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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게임, 왜 영화만큼 대접 못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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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한 게임 웹진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소란은 게임 개발자 한 명이 2006 게임대상 시상식 이후 수여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게임시상식도 영화 시상식처럼 분야를 나눠 개발자 상, 3D모델러 상, 원화 상, 2D도터 상, 애니메이터 상, 클라이언트상, 서버프로그래머 상, 시스템 상, 시나리오 상 등으로 세분화시켜 수여하자고 제안했다.

이하 댓글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들은 게임과 영화의 위상에 대해 말하는 글들이었다. 게임의 위상을 이미 영화 이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고, ‘아직은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게임의 실제위상이 영화 이상이든 그렇지 않던, 한국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게임의 위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위의 예는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조각일 것이다. 인정하긴 싫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게임을 비교하며, 또 아직까지 영화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     

게임은, 과연, 영화와 비견할만한 대중문화로 성장할 수 있을까?   

산업규모는 게임이 앞서지만

산업규모 면만 놓고 보자면 (한국에서) 게임은 영화에 압승을 거두고 있다.     

2005년 문화관광부와 게임산업개발원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게임산업의 매출은 같은 기간 한국의 영화산업을 매출을 뛰어넘었다.

한국 게임산업이 2005년 한 해 기록한 매출은 8조 6,798억 원(2006 대한민국게임백서). 한국 영화산업은 2005년 약 8,981억 원의 극장매출을 기록했다(한국영화진흥위원회).  2005년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액 714억여 원을 합치면 9,700백억여 원에 이른다.

게임산업의 매출액 중 현재 한국 게임산업의 주력으로 평가 받고 있는 온라인 게임의 매출은 1조 4,397억 원. 단일항목만으로도 게임산업이 한국 영화산업의 매출을 앞지르고 있다. 영화산업에서 2005년 한국영화가 기록한 극장매출은 5,725억여 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비디오, 극장매출, 수출 등으로 구성되는 한국 영화산업의 규모는 2003년을 기점으로 점차 축소돼 현재 3조원대의 규모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와 게임이 같은 성격이나 판매방식을 가진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1대1 비교는 무리’라는 전제를 감안하더라도 규모 면에서는 게임산업이 영화산업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 PC방, 멀티플렉스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게임과 영화를 즐기고 있다

사회적 인식, 대중 친화력은 영화가 몇 수 위    

하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한국의 사회적 인식은 영화에 비해 전무 하다시피 할 정도다. 인식부족의 한 예는 정부의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7년 정부가 게임산업개발원에 배당한 금액은 총 116억 원. 그나마도 2년 연속 감소된 예산을 책정 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0월 ‘영화산업 중장기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000억 원 규모의 예산을 영화산업에 집행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디지털 타임즈는 이와 관련해 최근 “정부는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곧바로 영화산업 지원을 위해 5000억 원의 자금 조성 계획을 밝히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사행 게임 여파로 침체를 맞고 있는 온라인게임 업계를 위한 지원정책은 전무한 실정이다.”라며  “산업의 고용 창출 및 기업의 사회 공헌 측면에서도 온라인게임 업계는 영화계를 뛰어 넘는 역할을 하고 있으나 정부는 오로지 영화계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게임업체들의 하소연.”이라며 영화업계와 게임업계의 처지를 비교해 꼬집었다.

특정기간의 예산집행을 놓고 인식의 수준을 단정지을 순 없겠지만, 정부의 산업육성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예산집행임을 생각할 때 게임에 대한 인식이 영화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 게임위 출범식, 한국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일반인에게도 역시 아직까지 게임보다는 영화가 더 친숙한 문화매체다. 영화는 ‘활동사진’ 이란 이름으로 20세기 초 한국 땅에 들어온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을 대중들과 함께했다. 3세대를 거치면서 영화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손쉬운 문화생활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TV 수신기가 일반 가정의 안방에 들어앉은 후, 영화의 대중 장악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영화를 비롯해 비슷한 전달 방식을 가진 드라마 등이 국민의 저녁시간을 ‘장악’하면서 대중 친화력을 키워왔다.

켜켜히 쌓인 친화력은 ‘헐리우드 키드’와 같은 세대문화를 만들어냈고, 영화는 세대를 관통하며 아이에서 노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연령층의 호응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영화의 강점이 있다.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매우 높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영화의 사회적인 인식을 넓히는 작업에 한 몫 한다. ‘스타’로 대변되는 영화배우들은 항상 대중에게 노출되며, 때론 친근한 이미지로 때론 아이돌(우상)의 이미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게임의 경우에도 특정 캐릭터가 인기를 얻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양적인 면에서 영화배우와 같은 파워를 가지진 못한다.

'라라 크로포트' 같이 오히려 인간배우에 의해 재해석되는 게임 캐릭터도 있지만 살아있는 인간인 배우가 스크린 밖에서도 대중들과 소통하며 호흡(하는 척이라도)하는 것에 비하면, 무생물인 게임 캐릭터는 활동범위가 좁다.                                               

 

▲ '로스트 플래닛'의 이병헌. 영화배우들은 게임에 진출할 정도로 높은 친화력과 확장성을 자랑한다

또 영화는 문화라는 측면에서 대외적으로 자랑할만한 성과를 거둔 ‘전력’이 있다. 영화의 기본적인 성질은 대중문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예술’로 평가 받는 일부 한국영화의 경우 권위 있는 해외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위상을 한 단계 상승 시켰다.

‘예술성’을 공인받은 영화는 그것을 소비하는 것 자체를 문화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시설 좋은 멀티플랙스 극장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쇼핑을 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식으로 문화 생활을 즐긴다. 이 지점을 보면 ‘게임 마니아’와 ‘영화 마니아’를 인식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학부형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의 명암  

이에 반해 한국에서의 게임은 그나마 있던 인식마저도 발붙일 자리가 마땅치 않다. 비록 말뿐이었지만, ‘온라인 게임 강국’이란 타이틀로 한때 ‘수출 효자 종목’, ‘ 가능성 있는 산업’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평가는 없다. 그나마 이런 타이틀들도 지난해 불어닥친 ‘사행성 게임’의 바람 속에 지금은 들어보기도 힘들다. 게임산업이 대한민국을 ‘도박 공화국’으로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게임의 사회적 위상은 바닥을 쳤다.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 김기만 위원장이 최근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학부형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가 ‘게임’ ”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 게임 마니아와 영화 마니아를 인식하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차이가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질문 하나. 게임은 과연 영화를 뛰어넘는 대중매체가 될 수 없는 것일까?  

“학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1위가 ‘게임’이다”란 문장은, 뒤집어보면 게임의 거대한 힘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학부모라는 특정계층에서 미움을 받는 말은 어린이들에게 그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어린이뿐만인가? 우리는 종종 게임하다가 급사한 성인 ‘열혈 게이머’의 소식도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보면서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본 바 없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사회 속 게임의 영향력은 이미 영화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가끔 부정적인 방향으로 그것이 돌출되기에, 게임의 영향력은 게임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뿐이지 게임의 영향력은 이미 영화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가장 큰 요소인 영향력면에서 게임은 이미 충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적응력 뛰어난 게임, 대중문화의 주역될 것

콘텐츠 제공자와 대중 사이의 쌍방향성이 중시될 것으로 예측되는 미래에, 게임이 영화보다 생존에 더 적합한 ‘체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희망적이다. 영화는 완성된 콘텐츠로 일반통행으로 메시지를 주입 하지만, 게임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해 콘텐츠를 완성한다.                   

젊은 세대들이 게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영화가 걸어온 길을 게임도 똑같이 걸을 수 있다는 증거다. 지금 게임을 향유하는 세대들이 앞으로 사회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때 즈음이면 게임은 전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는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게임이 영화이상으로 대중문화 선봉에 나설 수 있는 성장동력은 충분한 셈이다.

자본력이 풍부한 대기업의 게임산업 진출 러쉬는 이런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의 자본이 투자되면서 설립된 멀티플랙스 극장이 한국 영화의 확산에 일정부분 기여한 사실을 상기해 보자. 멀티플랙스 극장의 도입으로 영화산업 전반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점도 기억해야 하지만, (기업의 투자가) 이전에 ‘가난하기만 했던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임이 문화로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두고 게임개발 업체의 한 대표는 “게이머에게 한국 게임은 쉽게 까먹을 수 있는 알사탕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개발사들이 유저들의 마음을 뒤흔들 콘텐츠를 아직까지 못 내놓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하자면 감동을 주지 못하는 문화는 그냥 일회적인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게임과 영화가 꼭 같은 길을 경쟁하며 걸을 필요는 없다. TV가 등장하면 라디오 문화가 죽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라디오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파를 타며 생명력을 활발히 유지하고 있다. 게임과 영화의 함수도 이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게임과 영화를 비교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게임이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게임의 위상은 지금보다 분명히 높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지금 영화를 즐기는 것과 같이 좀더 트인 공간에서 좀더 복합적으로 좀더 소통하며 게임과 '문화'를 즐길 것이다.      

어쩌면 게임이 대표 대중문화가 되는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오히려 한국 게임업계는 ‘왜 대접 안 해주냐’란 푸념을 내뱉을 여유도 없이 좀더 양질의 콘텐츠를 요구하는 대중들의 거센 요구에 직면할 지도 모를 일이다.

▲ 이런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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