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심의 결과? 스팀서 '야겜' 100여개 일괄 삭제

PC게임 플랫폼 스팀이 대규모 성인게임 삭제를 시작했다. 지난 16일 업데이트된 성인 콘텐츠 가이드라인에 따른 행보로 보인다. 이로써 가이드라인 개정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음이 증명됐다.

스팀 데이터 트래킹 사이트 Steamdb에 따르면, 국내 시간 기준 17일 오전 3시부터 오전 8시까지 약 5시간 동안 100여 개에 달하는 성인용 게임(DLC 포함)이 스팀 상점에서 사라졌다. 이는 평소 스팀에서 보기 드문 대량 삭제 사례다. 삭제된 게임들은 'Tutor X Hypnosis2', 'Succubus in Wonderland', 'Family Secrets: Mommy', 'Golden Legend -Harald Quest-', 'Sex Adventures - Naughty Sisters' 등 '누드'나 '헨타이' 태그를 단 선정적 게임에 집중돼 있다. 

이번 대량 삭제는 16일 발표된 새로운 금지 게임 가이드라인 항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히는 '스팀의 결제 대행사, 관련 카드 네트워크 및 은행 등이 정한 기준을 위반하는 특정 종류의 성인 전용 콘텐츠'다.

업계에서는 이번 스팀 가이드라인 개정에 대해 비자(Visa)와 마스터카드(MasterCard) 등 주요 카드사들이 콘텐츠 업계 전반에 걸쳐 시행하고 있는 성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한 결제 제한이 스팀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라 해석하고 있다. 다만, 위 카드사들은 자신들이 콘텐츠를 검열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관련 기준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삭제된 게임들의 목록을 통해 게임업계엔 어떤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지 분석이 가능하다. 이에 100여개의 삭제 게임 목록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명확한 삭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구난방이었다. 그래픽 스타일로 보면 전통적인 일본풍 2D 미소녀 게임부터 서양 스타일의 3D 게임, 실사풍 게임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일부 게임은 제목에 'Sister', 'Mommy', 'Family' 등 민감한 단어가 포함되었으나, 그렇지 않은 게임의 수가 더 많았다.

소재 또한 과거 콘텐츠 업계에서 제한 조치를 받았다고 알려진 페티시, BDSM, 퀴어 콘텐츠는 거의 없었고, 일반적인 이성 간 성애를 다룬 게임부터 단순한 퍼즐 맞추기형 일러스트 감상 게임까지 전방위적으로 삭제가 이루어졌다. 여성 캐릭터의 외형적 나이도 전방위에 걸쳐 분포돼 있어, 대체 어디까지 불허 기준으로 삼는지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스팀 태그에서 '누드', '선정적 콘텐츠', '헨타이'를 클릭했을 때 메인에 표시되어 판매 중인 게임 중에는 'Don’t Tell Mom: I Fed My Stepsister', 'Mad Island', 'Winter ~Life in the Countryside~', 'NTR 오피스' 등 다소 민감한 소재를 다룸에도 이번 삭제를 피해간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 물론 현재 스팀에 등록된 성인용 게임의 수가 최소 7,000개에서 1만 개를 넘어갈 것으로 추정되기에,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모니터링 하고 삭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태그 메인에 걸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들이 첫 검열을 피해갔다는 것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성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 결제 중단 등 제재 조치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다수의 성인 콘텐츠 플랫폼이 큰 타격을 입거나 우회 결제 장치를 도입해야 했으며, 콘텐츠 제작자들도 계정 정지, 콘텐츠 삭제, 결제 중단 등 광범위한 피해를 겪었다. 특히 비주류적인 성적 취향 콘텐츠에 대한 검열이 심화되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규제 흐름은 미국 포르노 사이트를 넘어 일본의 '오타쿠 콘텐츠'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DLsite', 'FANZA 동인', '만화 도서관 Z' 등 여러 플랫폼에서 비자 카드 사용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게임업계의 대표 플랫폼인 스팀에도 영향이 미친 것이다.

스팀의 성인 콘텐츠 검열은 이제 막 시작됐다. 만약 현재 삭제된 작품 대다수가 결제 대행사나 카드사가 정하는 규칙에 어긋난다고 가정한다면, 현재 스팀에 등록된 성인 게임 중 과반수 이상이 이러한 영향을 받아 예고 없이 스토어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밸브의 추가적인 입장 표명이나 새로운 규제 가이드라인 발표 등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