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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게임협회, 웹보드 자율규제 외칠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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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게임산업협회 '웹보드게임 사업자 대상 규제 검토 보고서' 보도자료 중 일부 (자료제공: 한국게임산업협회) 


지난 2월 8일에 다소 황당한 보고서를 받았다. 국내 대표 게임업체 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에서 웹보드게임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WHO ‘게임 질병코드 신설'이나 ‘셧다운제 폐지’, 전세계적으로 번지는 ‘랜덤박스’ 논란 등 중요한 의제가 많은 상황에서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한다는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업체 이권 챙겨주기로 비춰질 수 있는 ‘웹보드게임 자율규제’를 들고 왔다.

더군다나 자율규제라니. 게임업계는 작년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하고, 올해 초부터 확률 공개를 하지 않은 게임을 공개하고 있으나 게이머 반응은 ‘의미 없다’가 대부분이다. 일단 자율규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자율규제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도 믿음을 사지 못하는 마당에 사행성 이슈가 있는 웹보드게임을 자율규제 하겠다는 말은 먹힐 수가 없다.

게임업계 자율규제는 이제 시작 단계다. 단순히 ‘확률 공개’만 해놨다고 해서 할 일을 다 끝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애초에 게임업계가 ‘자율규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을 막기 위함이다. 그 중에는 획득 확률이 10% 이하인 아이템을 청소년에게 팔지 못하게 하라는 법도 있다. 여기에 작년 국정감사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사실상 도박’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엄청난 십자포화까지 맞은 상황이다.

또한, 서양에서도 ‘랜덤박스’ 규제에 대한 찬반의견이 거세게 나오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국내 게임업계가 정말로 ‘자율규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확률 공개’만 해놓고 뒷짐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게이머가 확률형 아이템에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를 끊임 없이 찾아야 한다. 하지만 해가 바뀌었음에도 ‘자율규제’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한 달에 한 번씩 미준수 게임을 발표하는 보고서가 나올 때만이다. 지금도 게이머들은 ‘자율규제’로 ‘확률형 아이템’에 얽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발 물러나서 ‘웹보드게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웹보드게임사가 냈다면 그 사업을 하는 당사자기 때문에 ‘그러려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발간 주체가 한국게임산업협회라는 것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물론 웹보드게임사도 협회 회원사고,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게임사들이 모인 이익단체다. 하지만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이익단체인 동시에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유관단체다. ‘국내 게임업계 대표 협회’로 알려진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게임업계 전체 중 일부인 ‘웹보드게임사 규제를 풀어달라’는 보고서를 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협회가 ‘웹보드게임’에 얽힌 소비자 불만을 외면하고, 회원사 이권만 챙겨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웹보드게임 자율규제’보다 중요한 이슈는 많다. 김병관 의원이 발의한 ‘셧다운제 폐지법’도 있고, WHO ‘게임 중독 질병코드 신설’도 있다. 실제로 미국 게임산업협회 ESA는 ‘WHO 국제질병분류에 게임장애를 포함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 국제질병분류에 ‘게임장애’가 포함되면 게임사 역시 사업에 제약이 생길 우려가 있다. 미국 게임업계가 움직인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겠으나 ‘국제질병분류에 게임장애를 넣지 말아달라’는 ‘웹보드게임 규제를 완화해달라’보다는 좀 더 설득력 있는 주제다. 아니면 ‘소상공인 생존권’을 걸고 나오는 PC방 협회가 차라리 더 낫다.

업계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특히 규제에 대한 이슈는 정부 또는 국회의원이 움직여줘야 현실화가 된다. 정치권에서 규제를 바꿔 줘야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권은 언제나 여론에 민감하다. 언젠가는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도 잘 자리잡고, 그 여세를 몰아 웹보드게임도 자율규제를 해보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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