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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만 터지면 게임물등급위원회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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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욕먹는다.”

요즘 게임물등급물위원회의 행보가 그렇다. 사실 주무부처인 문화부의 든든한 총알받이 역할을 해온 게임위이기에 현재 상황이 새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방탄복이 총알 무섭다고 피하겠는가? 총알 입장에서야 억울하지만 방탄복이 하는 일이 그렇듯 원래 게임위는 그런 포지션인 것이다. 하지만, 스팀, 아마추어 게임 심의 사태 등 일련의 사태를 놓고 보건대 뭔가 제대로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론은 게임위가 ‘법대로’라는 명분아래 유연성 없이 괜히 벌집만 쑤시는 게 아니냐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게임위 입장은 어떨까? 게임위는 14일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기자연구모임을 열고 기자들과 최근 이슈가 되었던 ‘스팀 등 해외 배급 사이트에 대한 등급 분류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만큼 뻔한 담론이 오고 갔지만 게임위 입장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채 뭇매만 맞는 게임위

게임위는 먼저 시장에 배포되고 있는 모든 게임물(개인 창작물)을 현실적으로 모두 심의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게임법 제2조에 따르면 게임물의 정의를 ‘컴퓨터프로그램 등 정보처리 기술이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이에 부수하여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또는 그 영상물의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된 기기 및 장치’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곰플레이어에서 특정 코드 입력 시 실행되는 슈팅 게임 역시 게임물로 구분되며 포탈사이트에 유통되는 모든 플래시 게임은 심의를 받아야 하는 게임물이다.

게임위 자체조사에 따르면 현재 NHN, 야후 등 포털 20여 개사에서 배포되고 있는 플래시 게임수는 9,163개로 이중 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은 8,271건이다. 약 90%가 넘는 플래시 게임이 심의 없이 배포되고 있는 셈이다. 게임위는 플래시 게임의 경우 유통시기가 오래돼서 출처를 알 수 없거나 외산 게임물로 저작권자를 확인할 수 없는 게임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등급분류 신청이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게임위는 현실적으로 이런 모든 게임물의 원저작자를 찾아 심의를 받으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아마추어 제작 게임이라 말하는 인디 게임 역시 게임위는 줄곧 이런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최근 인디 게임 심의 문제가 언론에 터지면서 게임위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정부지원 예산이 삭감되니 이런 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거 아니냐라는 의견도 쏟아졌다. 게임위 이수근 위원장은 이런 비난 여론에 대해 “수수료 3만원(10MB미만)의 인디 게임을 심의하기 위해 등급위원들을 소집하면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게임법이 바뀌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심의를 할 수밖에 없으며 그게 게임위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쯔구르 사태 역시 제보가 들어와서 심의 타당성을 검토했으며 확인 결과 현행법 그대로 심의를 받아야하는 게임물이기에 그대로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게임위 전창준 정책지원팀장은 이런 심의 제보에 응당한 답변을 주지 않으며 한 개인이 30여건씩 연속으로 민원을 넣는다며 게임위의 난처한 입장을 토로했다. 제보자야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고 경찰에 전화하면 그만이지만 용의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결국 출동한 경찰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러한데 인근 주민까지 합세해 “아니 김씨 아저씨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생사람 잡냐”며 경찰만 잡아 먹으려 하니 입장이 곤란해 지는 것이다.

지난 7월 MBC에서 방송된 ‘초등생 고문게임 유행… 대책 마련 시급’이라는 골자의 뉴스가 현재 게임위 상황을 대변한다. 비난의 화살은 언제나 게임위로 향하지만 전국 초등학생의 생활패턴을 24시간 모니터링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책마련이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인디게임에 대한 사전검열을 우려하거나 창작의 자유를 침범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는 게 게임위 설명이다. 게임위 전창준 정책팀장은 “게임위는 인디게임에 대해 창작의 자유와 게임개발의 열기를 저해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현행법상 게임위가 확인하거나 민원이 들어온 건에서는 위법사실이 확인되면 적법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게임법 개정안


스팀서비스, 국내 서비스 목적이 있다면 당연히 심의 받아야

스팀 사태 역시 시작은 민원 때문이다. 제보가 들어왔으니 어떤식으로든 처리를 해야한다는 게 게임위 입장이다. 조사 결과 스팀스토어 사이트의 메뉴가 한글화 되어 있고 국내 유저를 대상으로 게임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심의대상에 포함되었다. 게임위 조사에 따르면 2010년 4월 기준 스팀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는 게임수는 약 2,230개 정도로 이 중 상당수가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미필 게임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게임위는 밸브사에 이메일을 발송해 현행법에 따른 등급분류 미필 게임물에 대한 조치를 권고했고 밸브사는 이메일 회신을 통해 내부 검토 하겠다고 통지한 상태다. 또, 게임위는 밸브사에 국내 게임법에 대해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등급분류 신청 절차를 영문자료로 발송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스팀 국내서비스 차단이다. 그러나 한글화 지원만 떼어버리면 국내법을 피할 수 있는 실정상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조치에 대해 게임위는 여론의 상당한 비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역시 현행 게임법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과거 ‘부족전쟁’이라는 웹 게임 역시 서버를 해외에 두고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던 적이 있다. 이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민원이 접수되면서 해당 개발사에 시정조치를 내렸고 이에 불응하자 접속을 차단한 사례가 있다. 물론, 유저 입장에서야 게임물과 게임물 유통서비스와는 엄연히 다른 다른 개념이지만 게임위의 판단 기준은 국내 유저를 대상으로 게임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여러가지 사례를 들며 길게 게임위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결국 ‘게임법’의 문제다. 그러나 현재 계류 중인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 된다고 해도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병 통치약은 아니다. 스팀조치는 해당사항에도 없다. 인디 게임과 오픈마켓 게임은 사전등급분류에서 자율등급분류로 바뀌며 개인 창작 활동은 자유로워지겠지만 이러한 자유가 자칫 ’아기 흔들어 죽이기’나 ‘초등생 고문게임’과 같은 결과물로 이어질 경우 현재 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질게 뻔하다. 논리적인 대안은 이런 시행 착오을 거치면서라도 게임법을 하나씩 개정해 나가는 것뿐이다. 다만, 작금의 사태가 아쉬운 점은 게임위가 사전심의에서 자율심의로 가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알받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한 욕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소통이 부실한 까닭이다. 어차피 게임위는 축소될 기관이며 심의는 업계 자율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후 벌어질 게임으로 인한 문제의 책임은 업계가 짊어져야 한다. 책임이 기관에서 민간으로 넘어갈 경우 정부와 언론의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현재보다 더욱 강한 심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게 게임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실 관계가 이러한데 게임위는 아직도 아무 편도 없이 홀로 총알을 맞고 있다.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이것 또한 게임위 탓이다.

Update 09.15.14:05 심의수수료와 스팀서비스에 대한 게임위 입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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