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시장의 주체는 어디인가?
이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마 많은 게이머들이 일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를 비롯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 그란투리스모 시리즈 등 게이머라면 누구나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길 주저하지 않는 게임들이 모두 일본 제작자,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져 왔으니 일견 그 대답이 타당해 보인다. 또한 지금까지 비디오 게임을 즐겨왔던 게이머들 중에는 정식수입 전부터 즐겨왔던 사람들이 많고, 이들은 대부분 일본게임을 통해 비디오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라 일본게임이 비디오 게임의 바이블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좀 더 게임시장을 들여다보면 그 대답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전세계 게임시장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지역이다. 일본은 2위. 대략적인 스케일을 비교해보면 전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의 절반이 북미, 남은 절반을 일본과 유럽 지역이 양분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북미시장은 침체기를 보이고 있는 일본시장과 달리 지금 한창 성장 중이다. 낮은 출생률로 인한 저연령층의 감소가 문제시되고 있는 일본과 달리 북미 지역에서는 저연령층도 순조롭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각 게임 제작사들은 거점을 북미로 옮기거나 해외 게임 제작사와의 연계를 다양하게 모색하고 있다. 세계시장 제패를 위해서는 우선 북미시장을! 이런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북미 지역에서는 어떤 소프트웨어가 잘 팔리고 있을까? 2003년 상반기(2003년 3월∼9월) 소프트웨어별 매상을 보면 Electronic Arts(이하 EA)의 게임들이 눈길을 끈다. 스포츠,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10위권 내에 3개나 자리잡고 있는 것. 꽤나 잘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EA의 한국지사인 EA코리아가 있어 로컬라이징 작업을 한 후 EA의 게임들을 발매하고 있는데, 이 게임들은 대부분 판매순위 상위에 랭크되는 등 폭넓은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독 EA의 게임들은 일본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한 일본 게임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본 게이머들의 EA에 대한 인상은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발매하긴 하지만 큰 히트작이 잘 나오지 않는 회사”로 의견이 모아졌으니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EA가 북미 지역에서는 엄청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몇 년 째 꾸준히 유지되고 있기에 더욱 주목할 부분이다. “오∼ EA가 꽤 잘나가나 보네?”라고 그냥 웃어넘길 정도가 아니다. 2003년 상반기의 모든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 데이터를 회사별로 집계해서 그 비율을 산출해보니 놀랍게도 EA가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추정 매상액은 3억 6천 7백만 달러(약 4,400억). 2위는 2억 8천만 달러(약 3,360억)를 기록한 닌텐도니 상반기만 해도 1,000억원 이상의 차이를 벌리고 EA가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게다가 EA의 이런 호조는 북미 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닌텐도, 아타리 등 쟁쟁한 회사들을 제치고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시 말해 EA는 전세계의 수많은 소프트하우스 중에서 1위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소프트하우스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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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의 효자게임인 FIFA 시리즈.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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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시리즈가 나오면서 계속 게이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진화하고 있다 |
그럼 EA가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가 뭘까? 하나는 장르의 편성이다. 축구, 야구, 농구 등 메이저 스포츠의 라이센스를 일찍부터 도입해 뛰어난 스포츠 게임을 매년 갱신해서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것이 미국과 유럽에서 EA 활약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스포츠 게임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소프트하우스가 될 수 있냐고? 미국과 유럽 게이머들의 실태를 조사한 흥미로운 데이터가 있다. 게임을 즐길 때 혼자서 플레이하는지, 여러 명이서 플레이하는지를 조사한 데이터다. 이것을 보면 북미에서는 일반적인 게이머의 경우 혼자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3시간인데 비해 여러 명이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5시간으로 나타났다. 코어 게이머가 되면 혼자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4시간, 여러 명이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9시간. 압도적으로 여러 명이서 즐기는 시간 쪽이 많았다. 혼자서 플레이하는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 게이머 입장에서 보면 의외라고 느낄지 모른다. 우리나라와 스타일이 다른 원인은 생활습관이나 게임의 역사 등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 조사결과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북미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길 때 대전 플레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있는 장르가 우리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북미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사람이 게임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포츠 장르의 인기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인기 스포츠의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EA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EA의 강점은 스포츠 장르뿐만 아니라 그 제작 스타일에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게임을 제작할 때 프로그램 기술이나 그래픽 기술과 관련된 기본 엔진을 만든다고 하자. 다른 소프트하우스는 엔진 제작 노하우를 제작팀 고유의 재산으로 인정하고 다음 작품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EA는 그런 스타일을 일찍부터 버렸다. 엔진이라 불리는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비롯해 그래픽 툴, 나아가 모션 데이터부터 모델링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라이브러리로서 사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레이싱 게임용으로 자동차의 움직임을 만든 엔진이 있다고 하자. 이것을 레이싱 게임용으로 사용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EA에서는 다른 액션 게임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진다. 이것은 게임 제작의 속도를 향상시킬뿐만 아니라 품질향상에도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게이머의 요구에 딱맞는 작품을 시기에 늦지 않게 발매한다. 게다가 하이퀄리티로. 이렇게 나오는데 게이머들이 싫어할 이유가 있을까?
다만 맘에 걸리는 건 이 스타일이 너무나 공장(工場)적이라는 것이다. 게임은 어떤 의미로 창조성이 요구되는 예술이자 발명이라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새로운 장르가 생겨날 수 없다. 한국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일본식 게임은 일본의 공방(工房)적인 분위기에서 생겨났다. 이 공방에서 다양하게 꽃핀 발상들이 지금까지 게임의 진화를 지탱해왔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과연 EA와 같은 공장적인 게임제작으로 게임의 진화가 가능할 것인지 걱정되는 것이다. 뭐, 이 부분은 앞으로 EA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흥미깊게 지켜볼 부분이지만.
어쨌거나 시야를 전세계적으로 넓혔을 때 EA가 소프트하우스로서 하나의 대표적인 성공예를 보여주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내의 많은 크리에이터들, 그리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많은 예비 크리에이터들이 이후 게임을 개발한다면 이런 부분들을 하나의 중요한 참고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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