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종횡무진] 추억은 방울방울, 달려라 코바를 아세요?

/ 2

요새는 어린아이들이 시간만 있다면 할 놀이가 많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이 하고 놀 것이라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말뚝박기, 제기차기, 술래잡기, 다방구 같이 온몸으로 뛰어노는 놀이가 주를 이뤘고 게임기가 있는 집은 정말 드물었다.

당시 흔히 ‘패밀리’란 이름으로 불렸던 ‘패미컴’ 있는 집은 상당히 부유한 집에 속했다. 게임을 하고 싶은 친구들의 잦은 방문은 그 집 부모님들이 게임기를 격파하는 한 가지 원인이 되기도 했으므로 내 임의대로의 출퇴근은 불가했다. 때문에 ‘프로레타리아’ 계급에 속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게임기를 소유하신 ‘부르주아’ 계급의 친구가 나를 간택하여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었다. 필자 역시 그 당시 부모님께 게임기를 사달라고 조르다가 과도한 맴매를 맞고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지 깊이 회의하며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고’관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더랬다. 물론 부모님이 사주신 봉봉과 쌕쌕을 한 캔씩 마신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러나 친구 집에서 즐겼던 ‘슈퍼마리오’의 피구왕 통키 뺨치는 가공할 점프력과 버섯을 먹고 커진 마리오의 위용은 그러한 생각을 저 멀리 날려 버릴만큼 강력했다. 당시 ‘패밀리’뿐 아니라 ‘재믹스’, ‘겜보이’, ‘슈퍼콤’ 등도 인기가 있었다. 이 당시 풍조 역시 “패밀리가 아니면 어때? 재밌으면 그만이지.”라는 MB식 실용주의 역시 일찌감치 유행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간 것”처럼 감미로운 첫 게임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기에 충분했었다.

▲ 재믹스면 어때? 재밌으면 그만이지

▲ 패밀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러나 게임기를 보유하신 ‘부르주아’께서는 하해와도 같은 은전을 하사하시는데 매우 인색하시었기 때문에 무산 계급의 아이들은 하릴없이 땅따먹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땅따먹기나 하고 놀았다고 비웃지 마시라! 당시의 우리는 땅따먹기를 하며 장래의 부동산 재벌을 꿈꾸었다. 그러나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라 하였고 맥아더 장군은 "Boys be ambitious!"라고 일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의 부동산재벌에 그치지 아니하고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이 되기위해 ‘부루마불’을 하였더랬다.

▲ 신나는 세계여행, 돈 드는 세계여행

부루마블은 당시 구비전승되는 룰로 행해지는 민속놀이와 전통놀이에만 집착하던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실로 혁신적인 게임이었다. 번듯하게 설명서에 적혀있는 명문화(明文化)된 룰은 기존 민속놀이 등에서 구비전승 룰에 앞서는 규칙, 즉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를 누르는 위업을 달성했으며 ‘우기기’와 ‘떼쓰기’ 역시 통하지 않는다는 현대사회 모범시민의 덕목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야구 감독인 김영덕의 ‘비난은 잠깐이나 기록은 영원하다.’라는 교훈을 통해 역시 뭐든지 기록이 되어서 성문화가 되면 당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돈을 빌려 줄 때도 반드시 차용증을 받아두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은 믿거나 말거나. 한편 박스 뒷면에 적힌 ‘포오드 작전’과 ‘노르망디 작전’이 뭔지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할 만큼 도통 알 길이 없었으나 제보에 의하면 디럭스 판이라고 불리는 최고급 버전에는 그 작전의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다고 전한다. 가히 지식을 돈으로 사고파는 지식컨텐츠 산업의 시초라 아니 할 수 없으나 돈 없는 자에게는 정보를 차단하는 ‘씨앗사’의 횡포는 “파아란 구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우리들의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고 다스립시다.”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무색케 했다. 그러나 뉴욕, 런던 보다 비싼 서울의 땅값과 서울의 절반 밖에 안되는 부산의 땅값은 향후 닥쳐올 부동산 버블과 연이은 정책의 실패, 서울과 지방의 커져만 가는 격차를 내다 본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었다.

▲ 캐치프레이즈, 돈 없는 아이들도 노르망디 작전이 뭔지 알 권리는 있었다

▲ 런던과 뉴욕보다 비싼 서울의 땅값, 이대로 좋은가

▲ 갈 수록 현격한 서울과 지방의 격차, 이대로 좋은가

그러나 ‘부루마불’ 역시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는 했지만 최소 천원짜리 한 장 이상은 있어야 하는 고급게임이었단 말이다. 즉 무산 계급의 아이들에게 그 접근성은 다소 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으니 바로 ‘볼펜 축구게임판’ 이었다. 볼펜으로 딱딱 찍어서 공을 드리블해 나가는 이 게임은 특유의 조작감과 손맛이 존재하여 그 재미가 매우 뛰어났다. 가격 또한 저렴하여 당시 폭풍같은 인기를 얻었음은 물론이다.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기묘한 2-6-2 포메이션을 짠 그 축구게임판은 문방구에서 약 50원을 지불하면 구입이 가능했다. 축구게임판을 사면 축구공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을 약 3개정도 무상지원하는 문방구의 판매정책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의 호응을 얻곤 했다.

▲ 축구게임판’ 골키퍼는 세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동봉된 축구공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은 금방 사라지거나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그 대체재로 사용된 것이 바로 책받침이었다. 책받침도 코팅식 책받침은 사용하기가 어려웠고 플라스틱 책받침이 선호되었다. 보통은 둥그렇게 잘라서 사용했으나 성격이 모나거나 별난 친구들의 경우에는 세모나 네모로 잘라서 쓰기도 했다. 또한 공인규격의 축구게임판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드는 친구들도 많았다.

이럴 땐 스케치북이 메인스타디움의 역할을 하고 선수를 그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었다. 6백, 7백 수비나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상대의 골 문 근처에 배치하는 상상을 초월한 기묘한 포메이션 등이 등장했으며 그리다보면 11명이 아닌 13명인 팀이 되기도 했으며 실력에 따라 한 편이 다른 편보다 많은 선수를 그리기도 하는 등 자유로운 스타일의 경기방식을 택했다. 그만큼 저마다 부단한 실력연마와 전략적으로 우월한 포메이션 형성을 위해 애를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무사함을 위해서 선수를 그릴 때 동전을 대고 그 원형을 그리는 정도의 규칙은 반드시 준수해야 했다. 게이머들의 수준 혹은 재정적 상태에 따라서 선수가 50원이 되기도 하고 500원 동전이 되기도 했다. 보통 국민볼펜인 ‘모나미 153볼펜’이 공식 게임도구로 통용되었다.

▲  맨 뒷장에는 언제나 축구게임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나미 153’ 볼펜 끝이 닳고 닳도록 축구게임을 했으나 역시 밀려오는 패밀리에 대한 그리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자오락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구원적 성격을 띈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니...

그 이름조차 친숙한 ‘달려라 코바’ 였다. 코바라는 이름답게 거대한 코를 자랑하는 ‘달려라 코바’는 이름마저 예쁜 김예분 누나가 진행하는 전화게임프로그램으로서 당시 아이들의 생활패턴에 큰 족적과 획을 그었던 프로그램이었다.

▲ 당시 꼬꼬마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예쁜이 예분 누나!!

이 프로그램의 진행방식은 전화로 게임을 플레이할 시청자를 연결하고 운 좋게 연결된 시청자는 전화버튼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실로 일대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시청자가 전화버튼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공중파 방송으로 송출하는 이 시스템은 시청자로 하여금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며 방송시간이 되면 너도나도 전화기를 들고 ‘달려라 코바’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현상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필자도 매번 방송을 볼 때 마다 전화를 시도했지만 단 한번도 연결된 적은 없었다.

▲ 코바, 옛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의 우리 코바

카누, 모터사이클, 행글라이더, 스키, 스케이트보드 같은 종류의 게임이 있었고 전화버튼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가정에 게임기가 보급된 시기가 아니라서 그거 하나만으로도 어린이들은 열광했다. 필자 역시 TV를 보면서 버튼 누르는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전화기가 있어도 참가할 수 없는 불쌍한 아이들도 있었으니 바로 다이얼식 전화기를 보유한 집 어린이들이었다. 이 때문에 버튼식 전화기로 바꿔달라고 부모님께 조르는 어린이들도 꽤 있었다.

▲ 다이얼식 전화, 돌리는 순간 코바는 이미 죽어있다

지금까지 게임에 얽힌 옛날의 추억을 두서없이 뜬금없이 이야기해 보았다. 크게 공감하시며 “맞아 맞아.”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어린 시절 지방에 살아서 SBS를 접하지 못한 까닭에 “도대체 코바가 뭐야?”하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은 그냥 그런게 있었으려니 하시는 게 상책일 것이다. “내가 즐겨 했던 뻥딱지하고 종이인형 옷입히기는 왜 안나오지?”하는 분도 있으리라. 그런분들께는 죄송하단 말씀 먼저 드리고 싶다. 필자는 뻥딱지하고 종이인형은 별로 안 좋아해아는 바가 별로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는 어린 시절 저마다의 놀 거리와 즐길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거 하나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인데 어린 시절 우리는 그 작은 것 하나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었다. 잠시잠깐이라도 그 어린 날의 마음을 떠올리며 행복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5
11