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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의 무서운 악마들은 플레이어를 봐주며 게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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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을 진행한 이드 소프트웨어 시스템 기획자 커트 루디 (사진: 게임메카 촬영)

‘둠’의 가장 큰 재미는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강도 높은 전투다. 정신 없이 움직이며, 아주 크고 강한 총으로 적을 벌집으로 만드는 것. 이 원초적인 쾌감이야말로 ‘둠’이 선사하는 가장 뛰어난 재미라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견 단순해 보이는 ‘둠’ 특징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둠’은 여러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플레이어를 바삐 움직이게 만들고, 그 움직임에서 의미를 찾게 한다. 모두 치밀하게 고민한 기획의 결과물이다.

올해 GDC에서 이드 소프트웨어 시스템 기획자 커트 루디와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제이크 캠벨은 ‘둠이 계속 싸우게 하는 법 수용하기’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은 ‘둠’이 어떻게 플레이어를 끊임 없는 싸우게 만들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게 하는지 방법을 담았다.

강연에서 ‘둠’이 끊임 없는 전투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보상은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둠’은 치밀한 구성을 통해 플레이어가 적을 압도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루디와 캠벨은 ‘둠’이 자신감을 주는 방법을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플레이어 동기부여, 전투 기획, 인공지능 기획, 인카운터 기획이다.

부담은 줄이고 보상을 더했다, 다양한 시스템을 통한 동기부여


▲ '둠'답다는 게 무엇인지부터 고찰했다는 유명한 일화로 시작된 강연 (사진: 게임메카 촬영)

루디는 ‘둠’ 리부트 시 고민했던 첫 번째 문제를 꺼내며 강연을 시작했다. ‘둠’다운 재미라 하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기존 ‘둠’ 시리즈는 점차 ‘둠 같지 않다’는 비판을 들으며 쇠락하고 있었다. 따라서 리부트 ‘둠’은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개발을 시작해야 했다.

개발 팀이 내린 결론은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며 싸우는 긴장과 쾌감’이었다. 무기에서 발사된 수많은 불꽃들이 허공을 수놓고, 플레이어는 그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악마들을 찢고 터뜨리고 박살낸다. 그것이 바로 팀이 분석한 ‘둠’의 재미였다. 이에 개발 팀은 우선 ‘둠’에 적용할 수 있는 ‘차량’, ‘이단 점프’, ‘슬라이드’, ‘재장전’, ‘파쿠르’ 등 다양한 요소를 모아둔 다음, 해당 요소가 끊임 없는 전투에 도움이 되는지 분석했다.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배제했다.


▲ '끊임 없이 싸우게 함'이라는 필터에 맞지 않으면 다 제거했다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루디는 그러한 예로 재장전을 들었다. 재장전은 많은 FPS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요소지만, 전투 흐름을 끊고 플레이어를 잠시 무방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둠’ 취지에 맞지 않았다. 이에 ‘둠’은 과감히 재장전 요소를 없앴다.

반면에 근접전투 ‘글로리 킬’은 플레이어가 상황을 주도하는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대표적인 시스템이다. 괴물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FPS에서 플레이어는 적의 접근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둠’에서는 플레이어가 먼저 적에게 뛰어들어 맨손으로 목을 부러뜨리거나 장기를 적출하는 등의 화끈한 액션을 보여준다. 이처럼 적을 근접거리에서 잔혹하게 쓰러뜨리는 것을 ‘글로리 킬’이라 하며, 성공할 시에는 탄약 등의 추가 보상을 지급한다.


▲ '글로리 킬'을 하면 내가 무척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글로리 킬’은 적에게 가까이 가 맨손으로 끝장내야 하므로 총을 쏘는 것에 비해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글로리 킬’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보상을 제공한다. 추가 아이템을 '캐릭터'에게, 자신감 고양을 '플레이어'에게 보상한다. ‘글로리 킬’ 보상에서 오는 쾌감을 맛본 플레이어는 더 많은 보상을 위해 점점 물러서지 않고 도전적 전투를 벌이게 된다. 플레이어에게 근접전투의 동기를 강하게 부여하는 셈이다

이렇듯 ‘둠’은 플레이어가 스스로 무방비하다 느낄 만한 요소를 배제한 반면, 끊임 없이 움직이고 싸우는 것은 즐기도록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다양한 보상 시스템을 통해 전투를 유도하되, 전투 중 불리하다고 느낄 만한 부분은 없애 부담을 줄인 것이다.

‘상황을 지배하는 쾌감’에 집중한 전투 기획


▲ 벽과 통로는 절반으로 줄이고 360도 '아레나 스타일'로 바뀐 맵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전 작품들에서 ‘둠’은 좁은 공간에서 방과 통로를 오가며 악마들과 싸우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사실 좁은 통로라는 공간적 제약은 이동과 전술에도 제약이 됐다. 전투도 통로를 따라 쏟아지는 적들의 ‘웨이브’에 맞서는 단숨함의 반복이었다. 오늘날 FPS에서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다.

이에 ‘둠’은 자유롭고 활발한 행동을 유도하도록 맵 구성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가장 단적인 변화는 좁은 통로에서 직선적으로 나아가기만 하던 구성에서 탈피해, 탁 트인 공간에서 360도 전투를 하게 바뀐 것이다. 벽과 구불거리는 통로 수도 이전 절반으로 줄였다. 루디는 이를 ‘아레나 스타일’로 설명했다. ‘아레나 스타일’에서는 이동에 제약이 적고, 뒤로 돌아 적을 치는 등 변칙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또한 사방에서 다가오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덕에 보다 밀도 있는 긴장감을 제공할 수 있다.


▲ '웨이브' 전투보다 '아레나' 전투가 더 안정적인 긴장감을 제공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플레이어가 적을 보자마자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고민에 빠진다. 그에 따라 전투도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치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예를 들어 적을 하나씩 유인해 처치하거나, 안전한 먼 곳에 숨어서 저격을 하는 식이다. 이는 ‘둠’이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둠’은 적도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둠’에 등장하는 악마는 얼핏 보면 굉장히 무섭고 기괴하게 보이지만, 사실 조금 살펴보면 굉장히 알기 쉬운 친구들이다. 이들의 특징이나 전투 방식은 외모에 이미 다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임프’는 접근전에 약하기 때문에, 좀 떨어진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불을 던지는 ‘궁사’ 클래스다. 이러한 특징은 비실비실한 체구에 손에는 불덩이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 한 눈에 특징을 알아볼 수 있게 생긴 '임프' (사진: 게임메카 촬영)

적을 알아보기 쉽게 만들면 플레이어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싸우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면 고민에 빠진다. 그렇기에 ‘둠’은 의도적으로 외모에서 적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으며, 너무 복잡한 특징이나 행동 패턴은 배제했다.

다양한 상태 이상도 플레이어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도입됐다. ‘둠’의 악마들은 강건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몇 대 맞다 보면 움찔거리며 잠시 대응을 못하며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역시 플레이어가 자신의 막강한 힘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입된 요소다. 게임적으로 적이 잠시 약해진다는 이득과, 상황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쾌감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 적의 외모와 설정도 '이렇게 강한 놈을 잡았어!'라는 스토리텔링에 도움을 준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 악마들은 봐주며 플레이 합니다, 자신감 더해주는 인공지능


▲ 강연을 진행한 이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제이크 캠벨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인공지능도 플레이어게 자신감을 주도록 기획됐다. 사실 이 악랄하게만 보이는 악마들은 플레이어 사정을 많이 봐주고 있다. 캠벨은 그 예로 명중률을 들었다. 적은 가만히 서 있는 플레이어는 꽤 잘 맞춘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명중률은 극도로 줄어든다. 그 이유는 사실 움직이는 플레이어는 잘 못 맞추도록 프로그램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캠벨은 ‘의도적인 빗맞춤(purposeful missing)’이라고 설명했다. 플레이어가 움직일 때와 움직이지 않을 때 맞을 확률이 비슷하다면, 회피기동을 할 동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또 회피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 결과 택한 방법은 인공지능이 움직이는 플레이어에 대한 명중률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연사속도도 알아서 조절한다. 악마들이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연사속도는 생각보다 높다. 그러나 재장전이 없는 게임 특성상 이들이 플레이어 수준의 최대 연사속도로 발사한다면 플레이어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캠벨은 이에 악마들이 몇 발 쏘고 스스로 발사를 중단하는 ‘냉각 시간’을 갖도록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 제약을 풀자 정말 자비심 없게 나오는 적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인공지능이 플레이어 사정을 봐주는 또 다른 예는 ‘글로리 킬’이다. 앞에서 설명한 ‘글로리 킬’은 플레이어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도입됐지만, 적을 처치하는 연출에 시간이 꽤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보기는 좋지만 그 사이 다른 적이 공격해오면 어떻게 하나 싶은 불안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답은 물론 ‘글로리 킬’ 중에는 플레이어가 무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적들은 플레이어가 무적인 것을 인식 못하고 계속 공격할 테고, 그러면 멋진 ‘글로리 킬’ 연출 중간에 적들이 끼어들어 훼방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캠벨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신사적인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글로리 킬’이 시작되면 적들이 ‘지금 플레이어는 무적이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물러선다는 것이다. 덕분에 ‘글로리 킬’ 연출도 방해 받지 않는다.

이렇듯 ‘둠’ 인공지능은 적절한 놀이상대가 되어주어 플레이어의 자신감을 고양시키되, 위축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적당히 제약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긴장감 넘치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여러 악마를 상대해도 불리하지 않은 이유, 인카운터 기획에 있다


▲ '토큰 풀' 작동 방식 (사진: 게임메카 촬영)

‘둠’은 단신으로 수많은 악마를 상대하는 주인공의 거침 없는 행보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는 홀로 여러 적을 상대해야 하는 구간이 대단히 많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가 불리하다고 느낄 만한 요소가 적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적들의 독특한 집단전 패턴에 있다. ‘둠’ 악마들은 저마다 특수한 기술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악마는 무리 단위로 일종의 ‘특수기술 사용횟수’를 공유한다. 이를 ‘토큰 풀(token pool)’이라 한다.

‘토큰 풀’이 쓰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플레이어와 싸우던 악마 중 하나가 특수기술을 쓸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토큰 풀’에 ‘토큰’을 요청한다. 만약 지금 특수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다른 악마가 없다면, 요청한 악마는 ‘토큰’을 받아 소모하는 것으로 특수기술을 쓸 수 있다. 만약 ‘토큰 풀’에 더 이상 ‘토큰’이 남지 않으면 어떤 악마도 특수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방식 덕에 한 무리의 악마는 특수기술을 동시에 여럿이 쓸 수 없고, 횟수도 제한된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체계적으로 맞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만 상급 악마는 ‘토큰 풀’의 ‘종류와 개수가 더 많다. 이는 여러 종류의 특수기술을 여러 번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플레이어를 빛내기 위해 치밀하게 구성된 무대


▲ 적 인공지능의 상당부분이 플레이어를 봐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캠벨은 ‘끊임 없이 싸우게 하기’ 전략은 모두 한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한다. 플레이어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모든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자기 선택과 행동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원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며 싸우는 최상의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둠’과 이번 강연이 전해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뛰어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잘 다듬어진 체험을 보장하는 철학, 규칙, 기술을 갖춘다는 것이다. ‘둠’은 개발 시작부터 ‘플레이어가 기대하는 재미는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정체성을 분명히 정했고, 그에 맞게 모든 요소를 제단하고 구성했다. ‘둠’이 메타크리틱 85점에 달하는 높은 점수와 함께 게이머의 극찬을 받은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장인정신에 있지 않을까.


▲ 모든 것은 플레이어를 위해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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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벽
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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