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비디오 게임 유통시장, 과연 제대로 흐르고(流) 있는가? - 2부

/ 2

국내 비디오 게임시장 유통의 현실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라 별 차이가 없을 줄 알았다. 볕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이라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생한 이야기를 듣자, 문제의 심각함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자, 이제 하나씩 그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PAST : 멍든 게임 유통 구조


무능한 플랫폼 홀더
비디오 게임은 전용 게임기를 이용해 TV에 연결, 가정에서 즐기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전용기기를 구입하는 초기 구입 비용이 높아지고, 따라서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여간해서는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기를 개발한 회사, 즉 플랫폼 홀더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기기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이후에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를 통해 이익을 창출해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또한 타기종 게임기들과의 가격 경쟁 때문에 최대한 가격을 낮춰 책정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정리하면 비디오 게임 사업에서는 ‘게임기는 손해보고 팔고, 소프트웨어를 팔아 이익을 낸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론이다.

게임기가 얼마나 보급되느냐는 좋은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나오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오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제작사들이 그 게임기용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데, 실력 있는 제작사들은 많이 팔린 게임기로 게임을 내고 싶어한다. 100만 대가 팔린 게임기와 1000만 대가 팔린 게임기 중, 제작사는 당연히 1000만 대가 팔린 게임기로 게임을 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게임기를 팔기 위해선 좋은 게임이 있어야한다 → 좋은 게임은 실력 있는 제작사에서 나온다 → 실력 있는 제작사는 많이 팔린 게임기로 게임을 내고 싶어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영원한 논리학의 수수께끼가 계속되는 것이다. 플랫폼 홀더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개발 팀을 운영해 직접 게임을 만들기고 하고, 경쟁 기종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 우수 제작사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한다. 또한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시장을 분석, 향후 마케팅 플랜을 계속해서 수정, 보완해 간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이하 SCE),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등 3대 게임기 플랫폼 홀더는 모두 직접 게임을 만드는 제작 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수 제작사들을 끊임없이 발굴해 좋은 게임의 개발을 유도한다. PlayStation을 통해 게임계에 처음 도전장을 내민 SCE는 닌텐도에 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 제작사들을 끌어온 건 후발주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법답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비해 후발주자로 새롭게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런 움직임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기종으로는 게임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SCE와의 합의가 있었는지, 아니면 보급되어 있는 하드웨어에서 워낙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러는지 몰라도 Xbox는 라인업이 경쟁기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플랫폼 홀더의 역할

● 자사 게임기의 보급률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방안의 수립과 실천

●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실력 있는 제작사들을 경쟁기종보다 많이 확보

● 자기뿐만 아니라 제작사, 유통사들도 함께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 실행

인간은 완벽한 동물이 아니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인 플랫폼 홀더이므로,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다. 제작사와 유통사, 관련 업체 사람들이 보기에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은 내용도 때로는 나오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화와 타협, 서로간의 양보와 협조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실수라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특히 서로간의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는 실수의 범주를 넘어선다. 자신만의 이득을 챙기고자 하는 행위, 이미 약속한 일을 제멋대로 바꿔버리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올해 초, 통신가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Xbox의 국내 총판을 맡고 있는 세중의 그 동안의 불성실한 대처에 대해 참다못한 협력업체 직원 중 한 명이 장문의 글을 올린 것이다. 몇 가지에 걸쳐 플랫폼 홀더의 행동을 조목조목 비판한 이 글은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불과 몇 시간 후 글은 적혀 있던 게시판에서 삭제되었다. 글의 내용을 아래에 정리해보았다.

 

1. Xbox 출시일과 관련된 혼선
2002년 12월 23일을 기해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하려 했으나, 모 쇼핑몰 업체가 예약 판매가 저조해 수량을 채우지 못하자 용산 상인들에게 미리 판매, 출시일 전에 물건이 시장에 나돌았다. 세중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돌아갔지만, 자신이 확인한 결과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대신 다른 지역 총판에게 12월 19일부터 판매를 시작하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2. 잘못된 유통 관리
속칭 ‘작업’으로 인해 총판 원가보다 더 싸게 팔리는 물량이 있음을 알고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덤핑 판매를 옹호하며 권장하듯, 5곳의 총판 중 하나가 ‘작업’에 동참하자 총판들이 알아서 하라며 개입을 피했다. 또한 Xbox+HALO 패키지 구매 시 컨트롤러를 공짜로 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패키지 1개당 기존 Xbox 제품을 2개씩 매장들에게 밀어내라며 총판에 지시했다. 이미 총판 원가보다 1만원 이상 싸게 팔리는 ‘작업’ 물량이 있었기에 2개씩 받게 된 Xbox는 그대로 매장들의 손해가 되었고, 매장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패키지 상품을 분리해서 Xbox, HALO, 공짜 컨트롤러를 각각 따로 판매했다. 즉, 소비자들을 위한 패키지가 아니라 총판사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패키지가 된 것이다.

3. 담당자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한 소프트웨어 출시 계획 백지화
대작 게임인 ‘스플린터 셀’의 2월 출시에 맞춰 DVD kit을 번들로 주는 패키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스플린터 셀이 PS2로 발매된다는 것을 들은 세중의 담당자는 Ubi 소프트(스플린터 셀의 유통사) 쪽에게 PC판 「스플린터 셀」은 Xbox용 발매 후 3개월 이후에 출시, 해외에서의 PS2판 발매 역시 3개월 뒤로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Ubi 소프트는 아예 Xbox용 국내 출시 계획을 취소했다(지금도 Xbox용 스플린터 셀이 출시된다 어쩐다 의견이 많은 데 아직 전혀 계획된 바가 없다.

4. 신뢰의 배반
당초 세중이 유통을 맡기로 했던 게임이 세중의 일방적인 취소로 인해 출시 계획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퍼블리셔는 부랴부랴 다른 유통 업체를 찾아보았지만, 유통하겠다는 업체가 없어 당초 발매하기로 했던 출시시기가 지나버렸고, 지금도 적당한 업체가 나서지 않아 출시 자체가 불투명하다.

5. 비전 없는 정책
4월부터 출시되는 세가 번들 패키지(Xbox 본체에 ‘젯 셋 라디오 퓨처’와 ‘세가 GT 2002’가 무료로 포함된 것) 물량을 받기 위해선 3월에 Xbox 본체로만 이루어진 제품을 주문해야 했다. 세중은 3월에 주문했던 물량만큼만 4월에 받을 수 있다며 총판 업체를 다그쳤다. 번들이라면 미리 Xbox를 구입했던 유저들의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해 무상으로 전달해야 하는게 옳지 않냐고 문의했지만, 1만대 한정 진행상황이라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내려왔다(註 1).
3월에 받았던 물량을 성수기인 5월에 판매함으로써 재고를 소진시킬 계획이었지만, 5월부터 세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소프트 중 하나가 본체에 무료로 제공된다는 세중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렇게 된다면 기존에 Xbox 본체로만 이루어진 패키지는 전혀 팔리지 않게 되며, 비싼 가격으로 세중에서 받아올 수밖에 없었던 총판과 매장은 그대로 재고 부담을 안게 된다(註 2).

註 1 : 이 글을 쓴 모 업체의 관계자는 이 무리한 정책 때문에 3월 구입량만큼 총판과 매장은 손해를 볼 것이라 말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번들 패키지가 분리되어 판매될 것이라 예상했다. 시간이 지나 번들 패키지가 출시된 후, 세가 번들 패키지에 들어있던 두 게임은 암암리에 낱개로 판매되었다.

註 2 : 이 관계자는 DOA 3가 공짜로 들어가는 제품이라 밝혔으며, 이후 정말로 DOA 3가 포함된 패키지가 출시되었다. 물론 이 제품도 매장에서는 암암리에 분리되어 판매되었다. 이 또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매장 업주들은 밝혔다.

제작사, 유통사들이 제 아무리 날고 용쓰는 재주가 있더라도 플랫폼 홀더의 제대로 된 노력이 없으면 전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우연한 기회에 Xbox와 관련된 내용이 밝혀져 이번 기사의 예로 들었지만 플랫폼 홀더의 잘못된 정책은 비단 Xbox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PS2 또한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와중에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업체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샀다. 사람이 하는 일에 모두 성공만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경험하게 되는 실패에 어떻게 대처할지, 같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작사와 유통사들을 함께 아우르고 보조를 맞춰나갈 주도적인 역할은 플랫폼 홀더밖에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PS2와 Xbox가 보급률에서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SCEK와 세중의 정책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 번들 패키지 출시를 알리는 Xbox의 전단지. 번들 패키지는 아직도 매장에서 구할 수 있다
 

▲ 가득 쌓인 PS2 빈 박스. 빈 박스가 이렇게 쌓인 건 혹시 DVD 리모콘과 PS2 본체를 분리해서 팔았기 때문!?

힘있는 퍼블리셔의 강매
소위 킬러 타이틀이라 불리는 잘 팔리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게이머들의 수요가 많으므로 매장은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자 한다. 판매에 따른 이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이 붙는다. 경쟁이 붙으면 공급 측(여기서는 제작사 또는 유통사)은 유리한 칼자루를 쥔다. 보다 자신들의 마진을 많이 챙겨주는 매장에 많은 물량을 공급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나쁜 심보가 발동한다.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 타이틀을 잘 팔리는 타이틀에 소위 ‘끼워 파는’ 것이다. 총판에다 “우리 타이틀 ○○○를 1000장 가져가려면, △△△도 300장 함께 가져가”라고 압력을 넣으면 총판은 고민에 빠진다. ○○○로 거두는 이익과 △△△로 생기는 손해 중에 어느 쪽이 클 것인가…. 나름대로의 판단이 서서 이익 쪽이라 생각되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고, 손해라 생각되면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여기서 끝나면 별 문제가 없다. 무리한 제안을 내건 퍼블리셔가 팔리지 않은 ○○○의 다른 판매 루트를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퍼블리셔가 킬러 타이틀을 계속해서 낼 수 있는 힘있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달 있다가 □□□가 발매될 텐데, 이번에 ○○○와 △△△를 함께 가져가지 않으면 다음에는 □□□를 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협박까지 동원된다.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되면 힘있는 퍼블리셔들의 협박을 감당할 수 있는 총판은 사실상 거의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팔릴 가능성이 없는 △△△까지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결국 판매되지 않은 △△△는 고스란히 총판의 부담이 된다.

총판도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자신들이 물건을 공급하는 매장에 퍼블리셔가 했던 방법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다. 결국 퍼블리셔만 이익을 챙기고, 총판과 일선 매장들이 고스란히 그 손해를 감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긴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월에 발매된 A사의 B 게임이다. A사는 B게임과 함께 C 게임을 끼워팔았다. 그러나 C 게임의 판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자, 총판을 맡았던 D사는 대부분의 재고량을 그대로 껴안게 되었고, 자금 회전이 길이 막힌 D사는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떻게든 물건만 떠넘겨서 이익을 보면 된다는 퍼블리셔들의 잘못된 생각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유통의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총판과 매장들이 이런 방식으로 점점 무너져간다면 결국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게 됨을 알아야 한다. 게임을 들여와도 이를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팔 수 있는 총판과 매장이 없으면 자신들이 유통망을 개척해 직접 판매해야 한다. 유통망을 개척하기 위해선 막대한 인건비와 시간, 자금이 필요하다. 결국 혹 떼려 했다가 혹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힘 있는 퍼블리셔라면 자신들의 리더적인 위치를 자각하고, 시장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앞장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이 자리를 통해 간절히 요청한다.

      ▲ 특정 게임 3가지 중 하나(밀봉)를 사면 중고 게임을 3천원에 판매한다
      는 문구. 특정 게임을 억지로 밀어낸 결과다

 

소매점의 출혈 경쟁
어쩌면 앞서 설명했던 두 가지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이것일지 모른다. 무능한 퍼블리셔와 힘있는 퍼블리셔의 강매는 당사자 한 곳이 정신을 차리고 고치면 되지만, 소매점의 출혈 경쟁은 모든 소매점을 함께 컨트롤 할 수 있는 기관도 없는 실정이라 소매점 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조절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모든 이들의 의견이 그리 쉽게 조절될 수도 없는 부분이고, 설사 조절된다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어느 한 곳이 약정을 어기고 가격을 떨어뜨리면, 다른 곳도 경쟁을 위해 떨어뜨릴 수밖에 없게 되니 마치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는 꼴이랄까?

퍼블리셔에서 총판을 거쳐 매장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게임의 경우, 총판과 매장이 유통 마진을 일정 부분 챙긴 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유통업체로서 책무를 다하고 적정한 이윤을 챙긴다면, 앞으로도 계속 게임을 판매해서 이윤을 얻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적정 이윤을 얻을 수 없다면 어느 누구도 계속해서 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다른 매장보다 가격을 싸게 매겨 판매하는 A 매장이 있다고 하자. A 매장이 물건을 받아오는 곳은 총판 또는 퍼블리셔들인데, 총판이나 퍼블리셔들이 매장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다른 매장과 같은 가격으로 물건을 받아온다. 그렇다면 가격을 다른 매장보다 낮게 책정하고자 한다면, 천상 자신들(매장 A)의 유통 마진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1개 팔아서 5,000원의 이익을 낼 수 있는 게임을 1,000원만 남기고 다른 매장보다 4,000원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면, 소비자들은 당장 A 매장 쪽으로 몰릴 것이다. 박리다매(薄利多賣)라고 해서 이윤을 적게 하는 대신 많이 파는 것도 분명 마케팅의 한 전략이지만, 이거야 다른 곳에서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을 때야 성립하는 말이다. 다른 매장의 손님들도 A 매장으로 몰릴 테니, A 매장은 손해를 안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피해를 받게 되는 다른 매장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분명 똑같이 가격을 낮춰 경쟁 체제로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A 매장은 어찌해야 하는가? 가격적인 메리트도 없고, 마진은 마진대로 없고. 결국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렇다고 다른 매장들과 담합해 다시 가격을 올린다? 이미 싼 가격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들이 올린 가격에 만족할까? 특히 요즘처럼 소비자들의 입김이 세지고, 인터넷을 통한 의견 교환이 활발한 시대에 담합은 통하지 않는다. 또한 가격을 올려받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장 B가 이를 지키지 않은 채 여전히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또 다시 유통 질서는 흔들린다. 자,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답이 없다. 현재까지 한 번 이렇게 떨어진 가격을 제대로 돌려놓는 뾰족한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매장들은 계속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단기적인 잇속에 급급해 유통 질서를 무너뜨린 A 매장의 잘못이다.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유통 채널에 정당한 이윤을 챙겨주지 않고 무조건 싼 가격만을 찾으려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같은 가격이면 좀 더 좋은 물건을 사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정당하다. 그리고 같은 물건이라면 좀 더 싸게 사고자 하는 욕구 또한 정당하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태도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라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매장이 공통적으로 일정 이윤을 확보하고 팔자며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담합이라는 불법 상거래 행위이므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필자가 말하는 매장 간의 의견 조율은 마진을 높게 잡아 폭리를 취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마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이야기하는 소비자들의 문제점은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가격이 마치 적당한 가격인양 잘못 이해한 채, 적정한 가격을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몰아붙여 매장들이 설 자리를 없애버리는 부분이다.

일본의 유명한 시리즈 게임 a를 국내에 퍼블리싱 하게 된 b사는 총판 c를 선정해 초도 물량을 전량 인도했다. 보통 총판 계약을 통해 게임을 유통하는 시스템일 경우, 소비자 가격의 60% 정도로 총판에 물건을 공급해주므로 소비자 가격이 52,000원이었던 이 게임은 대략 30,000원 정도에 총판 c에 넘어갔다. 총판의 마진이 20%, 매장의 마진이 20% 정도니 총판은 대략 40,000원에 매장으로 물건을 주고, 매장은 10,000원 전후의 최종 마진을 갖고 소비자에게 물건을 공급한다. 게임 1장 팔아서 10,000원!? 너무 많이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디오 게임의 경우 거의 대부분 반품이 허용되지 않는다. 즉, 게임을 들여와 팔리지 않는다면 그 재고를 고스란히 총판과 매장이 떠안는 것이다. 매장의 경우 40,000원에 물건을 들여오므로 4장 팔아도 1장의 재고가 남는다면 이익이 전혀 남지 않게 된다. 아니, 인건비가 들어갈 테니 오히려 손해다. 최대한 재고량을 줄여야 이익폭이 늘어나는데, 앞서 말한 퍼블리셔의 강매 등이 겹치면 재고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으므로 매장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10,000원 전후의 이윤을 챙겨도 이처럼 불안한데, 출혈 경쟁 때문에 그 이윤마저 제대로 보전할 수 없다면? a 게임의 소비자 가격은 52,000원이었지만 출시 다음 날,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42,000원에 거래되었다. 출혈 경쟁 때문에 매장들이 자신들의 마진을 80% 정도 없애고 팔기 때문이었다. 몇 군데 매장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가격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용산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국제전자상가나 테크노마트 등과 가격 경쟁이 붙었기에 가격을 이렇게라도 낮추지 않으면 아예 물건을 팔 수조차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소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반대의 의견이 많다. 학생들의 경우 부족한 용돈을 쪼개 게임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가격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조금이라도 싼 게임을 구하려 하고, 따라서 용산이나 테크노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국제전자상가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뭔가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대체 이렇게까지 가격이 무너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퍼블리셔의 영업 담당자들과 다른 기자들, 필자의 지인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국제전자상가’를 통해 가격 파괴가 시작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용산과 테크노마트 등 기존 밀집 상가에 비해 늦게 자리를 잡은 국제전자상가는 경쟁을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가격 인하를 선택했고, 그게 발단이 되어 지금과 같은 출혈 경쟁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매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유통의 모세혈관을 담당하는 매장들이 문을 닫으면 총판 또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퍼블리셔 역시 제대로 된 총판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즉, 최종적으로는 출시되는 게임의 감소로 인해 시장은 점점 축소되고, 최악의 경우 퍼블리셔와 플랫폼 홀더가 사업을 포기, 시장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을 정도로 출혈 경쟁은 심각한 문제다.

      ▲ 게임 매장으로 가득했던 골목이 지금은 모두 휴대폰 가게로 변했다.
      모두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PRESENT : 죽어가는 게임시장

지난 2002년 여름, 날은 한창 무더워지고 있었지만 게임시장은 유래 없는 한파를 맞고 있었다. 월드컵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자 게임 판매량이 예년의 절반 이상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여름은 작년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2003년 새학기 시작과 함께 찾아 온 총체적인 난국은 성수기인 여름 방학을 맞아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여전히 한파에 꽁꽁 얼어있다. 퍼블리셔들은 출시를 계속 연기하고 있으며, 그 중 몇 곳은 총판을 잡을 수가 없어서 한글화까지 끝난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불황 경기와 겹쳐 소비자들의 주머니 또한 가벼워져 게임 판매량 또한 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게임 매장이 밀집된 용산을 찾아가 매장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았다.

“새 제품을 사려는 손님들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단골이나 20대 이상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손님들만이 새 제품을 찾지, 중·고등학생 손님들은 대부분 중고품을 찾습니다(정형근 씨, 가명)”

“소위 대박이라 불리며 작년에 3∼4만 장을 돌파했던 게임들의 판매 추이와 비교하면, 올해 발매된 게임 중에 3만 장을 넘은 게임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추영우 씨, 가명)”

“7년 째 이곳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2∼3개월 상황을 더 지켜보다 별 변화가 없을 것 같으면 가게를 정리할 예정입니다(김이용 씨, 가명)”

하나같이 암담하고 우울한 말뿐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을까? 작년에 PS2가 정식으로 발매되면서 찬란한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던 비디오 게임업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무능한 플랫폼 홀더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퍼블리셔의 강매로 인해 악성 재고가 쌓여 총판과 매장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원인은 출혈 경쟁과 중고 소프트웨어의 범람이 아닐까 싶다.

중고 소프트웨어 문제. 참으로 민감한 부분이다.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임이 아닌) 중고 제품의 유통이 불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선례도 없거니와, 지적 재산권 문제를 결부시킨 게임 소프트웨어의 중고 문제 또한 일본에서 이미 적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따라서 중고 게임 소프트웨어는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니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에 필자는 현질적인 문제를 접근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보급된 하드웨어 수의 10%만큼 소프트웨어가 팔리면 소위 ‘대박 타이틀’이라 부른다. 일본에서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비롯해 1년에 몇 작품이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이유는 이미 일본에 PS2가 1300만 대 이상 판매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대박 타이틀은 일단 차치하고, 대략 어느 정도 팔려야 손익 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까? 제작 시간, 참여 스탭 수, 마케팅 비용 등에 따라 제작비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C급 타이틀(A, B, C 급 타이틀로 분류)을 기준으로 약 5만 장 정도의 판매량을 보이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 즉, 일본의 경우 0.4% 정도의 판매량이라면 다음 작품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1000명 중에 4명만 게임을 사주면 손해는 보지 않는다…. 어떤가? 도전해볼 만 하지 않는가? 이런 일본 상황이다보니 중고 소프트웨어 판매가 적법하다고 결론이 내려졌어도 제작사들이 받는 실질적인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 어차피 중고 소프트웨어는 한 번 플레이를 한 후 중고 시장에 나오는 것이고, 게임의 판매 사이클을 보면 발매일 2주 내에 판매량 대부분이 결정된다. 따라서 초기에 0.4% 이상만 팔면 중고가 나와도 제작사에겐 아무런 불리한 영향이 없다.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사람들이 중고로 나온 게임을 부담 없이 구해서 플레이 해보고, 게임이 마음에 들면 다음 작품의 구매로 이어지니 어찌 보면 플레이 체험을 늘리는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중고 시장 상황은 일본과 다르다.

게임 하나를 로컬라이징 하는 비용은 그 시장이 얼마나 크냐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1000만 대 시장에서 게임 A를 로컬라이징 하는 비용과 100만 대 시장에서 게임 A를 로컬라이징 하는 비용은 같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게임 하나를 로컬라이징 해서 손익 분기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약 2만 장 정도 판매되어야 한다(중급 타이틀 기준. 상급 타이틀은 더 올라간다). 현재 SCEK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PS2 보급대수는 약 60만대이므로 적자를 면하려면 보급대수의 3% 이상을 팔아야 한다. 이해가 되는가? 일본에 비해 약 10배를 팔아야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인데도 국내 퍼블리셔들은 꾸준히 게임을 한글화해서 내놓는다. 그러나 중고 소프트웨어가 시장에 나오고, 새 제품을 구입해야 할 사람들이 중고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수는 변함이 없지만, 퍼블리셔들의 게임 판매량은 줄어든다. 과연 얼마나 많은 퍼블리셔들이 이 상황에서 버틸 수 있을까?

▲  어지간한 매장들은 진열대 앞에 모두 이런 특설 코너를 마련해놓고 있다

▲ 고가매입, 저가판매…. 중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모두 다루고 있다

 

 

 

FUTURE : 후회하는 사람들
총판이나 매장들이야 어찌되었건 하드웨어 보급만 늘리려는 플랫폼 홀더. 유통 질서가 어찌되었던 물건만 넘기고 이익을 챙기려는 퍼블리셔. 거시적인 시장 상황은 무시하고 단기간 내에 짧게 치고 빠져 이익을 챙기려는 매장들. 몇 푼의 돈을 아끼려 매장들의 출혈 경쟁을 부채질하고 중고품을 애용하는 소비자.

앞으로의 게임시장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국의 비디오 게임시장은 어둡다. 최악의 경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시작되었던 정식 비디오 게임시장은 완전히 소멸하고, 몇 년 전처럼 외국어를 아는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블랙 마켓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플랫폼 홀더는 막대한 적자를 남긴 채 모든 사업을 철수하고 회사를 해체해야 할 것이며, 퍼블리셔들 또한 사업을 접어야 한다. 매장 사람들은 예전처럼 밀수품이나 취급하는 보따리 상인들이라 멸시와 천대를 받는 몇 년 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한글을 통해 비디오 게임의 재미를 느꼈던 많은 게이머들은 영영 다시는 그런 재미를 느끼지 못한 채 일부 외국어를 하는 한정된 게이머만이 지금보다 비싼 돈을 주어가며 외국판 게임을 구입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국내 비디오 게임시장이 소멸되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말 것임을 어찌 모르는가? PS2가 없어지면 Xbox나 게임큐브를 즐기면 되지 않느냐고? 압도적인 쉐어를 자랑하는 PS2마저 이 지경이 되었는데, Xbox와 게임큐브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모든 이들이 후회하는 이런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 정식 발매 발표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팔리고 있는 일본판 게임들. 사
      진은 「위닝 일레븐 7」이다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일본보다 10배 가까이 더 팔아야 하는 부담을 갖고서도 계속 게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퍼블리셔들에게 “아직 초기단계니 그렇다. 시장이 더 커질 때까지 투자라 생각하고(적자를 보며) 게임을 계속 내라”라고 뻔뻔스레 말하는 사람들. “일본에서도 적법하다고 결론이 났는데, 왜 새삼스레 이 문제를 부각시켜 떠드느냐”고 화내는 사람들. “그럼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 중고라도 사서 즐겨야지”라고 변명하는 사람들.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애써 이런 결말들을 외면한 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게임시장을 어지럽히는 데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良藥苦於口….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굳이 필자 스스로도 부끄러운 게임업계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지금까지 글을 쓴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고 다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혹시라도 가슴이 뜨끔했던 사람들이라면 아직 좋은 사람들이다. 함께 한국 비디오 게임시장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거창한 행동 따윈 필요 없다. 플랫폼 홀더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플랫폼 홀더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퍼블리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국내 유통시장의 올바른 확립을 위해 그 동안 공공연히 벌어져왔던 나쁜 악태를 벗어버리자.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과다 출혈 경쟁은 자제하고, 가격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일반 게이머라면 중고 소프트웨어가 국내 비디오 게임시장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줄지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 모두 노력하면 비디오 게임만이 가진 재미와 감동을, 우리 동생들에게, 우리 자식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을 기억해보자. 게임을 무조건적으로 죄악시하는 부모님들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내가 어른이 되면 내 아들, 딸들과 즐겁게 게임을 즐길 거야”라고 한 번쯤 생각하지 않았는가? 온 가족이 모여 비디오 게임을 즐길 그 날을 위해 조금만 넓게 생각하자. 국내 비디오 게임시장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 아들 두 명과 함게 매장을 찾은 부모님. GBA SP 2대를 비롯해 몇 십만
      원이나 되는 게임을 흔쾌히 구입해갔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