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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질병의 시대 ⑨ 과잉 약물치료, 게임장애 대안 아니다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과 기자클럽 공동기획: 게임 질병코드,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 주: 한국게임사는 근본적으로 모순의 역사다. 게임은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으로 포장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고 있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몰아넣었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받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외면 받는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작년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본격적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과거 한국게임이 받아온 탄압의 역사와 게임 질병시대를 맞은 현재의 상황을 다양한 시각에서 담아보았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현상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질병코드 등재만이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게임이용장애’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가 부족한 것은 물론 관련 증상을 겪는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득’ 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심리치료나 행동치료 등 심리사회적 접근을 통한 지역사회 기반의 재활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특히 ‘게임이용장애’를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약물에 의존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과잉의료화에 대한 우려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게임업계가 관련 연구활동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성만 회장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기에는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성만 회장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기에는 연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장애’로 분류하기엔 병인론·병리론 연구 ‘부족’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포함시킨 이후 각계각층에서 이의가 제기됐다. ‘게임이용장애’을 질병으로 분류하기에는 연구결과가 부족하다는 의견이었다.

심리학 전문가들의 견해도 비슷했다. 질병으로 분류할 만큼 제대로 된 연구나 논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조현섭 한국심리학회장(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은 “연구가 부족하다. 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연구도 있지만 게임 아닌 다른 자극을 일정하게 줘도 뇌는 변한다”며 “연구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성만 한국중독심리학회장(한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도 “ICD-11 준비 과정에서 진행된 전문가 내부 검토가 온라인 회의를 통해서만 이뤄졌다”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위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졌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전한다.

특히 신성만 교수는 병인론과 병리론적 연구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장애’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병의 원인을 살피는 ‘병인론’과 병의 진행과정 및 생리적 변화에 대한 ‘병리론’ 중 하나라도 충족해야 한다. 반면 ‘게임이용장애’는 병인론적이나 병리론적으로 봐도 아직은 ‘장애’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병인론·병리론 분석 (자료제공: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성만 회장)
▲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병인론·병리론 분석 (자료제공: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성만 회장)

실제 병인론적 관점에서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이 ‘게임’인지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게임이용장애’를 겪는 이들의 상당수가 우울증을 비롯한 다른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원인이 돼 ‘게임이용장애’를 겪는 것인지 다른 질환의 영향으로 ‘게임’을 오래하고 ‘게임이용장애’ 현상에 빠진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중앙대 한덕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2018년 3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로 분류된 이의 75%는 우울증 환자였고 57%는 불안장애를 앓고 있었다. 60%는 강박증에 해당했으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질환은 100%였다. 다른 질환과 너무 많이 관련돼 독립적으로 살펴보기 어려웠다. 이는 게임이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한 교수는 지난해 6월 게임과몰입힐링센터 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게임이용장애(게임과몰입)으로 센터를 방문한 사람의 88.5%는 공존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63.3%는 가족환경 문제, 68.2%는 학교환경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신성만 교수가 “(게임이용장애는) 진단명을 부여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근본적인 원인이 게임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병리론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중독 환자의 경우 1년 뒤에도 같은 진단을 유지하는 비중이 70% 이상으로 꾸준하지만 ‘게임이용장애’는 지속률이 일정하지 않다. 

다수의 조사에서 1년 및 2년 뒤의 게임이용 지속률이 30%에서 84%로 매우 상이하게 도출됐다. 코호트 유지가 안 된다는 의미다. 코호트는 특정 경험을 공유하는 동질성을 지닌 집단을 의미한다.

신 교수는 “동일한 진단기준에 따라 분류했다면 1년 뒤에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어야 하는데 ‘게임이용장애’는 잘 쳐줘도 30% 이하”라며 “기본적인 신뢰도나 타당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지속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현상을 진단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이용자 행태 변화 (자료출처: 2018 게임이용자 패널연구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 게임이용자 행태 변화 (자료출처: 2018 게임이용자 패널연구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는 건국대 정의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연구조사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정 교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게임이용 행태 변화를 조사했다. 게임과몰입군과 일반군 청소년을 구분해 만 4년간 추적하며 변화를 살폈다.

결과는 신 교수의 지적과 일치한다. 특별한 조치가 없었음에도 게임을 과도하게 즐기는 과몰입군 청소년 중 50~60%가 매년 일반군으로 전환됐다. 일반군에서 과몰입군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존재했지만 과몰입 상태를 계속 유지한 청소년은 극히 드물었다. 5번의 진단에서 모두 과몰입 진단을 받은 청소년은 11명으로 1.4%에 불과했고 해당 청소년들은 특별한 병적 증세를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정 교수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게임과몰입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게임이용시간이 아닌 자기통제력이었다”며 “특히 5년간 과몰입군을 지정받은 청소년들은 특별하게 병적인 증세도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국 스텟슨대학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역시 “실제 병적인 증후군을 보이는 게임 이용자는 1~3% 정도이고 한국과 중국은 좀 더 높은 편이지만 우려할 정도로 대규모 수준은 아니다”라며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표출하게 만드는 스트레스 등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도 나온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신성만 교수는 이에 대해 진단기준부터 잘못됐다고 설명한다. 행동중독에서 주로 적용되는 기준을 그래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코호트 유지가 안 되는 것도 기본적인 진단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신성만 교수는 이에 대해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사유가 아니어야 한다.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일시적으로 슬픈 사람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릴 수 없다”며 “청소년들도 스트레스를 줄이면 게임이용장애 증상이 안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단명만 만들어서 게임을 좀 하면 정신장애라고 규정한다면 과연 치료할 방법은 만들어져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질병 등재되면 약물치료 의존 ‘우려’

이런 탓에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되면 더욱 문제라고 지적한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질병코드 등재로 오히려 ‘게임이용장애’ 상태에 빠진 청소년이나 성인 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본다. 과잉진단과 사회적인 낙인도 우려되는 부분들이다.

우선 현행 의료법상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코드로 등재될 경우 지역사회의 심리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현행 법률은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행위를 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정신적인 문제일지라도 질병으로 규정될 경우 심리학자가 치유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현저하게 부족한 전문의 숫자에 따른 과잉약물 치료 우려다. 여기에 사회복귀를 위한 실질적인 치유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도 존재한다.

일단 정신장애인을 치료할 정신과 전문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국내 중증정신장애인은 약 42만명에 달한다. 반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정신과 전문의 수는 3584명에 불과하다. 중증정신장애 환자를 치료하기에도 모자란 숫자다. ‘게임이용장애’ 환자를 돌볼 여지가 매우 희박한 수치다. 결국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기보다는 손쉬운 약물처방에 의존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우려다. 이런 정신과 약물치료는 과도할 경우 발달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신성만 교수는 “전문의 부족 현상으로 인해 중증정신장애인을 진료할 때도 3분의 면담만으로 진단을 하고 약물을 처방하는데 게임이용장애를 치료할 때도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약을 처방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정신과적 약물은 부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청소년의 경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청소년에게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동의가 이뤄진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심리학적 접근도 병행되어야

약물치료가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임이용장애’ 증상을 겪는 청소년들의 상당수가 게임이 아닌 주변의 여러 환경 문제로 인해 게임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외면하고 약물에 의존해서는 실질적인 치료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게임에 빠진 이들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심리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뇌의 문제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건강한 상호작용이 있어야 올바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약물은 근본적인 원인과 기저에 깔린 메커니즘은 그대로 두고 증상만 완화해 약에 의존하는 상태로 만들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현섭 교수도 “아이들의 게임 문제의 80%는 부모 문제라는 것이 나의 경험”이라며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부모와 심리상담을 통해 관계 설정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게임과몰입 모델(자료출처: 2018 게임이용자 패널연구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 게임과몰입 모델(자료출처: 2018 게임이용자 패널연구보고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에 대한 근거도 정의준 교수의 조사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한 가장 주요한 요인은 자기통제력이었고 학업스트레스와 부모의 과잉간섭 및 과잉기대, 친구 및 교사의 지지 등이 영향을 줬다. 부모의 감독과 과잉간섭 및 과잉기대, 교사 및 친구 등이 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이에 따라 자기통제력을 잃어 게임에 빠진다는 의미다. 게임에 빠진 것은 결과일 뿐 게임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것이다.

일례로 조현섭 교수의 경우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이용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청소년을 상담한 결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해당 청소년은 게임 이용시간 때문에 부모에게 자주 혼이 났고 스스로도 줄이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게임을 오래했다. 

흥미로운 것은 청소년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게임을 하기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서로 말을 못하고 게임을 계속 했다는 것. 조 교수는 친구도 함께 상담하면서 자연스럽게 해당 청소년이 게임 이용시간을 줄이도록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조현섭 교수는 심리사회적 접근이 아닌 질병으로 접근할 때의 낙인 효과를 우려하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환자로 규정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라나는 청소년기의 경우 더욱 큰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조 교수는 “증상은 여러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벼운 단계는 심리상담만으로도 가능하다”라며 “약물치료가 전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만으로는 안되고 부모와 친구 관계 등 심리사회적인 접근이 동반돼야 회복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약을 먹는 것만으로 해소가 된다면 우리도 좋겠다”라며 “그러나 원인은 너무 다양하고 그런 방법도 개발이 안 됐다”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로는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한 게임업계의 연구활동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한 정신의학계의 연구활동은 활발하지만 반대의 연구는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연세대 윤태진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국내외 게임이용장애 관련 논문 1500여편을 대상으로 분석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정신의학 분야에서 작성한 논문이 많았다. 91편의 논문 중 59.3%는 정신의학이고 심리학은 15.4%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은 오히려 심리학 논문이 더 많거나 비슷한 수준인 것과는 달랐다.

또 정부 주도로 연구비가 집행됐고 역시 정신의학 분야에 주로 지원됐다. 일례로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약 17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게임 디톡스 사업의 경우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진 교수가 사업총괄책임자 겸 범부처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신성만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해 다른 방향의 연구가 부족하다”라며 “이런 연구활동을 게임업계가 지원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뉴스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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