 : 피치를 구출한다) 세계관의 보강재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버튼을 누른다 → 캐릭터가 움직인다'라는 생리적인 자극이 그 본질에 있는 게임입니다. '애슬래틱 게임'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상의 세 가지 형태의 게임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진화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어판 “게임대학”의 모든 내용은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A.K커뮤니케이션과 ㈜제우미디어의 허락없이 무단전재 및 복제, 광전자 매체의 수록 등을 금합니다.

The University of Computer Gaming World
Copyright(c) 1996-2004 by Hirabayashi Hisagazu, Akao Koichi
Originally published in Japan in 1996-2004 by Media Factory Co., Inc. Tokyo
Korean translation Copyright(c) 1996-2004 by A.K. Publishing Co.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5년 3월호
2005년 2월호
2004년 12월호
2004년 11월호
2004년 10월호
게임일정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