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게임메카와 이야인터렉티브는 ‘귀환병이야기’ ‘쿠베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판타지 소설 작가 이수영씨의 ‘루나 연대기’를 매주 월/목요일 주 2회 연재합니다. 소설 ‘루나 연대기’는 ‘루나온라인’의 기본 세계관인 블루랜드를 배경으로 한 왕자의 모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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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쉬었던 용광로에 풀무질을 시작하자 곧 퍼렇게 불길이 오르기 시작했다. 킴볼은 춤추는 불꽃을 바라보며 온도를 가감했다. 그가 원하는 온도가 나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전에 만들다 만 건틀렛을 마저 손보기 위해선 강한 불꽃이 필요했다.
뚝뚝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지만 탄탄한 근육은 지칠 줄 모르고 움직였다.
“음?”
한참 두드린 쇠를 식히는 참이었다. 조금의 틈도 없을 때라 정신없이 움직였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라 뒤돌아보니 장대처럼 큰 사내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야?”
킴볼이 벌떡 일어서자, 사내가 손짓했다.
“계속해.”
“넌 누구냐?”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기다리고 있잖아.”
뻔뻔한 태도에 불끈 화가 치밀었지만 작업을 계속하라는 소리에 마음이 동했다. 킴볼은 신경을 끄고 작업을 계속했다. 뚱땅거리며 망치질에 들어가자 더 더욱 정신을 다른 데 돌릴 틈이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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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한참을 작업한 뒤 모양을 잡아 놓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뒤에 버티고 있던 인간이 생각났다.
땀을 닦으며 뒤돌아보니, 아까 서 있던 사내는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킴볼이 아침에 먹던 호밀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뿐만 이랴, 그가 준비해 놓은 쨈이며 햄까지 먹고 있다.
“이봐. 넌 대체 누구기에 여기에 와서 남의 것을 먹는 거지?”
“응, 맛있군.”
사내는 손가락까지 쭉쭉 빨며 대꾸했다. 그 먹는 모습에 킴볼은 어젯밤 만났던 시커먼 사내를 떠올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아무리 보아도 어제 보았던 사내와는 너무도 달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설마?”
“응, 어제 만났었지. 나, 키안이다.”
“그래, 인간 왕자.”
“왕자 소린 안 해도 좋아. 그대는 드워프지 인간이 아니잖아?”
그 말에 킴볼은 피식 웃고 말았다. 건방진 말투이긴 하지만 그다지 싫은 구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의 냄새가 거의 안 나는 것도 특이했다.
“생각보다 젊군. 인간의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젊은 나이 맞지?”
실제로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은 야위어서 그렇지 꽤나 잘생긴 얼굴처럼 보였다. 어젯밤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을 봤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굶주린 야수 같다 생각했던 얼굴이 창백하고 우울한 청년으로 보였다.
“그럴 지도.”
사내의 얼굴이 살풋 구겨졌다. 어쩐지 사연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킴볼은 모른 척했다.
“어쩐 일인가? 내 집은 어떻게 찾았어?”
“킴볼이란 이름을 대니 다들 알려주더군.”
“그래? 그나저나 왜 왔나?”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키안은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천천히 연기를 뿜어내는 그 모습에 킴볼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거, 독초 아닌가? 아주 독한 냄새가 나는데.”
“응, 괜찮아.”
“괜찮은 게 아니잖아? 그건 분명히 독초다!”
킴볼이 소리를 버럭 지르자 키안은 히죽 웃어 보였다.
“피운지 한 참 되었으니 괜찮아. 어지간한 독은 듣지도 않고. 그보단 부탁이 있어 왔다.”
“부탁?”
“무기를 얻고 싶어서 말이야.”
“무기?”
그제야 킴볼은 이 사내의 어디가 이상했는지 깨달았다. 지극히 전사다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쇠붙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 흔한 롱소드 하나 없다. 그저 걸친 것은 시커먼 가죽 망토가 전부였다.
“무기가 필요한데 왜 나에게 왔나? 가게에 가지 않고?”
그의 질문에 키안은 연기를 내뿜으면서 되물었다.
“당신, 드워프잖아?”
“그....”
“무기를 만드는 건 드워프에게 부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드워프는 드워프지만, 나는 하이드워프다.”
키안의 말에 킴볼은 조금 당황했다.
드워프라고 다 무기를 잘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사계급인 그에게 무기를 부탁하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인간보다야 낫겠지. 설마 무기를 못 만드는 건 아니지? 저기 있는 브레스트 아머도 괜찮아 보이는데.”
키안이 가리키는 것은 그가 전에 만들다 만 브레스트 아머였다. 아직 조각을 하지 않아 투박해 보였는데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킴볼은 조금 당황했다. 그는 담금질과 주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조각이나 섬세한 작업에 서툴러서 부친에게 구박을 받는 처지였다. 조각이나 세공은 모든 작업의 마지막이다. 그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해낸다고 얼마나 욕을 먹었던가.
“괘, 괜찮아 보여?”
“응, 좋아 보인다. 저거, 나에게 팔 수 있나?”
키안은 킴볼의 반응을 슬쩍 살피며 물었다.
“아직 마무리가 안 되어서...”
“내가 보기엔 다 되어 보이는데...”
“아직 조각도 하지 않았어. 문장을 새기지도 않았고.”
“뭐하러? 브레스트 아머는 가슴을 보호하는 보호장구다. 굳이 조각까지 할 필요 있어?”
키안이 어느 새인가 집어 들고는 가슴에 대어 보며 반문했다. 사실 장식적인 의미이외에도 조각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너무도 태연한 그 말에 킴볼은 그 말에 멍하니 키안을 바라보았다. 드워프들이 넘쳐나는 알케르 시에서 조각도 안 한 투박한 무구를 탐내는 작자는 어쩌면 이 기괴한 사내뿐일지도 몰랐다.
“이봐, 하지만.”
“조각도 필요 없고 이게 마음에 들어. 어딘가 따스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에, 진짜?”
만족스럽게 가슴에 대고 있는 그를 보다보니 킴볼의 장인정신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든 물건을 칭찬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기쁘기 짝이 없는 일. 실제로 전사로서는 일류라고 칭송받는 그였지만 장인으로서는 칭찬받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킴볼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고리가 있으니까 그걸 끼워야지, 일단 망토부터 벗어봐.”
“응.”
순순히 따르는 키안을 보고 킴볼은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항구에서 경비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바쁘다. 그래서 큰 물건은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야. 검을 제대로 만들려면 상당히 많은 시일이 걸리거든.”
저도 모르게 설명해주면서 킴볼은 그의 체격을 가늠했다. 창백한 얼굴에 비해서 근육은 탄탄하고 가슴이 벌어져 있어 하이 드워프의 체격에도 그다지 뒤지지 않을 듯했다. 워낙에 커다란 망토를 몸에 휘감고 있어 잘 몰랐는데 정말로 무기가 한 점도 없다.
텅 소리와 함께 시커먼 가죽이 바닥에 떨어졌다. 어지간히 무거운 망토인지 떨어지는 소리가 꽤나 묵직하다. 킴볼은 킬킬 웃으면서 결국 키안의 몸에 브레스트 아머를 걸쳐 주었다.
“브레스트 아머를 설마 처음 걸쳐 보는 거냐? 여기 고리로 착용한 뒤에 몸에 잘 맞도록 체인을 당겨라.”
“응, 브레스트 아머는 처음이야. 풀 플레이트 아머는 해 봤지만.”
“그런가? 그런데 왜 이걸 갖겠다는 거야?”
“그냥.”
“어쨌거나 나는 바쁘니까 제대로 된 무구를 만들 새가 없다. 칭찬해 준 것은 고맙지만.”
“항구치고는 굉장히 조용한 거 같던데?”
“비공정이 시끄러울 리가 없잖아?”
그의 몸에 잘 맞도록 고정해 준 뒤 킴볼은 문득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딱딱하다 못해 흉터가 가득한 손이 창백한 피부와 달리 단련된 전사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이상하다. 게다가 왕자라고 칭한 것을 봐서는 기사일 법한데 손매가 영 달랐다. 다섯 손가락 모두가 굳은살이 박혀 단단하기 그지없다. 대장장이도 아닌 주제에 손바닥 전체에 박힌 굳은살이 험악할 지경이었다. 손가락 끝과 손바닥은 유달리 단단했다. 꼭 오거의 가죽처럼.
“이상하군. 검을 쓰는 게 아니었나? 보통 인간 왕자들은 검을 쓴다 들었는데 이 굳은살을 보아하니 검은 아닌 거 같고.”
“손을 보면 아는 건가?”
키안의 눈이 반짝였다. 킴볼은 피식 웃었다.
“당연하지. 그런데 어떤 무기를 원하나?”
“검이나 창이나 상관은 없어. 그런데 어떤 걸 잘 만드나?”
그의 질문에 킴볼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실 그가 만든 것 중 무기라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검은 의외로 만들기 쉽지 않기 때문에 건틀릿을 만든 게 전부였다.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무기는 없어. 난 하이드워프라 무기를 만들진 않지. 거기다 항구 경비대의 일로 여유도 없고.”
“없다고?”
노골적으로 실망한 빛이 떠오른 그 얼굴을 보고 킴볼은 어쩐지 가슴 속이 뜨끔했다.
“만들 새가 없었다.”
못 만든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는 게 드워프의 자존심.
킴볼은 가슴을 펴고 당당히 말했다.
“난 바쁘다. 이 항구에서 비공정 경비를 맡고 있으니까. 검 같은 무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단 말이다.”
“그런가? 그럼 만들 새가 없어? 그렇게 바쁜가?”
의외로 순순히 대꾸하는 키안의 얼굴을 보고 킴볼을 할 말을 잃었다.
“오, 오늘부터 휴가이긴 한데...”
“그럼 만들어라.”
“그게...”
“이 브레스트 아머가 마음에 드는 걸 보니까 당신의 검도 마음에 들 것 같아. 그러니까 기다리지.”
“이, 이봐.”
기다리겠다는 말에 킴볼은 할 말을 잃었다.
“그보단 내 아버지를 찾아가는 게 어떤가? 우리 아버지는 소문난 장인이니까.”
양심상 차마 그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킴볼이 슬쩍 말을 돌렸지만 키안은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아니, 당신의 물건을 받고 싶다. 다 될 때까지 기다리지.”
“어째서? 나보단 다른 사람이 더 나을 텐데?”
킴볼의 질문에 키안은 새로 얻은 블레스트 아머를 톡톡 치면서 중얼거렸다.
“그냥.”
아는 드워프가 그 밖에 없다. 원래 오래 쓸 물건은 아는 사람을 통해 구하는 게 더 쉬운 법 아니던가.
키안은 은근슬쩍 말을 삼켰지만 킴볼은 나름 감격했다.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는 인간이 그에게 기대를 했다는 게 무척 기뻤다. 잘은 몰라도 이 눈 앞에 있는 남자는 꽤나 강한 전사로 보였다. 그런 남자가 기다려 준다는 것은 대장장이로서 기쁘기 짝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이 뭔데?”
그가 호의를 갖고 묻자, 키안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검, 곤봉, 단검, 올무, 활, 화살. 건틀렛.”
“흠, 어지간한 것은 다 있어. 내 창고에 가볼래?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킴볼은 그를 이끌고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드워프의 창고답게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벽에 빼곡히 걸려 있는 것이 전부 다 무기류였다. 보통 드워프들은 짧은 무기를 선호하지만 하이드워프인 킴볼은 인간 못지 않게 컸기 때문에 각양 각색의 무기류를 수집하고 있었다. 알케르에서 제일 가는 대장장이 중 한 명인 바케론의 자식인 만큼 그의 무기창고는 자랑할 만 했다.
물론 가장 많은 것은 도끼 종류였다. 단단한 근력과 완력 탓에 드워프들은 타격 무기를 선호한다. 메이스나 곤봉 역시 선호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도끼류가 가장 드워프에게 걸맞았다. 드워프들이 주로 쓰는 도끼는 레인저나 기사들이 쓰는 것과 달리 양날 도끼로, 배틀 엑스가 대부분이었는데 킴볼 역시 도끼류를 수집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본 도끼들의 행렬에 자기도 모르게 키안은 입을 벌렸다.
희고 푸르게 빛을 뿜어내는 도끼들은 말 그대로 근사했다. 키안은 기사들과 함께 자랐지만 단 한 번도 저렇게 근사한 배틀 엑스를 본 적이 없었다. 투박한 고국의 무기들은 이에 비한다면 쓰레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몰랐지만 킴볼의 무기 대부분이 미스릴이 섞인 고급품이었다. 드워프 장인의 레어급 무기는 호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살 수도 볼 수도 없는 게 보통이다. 키안은 아무 것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눈앞에 있는 무기들이 범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차렸다.
그 중 그는 자신의 신장에 어울릴 배틀 엑스를 집어 들었다. 도끼자루가 곤봉만큼 길고 창보다는 조금 짧다. 이런 형태의 배틀 엑스는 처음이어서 그는 혹한 얼굴로 몇 번이고 손으로 매만졌다. 반원형의 도끼날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단순히 타격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날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울처럼 맑은 빛이 나는 두 개의 날은 균형감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상관없이 사용해도 될 완벽함이다.
단정하게 육각형으로 세공된 도끼날 아래는 은빛을 뿌리는 깨끗한 도끼자루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무가 아니라 도끼날과 같은 재질로 만든 도끼자루였다. 가늘게 새겨진 흠집 덕분에 미끄러질 염려도 없었다. 양손이든 한 손이든 모두 감당할 수 있도록 적절한 부분에 돌기까지 잡혀 있다.
키안은 넋을 잃었다.
말 그대로 예술 작품 같았다. 그가 봐왔던 모든 무기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부왕의 왕검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가벼워 그는 한 번도 그 검을 마음에 들어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로 완벽했다. 아무리 살펴도 도끼날과 도끼자루의 이음새를 찾을 수 없다. 배틀 엑스라 부르기엔 너무도 아름다워 예식용으로 보였지만 도끼날은 섬뜩할 정도로 예리했다. 도끼자루가 꽤나 길어서 1미터도 넘었다. 아마 마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듯했다. 기사로서 탐이 났지만 지금 그에게는 말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무기는 분명히 귀한 것이리라. 쉽게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자루가 긴 배틀 엑스를 단념하고 조금 짧은 도끼를 하나 집어 들었다. 방금 전까지 홀린 듯 바라보고 있던 배틀 엑스가 아니라 나무로 된 도끼자루를 한 투박한 한날 도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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