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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부끄러운 자화상! 대한민국 복돌이의 역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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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한민국 복돌이의 역사

1부: 대한민국 PC 게임 패키지 시장, 종말을 고하다

2부: 모드칩에서 커스텀 펌웨어까지 - 콘솔 복사 전쟁

3부: The Day After -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외전: 복돌이, 마침내 온라인 게임에 손을 뻗치다

▲ 백업시디 한 번 안 구워본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라는 것이 복돌이의 흔한 논리.

- 들어가며: 왜 복돌이의 역사인가?

대한민국에 사는 게이머 중 불법복제에서 자유로운 게이머가 얼마나 있을까요? 불법복제에 대해 지적하면, ‘넌 정품만 썼냐’ 라고 불법복제 유저들이 반문하는 세상이니까요. 더 슬픈 것은 거기에 당당히 ‘아니, 난 정품만 썼는데.’라고 답할 수 있는 게이머를 찾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게임을 불법으로 공유하는 사이트들과 웹 스토리지 업체는 오늘도 넘쳐나는 수익에 비명을 지릅니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는 하루에도 수 십 건씩 복사 게임에 대한 질문이 올라옵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요?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책임 지는 사람도, 업체도, 그리고 반성도 없습니다. 오로지 서로에 대한 비난과 욕설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 기사는 대한민국의 복사게임유저-일명 복돌이-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국내 게임 시장이 어떻게 죽어왔는지, 여러분에게 전하는 슬픈 회상입니다.

- 천지창조: 1980년대 말, 게임과 복돌이의 태동

1980년 말 IBM 호환 PC의 시장 장악과 PC통신망의 탄생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PC시장은 AppleII와 MSX, 그리고 IBM 호환 PC의 삼파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AppleII가 다른 두 기종을 압도하는 경향이었지만, 1980년대 말 정부의 16비트 컴퓨터 보급 정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정부의 PC 보급 정책에 IBM 호환 PC(8086 XT)가 채택되자, 다른 두 기종을 압도하고 전국적으로 급격히 보급됩니다.

▲ 최종 승자, IBM XT PC

 PC가 전국적으로 보급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가정에서 PC는 사치품이었습니다. IBM 계열의 PC는 처음에는 사무실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XT 기종의 가격이 하락하고 가정에 서서히 보급되자, 차츰 게임 플랫폼으로서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자리를 잡아 마침내 XT용 게임이 느리게나마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XT 기종 하에서의 게임환경이라고 해 봤자 흑백 표현이 고작인 허큘리스 카드에 하드 디스크는 고사하고 2FDD가 달린 기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실제로 게임다운 게임을 즐기기는 어려웠으며, 당연히 국내에 게임을 판매하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거기에 이 시기에는 국내에 존재하는 PC통신망조차 아직 걸음마 단계였기 때문에 정보 교류조차 힘들었습니다. 당시 한국경제신문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던 KETEL(일명 개털)이 막 시작된 단계였고 모뎀의 보급 자체도 더뎠기 때문에 통신망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덕분에 게임 정보라는 것이 고작 PC잡지나 소년잡지에서 곁다리로 게임을 다루는 정도였지요.

태초에 게임이 있었나니, 게임 있는 곳에 복돌이가 있더라

이 당시 대한민국 PC게이머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게임을 하나 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스켓을 바리바리 싸 들고 복사비(!)를 챙겨서 가까운 컴퓨터 판매점이나 카피게임을 판매(!)하는 곳으로 달려가 게임을 복사해야 합니다. 복사한 다음에는 배드섹터가 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집까지 가지고 와 2FDD 드라이브에 디스켓을 번갈아 넣으면서 구리구리 한 흑백 화면에서 플레이 해야 했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물론 이 당시에 게임을 정식으로 판매하던 곳이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디스켓 생산으로 유명했던 SKC와 게임 유통 업계의 최고참인 동서게임채널이 이미 1980년대 말부터 게임 소프트웨어 유통업에 참여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두 회사는 MSX와 애플용으로 상당한 소프트웨어를 유통했고, 거기에 미리내 소프트에서는 저 유명한 ‘그날이 오면’ 시리즈를 개발해 판매했었습니다. 단지 복사에 밀리고, PC기종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그렇게까지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 이 기계를 직접 써 분 본이라면 지금쯤 30대가 되어 있을겁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하에서 그나마 최신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복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AT기종(80286)과 모뎀, 그리고 컬러 모니터가 보급될 때까지 계속 됩니다. 아마 이 때 복사게임 하던 사람들이 지금의 30대~40대 직장인이 되어 있겠지요.

- 복돌이와 게임업체, 전쟁이 시작되다: 1990년대 초반 ~ 1990년대 중반

천지개벽! PC 하드웨어의 변화와 PC통신의 보급

이렇듯 열악하던 게임 환경은 80286CPU(AT)와 컬러 그래픽카드(CGA, EGA, VGA 3형제) 그리고 모뎀이 서서히 일반 가정에게까지 보급되면서 급변하게 됩니다. 느려터진 XT에서 흑백모니터로 간신히 게임을 즐기다가, 이제 AT기종과 컬러 모니터로 빠르게 즐길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드웨어의 변화와 함께 PC게임 자체의 종류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거기에 발 맞추어 게이머들의 숫자도 크게 늘게 됩니다.

▲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페르시아의 왕자'

PC하드웨어의 보급과 더불어 PC통신망 역시 급격하게 발전했습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이용하던 KETEL은 모뎀이 보급되면서 급격하게 사용자 수가 늘어나, 운영 주체가 한국경제신문에서 한국통신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KETEL은 곧 KORTEL(코털)시기를 거쳐 HITEL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PC통신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 당시 국내에서 PC통신은 곧 ‘하이텔’을 뜻했고, 사용자 수에 있어서나 자료에 있어서나 ‘하이텔’은 단연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1986년부터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천리안도 있었지만 천리안은 처음부터 유료였기 때문에 그 이용자가 하이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음)

▲ 이 화면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한국통신 우수고객(?)이 되었습니다.

비싼 돈 내면서 귀찮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게임(카피)가게까지 갈 필요 없이 약간의(!) 전화요금만 지불하고 편안하게 게임을 다운받아 즐길 수 있는 PC통신망은 게이머들에게 그야말로 복음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제 수많은 게임들이 공개자료실과 동호회 자료실을 뒤덮어 말 그대로 복사게임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예전만큼은 못했지만 여전히 PC통신의 혜택을 받지 못한 천민(?)들을 위해 게임(카피)가게 역시 성업했습니다.

비록 PC게임이 급격하게 보급되면서 PC게임의 시장성이 천천히 인식되고는 있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지적재산권 개념 자체가 없다시피 했습니다. 게임을 ‘구입’한다고 하면 주로 복사된 게임을 뜻했고, PC통신의 보급 이후에는 게임을 ‘사서’ 하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이렇듯 불법 복제에 대한 인식 부족은 2000년대까지 죽 이어져 게임 패키지 시장의 멸망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됩니다.

↓페이지 이동은 이쪽입니다↓

게임 안 산 놈은 하지마! 게임업체의 역습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하드웨어의 진화 속도는 급격히 빨라집니다. 80386 CPU와 80486 CPU, 그리고 VGA 그래픽 카드, 사운드 카드와 하드디스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PC게임 시장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제 PC게임은 더 이상 답답한 흑백화면에서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즐기던 유치한 애들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PC게임은 심오한 이야기가 총천연색과 아름다운 사운드로 화려하게 표현되는 놀이문화로 탈바꿈하고 있었고, PC의 대량생산과 더불어 하드웨어의 가격이 점점 내려가면서 PC게임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블루오션 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 울티마7. 당시 최고의 그래픽과 스토리를 자랑했다.

그러나 게임 유통업체와 게임 제작업체에게 불법복제는 여전히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게임 시장은 날로 커져만 가는데, 정작 업체들은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연한 것입니다. 비교적 적은 돈과 시간을 들이면 PC통신망과 게임가게에서 쉽게 불법복제 게임을 구할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정품을 사려 하겠습니까?

결국 참다 못한 게임업체는 행동을 개시합니다. 대대적인 복사단속이 전국적으로 이루어지자, 많은 복사게임가게들이 문을 닫았으며 PC통신망 자료실에서 상용자료가 대량으로 삭제되는 사태가 빚어집니다. PC통신망과 게임가게를 단속해 불법 복사경로를 차단함과 더불어 게임 유통업체에서는 해외 명작게임을 라이센스, 한글화 하여 발매해 정품 구매를 유도했습니다.

불법복제 단속과 해외 명작게임의 라이센스 발매를 계기로, 정품을 이용하는 게이머가 차츰 늘기 시작하자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정품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합니다. 결국 복돌이들은 차츰 PC통신 전면에서 음지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정품 사용자가 나름 합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 동서게임채널에서 발매했던 'C&C: 적색경보' 패키지

하지만 지금처럼 불법 유저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하며 욕하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이 좋게(?)자료실에서 다운받은 게임에 대해 토론하던 사람이, 오늘 정품 하나 샀다고 다른 사람을 욕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또한, PC통신에서는 자신의 실명이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대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점도 한 몫을 했습니다.

‘너나 사서 하세요.’ 복돌이, 소규모 BBS로 숨어들다

이런 대대적인 단속과 사회적 압력, 그리고 정품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복돌이들의 불법복제는 여전했습니다. 말 그대로 불법복제는 끝없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방식도 날로 교묘해져 갔습니다.

예를 들어 동호회 자료실을 통한 공개적인 다운로드가 힘들어지자 소수의 인원을 위한 동보 메일에 파일 첨부를 해 다운 받는 형태로 게임을 받기도 했고, 아예 폐쇄 그룹(CUG)를 만들어 소수의 인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실을 만들어 여기서 게임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단속으로 이익을 본 곳은 게임 업계뿐만이 아니라 01410 등의 공용접속망에 물려있던 소규모의 BBS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전까지는 작은 규모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규모의 BBS들이, 이제는 복사 단속의 사각지대로 인식되면서 많은 복돌이들이 이들 BBS를 찾아 게임을 교환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당시 유명했던 BBS로는 무료로 운영되던 ‘키텔’, 증산도 교단(!)에서 운영하던 ‘신천지’와 유료로 운영되던 ‘PC-VAN’(증권/해커동호회가 유명)등이 있었습니다. ‘키텔’과 ‘신천지’같은 경우에는 무료인 탓도 있고 해서 사람이 크게 몰렸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려 저녁 시간대에는 아예 접속이 안 될 지경이었으니까요.

▲ 이 분들이 '새 시대'를 맞아 복돌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는 겁니다.

당연히 이들 BBS에서도 불법자료를 단속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단속은 어디까지나 형식에 그쳤습니다. 고작해야 불법 자료가 공개 자료실에 대놓고 올라오지 않게 하는 정도였지, 소규모 동호회의 자료실까지 전부 검열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들 BBS의 동호회 개설 요건은 메이저 PC통신 업체들보다 훨씬 간소했기 때문에 많은 동호회들이 만들어져 게임을 교환하게 되었습니다. 덩달아 메이저 PC통신 업체에 있던 몇몇 동호회들도 이런 흐름(?)에 가세해 상용 게임을 몰래 올리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복돌이 제2의 중흥기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PC통신망이 기울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되며, 마침내 대한민국 패키지 시장을 끝장내는 한 원인이 됩니다. 뭐, 그런 상황은 먼 훗날의 일이고 일단 1990년대 중반까지는 게임 유통 업체와 국내 게임 제작사들이 나름대로 불법복제에 대해 승리를 거두며 많은 게임을 쏟아냅니다.

 

- 신들의 황혼: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게임 패키지 시장의 종말, 그 서곡

1990년대 후반까지 불법복제와 악전고투하면서도 국내 게임 업체들은 나름대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10만장 가까이 팔렸다는 삼국지 시리즈나, 창세기전 시리즈는 말할 필요도 없고 셀 수 없을 만큼의 명작 PC 게임들이 한글화까지 되어 발매되었습니다. 수 종류의 게임 잡지마다 게임 패키지와 게임 제작사 광고가 몇 십 페이지씩 실려있던 가히 국내 패키지 시장의 절정기였습니다.

게임 환경도 크게 발전해 빠른 연산 속도를 자랑하는 펜티엄 CPU와 당시로서는 신기술이었던 3D카드가 서서히 보급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운영체제도 도스에서 윈도우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도트 튀던 그래픽 대신 3D 그래픽을 사용한 게임이 천천히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 국산 RPG의 자존심으로 불렸던 '창세기전' 시리즈. 그러나...

대한민국 패키지 시장의 종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던 이런 저런 요소가 한꺼번에 결합되면서 종말이라는 커다란 사건으로 나타날 뿐.

1990년대 중반 강도 높은 단속과 홍보를 통해 정품 사용을 유도하려 했지만, 복돌이는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불법복제는 수많은 게임이 나오고 게임 환경이 변화해도 결코 줄어들 줄 몰랐고, 오히려 복돌이들이 음지로 숨어들면서 공짜 근성이 더욱 심해지는 결과만 초래합니다. 새로 PC게임의 세계에 입문한 게이머들 역시 다른 복돌이 게이머에게 오염(?)되어 새로운 복돌이가 되어 말 그대로 복돌이가 복돌이를 복제하는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패키지 게임 시장의 유지는 불가능했습니다.

▲ 복돌이 클론군단의 역습

사소한 상업적 성공에 자만한 국내 제작사들 역시 패키지 게임 시장의 멸망을 가속화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스타크래프트’를 적당히 베껴 만들었던 국산 RTS들이 그 대표적인 예였는데, 대부분의 게임이 대놓고 ‘스타크래프트’를 베껴 게이머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유명 제작사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유명 제작사들이 자신들의 이름만을 믿고 수준 이하의 게임을 찍어냄으로써 게이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이는 자연스레 정품 유저들 마저 게임 시장을 떠나게 만들었으니까요.

게다가 게임 시장의 증가와 더불어 과열된 게임 잡지 시장은, 이제 최신 게임 번들 부록 제공이라는 극단의 조치로 많은 게이머들에게서 구매 욕구를 앗아갔습니다. 오늘 산 게임이 다음달에 번들로 나올지도 모르는데 누가 게임을 구매하겠습니까? 이제 남은 일은 이런 요소들을 한꺼번에 폭발시킬 ‘불씨’가 던져지기를 기다리는 것뿐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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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게임 패키지 시장을 불태운 초고속 인터넷망

그리고 그 불씨가 던져졌습니다. 바로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입니다. 처음에는 정부의 시범 사업으로 시작되었던 초고속 인터넷망이 KT의 인프라 정비와 더불어 일반 가정에 보급되자 그나마 남아 있던 패키지시장 마저 쓸어간 것입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미친 여파는 말 그대로 엄청났습니다. 기존의 모뎀으로는 며칠 걸려야 겨우 다운 받던 CD-ROM 이미지를 단 몇 시간 내에 다운받을 수 있고. PC통신이나 패키지 구입과는 달리 자료 다운에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정품 사용 의식이 얼마 있지도 않았지만, 이제 게임 패키지를 구입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 초고속 인터넷망의 가입자 수 증가는 패키지 시장의 축소를 가져온다

초고속 인터넷 망의 보급과 더불어 게임 패키지 시장은 점점 더 축소되었습니다. 또, 온라인 게임이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게임 패키지 구입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됩니다. 시장 축소는 부실한 개발을 낳게 되고, 부실한 개발은 정품 게이머의 감소를 낳게 되며, 정품 게이머의 감소는 다시 시장의 축소를 낳는 어이없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거기에 밀어닥친 IMF 구제금융 사태는 대부분 영세한 규모였던 게임 업체를 휩쓸어버립니다. 이런 압박 속에서 살아남을 게임 제작사와 유통사는 몇 없었습니다. 마침내 몇몇 메이저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통사와 제작사들이 문을 닫게 되며, 여기에 국내 패키지 시장의 종말을 알리게 되는 두 사건이 벌어집니다.

▲ 온라인 게임 열풍의 신호탄이 된 리니지1

누구를 위해 버그는 나오나, ‘마그나카르타’

2001년, 대한민국 게임 패키지 시장의 종말을 알리는 두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소프트맥스의 ‘마그나카르타’ 사건과 손노리의 ‘화이트데이’ 사건 입니다. 이 두 사건 이후 대한민국 게임 패키지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게 되며, 대부분의 개발사가 문을 닫거나 온라인 게임으로 전환합니다.

2000년 초, 소프트맥스는 자사의 인기 RPG 시리즈였던 ‘창세기전’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RPG 프로젝트를 발표합니다. 이미 ‘창세기전’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상황에서 소프트맥스가 ‘창세기전을 능가하는 RPG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 거기에 거는 게이머들의 기대는 그 어떤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소프트맥스 역시 이러한 게이머들의 기대에 부응해 ‘창세기전’을 넘어설 걸작 게임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며, 대한민국 게임대전(KAMEX)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마그나카르타’라고 이름 짓고 게임 영상과 화면을 공개했습니다. 이 ‘마그나카르타’ 프로젝트는 당시 침체되어 가던 국산 패키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마지막 구세주나 다름없었고, 사전 예약 물량이 초기에 소진될 정도로 게이머들의 반응 역시 남달랐습니다. 그러나…

2001년 말, 마침내 벼르고 벼르던 소프트맥스의 야심작 ‘마그나카르타’가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그나카르타’는 국내 게임 패키지 시장과 게이머들에게 경악과 충격을 가져오게 됩니다. PC에 따라 설치조차 되지 않거나, 시디롬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는 양반이었습니다. 설치를 했다고 해도 툭하면 게임 중에 윈도우로 튕겨서 사람의 뚜껑을 여는 문제에, 작업표시줄에 ‘Magnacarta Alpha’(네, 베타 아닙니다.)라고 표시되는 문제 등… 채 입에 담기도 힘든 만큼 많은 문제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외에 게임 내용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는데, 스토리 자체가 짧고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말 그대로 ‘창세기전에서 스토리 잘 짜던 실력은 어디다 팔아먹었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어이없는 졸작 이었습니다.

▲ 패키지는 호화로웠으나, 정작 게임이 졸작이었던 '마그나카르타' 사전예약판 패키지

이미 ‘스타크래프트’를 적당히 베껴먹은 국산 RTS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메이저 개발사가 사상 최악의 졸작을 내놓자 게이머들의 신뢰는 말 그대로 땅바닥까지 떨어집니다. ‘마그나카르타’ 사태에 분노한 게이머들은 ‘소프트맥스’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산 게임인데 이럴 수가 있냐며 소프트맥스에 격렬하게 항의했고, 결국 소프트맥스는 대표이사의 사과문이 동봉된 리콜 시디를 발송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마그나카르타’ 사태는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던 정품 게이머들의 구매 의지마저 꺾어버리고 맙니다. 이후 소프트맥스는 다시는 PC 게임 패키지를 내놓지 않습니다.

▲ 소프트맥스 공식 홈페이지에도 PC판 '마그나카르타'의 출시 사항은 삭제되어 있다

7천장의 판매량과 10만건의 다운횟수, ‘화이트데이’

‘마그나카르타’ 사건이 제작사가 게이머를 배신한 사건이라면, 반대로 ‘화이트데이’는 게이머들이 제작사를 배신한 사건입니다. 2000년, 처음 ‘화이트데이’ 프로젝트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화이트데이’는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3D 호러 게임이기도 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를 무대로 한 게임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이 ‘화이트데이’가 정식 출시 되면 구입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프로젝트 전면 수정과 약간의 연기 끝에 2001년 가을, 정식으로 ‘화이트데이’ 패키지가 발매되었습니다. 1만 8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과,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완성도 높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게이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약 7천여장이 팔리고서는 그걸로 그냥 끝난 것입니다. 당시 7천여장이면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화이트데이’에 대한 게이머들의 관심을 생각해 볼 때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던 것입니다.

▲ 좋은 패키지가 저렴한 가격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참패한 '화이트데이' 그래서인가 패키지 속 주인공의 모습이 오늘따라 처연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화이트데이’ 게임 자체는 불과 7천여 장이 팔렸을 뿐인데 와레즈에서는 약 십여 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고, 이들 불법 유저들이 수정패치를 받기 위해 손노리 홈페이지에 몰리면서 홈페이지를 다운시켜버리는 촌극까지 빚은 것입니다. 당연히 손노리는 분노했습니다. 이원술 대표가 직접 나서 ‘게임은 7천장이 팔렸는데 어떻게 패치 다운은 10만 건이 넘느냐’라고 분통을 터트릴 정도였고, 아예 화이트데이를 업로드한 몇몇 유저들을 고소하는 사태에 이릅니다.

그러나 게임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고 ‘화이트데이’는 불과 몇 개월 뒤 모 잡지 번들로 나오게 되는 불운을 맞게 됩니다. ‘화이트데이’ 사태 이후 손노리 역시 다시는 PC 패키지 게임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침체에 접어든 국내 게임 패키지 시장은 완전히 얼어붙고 이후 더 이상 ‘대작 국산 게임’의 출시는 없었습니다. 물론 2002년 이후로도 간간히 국산 게임은 나왔지만 게이머들 사이에서 '잘 만들었는데 그냥 불법복제나 해야지'(씰,나르실리온), '만들지 말든가 이게 뭐꼬'(천랑열전), '애들 코 묻은 돈이나 긁어내려는 짝퉁 게임'(너무 많아서 생략) 등의 처참한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PC 패키지 게임 시장은 멸망했다.

- 차회예고

[특별기획] 대한민국 복돌이의 역사 3부작

2부: 모드칩에서 커스텀 펌웨어까지 - 콘솔 복사 전쟁

CD-ROM 매체의 도입 이후 벌어진 콘솔 복사 전쟁! 최신 복제 방지 장치를 단 한달만에 뚫어버린 기술자들, 어떻게든 백업시디를 돌려보려는 복돌이들의 눈물겨운 사투, 그리고 커스텀 펌웨어가 당연해진 현재의 이야기까지. 복사를 막는 자와, 복사를 하려는 자 간의 장대한 싸움! 대한민국 복돌이의 역사 제 2부, '모드칩에서 커스텀 펌웨어까지 - 콘솔 복사 전쟁'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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