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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를 향한 넥슨의 짝사랑은 아련함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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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현재 넥슨의 전반적인 게임사업은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기 IP 다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 게임사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강점이다. 하지만 넥슨이 몇 년간 애정공세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좋은 결실을 보지 못하는 분야가 하나 있다. 서브컬처, 미소녀게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일면 ‘모에’ 게임이다.

모에는 원래 일본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특정 작품이나 캐릭터를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 열렬한 애정을 품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게임에서 모에라는 것은 연정을 품을 정도로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한다. 국내 시장에서는 2017년에 중국에서 상륙한 소녀전선이 총기 모에화 게임이라는 특이점을 앞세워 인기를 끌며 업계 눈길을 끌기 시작했고, 지금도 붕괴3rd, 에픽세븐, 명일방주 등이 구글 매출 상위권에 자리하며 나름의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사실 넥슨이 모에에 주목한 시점은 소녀전선 출시 이전이다. 넥슨 첫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퀴즈퀴즈는 지금 모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지만,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캐릭터 꾸미기로 인기를 끌었고, 이 부분이 주요 과금 모델로 자리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본인의 캐릭터를 애정을 가지고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 부분을 겨냥한 게임도 꾸준히 냈으나 뒷맛은 씁쓸했다.

“그다지 모에하지 않네요”

▲ 2017년에 진행된 하츠네 미쿠 콜라보레이션 당시 M.O.E. 대표 이미지, 그런데 잠깐만 콜라보 대상이... (사진제공: 넥슨)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넥슨은 모에가 좋은 소재인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시행착오가 많았다. 첫 번째 사례는 이름부터 작정하고 ‘모에’를 앞세웠던 모바일게임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다. 영어 약자부터 대놓고 M.O.E.였는데 2016년에 등장해 3년 만에 아쉽게도 문을 닫고 말았다.

M.O.E.가 실패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름부터 ‘모에’였음에도 개발자들이 모에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정식 출시에서는 나아졌으나 비공개 테스트 단계에서 SRPG로서는 완성도가 높은데 캐릭터가 모에하지는 않다는 평을 받았고, 출시 후에도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높일 수 있는 개별 에피소드의 경우 감정을 교류하며 좋아하는 캐릭터를 알아간다는 것보다는 여러 선택지 중에 맞는 것을 고르는 정답 맞히기에 가까운 느낌이라 아쉽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 카운터사이드 대표 이미지 (사진제공: 넥슨)

두 번째는 올해 2월에 출시된 카운터사이드다. 뒤에서 소개할 넥슨의 보기 드문 모에 수작이었던 클로저스를 총괄한 류금태 대표의 스튜디오비사이드에서 만든 모바일 수집형 RPG다. 많은 캐릭터를 모으는 것이 핵심인 수집형 RPG의 미덕은 ‘모으고 싶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카운터사이드의 경우 테스트는 물론 정식 출시 단계에서도 캐릭터 모델링과 일러스트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을 면치 못했다. 아울러 미소녀와 밀리터리가 공존하는 세계관도 어색하고 최종 콘텐츠도 모에와는 거리가 먼 실시간 대전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무엇이 모에한지는 아는데 다른 부분이 좀…

물론 넥슨이 방향을 잘 잡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운이 나쁜 것인지, 다른 부분이 꼬이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낸 경우도 있다. 이 부분 대표 주자는 최근 마비노기와도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케모노 프렌즈다.

▲ 케모노 프렌즈, 원래 넥슨 게임이 시작이었는데... (사진제공: 넥슨)

지금은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자리했으나, 케모노 프렌즈 시작은 게임이었다. 넥슨재팬이 2015년에 동물을 모에화한 소녀 캐릭터 다수를 앞세운 케모노 프렌즈 게임을 모바일로 일본에 출시했으나 1년 8개월 만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서비스를 접은 이유는 흥행 실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1달 후에 나온 애니메이션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당시 넥슨재팬 우에무라 시로 CFO는 애니메이션 방영 후 1달 뒤에 진행된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알지만 게임 서비스를 재개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케모노 프렌즈의 경우 IP 자체는 충분했고, 현지에서도 컬트적인 인기가 있었으나 넥슨에서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너무 이르게 서비스를 접어버리며 숨은 옥석을 차버린 안타까운 사례다.

▲ 최근에 걸그룹 오마이걸 스킨이 나온 클로저스 (사진제공: 넥슨)

서브컬처를 앞세운 온라인게임 중 보기 드물게 선전하며 눈길을 끌었던 클로저스도 모에 방향은 잘 잡았지만 다른 문제로 기세가 꺾인 케이스다. 2015년 출시 당시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녀 같은 소년’ 캐릭터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남다른 캐릭터성으로 무장했고, 다소 중2병 느낌이 강했지만, 초기 스토리도 나름 흥미를 끈다는 평을 얻었다. 여기에 2016년에 터진 성우 논란도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며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막지 못했다. 2018년에 터진 일러스트레이터 관련 사태로 게임을 지키고 있던 골수 유저들이 대거 이탈했고, 아직도 당시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올해 4월에야 해결된 메모리 누수 문제, 예전보다 낮아진 스킨 완성도 등이 문제로 지적되며 침체기에 빠졌다.

마지막은 고작 4개월 만에 현지 서비스 종료가 결정된 아크레조나다. 넥슨재팬이 2012년에 365억 엔(현재 기준 한화 4,200억 원)을 들여 인수했던 글룹스가 만들었고 넥슨재팬이 일본에 서비스했다.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풍 그래픽에, 퍼즐을 풀며 여러 캐릭터를 모으는 수집에 초점을 맞춘 모에 게임이었다. 배경음악도 좋고, 국내에서도 일러스트가 예쁘다고 평가될 정도로 캐릭터 완성도도 높았다. 다만, 게임성에는 개성이 부족했다. 특히 퍼즐앤드래곤 등 퍼즐과 RPG를 접목한 기존 게임과 차별화가 부족하다는 평이 뒤따랐다. SRPG로는 괜찮은데 모에가 부족하다고 펑가됐던 M.O.E.와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셈이다.

▲ 아크레조나 대표 이미지 (사진출처: 구글플레이 공식 페이지)

모에를 향한 외사랑, 이번에는 결실 볼까

이처럼 넥슨은 모에와 힘든 짝사랑을 이어나가고 있으나 아련함만 남겼다. 하지만 분위기를 전환할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넥슨은 HIT, V4까지 모바일게임 흥행작을 빚어낸 넷게임즈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넷게임즈는 지금 모에한 신작 '프로젝트 MX'를 준비하고 있고, 요스타와 손을 잡고 모에 본토라 할 수 있는 일본에 상륙할 예정이다.

아직 공개된 내용은 많지 않지만 애니메이션풍 그래픽에 여러 학원에 소속된 학생들을 모아서 도시에서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 모바일 RPG라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개발 총괄이다. 큐라레: 마법도서관을 통해 만만치 않은 모에력을 드러냈던 김용하 PD가 넷게임즈에 합류해 이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기대감이 증폭됐다.

2014년 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서 수줍은 목소리로 ‘모, 모에란 무엇인가’를 외치며 모에론을 강연했던 김용하 PD와 넷게임즈, 넥슨의 만남은 달콤한 해피 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모에를 향한 넥슨의 외로운 외사랑을 끝내줄 매력적인 ‘모에’한 신작이 나오기를 바라본다.

▲ NDC 14 모에론 강연 당시 김용하 PD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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