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사회를 ‘술 권하는 사회’라고 부른다. 본래 현진건이 지은 작품 ‘술 권하는 사회’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현대 사회에서는 음주 문화에 관대한 사회의식이나 2,3차 회식문화, 소주와 같은 고도주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주세(酒稅)를 매겨오던 관행(2006년까지는 저도주인 맥주 주세보다 낮았음)등 음주 권하는 사회라는 의식이 사회전반에 팽배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의식이 변함에 따라 사람도 달라지는 법.
참살이(웰빙)열풍을 타고 술 권하는 사회 분위기는 서서히 누그러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향이 우리 사회 뿌리깊이 박혀가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불법복제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불법복제 권하는 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불법복제가 만연해 있다. 요즘 음악 쪽으로는 불법복제 및 다운로드의 기세는 꺾여가고 있다. 그러나 게임 쪽으로는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 P2P나 컨텐츠 공유 사이트를 통한 불법 다운로드는 패키지 시장을 거의 붕괴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 불법복제는 우리 게임시장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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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 게임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게임업계로서는 매우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관해 게임개발자 및 유통사의 탄식 및 분노도 표출된 사례가 자주 있었다.
관련기사: 콜오브듀티4 개발자, 게이머에게 화낸 사연, 한국닌텐도 불법복제 관련기사
과거의 불법복제 상황
과거에도 불법복제는 있어왔다. 놀랍게도 예전에는 게임물에 대한 복제가 오히려 게임개발사에 의해 권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에 게임을 담아 팔던 시절에는 디스크 에러를 염려한 제작사측이 매뉴얼에 백업용 디스크를 만들어두라는 친절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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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관에 유의해도 에러나는 경우가 허다했던 플로피 디스켓
문제는 이 백업용 디스켓이 백업용으로 그치지 않고 타인에게 양도, 대여되면서 일어났으나 당시의 복제문제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대수도 크지 않았고 그야말로 백업본의 대여 정도에 그쳤으며 인터넷 또한 없었던 시절이었던지라 무분별한 복제는 어려웠다. 콘솔 쪽에도 UFO, 패왕, 닥터 등으로 불리는 복제머신 등이 있었으나 당시로서는 접하기 힘든 고가인 까닭에 소유하고 있는 개인은 매우 적었고 용산 등지에서 기업적으로 만드는 복제팩 정도가 불법복제의 산물이었다.
이 시기에는 콘솔 게임이 국내에 정발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보따리 상’을 통한 10만원, 혹은 그 이상을 호가하는 일본판 정품게임팩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지금도 10만원짜리 게임타이틀이라면 살 엄두가 안 나는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반면 복제팩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품팩의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싼 가격 인 1만~2만원 정도로 저렴했기 때문에 불법복제가 당연시 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에도 역시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불법복제 제작자만 처벌하고 기계를 압류하면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능했으며 오직 오프라인으로만 거래되다보니 물리적 한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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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O, 당시에는 꿈의 기계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 오프라인 상으로만 거래되던 불법복제게임물은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그 정도가 도를 넘게 된다. ‘와레즈’라고 불리는 사이트 들을 통해서 면대면으로 거래되던 오프라인 시장의 범위를 가볍게 넘어서서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횟수에 제한 없이 무제한적으로 게임물을 복사해주게 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과거에는 불법게임물을 공급하는 자와 소비하는 자가 구분되어있었으나 인터넷 시대가 개막되면서 소비자가 다시 공급자로 변하는 악순환이 시작되고야 만 것이다.
한국인들의 유난한 홍익인간 정신의 발현인지 최신게임은 발매된 당일로 공유사이트에 업로드가 되며 한글패치까지 떡 하니 첨부해주니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눈 딱감고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할 수 밖에. 여기까지 이르러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은 다 쓴 치약처럼 더 이상 짜먹을게 없는 시장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한때는 새 치약처럼 통통하고 1500원짜리 닭꼬치처럼 먹을 것도 많았는데 이제는 복제유저들이 하나씩 하나씩 빼먹고 짜서 쓰다 보니 이젠 다 쓴 치약튜브나 꼬치만 남은 형국이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현재의 상황
작년 5월경 필자는 친구가 닌텐도 DS를 사러가는 길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판매원은 대뜸 R4를 권하며 이것만 있으면 인터넷에서 무료로 게임 다운받아서 팩 값이 전혀 들지 않으니까 지금 팩2개 값만 쓰시라며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다. 필자가 의아한 마음에 팩을 많이 팔아야 오히려 이득이 남는 것이 아니냐며 판매원에게 따져 묻자, 판매원은 '손님 생각해서 그런 것인데 싫으면 마시라'며 말끝을 흐렸다.
게임팩을 팔아야 마진이 남는 게임소매상에서 불법복제도구를 판다는 것이 얼핏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경을 알고 나면 그들이 자기 살을 깎아먹는 불법복제도구를 열심히 판매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보통 전자상가 판매원들은 기본급이 없거나 아주 박한 수준이다. 이들의 수입은 거의 성과급인데 보통 게임타이틀 하나 판매해봐야 그들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1천~3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R4같은 제품은 그 마진율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하루하루 매상이 곧 수입으로 직결되는 그들로썬 장래를 내다볼 겨를도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만 i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들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정작 기계보급대수는 많이 팔렸는데 소프트는 판매되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로 가게 되고 만다. 주변의 닌텐도 DS유저들이 있으면 한번 살펴보라. 당당히 정품만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거의 기기 구매와 동시에 R4같은 도구들을 사게 만든다.
정품만 쓴다고 하면 오히려 바보취급당하기 일쑤이며 다운받아서 무료로 하지 왜 비싼 돈 들이냐며 핀잔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버텨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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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닌텐도 게임’ 허무할 정도로 다운받는 경로도 간단하다.
플레이스테이션 쪽도 다르지 않다. ‘플스여왕’이란 불법복제 대부가 검거된 이후 작성된 포털사이트 기사에는 그를 옹호하는 글들이 부지기수로 달리며 그를 영웅시하는 모습들을 보이곤 했다. 복제칩을 달아서 구동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서민플스’라고 부르며 복제타이틀 돌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 모습은 우리 나라 게임시장의 현실 그 자체였다. PSP를 사면 그 자리에서 1~3만원의 추가금을 받고 커스텀펌웨어를 해주고 몇 개의 게임을 채워주던 모습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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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펌방지스티커’, 게이머는 잠정적인 저작권법 위반자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국내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사실상 국내업체들은 불법복제가 난무하는 패키지 시장이나 콘솔시장은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복제에서 자유로운 온라인으로만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온라인게임 강국이란 타이틀도 어찌 보면 불법복제라는 기존시장의 어두운 이면이 큰 이유로 작용했을 터.
복제품 유저들의 항변
흔히 불법복제 게임물을 쓰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몇 가지로 요약된다.
1. “그거 일본 게임이잖아. 일본 애들한테 돈 줄 거 뭐있어.”
2. “넌 다 정품 쓰냐? 너부터 정품 쓰고 말해라.”
3. “게임을 형편없이 만들어놔서 돈을 주고 구입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 정도가 대표적인 반응이라 하겠다. 지금부터 하나씩 그 답을 달아보도록 하겠다.
1. ‘외국산 게임이라서 그 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는 듣다보면 국산 게임이 나오면 돈을 주고 사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불법복제 자체가 시장의 크기를 형편없이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말은 어불성설이 되고 만다.
마치 바다에 기름을 쏟아 부어 도저히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고 여기서 고기를 잡아오면 사 주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게임시장의 협소성과 암담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내업체들이 과연 얼마나 개발에 뛰어 들겠는가? 또한 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데 외국산 게임들을 정식발매하려는 업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나마 현재 한글화를 충실히 하고 있는 한국닌텐도 역시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언제 SCEK의 뒤를 따라 매뉴얼한글화 수준에 그친 현지화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SCEK가 한글화를 안한다고 욕할 것이 아니다. 한글화하는 비용조차 안빠지는 기형적인 시장이 문제이지 업체에게 왜 손해 안보느냐고 호통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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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어장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고기가 잡히면 사주겠다는 겁니까?
2. 이른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론이다. 복사게임 돌리는 것을 질타하면 네 윈도우 씨리얼 넘버부터 대보라는 식이며 가장 말이 안 통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잘못을 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을 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가장 빠른 길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논지에서 벗어난 다른 일을 끌어들이면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식의 대응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식이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대의 흠결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한 나의 심리적 만족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잘못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대응방식은 마치 시험시간에 컨닝을 하다 걸렸을 때 왜 나만 붙잡느냐 너는 컨닝 지금까지 한번도 안했느냐며 대드는 것과도 다를 바가 없다. 불법복제물을 쓰는 것에 대한 양심적 가책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도덕적 불감증이 우려되기도 한다.
3. 보통 게임을 형편없이 만들어 놔서 돈을 줄 필요를 못 느낀다라고 말하는 부류는 게임 구입에 전혀 돈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해보고 재미있으면 정품을 구입한다는 분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정말 백에 하나가 쉽지 않다.
전혀 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며 쓰레기 취급을 하면서 삭제해 버리고 만다. 미처 그 게임의 진정한 재미를 알아보기도 전에 말이다. 이러한 부류들은 이른바 ‘게임불감증’에 걸리기 십상이며 눈만 높아져서 점점 까탈을 부리는 정도가 심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불감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정말 심사숙고해서 고른 타이틀을 하나 직접 구입해서 엔딩까지 근성있게 한번 플레이 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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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4' 게임불감증의 주원인!
대책은 없는가?
가장 큰 대책은 무엇보다도 불법공유를 차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단속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법복제는 더욱 판을 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 시장 재임시절에 '월드사이버게임즈 2003(WCG 2003)' 폐막식에서 ‘스타크래프트’ 종목 우승자와 직접 대결을 위해 5개월간의 개인교습을 받았다고 알려지는 등 게임에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통령 후보 시절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은 최고의 수준이다. 게임산업을 미래산업으로 보고 좀 더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뒷받침하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게임산업도 반도체 시장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전략 산업으로 생각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라고 발언한 바 있다.
정말 게임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생각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불법복제의 차단을 통한 게임개발자들의 사기 진작 및 합법적인 게임시장 파이의 확대가 아닐까?
그 이후에는 게임개발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게임을 출시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게임시장은 급속도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며 온라인으로 떠났던 많은 업체들이 다시 패키지 시장으로 돌아와서 시장을 살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게이머들의 사고방식 전환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명박 정부의 확실한 게임산업 지원책을 기대해보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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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품 사용이 당연시 되는 날이 언젠가 꼭 오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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