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는 게임업계에서 소위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개발자 및 기획자들을 만나 그들의 게임업계 입문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준 다양한 게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숨겨진 명인개발자 10人 -그들의 이야기’에서도 별도로 많은 개발자들이 소개될 만큼 국내게임업계에는 백절불굴의 유능한 개발자들이 많지만 늘 소개되는 개발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밖으로 나서길 꺼려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렵게 만나 본 개발자들, 과연 그들은 어떤 계기로 게임계에 입문했고 또 어떤 게임에 큰 영향을 받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두 번째 이야기] 프리스톤 문득기 기획이사
게임개발자뿐만 아니라 라이터, 기자, 기획자, 마케터 등 현재 국내 게임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텔이나 하이텔, 나우누리 등 80,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 BBS 동호인 출신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통신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아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빠르게 교환할 수 있었던 곳은 PC통신 BBS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게임개발자 출신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음악 등의 동호회가 활성화된 BBS로 집중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케텔 음악제작동호회 활동 중 우연히 맡게 된 ‘그날이 오면 3’의 음악작업을 통해 게임업계에 입문한 프리스톤 문득기 기획이사는 1세대 BBS 출신 개발자라고 할 수 있다.
손노리 이원술 대표, 씰 개발자 하종구 씨 등과 함께 게임개발을 진행할 정도로 게임개발에 열정을 보인 문득기 기획이사는 과연 어떤 시기를 보내며 지금에 이르렀을까?
▲브라이언 파고의 ‘바즈테일’에 이끌린 중학생
문 이사가 게임에 심취하게 된 것은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다. 당시 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한 반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컴퓨터를 접하기 어려운 시절, 문 이사는 학교공부보다는 컴퓨터 잡지를 보면서 컴퓨터 관련 정보만 수집하고 공부하는 컴퓨터 광을 짝으로 뒀다고 한다.
친구 덕분에 컴퓨터를 흔히 접할 수 없었던 문 이사는 자연스럽게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컴퓨터와 관련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때 쌓을 수 있었던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간접적인 것들뿐이었기 때문에 문 이사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그가 컴퓨터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다.
공교롭게도 문 이사는 2학년이 되서도 1학년 때와 같이 컴퓨터 광인 친구를 짝으로 맞게 됐고 남들은 한 번도 제대로 접해보기 힘들었던 컴퓨터를 2년간 접했던 그는 컴퓨터를 구입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공부해 보겠다는 맘을 먹게 된다.
“그 당시 주력기종은 15만원 정도 가격으로 판매된 8bit 애플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를 구입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조금씩 꾸준히 모아온 9만원이 든 저금통을 깨 아버지를 찾아가 열심히 공부할테니 컴퓨터 구입에 도움을 달라고 했죠. 아버지는 9만원이나 모은 제가 대견하셨는지 흔쾌히 컴퓨터를 사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악몽이 시작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렇게 컴퓨터를 장만한 문 이사는 친구와 함께 PC게임을 즐기며 무섭게 PC에 빠져 들어갔다. 이미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은 모두 섭렵한 상태라 색다른 형태의 게임을 갈구하던 문 이사가 처음 접한 PC게임은 브라이언 파고가 개발한 RPG타이틀 ‘바즈테일’이었다.

▲애플시절
위저드리, 울티마와 함께 3대 RPG로 꼽혔던 바즈테일. 명작이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게임이었다
액션장르 일색이었던 아케이드 게임과 달리 ‘위저드리’와 같은 던전형 정통RPG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바즈테일’을 접한 문 이사는 이 게임을 통해 늘 책에서만 봐왔던 모험과 환상을 대리 체험할 수 있었다며 당시의 느낌을 표현했다.


▲마니아라
하더라고 쉽게 즐길 수 없었던 타이틀이 명작이었던 시절. 환경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캐릭터의 특성을 살려 퀘스트를 진행하고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며 스토리를 완성해 나가는 바즈테일의 재미를 모두 느끼고 대망의 엔딩을 보기까지 그가 투자한 시간은 무려 6개월.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평소에 잘 하지도 않았던 영어공부까지 할 정도로 그는 게임에 열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유일했던 컴퓨터 잡지인 ‘컴퓨터학습’에 게재된 바즈테일의 공략을 보느라 수업은 늘 뒷전이었기 때문에 전교 1등을 차지했던 그의 성적은 점점 떨어져만 갔고 덕분에 부모님께 호되게 혼났었다며 악몽과 같은 당시를 회상했다.
“바즈테일 시리즈를 접하는 순간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은 졸업한 셈이었죠.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님께 혼이 나도 쉽게 게임을 떨쳐버릴 수 없었어요. 그리고 울티마 시리즈를 접하면서 더욱 더 게임에 심취했습니다”
대화식 진행방식을 메인시스템으로 채용한 울티마 시리즈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즐기기에 쉬운 타이틀은 아니었다. 하지만 획일화되고 단순한 MSX게임보다 자유도가 높은 서양게임이 가진 매력에 빠진 문 이사는 RPG란 장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 바즈테일은 영웅과 같은 존재였다
▲개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디아블로
문 이사가 게임개발자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된 것은 50만원에 중고로 구입한 16bit 컴퓨터를 거쳐 IBM사양의 PC를 접하면서부터였다. 고3 시절 컴퓨터 모뎀을 처음 접한 그는 하이텔의 전신이었던 케텔을 통해 PC통신을 처음 시작하게 됐고 그 때 활동했던 음악동호회 덕분에 게임개발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케텔 음악제작동호회에서 활동했던 분들은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PC와 음악에 관해서는 모르는게 없을 정도로 굉장한 실력자들이었습니다. 덕분에 음악제작에 관련된 정보뿐만 아니라 PC조립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도 많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꾸준한 음악동호회 활동으로 자그나마 실력을 인정받았던 문 이사는 대학 졸업 후 1993년 미리내에서 발매한 PC게임 ‘그날이 오면 3’의 음악작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게임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오면 3는 제가 처음 개발자로 데뷔한 작품이 된 셈입니다. 예상 외로 그날이 오면 3가 좋은 성적을 거둬 이후 발매된 그날이 오면 시리즈의 음악작업도 도맡아 했죠”
그렇게 게임개발과 인연이 돼 문 이사는 ‘그날이 오면’ 시리즈 개발을 통해 나름대로 체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손노리 대표 이원술 씨, 씰 개발자 하종구 씨 등 대학 PC써클 후배들과 몇 차례 게임개발을 시도했다.
결과는? 게임개발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했다.
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아니면 게임에 대한 이해부족?
현재 그들을 보자면 국내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개발자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게임개발에 막 입문한 정도의 실력이었기 때문에 게임개발에 대한 열의만으로 게임을 만들려고 했던 그들의 도전은 도전 그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없었다.
“게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또 다시 참고가 될만한 게임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블리자드의 디아블로를 접하게 됐죠. 디아블로가 가진 매우 직관적인 게임요소들은 바즈테일, 울티마 시리즈만이 RPG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기존의 생각을 180도 전향하게 해준 계기기 됐습니다”

▲문
이사의 개발자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준 디아블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디아블로는 바즈테일이나 울티마 등의 정통RPG처럼 머리 굴려가며 복잡한 게임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밟아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게임개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됐다는 것이 문 이사의 설명이다.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 온라인게임의 가능성을 발견하다
1997년 개발사를 설립해 다시 한 번 게임개발에 대한 도전을 불태웠던 문 이사는 회사운영과 개발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벽에 부딪혀 꿈을 다시 한 번 접어야 했다.
그리고 3년 뒤 학교 동기이자 현재 프리스톤 개발이사인 장순목 씨와 함께 설립했던 프리스톤의 전신인 트라이클로우픽쳐즈를 통해 비로소 97년 못다 펼친 게임개발에 대한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첫 게임으로 그토록 개발하고 싶어 했던 바즈테일이나 울티마와 같은 패키지게임이 아닌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온라인게임을 선택했다.
문 이사는 “완벽한 세계관과 그에 따른 치밀한 사회가 구현된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 온라인게임에 대한 비전을 봤다”며 “온라인으로 접근성이 강하고 유저가 반응하기 쉬우며 바즈테일과 같은 정통성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
|
|
▲문 이사가 온라인게임개발을 기획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울티마 온라인. 문 이사는 울티마 온라인에서 개발자의 자세를 배웠다고 한다 |
|
하지만 첫 작품인 ‘프리스톤테일’이 개발 될 당시 국내에서 서비스되기 시작한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와 같은 자유도 높은 해외 온라인게임들이 현지에서와는 달리 국내에서 혹평을 받으며 시장에서 외면 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 이사는 잠시 온라인게임 개발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이나 ‘에버퀘스트’의 당시 서비스 상황을 통해 문 이사는 다시 한 번 개발자만의 의욕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온라인게임은 유저들의 리액션이 매우 중요하죠. 외국 온라인게임은 기본적으로 유저들의 리액션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약한 것 같습니다. 외국 온라인게임처럼 개발자의 의지대로 유저들이 따라오기만을 바란다면 국내에서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개발에 대한 노하우는 결국 스스로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문 이사는 프리스톤테일을 서비스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게임개발에 대한 해답을 많이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도 유저들의 의견을 무시하며 자신의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개발사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저들의 성향도 많이 달라집니다. 그때는 이런 것을 잘 몰랐기 때문에 실패를 거듭한 것 같아요. 제가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 본 것은 유저의 성향이 변할 때 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연성 있는 개발자들의 자세였습니다”
문 이사는 울티마 온라인을 통해 개발자들이 갖춰야할 유연성을 배우지 못하고 개발자들의 개발력만 믿고 다시 게임개발에 도전했다면 또 쓰디 쓴 고배를 마셔야만 했을 것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게임을 비록 몸에는 좋지 않지만 진한 향과 맛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커피와 비교하며 게임도 커피처럼 그렇게 하나의 문화여야 하고 재미여야 한다고 말하는 문 이사.
그런 그는 게임으로 재투자해 돈을 벌고자 하는 현재의 유저패턴이 바뀌고 그렇게 유저가 준비가 되면 개발자로서 좀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바즈테일과 같이 높은 자유도와 철저한 역할분담 시스템으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마니아게임과 디아블로와 같이 다가가기 쉽고 즐기기 쉬운 라이트 유저용 게임을 모두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문 이사가 현재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작품은 ‘프리스톤테일’의 후속작인 ‘프리스톤테일 2nd 이니그마(가칭)’. 그의 말을 모두 듣고 난 지금 프리스톤테일 2nd 이니그마에는 어떤 게임의 노하우가 녹아들어가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 [순정남] '대책 없는 쓰레기'지만, 평가는 좋은 악당 TOP 5
- 몬길 PD와 사업부장, 프란시스와 린 코스프레 약속
- 아이온2 출시와 함께 엔씨소프트 주가 15% 급락
- 타르코프 스팀판 환불하니, 기존 계정까지 차단 당했다?
- 엔씨 신더시티, 멋진 겉모습 뒤 부실한 슈팅게임 기본기
- 라운드8 이상균 디렉터의 소울라이크 신작, 윤곽 드러났다
- "약속 위반" 엔씨, 아이온2 P2W 상품 논란 일자 철회
- 게임 과금에 '배송 실패'가 웬 말? 아이온2의 미숙한 오픈
- [포토] 지스타 코스프레, 올해 대세는 체인소맨&레제
- 모바일 '불가능'·PC '실망', 두 마리 모두 놓친 아이온2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