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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연대기(The Luna Chronicle) 1화 +2화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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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게임메카와 이야인터렉티브는 ‘귀환병이야기’ ‘쿠베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판타지 소설 작가 이수영씨의 ‘루나 연대기’를 매주 월/목요일 주 2회 연재합니다. 소설 ‘루나 연대기’는 ‘루나온라인’의 기본 세계관인 블루랜드를 배경으로 한 왕자의 모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The Luna Chronicle

루나 연대기 1화

 

루나, 저주 받은 자들의 여신.

빛의 신에게 버림 받은 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유일한 여신이여

더럽혀진 자들에게 옷자락을 허락한 자애로운 어머니.

 

EP1. 검은 사냥꾼의 눈물

 

1. 이방인

언제나 온화하던 날씨가 드물게 세찬 모래바람을 담고 찾아왔다.

덜거덕거리는 덧창을 닫으며 요한은 걸레질을 시작했다. 달이 올라 온화한 빛을 뿌릴 때면 항상 그렇듯 드워프 전사들이 찾아와 맥주를 마셨다.

요한은 아내 질리안과 더불어 맥주통을 꺼내고 잘 손질된 돼지고기를 꺼내 화덕에 넣었다. 곧 작은 주점 안이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차자, 그는 비로소 안심했다. 드워프 전사들의 먹성은 그들의 주량과 비례했던 것이다.

“달이 떴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내뱉으며 드워프 전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뒤이어 포탈을 지키는 다른 전사들 세 명이 따라 들어왔다. 드워프 세 명과 인간 전사 한 명이었다. 모두 잘 단련된 육체를 자랑스럽게 내보인 채로 보기에도 끔찍한 무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냄새 좋은데!”

“여기 맥주 세 통!”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와 앉은 네 명의 전사들은 기분 좋게 주문했다.

붉은 수염을 기른 인간 전사 한 명이 제일 먼저 요한이 내 놓은 땅콩을 까먹으면서 부르르 떨었다.

“오늘 날씨가 아주 나쁘네, 어쩐지 이런 날은 불길하단 말이야.”

“밥, 네 놈은 항상 말이 너무 많아.”

“맞아. 불평도 많고.”

세 명의 드워프들이 인간을 타박했다.

블루랜드의 하이 드워프 전사들은 키가 크고 우람해서 인간전사들과 비교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넓은 어깨와 떡 벌어진 체구에 인간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옛날 디렌에서는 드워프들이 작달막한 체구의 난쟁이라 불렸다 했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였다.

“자, 한 잔씩 들자!”

새까만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한 드워프가 커다란 맥주잔을 들어 올리자, 모두 같이 잔을 들어 올렸다. 한참을 먹고 마시는 가운데 문득 인간전사, 밥이 요한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손님은 우리뿐인가?”

“네, 날씨도 좋지 않고. 오늘 마지막 비공정이 막 떠났으니 있을 사람이 없지요.”

“그도 그렇네. 하늘이 아예 새까매. 바람도 유별나고.”

“마스터 로케넌은 괜찮을까?”

“괜찮으시겠지. 어디 비공정 몰아 본 게 한 두 번인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날씨가 나쁜 적은 없었잖아?”

불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밥은 덧창을 밀어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항상 맑은 회색빛이던 하늘이 군데군데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구름조차 없는 마법적 결계가 쳐진 하늘이다. 그런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마탑의 메이지들은 혼비백산한 채 날뛰고 있을 터였다.

“불길하잖아.”

“불길하단 소리 한 번만 더 하면 코뼈를 으스러뜨려 주마.”

투덜대던 밥이 입을 다물자, 드워프 전사 킴볼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들이 떠드는 동안 요한은 돼지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화덕에서 구워낸 돼지고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육즙이 새어 나왔다. 그것을 특제 소스에 발라 내놓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장 큰 접시에 돼지고기를 소담스럽게 담고 있던 그는 문득 문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서 오십시오!”

끼이이이익―

세찬 바람 탓인지 그도 아니면 오래된 탓인지 나무로 된 문짝은 고약한 소리를 냈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어느 새인지 시커먼 그림자가 흐린 달빛을 지고 서 있었다. 키가 훌쩍 커서 거인처럼 보이는 사내. 들어선 손님은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저기...”

가게 안에 있던 이들의 모든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우억!”

“이게 뭔 냄새야?”

무리도 아니다. 그가 들어서는 순간 코를 찌를 듯한 악취가 퍼져나갔던 것이다.

새까만 가죽 망토에, 번들거리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머리와 어깨가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두 발로 걷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짐승으로 볼 만한 생김새였다.

“끔찍한 냄새군!”

“당신 누구야? 거지?”

잘 먹던 드워프 전사들이 불평을 토했다. 아무리 성격 좋은 드워프들이라도 그 역한 냄새에 뱃속이 울렁거릴 정도다. 무엇보다 그들을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 악취의 정체였다.

오랜 아귀다툼을 헤쳐 나온 전사들의 후각이 말했다. 그 악취는 피비린내다.

주점의 주인인 요한은 불안한 마음으로 새 손님을 흘끗거렸다. 달려가 맞이해야 할 지 내쫓아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먼지가 뿌옇게 앉은 검은 장화를 신은 손님은 모든 불평과 불만을 무시한 채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가 앉는 순간 또 한 번 고약한 악취가 진동했다. 비린내와 구린내가 뒤엉킨, 기괴한 악취였다. 평범한 요한은 뒤늦게 그게 피비린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고. 저기, 험지에서 오신 전사이신가 보군요.”

어쨌거나 손님은 손님. 거지로는 보이지 않는다.

요한은 불안한 심사를 억누른 채 다가가 말을 걸었다.

“식사 하실 겁니까?”

새 손님은 잠시 침묵했다. 가까이서 보니, 새까만 머리털이라 생각했던 것은 시커먼 망토에 매달린 짐승의 갈기였다. 그는, 거대한 야수의 머리통을 투구처럼 머리에 쓰고 있었다. 거인을 연상케 하는 덩치는 그 짐승의 머리 때문이었다. 그는 조금 안도했다. 가끔 험한 산에 사는 사냥꾼들이 그처럼 맹수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손님의 정체는 맹수 사냥꾼일 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요한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목욕 되나?”

거친 음성이었다. 섬뜩할 만큼 거칠어서 쇳덩이를 갈아 내는 것 같은 목소리.

가게 주인은 그 어조에 담긴 이질감에 겁이 났다.

“되, 됩니다. 이층에 방이 있습니다.”

“그럼, 목욕 준비를 해 줘.”

“네. 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잔뜩 굳어 있던 점원 토마스가 미친 듯이 이층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목욕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목욕 준비를 하는 동안 식사 하시겠습니까?”

“그래, 적당히 내 와.”

생각 외로 평범한 말에 안도한 요한은 마비된 후각을 애써 무시하면서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와 달리 드워프 전사들은 수상하다는 시선으로 사내를 살폈다.

사내 앞으로 나온 음식은 방금 전 드워프들이 먹던 것과 동일했다. 차가운 맥주와 구운 돼지고기, 그리고 절인 과일이 전부였다.

“헉!”

순간적으로 주시하고 있던 드워프들이 숨을 삼켰다.

음식을 보자마자 사내는 갑자기 와락 두 손으로 뜨거운 돼지고기를 집더니만 마치 짐승처럼 입안으로 구겨 넣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러운 손가락 사이로 육즙이 흘러내리고 소스가 시커멓게 묻었다. 아귀아귀 먹어대는 모습이 너무 추해서 역겨울 지경이다.

“쯧쯧.”

드워프들은 시선을 결국 돌렸다. 상대가 수상해 보이긴 했지만 범죄자라기보다는 아무래도 험지를 헤매다 돌아온 굶주린 여행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 그렇게 헤맸기에...”

알케르 시의 치안을 맡고 있는 치안대의 한 사람으로서 드워프 킴볼은 조금 심문의 필요성을 느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내의 전신에서 풍기는 피 비린내는 쉽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도살자나 살인마가 아니고서야 저렇게나 온 몸에 피 비린내를 휘감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사냥꾼이라 해도 저 모습은 정상이라곤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 나다니는 맹수 사냥꾼이 있을 리 없다.

블루랜드의 모든 지역에서 날뛰는 몬스터들은 사납다 못해 끔찍한 존재였다. 맹수든 마수든 몬스터든 들끓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대단한 사냥꾼이라 해도 혼자서 움직이지는 않는다. 각각의 역할을 맡은 자들이 파티를 짜고 그룹 별로 움직이는 게 보통인 것이다.

알케르시는 치안이 아주 잘 된 곳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한 자유도시였다. 몬스터들이 드나들지 못하는 대단위 결계는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창공의 탑과 연계된 마법사 길드의 위명에 떠돌이 범죄자들은 함부로 발을 뻗지 못한다. 대개 비공정 항구를 지키는 것은 마법사들과 드워프 전사들이다. 그 외에 마법사 길드에 속한 인간 전사나, 수인족 전사들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축이 되는 것은 하이 드워프 전사.

손가락까지 쭉쭉 빨고 있던 사내는, 마침내 하얗게 접시를 비우고 맥주를 숨도 쉬지 않고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안주거리로 나온 절인 과일과 땅콩까지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더.”

사내가 명령하자, 주눅이 든 요한이 급히 새 접시를 내왔다.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추가 해서 네 접시를 비운 사내는 그제야 꺼억 소리를 내면서 배를 두들겼다. 보고 있던 요한은 마지못해 검은 호밀빵을 내어 놓았다.

“빵인가?”

사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고기보다 빵이 더 놀랍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고 요한은 부르르 떨었다. 혹시나 먹을 것이 부실하다며 덤벼들까 두려웠던 것이다.

“빵이로군. 진짜 빵이야.”

사내의 시커먼 손가락이 거친 호밀빵 위를 쓸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빵을 조금 찢더니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염소젖으로 만든 버터가 한 접시 놓여 지자, 그는 만족스런 한숨을 내쉬며 빵을 먹어치웠다. 고기를 먹던 것과는 달리 한 입 두 입 음미라도 하듯 먹어치우는 그의 몸짓에서는 기품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혹시 포도주가 있나?”

“아, 아뇨, 하지만 앵두주가 있습니다.”

“그거라도 줘.”  

요한이 오랫동안 숨겨 두었던 앵두주 한 병이 나오자, 사내는 냄새를 맡으며 감격해 했다.

“이게 얼마만의 일인지.”

홀짝 홀짝 마시는 모습이 방금 전까지 고기를 아귀아귀 먹어댔던 사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보고 있던 자들도 새삼 주시했다.

“이보게.”

마침내 킴볼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투박한 나무잔에 담긴 앵두주를 음미할 뿐이었다. 앵두주라는 건 집안에서 그저 평범하게 담그는 과실주다. 집 안 마당에 열린 앵두를 가지고 담그는 흔하디흔한 과실주인 것이다. 그런 것을 세상에 다시없을 미주를 맛본다는 듯이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니, 킴볼은 어쩐지 연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카아.”

사내는 마침대 손바닥만한 크기의 호밀빵을 다 먹어치웠다. 그가 손짓을 하자, 가게 주인은 결국 또 한 덩이의 빵을 내 놓았다.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쨈도 좀 드릴까?”

“어떤 것이 있나?”

탐욕으로 번뜩이는 사내의 눈빛을 보다 못해 요한은 결국 두 개의 쨈통을 꺼내 놓았다. 나무딸기 쨈과 살구 쨈이었다. 새콤한 냄새를 풍기는 쨈을 황홀하게 내려다보던 사내는 손가락으로 찍어 먹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달군.”

감격에 겨운 그 어조에는 다들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단 것과 빵에 감격하는 작자? 대체 뭐하는 작자지?’

킴볼은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자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당장 감옥에 집어넣을 자로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나는 알케르의 치안대원이다.”

킴볼이 묻자, 갑자기 사내가 그를 흘긋 보았다.

순간, 음산한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킴볼은 얼결에 도끼를 던질 뻔했다. 뒤에 있는 동료들도 마찬가지인지 도끼자루를 움켜쥐었다.

“인간종족인가? 아니면 수인족?”

킴볼이 그 기괴한 사내에게 묻자, 입가에 묻은 쨈을 핥고 있던 사내가 으르렁거리듯 대답했다.

“나는 인간이다.”

“이름은 뭔가? 어디서 왔나?”

“알아서 뭘 하게?”

크크 하고 거슬리는 웃음이 사내의 입 안에서 터졌다.

순간, 보고만 있던 밥이 벌떡 일어서며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이 자식! 그게 무슨 말투냐?”

그 말에 사내의 눈에서 살기가 흘렀다. 깊은 숲속의 맹수에게서나 볼 법한 음산한 살기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시커먼 사내의 전신에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흘렀다. 오크로드나 오거가 보일 법한 피어였다.

“건방지구나.”

사내가 느릿한 어조로 대꾸했다.

“뭐, 뭐야?”

“감히 너 같은 천한 것이 내게 하대를 하다니. 죽고 싶으냐?”

음산한 어조로 자못 살갑게 말하는 것이 기묘했다.

가게 안 전체로 퍼져나가는 끈끈한 살기의 그물이 그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사내는 아주 느긋하게 손가락을 핥고 있었다. 손가락에 묻은 쨈 때문에 끈끈했는지 손가락 사이사이를 핥는 그 모습은 덩치 큰 야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기다려.”

마침내 킴볼이 나섰다.

나이 200살이 넘는 동안 그는 이렇게나 끔찍한 살기를 내뿜는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라이컨슬로프인가? 우리는 우리 일을 할 뿐이다. 너는 누구냐?”

“인간이다.”

사내의 얼굴에 시커먼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

“나는 인간이다.”

까드득.

움켜 쥔 주먹에는 굳은살이 그득했다. 시커먼 손가락 사이사이로 무기를 쥐고 싸운 자 특유의 마디가 드러났다.

“전사인가?”

킴볼이 되묻자, 사내는 잠시 동안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킴볼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뭐야? 너는 인간이 아니로군.”

“그렇다. 나는 드워프다. 하이드워프 전사다.”

킴볼이 가슴을 펴고 말하자 사내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군. 여긴 인간이 사는 마을이 아니었던가?”

“알케르 시는 다양한 일족들이 모여 산다. 인간이 많긴 하지만 드워프와 엘프 역시 많다.”

킴볼은 사내가 그다지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판단했다. 오랫동안 치안을 맡아온 드워프 전사답게 판단은 빨랐다. 적을 늘리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알케르?”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 여기는 알케르 시다.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전사여.”

“나는 케난게의 왕자 키안 로혼 발로르다. 이 곳의 왕은 누구인가?”

사내의 말에 뒤에 있던 밥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왕자? 웃기네. 저런 몰골의 왕자가 어딨어?”

그는 배를 잡고 웃으며 킬킬댔지만 사실 웃는 것은 그 혼자뿐이었다. 인간이야 옷차림에 많은 신경을 쓰지만 이종족 중에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은 엘프나 뱀파이어뿐이다. 그 외의 다른 종족들은 옷차림에는 무관심했다.  

“케난게는 어디인가?”

킴볼은 낯선 지명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긴. 서쪽 메아른지 반도에 있다. 이곳이야 말로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키안 로혼 발로르의 말에 킴볼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메아른지 반도? 그런 지명이 있던가? 허긴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도 많으니 알 수 없군. 어쨌든 케난게의 왕자,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건가?”

그의 말에 자칭 왕자인 키안은 더러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먼지가 우수수 떨어진다.

“잘 모르겠다. 하이 드워프의 전사. 나는 그저 마수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냥을 한 참 하고 있는 중간에 갑자기 이곳으로 이동된 것이다.”

“어쩌면 마법진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겠군.”

“마법진?”

눈이 휘둥그레진 키안의 얼굴에 킴볼은 자못 친절하게 말했다.

“그대는 모험가였나 보군. 괴팍한 마법사들이 만든 던전에서 헤매다 보면 간혹 공간이동마법진이 작동할 때도 있다. 그나마 이상한 곳에 떨어지지 않은 게 천운이야.”  

허나, 키안은 미심쩍다는 듯 얼굴을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야 어찌되었든 킴볼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에 대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눈앞에 있는 전사는 작은 오지의 왕국 출신으로 마수 사냥을 하던 중에 마법사의 트랩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 빠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피비린내도 이해가 갔다.

“이 도시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 가면 될 거야. 일단은 쉬고 정신을 차리도록 하게나.”

킴볼의 말에 사내는 피식 웃었다.

“그런가? 기대하지.”

아랫사람을 다루는 듯한 말투에 조금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드워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 인간이란 오만한 족속이 아니던가.

마침 그 때 목욕물 준비가 끝났다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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