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공주를 옹립해 왕위에 올려라, 하트 오브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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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처음으로 실물 카드로 구성된 보드게임을 구매하며 덱빌딩과 연을 맺었습니다. 도미니언이라는 덱빌딩 게임을 사서 플레이했을 때의 재미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카드를 사고 덱을 꾸린다는 개념이 낯설었지만, 한두 판 하다 보니 헤어나올 수 없게 됐죠. 특히 직접 모은 카드가 맞물릴 때 터지는 쾌감은 단순한 운의 영역을 넘어서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하트 오브 크라운 박스 이미지 (사진: 게임메카 촬영)

대학생 때 처음으로 실물 카드로 구성된 보드게임을 구매하며 덱빌딩과 연을 맺었습니다. 도미니언(Dominion)이라는 덱빌딩(Deck Building) 게임을 사서 플레이했을 때의 재미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카드를 사고 덱을 꾸린다는 개념이 낯설었지만, 한두 판 하다 보니 헤어나올 수 없게 됐죠. 특히 직접 모은 카드가 맞물릴 때 터지는 쾌감은 단순한 운의 영역을 넘어서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덱빌딩에 완전히 매료됐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게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게임이 이번에 소개할 '하트 오브 크라운'입니다.

일본 중세 판타지 애니메이션 느낌 강한 아트워크

'하트 오브 크라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아트워크입니다. 일본에서 제작한 중세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아트워크로, 많은 게임 사이에서도 비주얼만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이 아트워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도미니언을 비롯해 그동안 즐겨온 유로 게임(독일식 보드게임)과는 디자인 콘셉트가 많이 달랐습니다. 한층 진보된 덱빌딩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기대감은 높았지만, 막상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 아트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부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구매한 후에도 모임에 게임을 소개하고 플레이하기 망설여졌죠. 그럼에도 구매를 결정한 이유는 게임성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도미니언 이후 덱빌딩 게임에 대한 갈증이 컸고, 그 갈증을 해소할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니까요.


▲ 룰북(상)과 본판 및 확장 2개 박스(하)의 아트워크 모두 테마가 뚜렷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공주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귀여운 느낌을 강조한 비주얼이 눈길을 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덱빌딩 명작 '도미니언'과의 차이점은?

하트 오브 크라운의 기본 흐름은 도미니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 턴 카드 5장을 손에 쥐고, 그 카드로 행동하거나 시장에서 새 카드를 구매해 덱을 강화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부분에서 영리한 개선점이 눈에 띕니다. 도미니언에서는 행동 횟수를 머릿속으로 셈하며 플레이해야 했는데, 하트 오브 크라운은 '링크'라는 개념을 통해 이 과정을 훨씬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카드를 낼 때마다 행동 횟수를 입으로 되뇌어야 했던 번거로움이 크게 줄었죠.

시장 구성 방식도 다릅니다. 도미니언은 시작 시 시장 카드가 모두 공개되지만, 하트 오브 크라운은 한꺼번에 열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운의 요소가 적절히 개입되며 숙련자와 초보자 간 격차가 좁혀지는 효과를 냅니다. 처음 게임을 접하는 플레이어도 충분히 이겨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덱빌딩의 재미를 알게 한 '도미니언', 현재는 신판이 판매 중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턴이 오면 손에 든 카드 5장을 내려놓으면서 사용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카드 오른쪽의 금색 삼각형이 '링크' 표시이며, 추가로 카드를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카드 하단 가운데에 왕관 문양과 함께 표시된 숫자는 황제 옹립에 필요한 '계승점'이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구매할 수 있는 카드가 열리는 시장, 여덟 종류가 무작위로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종류 카드가 여러 장으로 쌓여있는 경우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하트 오브 크라운의 가장 큰 차별점은 따로 있습니다. 뒤이어 살펴볼 '황제 계승'입니다.

선택한 공주를 황제로 옹립하라

하트 오브 크라운에서 승리하려면 단순히 승리 점수 카드를 많이 모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공주를 옹립하고, 그 공주를 중심으로 계승점을 20점 쌓아야 비로소 이길 수 있습니다.

공주를 세우려면(게임에서는 옹립한다고 표현합니다) 금화 합계를 6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이후부터 덱은 공주를 황제로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됩니다. 카드를 구매해 계승점을 올릴지, 아니면 상대의 계승점 상승을 막을지 매 순간 고민해야 하죠.

▲ 공주를 옹립한 상황, 옹립이 끝난 후 영지 카드 세 장을 앞에 놓아 다스리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공주마다 고유한 특수 기능이 있다는 점도 전략폭을 넓혀줍니다. 어떤 공주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후 덱 구성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주를 세우는 타이밍과 선택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전략 요소가 됩니다. 도미니언이 내 영지를 키운다는 느낌이라면, 하트 오브 크라운은 왕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치, 전략을 통해서 공주를 반드시 황제로 만들겠다는 암투 느낌이 납니다. 

▲ 랜덤으로 깔리는 행동 카드 시장과 계승점을 더해주는 궁중시녀·의원·공작 카드가 있다. 도시와 대도시 카드에는 영지를 다스리면서 받는 세금이 표시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본판만 해도 공주가 여섯 명이다, 공주는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옹립하는 순간 플레이 양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일러스트 때문에 멀리했던 게임, 스팀이 다리를 놓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실물 게임은 한동안 플레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지금까지 즐겨온 보드게임과는 다른 디자인 콘셉트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스팀 버전이었습니다. 출시 당시 구매해뒀던 스팀 버전 덕분에 혼자서도 간간이 게임을 즐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게임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디지털 버전의 가장 큰 장점은 인원 걱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2인부터 4인까지 컴퓨터를 상대로 다양한 플레이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장 카드 구성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크게 달라지는데, 기본 세트 외에도 다양한 시장 카드 조합을 제공해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 하츠 오브 크라운 스팀 버전 시작 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 현재는 플레이 인원이 없어 거의 CPU와 플레이만 가능하다, CPU 난이도 설정도 가능하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카드 각각의 효과를 카드에 적힌 텍스트만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디저털 버젼이기에 어떤 기능이 있다는 이펙트는 찾아볼 수 없어 직접 플레이하며 경험해야 합니다. 게임 화면 크기 조정이 되지 않는 점도 불편했죠. 그래도 상대 눈치 보지 않고 전략을 천천히 고민할 수 있다는 건 디지털 버전만의 분명한 매력입니다.

▲ 다양한 카드 조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카드 기능이 바로 보이지 않고, 마우스 오른쪽 클릭을 통해 확대해야만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면역이 생기고 나서야 발견한 재미

스팀 버전을 통해 게임에 충분히 익숙해지고 나니, 아트워크에 대한 거부감도 자연스럽게 옅어졌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실물 게임을 다시 펼쳐볼 마음이 생겼죠.

다시 해보니 실물 플레이는 예상보다 훨씬 쾌적했습니다. 링크 시스템 덕분에 게임 진행 속도가 도미니언보다 빨라졌습니다. 아울러 기본 추천 구성으로 진행했음에도, 정찰 카드 하나만으로 서로 간의 견제가 꽤 치열해졌죠.

참여 인원수에 따라 게임의 양상이 달라지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3인 플레이에서는 각자 자기 콤보를 만드느라 바빠서 상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공격 카드 구성을 달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반면 2인 플레이에서는 공주 옹립 후 계승점을 빠르게 끌어올리려는 눈치 싸움이 상당히 격렬해집니다. 카드 한 장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는 느낌이 들 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죠.

이번 플레이를 통해 승패를 가르는 건 공주의 특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꾸리는 가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울러 공주를 옹립한 후에는 내 계승점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상대 템포를 늦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 카드를 구매할지, 계승점 카드를 올릴지 매 순간 고민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하트 오브 크라운의 핵심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 남해 공주 클람클람, 카드를 구매할 때 1만큼 싸게 가져올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공주 장군 플라마리아. 옹립할 시 마켓에서 5 이하 카드 2장을 가져올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애니풍 아트워크 너머에 있는 덱빌딩의 진화

하트 오브 크라운은 도미니언의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황제 계승이라는 고유한 목표와 링크 시스템이라는 영리한 개선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완성한 게임입니다. 도미니언보다 직관적인 시스템 덕분에 익히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공주 옹립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제시되어 방향을 잡기도 수월합니다. 덱빌딩을 좋아한다면, 이제 막 입문하려 한다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일본 서브컬처 팬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추천합니다. 공주를 옹립해 황위에 올린다는 테마에 딱 어울리는 아트 스타일과 카드 기능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 각종 마녀 카드,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게임에서 추방된 카드를 모아놓는 '국외' 카드와 게임 시작 시 받는 마이너스 카드인 '견습시녀' (사진: 게임메카 촬영)

반면 무겁고 진중한 테마를 선호하는 플레이어라면 익숙해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필자 역시 아트워크 때문에 한동안 모임에 가져가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호불호가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팀 버전이라는 대안이 있고, 몇 판만 해보면 그 장벽은 생각보다 빠르게 낮아집니다. 게임 자체의 재미가 특유의 아트워크에 익숙해지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스팀에서 디지털 버전을 먼저 해보고 실물 구매를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우치
평범한 보드게임 개발자.
보드게임 회사 '포푸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보드게임 플레이로그로 인스타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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