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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한글화」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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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한글화"를 원하십니까?

잡지 첫 면의 광고페이지를 열 때나 게임 매장에 갈 때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완벽 한글화’라는 단어. 과연 당신은 현재 국내의 한글화 수준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 외국어라면 자다가도 거품을 무는 판에 게임에 ‘한글’이 나오는 것 자체가 어디냐라는 질문은 구시대적인 발상. 원작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 현지화 작업이고 이는 영화나 소설의 번역작업에서도 역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실을 볼 때 소비자가 보다 수준 높은 한글화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은 게이머의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길지도, 짧지만도 않았던 한글화의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화 게임은 무엇이었을까? 각계각론(?)의 의견이 다양한 상황이지만 원조부터 따지자면 국내의 수많은 아마추어 프로그래머들이 도트 노가다 작업으로 완성한 ‘삼국지 2’편을 꼽아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신검의 전설이나 풍류협객, 혹성탈출과 같은 MSX와 IBM호환 PC시절은 제발 제외하자. 그러려면 보드 게임의 계보부터 훑어야 할테니…). 상용화된 작품으로는 만트라에서 번역 작업을 거친 후 출시한 프린세스 메이커 1, 동서게임채널의 어둠의 씨앗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원조야 어쨌든 간에 10여년간의 짧았던 국내 게임 역사에서 ‘한글화 작품’이 차지하고 있었던 비율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글화 수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고 제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한글이고 “가”라는 한단어로 만들어지는 경상도 사투리 문장이 20가지가 넘는다는 유머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에서의 한글화 작업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지도, 쉽게 보아서도 안 될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역시 현지화라는 명목 아래 심각한 스토리가 한순간에 코미디로 바뀌어버렸던 수많은 전과를 되짚어 볼 때 한글화가 단순한 서비스 차원의 끼워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업체와 게이머가 모두 자각해야 할 때라는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완벽 한글화"를 원하십니까?

한글화 과정과 그 문제점

게임은 영화나 소설처럼 완벽한 스크립트를 토대로 한글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의 전문성에 있어 앞서 언급한 종류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PC 게임의 한글화는 원문 코드가 담겨 있는 일부의 소스를 국내 유통사 측에서 넘겨받아 텍스트 부문을 번역, 다시 제작사에 넘겨 작업을 거치는 순서로 진행된다. 소스 자체가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대화과정을 거쳐야하는 롤플레잉이나 어드벤처 게임의 경우 문맥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모든 문장을 번역, 게임 내에 삽입하고 난 뒤 베타 테스트 리포팅에 의존하여 버그를 잡아내야만 한다.



즉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는 모든 문맥이 물 흐르듯이 진행되어야하는 상황이지만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문장을 끼워 맞춰야 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으로 대두된다는 것이다. 당연지사 일련의 복잡한 과정들은 유통사 및 전문번역 업체에서 담당해야할 일이긴 하지만 일부 PC게임의 경우 한글화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일정상의 문제로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해보지도 못한 채 한글화 작업에 착수한다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글화 디버깅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관계자의 PC.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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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 과정과 그 문제점

영화의 소설과 같은 경우 텍스트의 분량이 많다면 1~2명이 번역을 진행하고 전문가가 감수를 맡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게임은 일반적으로 메인번역자 1명, 보조 2~3명, 아르바이트 3~4명 + 알파 정도의 팀을 이루어 진행된다. 이렇게 여러 명으로 나누어진 팀은 대화 인물별, 스테이지별로 업무를 분담해서 번역을 진행하며 시나리오 분석, 번역, 리뉴얼 프로그래밍, 디버깅의 순서로 한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번역을 위해서는 한사람이 모든 작업을 담당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긴 하지만 작업량이 만만치 않고 항상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번역 작업을 나눌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명 코미디 번역의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일원화되지 않은 인력구성을 토대로 최단 시간 내에 한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데 있다. 때문에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많은 실무자들은 일종의 게임 ‘용어 사전’을 비치하는 등 업무효율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촉박한 제작일정에 맞춰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내기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토로한다.

용어사전으로 여러 작업물을 일원화시킨다

과거 파랜드 사가의 한글화를 맡았던 모 유통업체에서는 전문 번역가 없이 오경박사라는 번역기를 돌려 텍스트를 번역, 엉망진창인 한글화를 최종 베타테스트 단계에서 한 테스터의 지적으로 허겁지겁 교정 작업을 거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모 게임의 한글 검수작업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수준 낮은 한글화에 대한 가장 큰 문제점은 게임을 돈으로만 인식한 유통사 측이 제작단가를 낮추기 위해 실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들을 쓰는 행태를 지속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패치 형식으로라도 한글화 파일을 제공하면 되지 않느냐” 라는 게이머들의 요구에 유통사 측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원본 자체를 한글화한 형태가 아닌 패치 형식의 제공은 불법복제 사용자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는 문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한글화로 게이머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작품

다행인 것은 최근 2~3년 간 전문번역업체가 생겨나고 비디오 게임이 국내에 정식 유통되며 한글화의 퀄리티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메이저급 회사에 국한된 현실이긴 하지만 각 업체들의 다양한 노력이 경쟁구도에 돌입하며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작업이 인식이 높아진 게이머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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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화 담당자들의 생각은?

현장에서 현지화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게임의 기획 단계, 즉 제작 초기부터 한글화를 염두에 두고 동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함께 하고 있다.

패키지 게임이든 비디오 게임이든 한글화 과정에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는 요인은 제작사 측의 철저한 소스 비공개 방침 때문에 작업을 이원화시켜야만 하는 현실이다. 일렉트로닉 아츠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양한 작품이 전 세계의 출시일에 맞춰 한글화판이 동시 발매될 수 있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제작 초기부터 ‘한글화’를 염두에 두고 언어체계를 나누어 함께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많은 해외 게임 유통업체들은 빠듯한 제작일정에 맞춰 정해진 제작비로 최고의 퀄리티를 낸다는 것은 상당히 힘겨운 일이라며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게이머들은 하루라도 빨리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며 이런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의 생리상 게임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시기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글화 수준이 낮은 작품을 보며 게이머들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있다.

게임 한글화는 하나의 전문분야다. 영화나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멕워리어 4, 결전 2, 던전시즈,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등의 한글화 및 더빙 작업을 담당한 무사이 코리아의 이인욱 PD는 “한글화는 단순히 그 나라의 언어를 한글로 옮겨준다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게임에서 나타나는 수준 낮은 한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 실정에 맞는 연출과 미묘한 조율작업을 총괄하는 전문 프로듀서가 필요하다”라며 그때그때 인원을 급조해서 현지화 작업을 진행하는 국내 현실을 꼬집었다.

발더스게이트 2, 아이스윈드 데일,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 등 다양한 영문 게임의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 버프엔터테인먼트의 도미애 과장 역시 “게임 한글화 작업이라는 것은 분명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보조 및 아르바이트생의 세부적인 번역을 매끄럽게 다듬어줄 수 있는 한글화 메인 담당자의 능력과 책임감이 절실하다”라며 동일한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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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게임 전문 번역가가 절실한 현실

한글화 작업을 진행한 여러 게임업체들은 초기에 영문 및 일본 게임의 번역 작업을 외국어 전문 번역사나 통역기관에 단독으로 맡겼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한글화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이러한 사례는 외국어 실력은 출중하지만 게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인원에게 번역을 맡긴 업체 측의 미숙한 판단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 전문 번역자의 자질요건에 대해 한글화 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 무엇보다 한글 표현력이 뛰어나야 한다 ▶ 게임을 잘 알아야 한다 ▶ 무슨 일이든 책임지고 끝까지 추진할 책임감이 있어야한다”라는 세 가지 요소를 필수로 꼽고 있다.

번역 실력은 기본으로 두고서라도 한글 표현력이 뛰어나야만 자연스러운 전달이 가능하고 또 다양한 게임 지식이 뒷받침되어야만 이러한 표현력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처음부터 일관된 통일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글화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기에 ‘책임감’을 필수적인 자격요건으로 꼽았다.

과거엔 이처럼 아마추어들이 파일을 직접 분해하여 한글화를 하곤 했다

게이머들이 꼽는 베스트 & 워스트 한글화 Top. 3

* 3대 통신망 및 인터넷 커뮤니티의 평가 누적에 의한 통계


최고의 한글화
1위: 아머드코어 3
2위: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3위: 레드얼럿 2

최악의 한글화
1위: 마이트 앤 매직 6
2위: 네버윈터나이츠
3위: 영웅전설 5 - 바다의 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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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가 원하는 한글화 방안은?

게이머들의 취향은 다양하다. 원작의 느낌을 해친다는 이유로 음성더빙을 거부하는 게이머도 있다는 경우를 감안하면 이들의 취향을 감안한 다양한 한글화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

게이머의 선택폭을 넓혀주는 것이 중요

DVD 매체의 등장은 이러한 게이머들의 취향에 다양하게 부합할 수 있는 특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물론 유통사 측이 제작비용이나 기간 문제로 게이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는 힘들겠지만 차후 PC 게임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디오 게임이 DVD 매체의 완전한 대중화 붐을 타게 될 때면 원작의 음성 및 텍스트, 한글화 음성과 텍스트의 여러 가지 선택 방법을 택할 수 있게끔 되어야 한다(현재 X박스용 헤일로 한글판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질 좋은 한글화 작품에 대한 선택은 유통사와 소비자의 몫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떨어지는 한글화에 대한 책임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를 배제해두고서라도 게임 자체를 순수 창작물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만 환산하는 유통사 측에 있다. “게이머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음성 더빙은 제외했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텍스트 부문만 한글화했다”라는 식의 논리는 어느 한글화 담당 실무자의 말처럼 비용절감과 제작일정을 맞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욱이 해외의 게임을 자국의 언어가 아닌 형태로 출시하며 해외와 똑같은 가격방침을 유지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논리로 볼 때 돈을 주고 자막 없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라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음성 더빙이냐... 텍스트냐... 어쨌든 선택권은
게이머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국내 게임 유통의 역사는 10년을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지만 아직은 한글화 작업이 정립된 체계를 이루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시나리오 작가 및 프로그래머, 성우기용 등 여러 가지 인력투자부분을 제외해두고서라도 일부 타이틀에 3~4억을 넘는 한글화 비용이 투자되는 이유 역시 제작초기부터 한글화를 염두에 두고 정립된 체계를 이루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한글 지원 라이브러리 구축의 투자를 끝내고 안정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한글화 비용은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며 게이머들은 바로 이 점을 주지해야만 할 것이다. 게이머가 한글화를 명분으로 타이틀의 고비용 체계를 유지해야한다는 업계 측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게이머가 한글화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한글화된 게임에 좀 더 애정을 갖고 정품 구매율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의 일방적인 공급은 생겨날 턱이 만무하기 때문이다. 유통사 역시 ‘한방’을 노리고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안일한 사고보다는 제대로 된 한글화로 자사의 신뢰성과 인지도를 높이고 외국어 게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게이머들의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적어도 “완벽 한글화”에 대한 타이틀 로고가 부끄럽지 않고 당연한 시대로 도래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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