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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보는 PC의 역사 3] 80년~90년대의 게임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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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 유저의 상당수가 ‘게임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꼽는다. 언젠가부터 ‘게임’은 컴퓨터를 통해 부수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컴퓨터의 존재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컴퓨터 게임은 컴퓨터 자체의 역사와 그 맥을 함께한다. 컴퓨터의 역사는 곧 컴퓨터 게임의 역사인 것이다.

80s’: XT, 속도는 빨라졌지만…

1980년 애플에서 애플 II 컴퓨터를 발표한 이후, PC 시장의 판도는 8비트 컴퓨터를 중심으로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정부나 대기업용 대형 컴퓨터만을 주로 만들던 IBM사가 일반 유저들을 위한 16비트 컴퓨터로 눈을 돌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최초의 16비트 프로세서는 1974년 내셔널 세미컨덕터가 만든 PACE이지만,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제품은 1978년 인텔이 개발한 8086 프로세서였다. 8086 프로세서는 4.77MHz의 속도로 16비트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고 자체적으로 1MB의 메모리를 제어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세서였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PC에는 쓰일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출시한 프로세서가 8088로, 기본적으로는 8086 프로세서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내부적인 데이터만 16비트로 처리하고 외부 입출력은 8비트로 처리하도록 설계해 가격을 낮추었다.

1981년 IBM은 8088 프로세서를 채택한 ‘IBM 5150 PC’를 발표한다. 초기 제품은 4.77MHz의 8088 CPU와 16KB의 램, 160KB 용량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와 카세트 레코더를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8비트 PC에 비해 값이 비싼 데다 설계상의 문제로 애플의 컴퓨터와 성능차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1983년에 발표된 ‘PC XT-모델 5160’도 램의 용량이 늘어났다는 점 외에는 큰 발전이 없었다. 10MB의 하드디스크와 640KB의 램을 채택한 이 제품은 8천 달러의 엄청난 가격으로 일반 유저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가까웠다.

IBM에서 발표한 PC XT-모델 5160은

XT 규격을 제시한 컴퓨터였다.

그러나 IBM이 이 제품을 통해 제시한 ‘XT(eXtended Technology)’라는 형태의 컴퓨터는 이후 16비트 PC의 표준 규격으로 자리잡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타리가 8비트 컴퓨터의 기준으로 제시했던 MSX가 아시아 지역 외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하면서 16비트 컴퓨터도 일정한 규격 없이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지던 당시에, IBM이 제시한 XT 규격은 갓 PC 제조에 뛰어든 가전업체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80년대 후반에는 여러 업체가 XT 컴퓨터를 제조하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8비트 컴퓨터 시장은 빠른 속도로 16비트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애플 컴퓨터가 출시 초기부터 게임에 큰 관심을 두었던 것에 비해, IBM PC를 위주로 하는 16비트 컴퓨터는 사실상 게임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애플 II와 MSX 컴퓨터가 ‘울티마’, ‘가라테카’ 등 수많은 명작 게임들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IBM 계열의 16비트 컴퓨터를 위한 게임은 소수에 불과했다.

애초에 IBM이라는 업체가 정부나 대기업들을 주로 상대하던 ‘재미없는 회사’(지금도 그런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였던 것이 문제였다. XT 컴퓨터는 기본 320×200, 최대 640×200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CGA 방식의 그래픽 출력이 주를 이루었다. 해상도만으로 보면 MSX 컴퓨터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이었으나 문제는 색상이었다. 기본적으로 흑백 위주인데다 최대 16색밖에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용으로 쓰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끌던 MSX2 컴퓨터가 256색에 하드웨어 스프라이트를 지원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뒤떨어지는 사양이었다. 컴퓨터를 가정용 게임기라기보다는 편리한 사무기기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IBM의 한계였다. 1984년에 발표된 EGA 그래픽 방식은 640×350의 해상도와 64가지의 색상을 지원해 이전에 비해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다른 플랫폼에 비해 떨어지는 수준이고 이 방식을 채택한 컴퓨터도 많지 않았다.

사운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8비트의 MSX 컴퓨터가 사운드 전용 칩셋을 통해 아케이드 게임에서나 들을 수 있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당시에, 16비트의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던 IBM PC는 기껏해야 내장 스피커를 통해 귀에 거슬리는 삑삑 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ISA 슬롯을 통해 주변기기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ISA 슬롯은 주로 I/O카드나 모뎀 등을 위해 쓰였지만 사운드 카드를 달면 외부 스피커를 통해 MSX를 뛰어넘는 화려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아미가(Amiga)나 사운드 블래스터(Sound Blaster)등의 사운드 카드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였다.

XT 규격의 보드는 8비트 ISA 슬롯으로

다른 주변기기들과 연결할 수 있었다.

1987년 전후로 80년대 후반 16비트의 XT 컴퓨터가 급속도로 8비트 컴퓨터를 대체하던 1~2년간은 PC 게임의 암흑기였다. 게임 업체들은 이전의 8비트 컴퓨터보다 2배 이상 빨라진 16비트 컴퓨터 쪽에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조금씩 8비트 컴퓨터용 게임의 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떨어지는 하드웨어 사양에 게임을 맞출 수 없었기에 XT 컴퓨터용 신작을 발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8비트 컴퓨터에서 유행하던 몇몇 게임들을 16비트용으로 이식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XT 컴퓨터의 성능으로는

남북전쟁과 같이 낮은 수준의 그래픽을

구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 XT 컴퓨터로도 가라테카 등의

게임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은 애플이나 MSX용 게임을

이식한 것이었다.

국내의 PC 시장은 외국에 비해서 2~3년 정도 뒤떨어져 있었지만, 16비트 컴퓨터가 8비트 컴퓨터를 대체하는 기간은 외국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던 ‘컴퓨터=학습기기’라는 인식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애플이나 MSX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이야 게임다운 게임이라곤 없는 IBM PC보다 재미있는 게임이 많은 8비트 컴퓨터를 선호했지만, 부모들 입장에서는 화려한 그래픽이나 아름다운 사운드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1989년 정부가 정식으로 IBM PC를 교육용 PC로 채택한 이후로 16비트 컴퓨터의 보급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 세운상가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불법 게임을 유통하는 영세업자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대우, 삼성 등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PC 제조업체들은 발빠르게 모든 제품군을 286 계열의 16비트 컴퓨터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컴퓨터 학원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이맘때였다.

▲ 국내에서는 삼성, 금성 등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XT 컴퓨터가 생산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

8비트 컴퓨터에 비록 MSX라는 표준 규약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제품들은 각각의 제품마다 다른 해상도의 그래픽 출력을 지원했고, 그래픽 출력에 대한 일정한 규격도 없었다.

그래픽 출력에 대한 규격이 마련된 것은 16비트 컴퓨터부터였다. 규격이라고 해도 단순히 출력 해상도와 색상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뿐이었지만, CGA, EGA, VGA등의 그래픽 규격이 갖추어짐에 따라 게임을 비롯한 프로그램들도 그에 맞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에 발표되었던 320×200이나 640×200의 해상도를 지원하는 CGA 방식은 최대 16색밖에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에 게임용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984년 PC AT를 통해 발표된 EGA 방식은 640×350의 64색을 지원했지만 실제로 출시된 제품은 많지 않았다.

▲ 동일한 맵을 CGA모드와 VGA 모드로 본 화면이다.

16비트 컴퓨터의 그래픽 출력에 서광이 비춰지기 시작한 것은 1985년에 발표된 VGA 규격부터였다. VGA방식은 640×480의 해상도와 256가지의 색을 동시에 출력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뛰어난 그래픽 출력 방식이었다. 모토로라의 CPU를 채택한 컴퓨터들은 6만 가지 이상의 색상을 구현하고 있었지만, 정식 그래픽 규격으로 정해지지 못한 탓에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고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한 그래픽 전용 컴퓨터로 전락했다.

현재 주로 쓰이고 있는 SVGA 방식은 386, 486 컴퓨터를 위주로 하는 32비트 컴퓨터와 함께 발표되었다. 기존의 VGA 방식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800×600 이상의 해상도와 16만 가지 이상의 색상을 지원해 마치 사진 같은 그래픽을 보여주면서, PC 게임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80s’ ~ 90s’ DOS, VGA 그리고 게임

1984년 IBM에서 발표한 ‘PC AT’ 컴퓨터는 6MHz로 동작하는 인텔의 80286 CPU를 채택해 기존의 XT 방식보다 한층 발달된 ‘AT(Advanced Technology)’ 규격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다. 80286 프로세서는 6MHz로 동작하고 입출력 모두 16비트로 처리할 수 있는 본격적인 보급형 16비트 프로세서로, 80XX 시리즈 프로세서의 회로 집적도를 높이면서도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입출력 모두 16비트로 처리할 수 있다고 해도 80286 프로세서 초기 모델의 속도였던 6MHz는 당시 인기를 끌던 8MHz의 8088 프로세서보다도 느린 속도였다. 내장된 램도 XT의 그것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AT 컴퓨터가 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은 80년대 말의 일이었다. XT보다 나을 것도 없는 속도의 CPU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AT 컴퓨터가 XT를 뛰어넘는 고급형 컴퓨터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주변기기의 발달 덕분이었다. XT 규격의 컴퓨터에도 8비트로 동작하는 ISA 포트를 통해 I/O 카드나 사운드카드 등을 연결할 수 있었지만, AT 규격은 16비트의 데이터 입출력이 가능했기 때문에 XT에 비해 더 빠른 ISA 포트를 쓸 수 있었다. ISA 포트에 모뎀이나 사운드 카드를 연결하면 기존의 XT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한 통신 환경과 음향 환경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AT 컴퓨터 대부분에는 기본적으로 10MB 이상의 하드 디스크가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의 작은 용량에 불만을 갖고 있던 유저들에게 크게 환영받은 것도 인기의 이유였다.

▲ AT 컴퓨터는 뛰어난 그래픽으로

사무기기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AT 규격의 컴퓨터가 XT 컴퓨터를 크게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그래픽이었다. IBM이 처음 AT 컴퓨터를 발표할 1984년 당시만 해도 64색의 EGA 방식이 인텔 계열의 컴퓨터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그래픽이었으나, AT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VGA가 보편적인 그래픽 방식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AT 규격도 XT와 마찬가지로 메인보드에 사운드 관련 칩셋이 빠져 있었지만, 대신 16비트 ISA 포트를 통해 설치할 수 있는 사운드 카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음향 부분도 크게 개선되었다. 특히 저가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던 애드립 카드와 FM과 PCM 음원을 통해 고품질의 미디 음악을 재생할 수 있던 크리에이티브(Creative)의 사운드 블래스터의 영향이 컸다.

▲ 사운드 블래스터 카드는 최고급형 사운드 카드로 유명했다.

그래픽과 사운드가 크게 발달하면서, 1990년 이후에는 본격적인 16비트 PC 게임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DOS(Disk Operating System)를 기반으로 고품질의 영상과 음악을 지원하는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XT 시절에 침체되어 있던 PC 게임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당시의 아케이드 게임이나 콘솔 게임이 주로 반사신경을 요구하는 슈팅이나 단순한 시뮬레이션 게임 위주였다면, 1980년대 중반 이후 컴퓨터 게임은 보다 많은 시간과 사고력을 요하는 게임들이 주를 이루었다.

90년대 초는 어드벤처 게임의 전성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콘솔 게임기로는 구현하기 힘들었던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들이 VGA와 사운드 블래스터 호환 사운드에 힘입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시에라(Sierra), 루카스 아츠(Lucas Arts)를 중심으로 ‘원숭이 섬의 비밀’,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등의 대작 어드벤처들이 출시되면서 어드벤처 게임 시장은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액션 어드벤처 등의 게임들이 생겨나면서 자체적인 장르성을 잃은 어드벤처 게임들은 시뮬레이션 게임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원숭이섬의 비밀은 시에라를

최고의 어드벤처 게임 제조사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었다.

 

루카스 아츠는 인디아나 존스를 비롯해

스타워즈 시리즈 등 자사의 영화를 게임화했다.

당시 루카스 아츠의 게임들은

영화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했다.

▲ 페르시아의 왕자는

지금까지도 여러 버전으로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명작 액션 게임이다.

▲ 코나미에서 발표한 도키메키 메모리얼

이후, 일본에서는 PC용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큰 시장으로 부각되었다.

 

 

90s’ 32비트 컴퓨터의 등장

인텔이 최초의 32비트 CPU인 80386 프로세서를 개발한 것은 1985년의 일이었지만, 실제로 80386 프로세서를 장착한 386 컴퓨터는 훨씬 뒤에 출시되었다. 386 컴퓨터가 보급되기도 전에 80486 CPU가 발표되면서 80386은 인텔 역사상 가장 단명한 CPU가 되고 말았지만, 최초로 32비트를 구현한 CPU로 컴퓨터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80386 프로세서는 이전의 8088 프로세서와 마찬가지로 내부적으로는 32비트로 구동하고 외부 입출력은 16비트로 구동하는 불완전한 32비트이기는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했던 윈도우 3.0의 32비트 기술을 쓸 수 있었다. 외부 데이터를 16비트로 처리했기 때문에 16비트의 ISA 슬롯만을 쓸 수 있었지만, 이후에 발표된 80386DX 프로세서부터는 32비트의 PCI 슬롯을 쓸 수 있게 되었다. PCI 슬롯을 지원하는 비디오 카드, 사운드 카드, MPEG 보드, TV 카드 등이 보급되면서, 컴퓨터의 활용도도 사무용과 게임용을 뛰어넘어 멀티미디어 기기로 한 발짝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CD-ROM이 컴퓨터를 멀티미디어 기기에 가깝게 변화시킨 것에는 새롭게 도입된 CD-ROM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CPU가 메인보드에서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386 컴퓨터 이후였다

▲ CD-ROM이 보편화되면서, 게임의 용량도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MS-DOS(Disk Operating System)가 처음 개발된 것은 1970년대의 이야기였지만, 32비트 컴퓨터가 보급될 때까지도 MS-DOS는 OS의 왕좌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991년 윈도우 3.0을 발매할 때까지만 해도 32비트를 지원하는 게임은 거의 없었지만, 윈도우 3.0의 기능을 대폭 개선한 윈도우 3.1이 발표된 이후 이를 지원하는 게임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32비트의 성능을 최대로 활용한 화려한 비디오 화면이 게임에 도입되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뛰어난 그래픽의 게임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80386 이후의 메인보드 규격도 이전의 XT, AT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AT 규격까지는 CPU가 메인보드에 내장되어 있었지만, 386 규격에서는 CPU가 탈착식으로 바뀌어 상위 제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었다. 램이나 비디오카드를 비롯한 다른 하드웨어들도 쉽게 탈착이 가능하게 되어,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유저들에게 크게 환영받았다. 바야흐로 조립식 컴퓨터의 시대가 시작되는 때였다. 컴퓨터의 조립이 쉬워지고 486 컴퓨터가 시장의 대세를 이루면서, 하드웨어의 발전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 매킨토시용으로 발표되어

화려한 그래픽으로 유명했던 게임인

미스트가 IBM PC용으로

이식될 수 있었던 것도,

VGA를 기반으로 한 화려한 그래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 둠 시리즈는 뛰어난 게임성 이외에도

항상 그 시대의 최고사양 컴퓨터를

요구하는 게임으로도 유명했다.

 

 

 

▲ 윙커맨더4는 지금 보기에도

상당한 용량인 CD 4장 분량으로 출시되었다.

대부분의 용량은

게임에 삽입된 동영상으로 쓰였다.

▲ 소프트액션에서 1992년에 발매한

폭스레인저는 3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산 게임의 미래를 밝혔다.

 

▲ 워크래프트를 시작으로, 블리자드는

세계 1위의 게임 제조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급격히 컴퓨터의 사양이 고급화되면서, 그에 맞춘 고사양의 게임들이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특히 게임에 본격적으로 3D가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울펜슈타인 3D’에서 선보였던 3D 그래픽의 1인칭 아케이드 게임은 이후 ‘둠’으로 이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오리진에서 발표한 ‘윙커맨더3’ 또한 당시의 컴퓨터가 발휘할 수 있던 최대의 기능을 끌어낸 게임이었다. 이후에 발표된 윙커맨더4는 CD 4장 분량의 대용량으로, 유명 영화배우들을 채용한 실사 동영상을 삽입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90년대 중반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워크래프트2’가 C&C를 뒤집고 1996~1997년까지 전 세계 게임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한 이후, 블리자드는 세계에서 가장 이름 있는 게임 업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손노리 등의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그날이 오면’, ‘아기공룡 둘리’, ‘폭스 레인저’ 등 PC용 패키지 게임들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외국 대형 업체들의 게임에 비해 그래픽과 사운드 면에서 부족하기는 했으나, 국내 게임 업체들의 시작점을 잡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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